[임영호의 인문학 서재] 이상과 현실 그 어딘가에서
[임영호의 인문학 서재] 이상과 현실 그 어딘가에서
  • 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 승인 2021.02.25 09: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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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서머셋 모옴
윌리엄 서머셋 모옴

월리엄 서머셋 모옴(1874~1965)은 파리에서 태어난 영국 작가입니다. 아버지는 변호사였고, 어머니는 영국 왕실의 피가 섞인 군인의 딸로서 작가적 기질이 있는 지식인이었습니다. 

달과 6펜스
달과 6펜스

서머셋 모옴은 10살 때 부모를 모두 잃고 목사인 큰 아버지 집에서 성장하였습니다. 큰 아버지는 성직자를 희망했으나 의사가 되었으며 그것도 잠시, 작가를 지망하여 10년 동안은 가난하게 살며 무명작가 생활을 유지하였습니다. 1919년 바로 《달과 6펜스》를 발표하면서부터 세인의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
빈센트 반 고흐

이 소설은 바로 프랑스 후기 인상파 폴 고갱(1848~1903)을 모티브로 했다고 합니다. 빈센트 반 고흐(1853~1890)가 자기 귀를 자른 사건이 일어난 배경에 폴 고갱이 관련되었습니다. 폴 고갱도 삶이 평탄치 않을 만큼 괴상한 예술혼의 소유자입니다.  《달과 6펜스》에서 한 화가의 예술에 영혼을 받치는 광적인 삶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폴 고갱
폴 고갱

이 소설은 폴 고갱의 전기는 아닙니다. 폴 고갱의 특별한 이미지를 작가의 상상력으로 만들어 낸 픽션입니다. 《달과 6펜스》에서 달은 무엇이고, 6펜스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호기심이 일어납니다. 6펜스는 영국 화폐 중에서 가장 작은 단위로 세속적인 것을 의미하고, 달은 우리가 가질 수 없는 이상을 의미하지 않나 짐작합니다. 

이야기 전개는 작가 자신이 화자(話者)로 등장합니다. 이제 40세에 들어선 남자, 찰스 스티릭랜드는 런던의 한 증권회사의 주식 중개인입니다. 그는 아주 말이 없고 문학이나 예술에는 손톱만큼도 흥미가 없는 듯하게 살아온 답답한 남자입니다. 이에 반하여 아내 에이미는 자기 집에 시인이나 작가들을 초대하여 대화하고 즐기는 사교적인 타입입니다. 어느 날 스티릭랜드가 편지 한 장 달랑 써놓고 훌쩍 집을 떠납니다. 

“이제 다시 돌아오지 않겠소.”
“내 결심은 절대로 바뀌지 않을 거요.” 

이럴 때 사람들은 남자에게 여자가 생긴 것으로 단정합니다. 에이미는 절대로 이혼하지 않겠다고 말하며 아이를 생각해서라도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녀는 작가에게 파리로 떠난 남편을 만나 보라고 부탁합니다. 그가 떠난 이유는 오로지 그림을 그리고 싶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릴 때 화가가 되고 싶었는데 아버지가 화가가 되면 돈을 못 번다고 나를 장사 길에 들어서게 한 거요. 사실은 1년 전부터 조금씩 그림 공부를 하고 있었소."

작가는 지금 그 나이에 더군다나 안정된 사회인으로 아내와 두 아이까지 있는 사람이 화가라니 정말 어리석은 일이라고 정확하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마치 악마가 그의 몸과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서 잡어 가는 것이 아닌 가하는 기분이 들 정도로 어떤 격렬한 힘을 생생하게 느꼈습니다. 

17년 동안 가족들을 먹여 살렸으면 이제 내 역할은 다했고, 처 자식이 구걸을 하고,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악질로 생각해도 상관없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아무리 열정에 사로잡혀 있어도 그렇게까지 희생하면서 과연 그만한 가치 있는 작품을 그릴 수 있는 지가 의문입니다. 에이미는 스티릭랜드를 포기하고 먹고 살기위해 몇몇 작가들에게 일을 얻을 요량으로 곧 바로 속기와 타이프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스티릭랜드의 파리 생활은 거지와 다름없었습니다. 자신의 그림을 팔기는커녕 남에게 보이기조차 꺼려 했습니다. 그는 출품도 누구의 비평도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오직 자기 영혼이 이끄는 대로 그림을 그렸고, 형편이 되는 대로 살아갑니다. 그는 꿈속에서 사는 사람으로 강렬한 개성으로 캔버스 위에 모든 힘을 쏟아놓지만 일단 그 일이 끝나면 그것에 대한 관심을 끊고 그 작품에 만족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랑도 어떤 것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인생은 사랑과 예술, 양쪽을 다 누릴 만큼 길지 않으니까요." 

한편 파리에서 그의 예술성을 인정하는 사람이 딱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더크 스트로브, 그는 몽마르트의 어느 화실에서 그림 그리는 화가지만 시골 이발소에 걸린 그림처럼 서툰 솜씨로 상업용 그림을 그려 팔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의 작품에 대한 감상안은 높이 살 만합니다. 옛 대가의 작품도 올바르게 판별했고, 현재의 화가들에 대하여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었으며, 새로운 화가의 재능을 발견하는 눈으로 스티릭랜드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은 천재라고 나는 확신하네. 앞으로 백년 뒤에 만일 자네나 내 이름이 조금이라도 세상에 남아 있다면 그것은 다만 우리가 찰스 스티릭랜드를 알았다는 이유 때문일 걸세."

자신은 시시한 그림을 그리지만 하루 종일 붙어 있으면서 장을 보러가고 식사 준비하고 바느질을 하는 더크의 아름다운 부인 블란치가 있습니다. 더크는 가끔 자신에게 악담과 욕설을 예고도 없이 퍼붓지만 불쌍한 스티릭랜드와 크리스마스를 같이 보내고 싶었습니다. 

스티릭랜드는 이때 뼈와 가죽밖에 없는 상태로 몹시 아팠습니다. 더크가 찾아가서 보니 이틀 동안 밖에 나가지 못하고 전혀 먹지도 마시지도 못했습니다. 침대 밑에 빈 우유병과 신문지 조각 안에 빵 부스러기가 남아 있을 뿐입니다. 침대와 의자 한 개가 고작이고 카펫도 난로도 없습니다. 

더크는 아내에게 스티릭랜드가 중병을 앓으니 우리 집에 데리고 와서 돌봐 주자고 제안합니다. 처음에 부인이 적극 반대했지만 애원하다시피 하는 더크의 간절함과 단호함에 더 이상 반대하지 못하고 데리고 와서 온 정성을 다해 간호합니다.

몸이 다 나아가고 스트릭랜드가 떠날 때가 되자, 아내 블란치가 당신하고는 더 이상 살 수 없다고 선언하고 스트릭랜드를 따라 나가겠다고 말합니다. 더크는 스티릭랜드에게 자기 아내를 말려달라고 애원합니다. 

“그야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거지.” 
“난 강제로 따라오라는 말은 하지 않았소.”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도 야생동물과 같이 뻔뻔스럽게 사악한 스트릭랜드의 태도에 더크는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그가 가증스러웠습니다. 그러면서 둘의 관계가 최악의 사태로 결말나면 자기에게 다시 의지할 것이고 그녀는 돌아올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얼마 후 그녀가 자살했다는 소식이 들어옵니다. “세상은 험하고 냉혹한 곳이야. 왜 왔는지, 태어나 어디로 가는 지도 모르고 사라져 버리는 거야.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 인간은 겸손해야 돼. 그리고 침묵하는 것이 미덕인지 알아야 해. 운명의 신에 띄지 않도록 일생을 수수하게 보내야 한단 말일세. 단순하고 무지한 사람처럼 평범한 사랑을 찾아야 했어. 그런 사람들의 무지는 우리가 지닌 모든 지식보다 더 존귀한 거야. 우리도 잠자코 스스로의 행운에 만족하고 그들처럼 온순하고 부드럽게 살아야 했어. 그것이 바로 인생의 지혜라는 거야.” 

아내의 배신과 자살로 얼이 빠진 더크는 자신의 화실에서 벌거벗은 여인을 그린 스트릭랜드 그림을 보게 됩니다. 블란치를 모델로 한 그림이었습니다. 그 나체화를 내동댕이 치고 찢어 버리려고 하는 순간 그의 눈은 그 그림의 비상함에 동작을 멈춥니다.

블란치를 모델로 한 스트릭랜드의 그림
블란치를 모델로 한 스트릭랜드의 그림

동거 3개월 하는 동안 아마 정부(情婦)로써 존재한 것이 아니고 모델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그들 사이에 생활의 안락이라든가 아름다운 감성은 존재하지 않는 여전히 ‘낯선 타인’일뿐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남녀가 다른 점은 여자는 하루 종일 계속 사랑할 수 있지만 남자는 그럴 수 없습니다. 스트릭랜드는 예술 자체가 성적 본능의 표현입니다. 예술적 창조에서 얻은 만족감을 빼놓고 그 외는 너무나 비인간적입니다. 자신을 혼자 내버려 두라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저자 월리엄 서머셋 모옴이 이 소설을 쓴 동기는 우연히 타히티 섬을 여행하게 된 일입니다. 스트릭랜드가 오랜 방황 끝에 정착한 곳이 바로 이 섬이며 그의 명성을 확고하게 한 많은 걸작을 그린 곳도 바로 타히티 섬입니다. 

그는 파리를 떠나 마르세유 항에서 부둣가의 건달패처럼 배회하며 소일하다가 운 좋게 오스트레일리아로 가는 배를 타게 됩니다. 시드니와 오클랜드를 거쳐 샌프란시스코 가던 중 남태평양의 외딴섬 프랑스령 타히티에 기항합니다. 그의 나이 47세입니다. 

아타
아타

타히티의 모든 환경은 고독한 영혼 속에서 자신의 영감을 실현시키는데 필요한 조건을 다 갖추어져 있었습니다. 깊은 신비감에 쌓여있는 머나먼 태곳적 생활이 옛 모습 그대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곳의 한 호텔 주인의 소개로 현지 아가씨 ‘아타’를 소개받고 그녀와 함께 깊은 원시림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여인의 섬김을 받으면서 아름다움을 창조하고자 하는 불타는 정열로 오로지 좋아하는 그림을 그립니다. 

가끔 섬의 농장에서 두 달 정도 일해서 그림 그릴 재료만 살 수 있게 되면 거처로 들어가거나, 어느 날 불쑥 나타나서 200프랑을 빌리고 1년 후에 그림 한 점을 가지고 찾아옵니다. 그들에게 그 그림은 도통 알 수 없는 희한한 그림이어서 집에 걸어두지 못하고 다락방에 처박아 두었습니다.

섬에 온 지 3년간은 스트릭랜드 생애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두 사람만의 생활이었고 그림을 그리거나 책을 읽고  어두워지면 베란다에 나가 담배를 피우면서 밤하늘을 바라보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아기를 낳았습니다.

그가 살던 곳은 산호로 둘러싸인 기다란 땅으로 훌륭한 바다와 푸른 하늘, 다채로운 산호의 아름다움, 우아한 야자수와 수목들이 짙푸르게 우거져 정말 색채의 향연이 벌어집니다. 이는 마치 에덴동산과 같은 황홀한 아름다움입니다.

행복한 시간도 끝은 있습니다. 그는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그는 함께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떠나라고 요구합니다. 아타는 격하게 반격합니다. 순간 그 비정한 스티릭랜드도 두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져 볼을 타고 조용히 흘러내렸습니다. 비정한 그에게 처음 있는 일입니다. 

“당신은 제 남편이고 전 당신 아내예요. 당신이 저와 헤어진다면 저는 뒤 뜰에 있는 나무에 목을 매고 죽어 버리겠어요. 하나님 앞에 맹세해요.” 

1년이 지나자 앞을 볼 수 없었고,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몰골로 변한 채 숨을 거두었습니다. 죽기 전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것들을 모두 쏟아 놓은 것처럼 바닥에서 벽 천장까지 누구도 보지 못했던 기이하고 환상적인 작품, 마치 태초의 세계인 아담과 이브가 살던 에덴동산과 같은 풍경을 그렸습니다. 

스티릭랜드는 아타에게 자기가 죽거든 우선 시체를 묻고, 매장이 끝나는 데로 오두막집에 불을 지르고, 나뭇조각 하나도 남지 않도록 전부 타버릴 때까지 그 자리를 떠나면 안 된다는 것을 유언처럼 당부합니다. 그래서 최후의 대작이었던 위대한 그 벽화는 지구상에서 사라졌습니다. 

화자는 런던에 있는 스트릭랜드 부인에게 편지를 보냈고, 약속한 날짜에 방문하여 자세한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녀의 응접실에는 모 출판사 기획으로 나온 원색판 스트릭랜드 화집 중에서 고른 그림 몇 장이 걸려 있었습니다. 부인은 뛰어난 저 그림을 보면서 큰 위안이 된다고 말합니다. 이 같은 색채 변화는 남태평양의 작은 섬에서 비참한 생애를 마친 한 화가 꿈에서 나온 것임을 그녀는 알고 있는지 궁급합니다.

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이 책을 덮으면서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예술과 삶, 이상과 현실은 서로 평행선을 그어야 하는 존재인가, 나는 세상의 시선을 무시하고 오로지 ‘영원한 현재’의 세계를 추구하는 그런 예술인을 이해할 수 있을까, 결국 스트릭랜드의 삶은 우리의 이상이 아니고 그저 망상이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달과 6펜스》는 유려한 문체로 물 흐르듯 한 글 솜씨에다가 긴박한 전개로 하룻 밤에 읽을 수 있을 만큼 흥미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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