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재 콩트, 살다 보면…] 줄여도 너무 줄이는 거 아냐
[정덕재 콩트, 살다 보면…] 줄여도 너무 줄이는 거 아냐
  • 정덕재 시인
  • 승인 2021.03.21 16:23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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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정덕재 시인] “엉뜨할까요?.”

차에 타자마자 20대 후반의 젊은 직원이 묻는다. 자주 어울리는 관계는 아니지만 같은 부서 소속이라 늘 보는 직원이다. 갑작스러운 출장이라 업무용 차를 배정받지 못해 직원 차로 이동하기로 했다. 나이가 많다는, 짬밥이 오래됐다는, 예전에 나도 그랬으니까 너도 그래야 한다는 꼰대 정신으로, 차를 얻어 탔다.

“엉뜨?”

“추우시면 엉덩이 따뜻하게 온열시트 누르려고요.”

“내가 본래 열이 많은 태음인이라서 괜찮아.”

엉뜨라는 말을 바로 눈치채지 못한 사실에 잠시 애송이한테 무시당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무실에서 20-30대 직원들과 점심을 먹거나 회의를 하다 보면 수시로 줄여 쓰는 말에 당혹스럽거나 고개를 갸우뚱거릴 때가 자주 있다.

“근데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우리 부서 신입이랑 5층에 있는 여직원이랑 자주 다니던데 둘이 사귀나?.”

“누구 말씀이세요?.”

“단발머리에 안경 끼고.”

“아, 그 친구요. 아직 삼귀다죠.”

“삼귀다?.‘

”죄송합니다. 습관적으로 쓰다 보니까 이런 말 모르실 수 있다는 생각을 깜박했네요. 사귀다의 ‘사’를 숫자 ‘4’로 놓고 그걸 3으로 바꿔 삼귀다라고 하는 거예요. 아직 사귀는 단계는 아니고 썸 타는 정도라는 거죠.“

“연애할 때도 줄인 말이나 신조어를 못 알아들으면 낭패를 보겠네. 나는 바지 기장만 줄여봐서.”

불편했다. 젊은 직원과 출장을 나가면 차도 얻어타고 심부름도 시킬 수 있어 편할 줄 알았는데 출발부터 쉽지 않은 조짐을 보였다. 오전 업무를 끝내고 들어오면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난 괜찮으니까 먹고 싶은 거 먹어.”

“햄버거 드실까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잘 안다. 평정심을 유지하고 자연스럽게 답변을 해야 한다. 익숙한 듯 말이다.

“좋아, 나도 햄버거 자주 먹는 편이야. 점심엔 간단하게 먹는 것도 괜찮아. ”

“정말요, 나이 드신 분들은 잘 안 먹던데 다행이네요.”

김치찌개나 동태탕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파스타 정도는 무난하게 받아들일 생각이었다. 햄버거를 점심식사 메뉴로 생각할 줄은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햄버거 먹어본 지 일 년도 넘었다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었다. 나는 키오스크 단말기 앞에서 젊은 직원에게 카드를 건넸다.

“햄최몇?.”

“난 괜찮아, 같은 거 먹자고”

“아니 그게 아니라요, 햄버거 최대 몇 개까지 드실 수 있나고요. 햄최몇?”

“글쎄, 두 개.”

햄최몇이라는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을 들으면서 갑자기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금시초문의 낱말이었다. 함께 동태탕을 즐겨 먹는 후배 녀석과 같이 나왔더라면 동태탕 추어탕 순댓국 매운탕 마음대로 고를 수 있었을 텐데, 뒤늦은 후회가 밀려 왔다.

‘감튀도 먹을까요?.“

다행히 내 머리엔 순발력을 발휘할 만한 능력은 남아 있었다. 감자튀김을 말한다는 걸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감자튀김 좋지.”

“징거버거와 타워버거 중에서 어떤 게 좋으세요?.”

“난 징거.”

서슴없이 대답했다. 1초의 망설임도 없었다. 징거버거와 타워버거의 차이를 알 수 없어도 그게 뭐냐는 표정은 짓지 않았다. 징거버거 안에 닭가슴살이 들어있는 것도 처음 알았다. 사무실로 들어오는데 허기가 밀려왔다. 햄버거 가게에서 나온 지 30분이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점심 맛있게 드셨어요?”

동태탕을 자주 먹는 후배 녀석의 말투가 엉뜨부터 시작해 햄최몇까지, 상황을 알고 있는 표정이었다. 문득 호기심이 발동했다.

“햄최몇?.”

“아, 부대찌개 드셨구나.”

“햄 들어갔다고 금방 부대찌개라고 답하는 단순한 인간 같으니라고.”

“왜 그러세요, 밖에서 뭐 불편한 일 있으셨어요?.”

나는 녀석을 비어있는 회의실로 데리고 들어가 출장길에 있었던 문화적 차이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그럼 얼죽아는 아세요?.”

“그 정도는 나도 알지, 뻐까충도 아는데.”

“버스카드충전은 쌍팔년도에 썼던 말이죠. 우리가 이러다가는 진짜 꼰대가 될 수 있으니까 애들이랑 자주 어울리면서 애들 어법을 배우면 어때요?. 오늘 저녁 당장 치맥 한번 할까요?.”

다행히 출장을 같이 나갔던 젊은 직원과 또래 하나가 바로 화답을 했다. 퇴근 후 찾은 치킨집은 이른 시간인데도 절반가량 손님이 차 있었다.

“생맥주 천칠백에 소주 하나 먼저 주세요.”

주종을 선택하며 메뉴판을 살펴보았다. 치킨의 종류는 다양했다. 치킨을 언제부터 부위별로 나누어 먹었는지 그 역사를 알 수는 없어도, 누런 봉지에 담아온 옛날의 시장 통닭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메뉴를 고르는 사이에 생맥주와 소주 한 병이 놓였다. 나는 소주 뚜껑을 힘차게 돌린 다음 맥주 통에 소주를 부으려고 병을 기울였다. 그때였다. 놀란 목소리가 한 방울의 침과 함께 튀어나왔다.

“혹시 섞으시려고요? 각자 취향대로 드시면 안 될까요?.”

젊은 직원이 소주병을 든 내 손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동태탕 후배 녀석이 놀리듯 한마디 거들었다.

“요즘 그렇게 드시는 분들이 어디 있다고, 저희는 그냥 따로 섞어 드시죠.”

출발부터 난항이다. 술에 취하기도 전에 젊은 친구들의 말에 취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양념 반 후라이드 반 아니면 간장이나 마늘 치킨, 어떤 게 좋을까, 윙도 좋고.”

나는 메뉴판에 있는 치킨의 종류를 명료하게 정리해 제시했다.

“당모치.”

젊은 직원과 또래는 마치 정겨운 듀엣이라도 되는 듯 한목소리로 당모치를 외쳤다. 그 순간 동태탕 후배와 나는 눈빛을 교환하는 늙은 듀엣이 되었다. 후배의 눈빛은 흔들렸고 내 눈빛은 더 흔들렸다. 메뉴판에 없는 메뉴를 똑같이 외친 것은 오랜 연습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참으로 기가 막힌 하모니였다. 명랑한 당모치 같으니라고.

동태탕 후배와 나는 심하게 취했고 젊은 직원들은 적당히 취기가 오른 듯 했다. 나는 천칠백맥주통에 소주를 부어버리는 만행을 기필코 해냈고, 동태탕 후배는 박수치며 응원을 보내 주었다. 술값은 누가 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당연히 모든 치킨은 옳다’는 당모치에 대한 설명과 어떤 종류든 치킨이면 좋다는 뜻풀이를 들으며, 나는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이 온다고 말했던 한 정치가의 발음에서 탄생 된 유머를 성대모사로 보여주었다. 앞에 앉아 있는 두 명의 직원들은 휴대폰을 쳐다보며 긴 하품을 쏟았다.

 

“어제 잘 들어가셨어요?.”

얼죽아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동태탕 후배와 냉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전날 함께 술을 마신 젊은 직원이 친절한 인사를 건넸다.

“난 카택귀.”

나는 선문답 같은 짧은 답변을 던지고 황급히 돌아섰다. 길게 말을 나누고 있으면 어제의 상황이 스멀스멀 떠오를 것 같았기 때문이다.

“카택귀가 무슨 말이지?”

젊은 직원의 중얼거리는 소리가 귓등을 쳤다. 동태탕 후배가 물었다.

“선배님, 근데 카택귀가, 그런 말도 있어요?.”

“카카오 택시 타고 귀가했다고, 그냥 내 맘대로 줄여봤어. 쟤들도 모르는 말이 있다는 걸 알아야지. 요즘 애들은 말을 줄여도 너무 줄여. 다음에는 내가 말야. 애들 모아놓고 모음축약이 갖는 발음의 경제성과 언어 축약의 부작용으로 나타나는 소통의 비민주성에 대해서 강의를 하고 말겨. 꼭 한다고 꼭.”

 

그러지 말라며 고개를 강하게 흔드는 동태탕 후배를 뒤에 두고 사무실에 들어왔다. 인터넷뉴스를 보는데 자랑스런 도시를 만들겠다는 어떤 보궐선거 후보자의 인터뷰가 거슬렸다. ‘자랑스럽다’ 라는 형용사를 ’자랑스러운‘으로 바꿀 수는 있어도 ’자랑스런‘이라고 쓸 수 없는, ㅂ불규칙활용 형용사를 댓글로 설명하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시계는 아침 9시 20분, 일찍 결정했다. 오늘 점심은 무조건 동태탕이다. 동최몇? 누구라도 붙잡고 묻고 싶다.

정덕재 시인
정덕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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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재 시인
199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으로 등단. 시집 ‘비데의 꿈은 분수다’, ‘새벽안개를 파는 편의점’, ‘나는 고딩아빠다’, ‘간밤에 나는 악인이었는지 모른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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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K 2021-03-22 16:53:45
동태찌개집 없어져서 아쉽네요

박은경 2021-03-22 13:09:17
아~~~~!!! 글이 난해하군요 ?!신조어때메ㅋㅋ 요즘 10대나 20대 애들하곤 대화하기 힘듦ㅡ그러나 한가지 장점ㅡ걔네가 하는 말 이해하려구 무지 집중한다는 ㅜㅜ집중력 상승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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