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우의 환경이야기] 생수 개발에 맞선 마지막 물지킴이들
[염우의 환경이야기] 생수 개발에 맞선 마지막 물지킴이들
염 우 (사)풀꿈환경재단 상임이사, 청주새활용시민센터 관장
  • 김종혁 기자
  • 승인 2021.04.03 09: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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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먹는물 개정촉구 범국민대회 모습. 사진=풀꿈환경재단/굿모닝충청 김종혁 기자 

[굿모닝충청 김종혁 기자] 인류가 직면한 지구 온난화를 비롯한 환경 문제는 이제 전문가들만의 고민이 아니다. 오늘을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이 지혜를 모아 실천하고 이겨내야 할 문제다. 이에 굿모닝충청은 충북 환경운동의 역사로 불리는 풀꿈환경재단 염우 상임이사로부터 환경의 중요성과 더불어 우리지역에서 진행돼온 환경운동의 현실과 앞으로 실천해야 할 과제 등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염우 풀꿈환경재단 상임이사] 봄이다. 꽃 피우고 싹 틔우느라 자연은 바쁘다. 3월, 4월은 환경단체들도 바쁘다. 3월 22일은 물의 날, 4월 22일은 지구의 날이기 때문이다. 기념행사는 물론이며 웬만한 행사와 프로그램들이 지금부터 시작이다. 물은 지구생태계를 유지해 주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기후재난 사태는 결국 지구 물 순환체계의 이상 현상인 것이다. 물은 삶에도 필수적이다. 물이 있어야 몸이 유지되고 순환과 대사가 이루어진다. 농사도 공장도 물 없이 돌아가지 않는다. 그래서 예로부터 물 인심이 좋은 곳이 살기 좋은 곳이라 했다. 불과 30년 전만 해도 물은 나눠먹는 것이지 사먹는 것이 아니었다. 공공재로서 지하수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저항은 충북도민의 몫이었다.

먹는물관리법이 시행된 1995년, 충북지역은 무분별한 생수 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었고, 이에 맞선 주민들의 투쟁이 불붙고 있었다. 보통은 ‘생수’라 표현하였지만 법률상 용어는 ‘먹는샘물’이다. 당시 충북 곳곳에 30여개의 생수업체들이 생수공장 개발을 동시다발로 추진하고 있었다. 일화생수 등 기존 4대 생수업체가 광천수로 유명한 청원군 초정리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중 하나는 청원 가덕면, 하나는 미원면, 또 하나는 괴산 문광면으로 공장 이전을 추진하였고 각각 주민들과 마찰을 초래하였다. 이들과는 별도로 10여개 무허가 생수업체도 이미 가동되고 있었고, 20여 군데 신규 개발도 추진되고 있었다. 반대운동의 구심점이 된 청원군 미원면의 경우 주민들이 찾아낸 지하수 관정수만 해도 150개에 달한다.

우리나라의 먹는샘물 개발은 88올핌픽을 계기로 본격화 되었다. 당시에는 일부 음료업체가 식품위생법에 따른 음료류의 일환으로 생수를 제조하였다. 1990년대 이후 낙동강 페놀오염사태, 대청호 녹조파문 등으로 수돗물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먹는샘물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고 무허가 생수개발업체가 난립하게 되었다. 특히 전국적 유통이 원활한 충북, 예로부터 물맛 좋기로 유명한 청원지역은 말 그대로 개발의 온상이 되었다. 하지만 정부는 개발로 인한 주민피해 보다 영업 행위의 자유라는 측면을 고려하여 먹는샘물의 제조·판매를 합법화시켰다. 1995년 5월 먹는물관리법이 시행되었으며 이것은 우리나라에서 먹는샘물의 판매를 공인하게 된 역사적 사건이 되었다. 당시 1.8L 먹는샘물 한 병은 1,000원으로 석유값(등유, 경유) 보다 두 배 이상의 가격이었다. 먹는샘물 개발은 황금 알을 낳는 거위로 여겨졌다.

먹는샘물 공장은 주로 좋은 물을 찾아 농촌지역으로 몰렸다. 공장이 들어서게 되면 여지없이 문제가 발생했다. 지하수를 농업용수와 간이상수도로 이용하고 있는 상황이므로 피해는 선명하게 드러날 수 밖에 없었다. 100~300m 깊이의 관정을 파서 지하수를 퍼 올리자 깊이가 얕은 농업용 관정은 고갈되었고 마을의 우물과 주변의 하천이 메말랐다. 심지어 지반침하가 일어나기도 했다. 본질적인 문제는 공공재 성격의 지하수를 사적으로 개발하고 이윤을 목적으로 판매한다는 것이었다. 수돗물에 대한 공공의 책임을 회피하고 시민들에게 부담을 전가시키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일었다. 지하수에 대한 정밀조사와 종합적 관리 방안 부재에 대한 문제도 제기되었다.

먹는물 개발 반대집회에 참석한 미원면의 한 주민. 사진=풀꿈환경재단/굿모닝충청 김종혁 기자 

‘그냥 둬도 되는겨?’하며 의아해 하던 주민들은 피해가 현실로 다가오자 맞서기 시작하였다. 마을과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주민들의 투쟁이었다. 1995년 7월 청원 가덕면 주민들이 반대시위를 시작했고, 9월에는 미원면 생수대책위원회가 구성되었다. 1996년 초 보은 산외면, 청원 낭성면, 제천 백운면 등 충북 전역으로 먹는샘물 반대운동이 확산되었다. 청주환경운동연합 등 환경단체도 적극적으로 결합하였다. 그해 7월 미원, 낭성, 백운, 가덕, 증평, 불정, 산외, 내북 등 충북도내 8개 읍면대책위원회와 24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여 ‘무분별한 먹는샘물 개발저지 및 먹는물관리법 개정을 위한 충북도민대책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청주환경운동연합 조직부장이었던 나는 충북도민대책위원회 간사 역할을 맡았다.

주민들의 반대활동이 활발해지자 충청북도는 난처한 상황이 되었다. 법제도의 한계를 호소하며 정부에 먹는물관리법 개정을 건의하였다. 피해 예방을 위하여 ‘먹는샘물공장 설립 제한 조례’을 제정하려 했으나 법률에 상치된다는 이유로 중단하였다. 계속적으로 먹는샘물 제조영업허가를 내주게 되었다. 도민대책위원회도 먹는물관리법의 근본적인 개정이 필요하다고 인식하였다. 1996년 9월 청주 상당공원에서 2000명의 인원이 참여하여 ‘먹는샘물 제조허가 전면재검토 및 먹는물관리법 개정 촉구 범도민대회’를 개최하였다. 또한 10월에는 서울 종묘공원에서 전국의 먹는샘물 대책기구들과 연대하여 ‘먹는물관리법 개정 촉구 범국민대회’를 개최하였다. 지역사회가 결합하면서 환경과 지하수를 지키기 위한 운동으로 확대된 것이다.

활동의 성과는 매우 컸다. 충북도내 먹는샘물 공장 설립 허가는 대폭 축소(14개 업체만 허가)되었다. 전국 대비 충북의 먹는샘물 공급량도 1995년 63%에서 1997년 16%로 격감하였다. 또한 충북도청에 국내 최초로 지하수 부서(지하수계)가 신설되고, 먹는샘물 개발 피해지역에 대한 지하수 정밀조사도 이루어졌다. 무엇보다도 지하수 관리의 중요성을 알려냈고 관련 법제도를 개선하는데 기여하였다. 부분적이지만 먹는물관리법 개정도 이루어졌다. 한계도 명확했다. 충북에서 줄어든 먹는샘물 개발이 다른 지역에서 본격화되었다. 우리는 1997년 이후 다른 지역 주민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전국을 다녀야 했고, 때로는 개발업체의 협박과 납치에 시달리기도 했다. 지하수의 공개념화를 실현하지 못했고 결국 먹는샘물의 제조·판매 행위를 근본적으로 막아낼 수는 없었다. 이제는 물 판매 뿐 아니라 플라스틱 물병의 사용도 큰 문제다. 

당시 나는 열정만 가득한 새내기 활동가였는데, 향후 20여 년의 활동을 지속해 낼 수 있는 자양분을 획득했다. 주민들과 연대하는 법과 대응기구를 조직하는 법을 익혔다. 전국 환경단체와 협력하는 법, 상경 집회를 하는 법도 배웠다. 법제도 개선을 위한 입법활동의 경험도 쌓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주민지도자의 품성과 리더십을 보고 배운 점이다. 미원면대책위원회를 만들고 충북도민대책위원회를 이끌던 김학성 집행위원장님의 모습을 통해서다. 자신을 낮춤으로써 더 큰 힘을 모아가는 방법, 여러 색깔의 사람들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하는지를 보여주었다. 그는 청주환경운동연합 집행위원장, 청주충북환경연합의 공동대표의 역할을 맡으며 오랫동안 활동을 이어갔다. 물 만큼 소중한 분들에 관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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