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재 콩트, 살다보면…] 야구장에서 김세정
[정덕재 콩트, 살다보면…] 야구장에서 김세정
  • 정덕재 시인
  • 승인 2021.04.05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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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정덕재 시인]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에 출연한 김세정이 최근 미니앨범을 발표했다는 소식은, 동명이인 김세정을 다시 불러오는 계기로 충분했다. 그녀의 노래 <밤산책> 중에 ‘밤길을 걸으면 저 달빛이 내려와 걸음을 따라 비추고’라는 가사가 나올 때 김세정과 나란히 걷던 길이 떠올랐다.

앨범 발매와 프로야구 개막뉴스가 겹치면서, 동명이인 김세정은 구속 150km를 넘는 투수의 공처럼 빠른 속도로 눈앞에 나타났다. 1982년 9월, 세정을 만난 곳은 한밭야구장이다. 만났다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다. 2초 남짓 눈빛을 마주쳤을 뿐이었지만 그 날은 지금도 선명하다.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하던 해에 대전·충청을 연고로 한 팀은 OB 베어스다. OB는 3년간 대전에 머물다 서울로 연고지를 옮겼다. OB가 서울로 갔어도 충청도 사람들은 금세 빙그레 이글스로 아쉬움을 달랬다. 이강돈, 이상군, 이정훈, 강정길, 전대영, 유승안, 고원부, 한희민, 장종훈 등 창단과 함께 1980년대 후반을 빙그레와 함께 한 선수들 이름은 여전히 기억에 남아있다.

프로야구 원년 최대의 화제 중 하나는 OB 베어스 투수 박철순의 연승 행진이었다. 9월 11일 토요일, 한밭야구장에서 열린 홈경기의 핵심 관전 포인트는 21연승 대기록 달성이었다. 그해 박철순은 4월 10일 해태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승리를 거둔 것을 시작으로, 9월 11일 등판 이전까지 20연승을 이어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연승기사를 쓰던 신문도 기록이 쌓여가면서 박철순의 승수 추가는 스포츠 지면을 크게 장식했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가 야구장 근처라서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친구들 여럿이 몰려갔다. 표를 끊고 입장한 기억은 거의 없다. 용돈이 없기도 했지만 담을 넘는 재미가 쏠쏠했다. 야구장 담이 높아 맨 아래에 받침대가 될 만한 것을 놓고 목말을 타면 힘겹게나마 야구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정확하게 몇 회인지는 기억나지 않아도 경기 끝날 무렵인 8회 정도 되면 문을 열어주어 누구나 쉽게 들어갈 수도 있었다. 그 날은 박철순의 대기록 때문에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우리는 일찍부터 담을 넘어야 했다.

목말의 중요한 책무를 담당할 친구는 가위 바위 보로 결정했다. 늘 보자기만 내던 친구의 습관을 일찌감치 간파한 나는 가위를 냈고 가볍게 목말을 탈 수 있었다. 친구의 어깨에 발을 딛고 올라 힘껏 손을 뻗었다. 눈을 들어보니 플라타너스 잎새가 푸르게 내려 보고 있었다, 정강이가 긁히는 정도는 자랑스러운 상흔이다. 담장에서 내려오려고 아래를 바라보는데 플라타너스 잎새와 닮은 색깔의 군복이 보였다. 당시 경기장 경비는 전경들이 담당했다. 나와 눈이 마주친 전경이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먼저 올라간 친구는 무릎을 꿇고 있었다.

“담장 넘을 힘으로 공부를 해라.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어디서 담을 넘어.”

“공부하고 왔는데요.”

말대꾸만 안 했어도 뒤통수 한 대 맞는 것은 피할 수 있었다.

“30분 무릎 꿇고 있다가 가서 봐.”

힘겹게 담을 넘다가 잡히면 야구장에서 쫓겨나는 경우가 대부분 이었다. 하지만 담을 넘은 우리의 수고를 그 전경은 인정해 주었다. 무릎을 꿇고 있으니 경기를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외야석 뒤쪽에선 서서 보는 사람들이 많아 관중 틈 사이로 선수들 뒷모습만 간간이 보였다. 함성이 들리면 박철순이 삼진을 잡았다는 것을 짐작할 뿐이었다. 갑자기 박수와 함성이 들리면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고 전경은 강한 눈빛으로 우리를 제지했다.

“한번 일어날 때마다 10분씩 늘어난다.”

그렇게 20분쯤 지났을까, 단발머리 여학생 둘이 시야를 가리기 시작했다.

“어이, 거기 좀 비켜주지.”

친구의 큰 목소리는 함성에 묻혔다. 무릎을 꿇은 나와 친구 둘은 하나 둘 셋 신호와 함께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비켜줘.”

천천히 고개를 돌리는 여학생의 머리카락은 찰랑거렸다. 목덜미가 시원하게 드러난 흰 셔츠는 잘 어울렸다. 내 눈이 목덜미에서 얼굴로 올라가기 바로 전에, 시간은 거기에서 멈추어야 했다. 얼굴을 마주친 순간은 굴욕의 시간이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깊은 절벽으로 떨어지는 심정이 무엇인지 그때 처음 느꼈다. 나는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났다. 이름 석 자만 들어도 설레었던 김세정, 그녀였다.

세정의 눈빛에는 안타깝고, 어이없고, 무시하는 듯한, 동정심이 묻어나는,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담겨있었다. 세정은 2초 남짓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렸고 바로 자리를 옮겼다. 자리를 비키는 잠시 그녀의 시선은 내 허리 아래쪽을 향했다. 무릎에는 풀과 흙이 묻어 있었다. 고개를 숙여 무릎 꿇은 흔적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사이에 세정은 멀리 사라졌다.

그 날 박철순이 연장 11회까지 괴력의 완투를 해 상대 팀인 MBC 청룡 타자들에게 6안타와 볼넷 3개를 허용했고, 삼진 6개를 빼앗아 21연승의 기록을 세웠다는 기록은 큰 감동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11회 말에 윤동균이 2루타 결승점을 쳐 박철순의 연승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을 때도 나는 환호성을 지르지 않았다. 21연승의 기록보다, 2루타의 조력자보다, 세정이가 보냈던 2초 남짓의 시선은 40여 년 동안 부끄러운 상처로 남아있다. 매해 야구시즌이 시작되면 그 상처는 기다렸다는 듯이 살아난다.

사진=케티이미지뱅크
사진=케티이미지뱅크

김세정을 다시 만난 것은 박철순이 1승을 더 거두어 22연승의 위업을 달성했다는 뉴스가 잠잠한 뒤인 10월이었다. 당시 고등학교 문예부들은 가을이 되면 연례행사로 문학의 밤 행사를 했다. 단상에 촛불을 켜놓고 시와 산문을 낭독하는 단순한 진행이었지만, 여학교 문예부원들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다는 설렘이 큰 자리였다.

대흥동 가톨릭문화회관을 가득 메운 학생들은 귀를 기울였고 촛불이 꺼지면 꽃다발을 건넸다. 꽃 대신에 배추를 전하는 짓궂은 장난도 종종 있었다. 문예부가 있는 학교 간 교류도 활발해 가을이면 주말마다 낯익은 얼굴들을 자주 보았다.

10월 마지막 주말, 나와 세정이는 가톨릭문화회관 근처에 있는 봉봉제과에서 마주 앉았다. 창밖으로 아는 친구 몇이 지나갔고, 그들은 우리를 시샘 어린 눈으로 바라봤다.

대전역 앞 에펠제과에서 두 번, 동양백화점 근처에 있던 태극당에서 세 번, 그때까지 세정이와 단둘이 만난 것은 다섯 번이었고 봉봉제과는 처음이었다.

“박철순 선수는 참 대단해, 22연승 대기록을 세우고.”

예상하지 못한 대화의 시작이었다. 문학의 밤에서 읽었던 누구의 시가 좋았다느니, 누구의 산문이 전개가 매끄럽지 못하다느니, 셋이서 함께 읽은 단체낭독이 지나치게 작위적인 느낌이라느니, 이런 대화가 자연스러울 텐데 세정의 첫마디는 야구였다. 나는 당황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주었다.

“미국물 먹은 투수라서. 밀워키에서 선수 생활하다 왔잖아. 넌 야구장 자주 가?”

“아니. 그때가 처음, 전경들이 야구장에 있는 것도 처음 봤어.”

야구 얘기만 했어도 입심이 셌던 포수 MBC 청룡의 김용운과 삼성 라이언즈의 이만수가 타자들이 타석에 들어서면 ‘어제 먹은 술 냄새가 아직도 나는데 그래서 공을 치겠어’ 이런 너스레를 떨며 타자들의 집중력을 해친다는 얘기들을 해주었을 것이다,

세정이가 전경 얘기를 꺼냈을 때 나는 반성의 고백을 결심했다. 그곳이 봉봉제과만 아니었어도 통성기도 하듯 앞으로 담을 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진심을 담아 큰 목소리로 외쳤을 것이다.

”담을 넘는다는 게 참 그렇긴 하지, 친구들이 재미로 한번 해 보자고 해서, 가위 바위 보로 목말을 정하는 스릴도 있고, 내가 습관적으로 월담하는 사람이 아니야, 예전에 우리 동네에 담을 넘던 도둑이 담장이 무너지는 바람에 깔려서 붙잡힌 적이 있거든, 내가 그때부터 담장을 넘는 게 위험하다는 걸 잘 알지. 그때는 그냥 재미로......”

말을 하고 있어도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구차스럽기까지 했다.

“어떤 상황이든 사람은 가오가 있어야 돼.”

예쁜 입술에서 ‘가오’라는 말이 나올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김세정에게 가오라는 말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었다. 내가 담장을 넘은 것이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는 주장처럼 말이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웃으며 빵집에서 나왔다. 그것도 다정하게. 빵집 앞에서 세정이 집이 있는 오정동까지 걸었다. 그것도 발걸음을 옮길 때 자주 어깨를 부딪히면서. 보름 전날이라 달빛은 밝았다. 오히려 꺼져있는 가로등이 고마웠다. 오정동 고갯길을 오를 때 세정은 박인환의 시 <목마와 숙녀>를 암송했다.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그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숴진다.”

세정이의 암송에 내 목소리를 이어갔다. 그렇게 길을 걸었다. 두 번인가 반복해 암송을 했을까, 헤어져야 하는 골목 앞에 섰다.

“앞으로 목마와 숙녀를 읽을 때면 야구장의 목말이 연상될 것 같아. 이런 패러디는 어때?. 목말을 타고 야구장에 오른 소년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친구들이 버린 목말은 함성을 들으며 야구장을 떠났다.”

세정이의 조용한 목소리는 얄미웠다. 명랑한 웃음소리를 내며 골목 안으로 뛰어가는 뒷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골목은 어두웠고 그녀의 흰색 월드컵 운동화는 환하게 빛났다. 발자국 소리가 멀어지면서 잊고 있었던 굴욕의 시선이 쏜살같이 떠올랐다.

“세정이가 뒤끝이 만만치 않네.”

정덕재 시인
정덕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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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재 시인
199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으로 등단, 시집 ‘비데의 꿈은 분수다’, ‘새벽안개를 파는 편의점’, ‘나는 고딩아빠다’, ‘간밤에 나는 악인이었는지 모른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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