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호의 인문학 서재] 삶의 주체는 누구인가
[임영호의 인문학 서재] 삶의 주체는 누구인가
  • 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 승인 2021.04.07 15: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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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자동인형인 줄 아세요? 감정이 없는 기계인 줄 아세요? 자기 입술에서 빵을 뺏기고 자기 잔에서 살아가기 위한 물을 뺏기고도 참을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제가 가난하고 이름도 없는 신분이고 못생기고 작은 여자라서, 영혼도 감정도 갖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런 생각은 잘못이에요! 저에겐 로체스터님과 같을 정도로 영혼도 있고, 로체스터님과 같을 정도로 감정도 있습니다! 그렇지요, 저희는 실제로 평등해요!”

샬럿 브론테
샬럿 브론테

[굿모닝충청 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제인에어》의 출판 당시 제목은 Jane Eyre:An Autobiography으로 영국의 소설가 샬럿 브론테(1816~1855)가 쓴 소설입니다. 이 소설은 자기 이름 대신에 Currer Bell이라는 펜네임으로 1847년에 영국 런던에서 출판되었습니다. 

당시는 여성의 지위는 사회에서 활동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권위적인 남성에게 순종하고 겸손하고 헌신하고 상냥한 여성을 이상적인 여성상으로 봤습니다. 누구에게도 당당하게 자존감을 드러내며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주인공을 소재로 한 이 소설은 시대를 한참 앞서갔습니다.

제인 에어
제인 에어

《제인에어》는 30살 정도의 1인 층 서술자가 과거를 회상하면서 풀어가는 형식으로 작가 샬럿 브론테가 실제 경험했던 자전적인 요소가 많습니다. 샬럿 브론테는 케임브리지 대학을 나와 당시 지식인인 성공회 목사의 아버지를 두었고, 어머니는 어린 시절 죽어서 이모의 도움 아래 성장했습니다. 

샬럿 브론테의 고향은 10세기 즈음 바이킹 족이 침공하여 세운 요크셔 지역으로 북쪽 지방의 혹독한 추위와 넓은 황무지는 샬럿 브론테를 강인하고 야성적인 성격으로 성장시켰습니다. 

샬럿은 39세라는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그녀가 여성 작가로서 군림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작품 세계가 여성으로서의 삶이 아니라 여성이 지닌 사회적 지위에 대한 반항과 같은 한 인간으로서의 당당한 삶을 피력했기 때문입니다. 

소설 속 주인공 《제인에어》는 부모가 다 돌아가시자 아직 젖먹이 고아일 때 게이츠헤드에 사는 외삼촌 존 리드 댁으로 왔습니다. 외삼촌이 숨을 거둘 때 제인을 자기 자녀들과 똑같이 키워줄 것을 자기 부인에게 부탁했지만 더부살이하는 제인은 구박덩이로, 리드 부인은 못살게 괴롭혔지만 예쁘지도 고분고분하지도 않은 개성 강한 제인은 이에 굴하지 않고 꼬치꼬치 따지고 대들었습니다.

어느 날 리드 부인은 춥고 조용하고 음산한 유령이 나온다는 외삼촌이 임종한 ‘붉은 방’에 혼자 가두고 자물쇠를 잠가 버렸고, 제인은 공포에 떨어 정신을 잃었습니다. 얼마 후 이 집에 병이 났을 때 가끔 오는 약제사 로이드는 열 살이 된 제인을 불쌍히 여기고 리드 부인에게 학교에 보내라고 강력하게 권했습니다. 로우드 기숙학교는 고아원처럼 기부금으로 운영하는 학교로, 시설이 열악하고 배고파서 미칠 정도로 식사가 적었고 끔직할  정도로 부실했습니다. 

문제는 리드 부인이 이사장인 브로클허스트에게 제인이 거짓말쟁이로 사악한 성격을 가진 악덕의 본보기라고 소개했으며, 이사장은 학생들에게 경계를 하여야 할 아이라고 말하며 어울리거나 대화조차도 못하게 하였고, 선생님에게도 감시하게 하고 잘못하면 가차없이 체벌토록 하였습니다. 

제인이 죽고 싶어 울고 있을 때, 친구 헬렌 번스의 위로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미움만 받아오던 제인을 진심으로 사랑해 줍니다. “설령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 너를 미워해도 너 자신의 양심이 스스로 너를 인정하고 아무 죄가 없다는 것을 주장하는 한 너는 외톨박이가 아니야.”

교장인 템플 선생님은 아이들조차 제인을 나쁘게 생각할까 봐 제인에 대하여 나름대로 조사한 것을 전교생을 모아놓고 나쁜 학생이 아니라는 것을 발표하여 누명을 벗게 했습니다. 제인은 무거웠던 짐을 벗어던지고 열심히 공부하여 조금씩 조금씩 성과를 보였고 이제 아무리 궁핍하더라도 사치품들이 매일 넘치는 게이츠헤드의 생활과 로우드 학교에서의 생활을 절대로 맞바꾸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얼마 후 깊은 우정을 나누었던 친구 헬렌은 폐병에 걸려 세상을 떠나고 제인은 나쁜 조건 속에서 꿋꿋이 6년간 공부를 계속하여 무사히 졸업하고, 졸업 후 2년 동안은 교사로서 학교에 머물렀습니다. 제인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템플 선생님은 목사와 결혼하여 남편과 함께 먼 지방으로 떠나고, 자신도 학교에 더 이상 미련이 없어서 신문광고를 통해 당시 여성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직업인 가정 교사직을 구했습니다. 

손필드 대저택
손필드 대저택

손필드라는 대저택에는 평소 자주 집을 비우는 명문가면서 부호인 로체스터와 그의 수양 딸 아델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 집의 살림을 맡아 처리하는 페어팩스 부인은 인정 있고 온화해 보였고, 가르칠 아이 아델도 명랑하게 수다를 떠는 활기찬 성격으로 제멋대로 자랐지만 가르침에 복종하는 순진한 아이여서 제인에게 모처럼 평화스러운 편한 날을 보냈습니다.

로체스터
로체스터

저택 주인인 로체스터는 서른 다섯 살쯤 보이는 몹시 무뚝뚝하고 강인한 인상을 가진 남자였습니다. 로체스터는 제인 에어의 당당한 태도, 감정에 솔직하고 속임이 없는 성격에 마음이 끌렸고,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제인의 내면과 그녀의 때묻지 않은 순수한 마음을 부러워합니다. 

그는 손필드에서 2주일 이상 머무른 적이 없었습니다. 가족과 인연을 끊고 벌써 여러 해 동안 방랑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때로 침울한 인상에 냉소적이고 어딘지 외로워 보였지만 조용하고 진지하게 대화를 하는 과정에서 신사다운 인품이 있어 보였습니다. 

그의 느긋하고 차분한 태도는 견디기 힘든 긴장감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예의 바르고 우정이 가득 찬 태도는 제인의 마음을 열게 했습니다. 과거의 잘못을 털어놓는 진심 어리고 솔직한 모습이 제인에게 마치 내 주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친척인 것처럼 느껴지고 매력적으로 다가와 조금씩 존경과 사랑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진지한 고백 속에는 아델과의 인연도 있었습니다. 아델은 로체스터 젊은 시절, 사랑했던 프랑스 무용수의 딸인데 이 아이를 버리고 다른 남자와 도망가서 아이가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자기 집에 데려다 놓고 기르고 있었습니다. 

“대체 무엇이 그를 저택에서 못 살고 다시 떠나는 걸까”

로체스터에게 궁금증을 일으키는 비밀이 있었습니다. 가끔 이상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바로 위 3층 방에서 원인 모르는 불이 나고 가장 듣기 싫은 끔찍한 기이한 웃음소리가 났습니다. 로체스터는 그런 일을 누구에게도 비밀에 부치도록 하였습니다. 또한 이곳의 한 방에서 바느질을 하는 여인 그레이스 풀도 미스터리입니다. 

로체스터는 어느 날, 서로의 영혼이 이어져 있을 정도로 제인을 깊이 사랑하고 있음을 고백하고, 제인에게 청혼을 합니다. 

“때때로 나는 당신에게 이상한 기분이 느끼오. 마치 내 왼쪽 갈비뼈 밑에 달려있는 끈과 조그만한 당신 몸의 오른쪽 갈비뼈 밑에 달린 똑같은 끈이 풀리지 않게 꽉 얽혀있는 듯한 기분이든 단말이오.” 

나이가 스무 살이나 차이가 있고 자존심 강한 주인이 사랑할 만한 강한 매력이 몸 어느 구석에도 없는 그녀하고 결혼한다는 것은 보통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얼마나 좋은지 제인은 하느님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하느님이 창조하신 한 인간에게만 정신을 쏟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교회에서 열린 결혼식은 로체스터와 제인뿐입니다. 신랑의 들러리도 신부의 들러리도 없었습니다. 결혼 서약 순서가 되자 이 결혼에 문제가 있다고 또렷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로체스터에게 현재 살아있는 부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뜻밖의 불청객은 메이슨이었습니다. 로체스터는 15년 전에 자기 누이동생인 버서 메이슨과 자메이카에서 결혼하였으며 지금 로체스터 집에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버서 메이슨은 미친 여자였습니다. 그녀는 저택 3층 비밀스러운 구석진 방에서 테니 풀 부인이 돌보는 환자였습니다. 이런 일들은 그 집의 관리인인 페어팩스 부인도 정확하게 알지 못했습니다. 미친 아내의 존재를 알게 된 제인은 무시무시한 급류가 닥친 것처럼 충격을 받았습니다. 로체스터는 당시 결혼 과정을 설명하고 진실되게 용서를 구합니다. 

아버지는 전 재산을 형에게 물려주었고 자신이 가난하게 사는 것을 볼 수 없어 재산 욕심으로 정신병 가족력을 알고서도 그의 친구인 서인도의 농장주이며 상인인 그의 딸과 나이를 속여 결혼시켰으며, 정신이상이 있어 함께 살지 못하고, 한때는 자살까지 생각할 정도로 지금까지  방황하며 살아왔다고 숨기지 않고 고백합니다. 

“I must respect myself. (제 자신을 지켜야 합니다.)” 

“난 새가 아닙니다. 나를 잡아둘 그물은 없습니다. 나는 독립적인 의지를 가진 자유로운 인간입니다. 그 의지로 떠나려는 겁니다.”

제인은 타는 듯한 눈으로 이곳에 머물면서 도와 달라는 로체스터의 간절한 청과 유혹에도 불구하고 가장 행복했던 손필드를 조용히 나옵니다.

제인은 손필드에서 나와 한 번도 가보 지 않은 길을 걷다가 가지고 있는 20실링으로 마차를 타고 위트크로스까지 갔습니다. 마차에 모든 것을 놓고 내려서 무일푼이 된 그녀는 노숙을 하면서 굶은 채 길거리에서 헤매다 지쳐 쓰러집니다. 

다행히도 무어 하우스의 세인트 존 목사와 그의 누이 다이애나와 메어리의 도움으로 살아남아 건강을 회복합니다. 그녀는 제인 엘리어트라는 가명을 쓰고 존 목사의 교회가 있는 몰턴으로 가서 그곳에서 1년 정도 성실하게 가난한 자식들에게 뜨개질, 바느질, 읽기, 쓰기, 셈 같은 생활의 기본을 가르치는 마을학교 일을 보면서 지냈습니다. 

얼마 후 존이 제인의 사촌 형제인 것을 알게 됩니다. 존 목사의 어머니가 제인 아버지의 누님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제인의 숙부가 돌아가시면서 2만 파운드를 제인에게 상속하였습니다. 그녀는 새롭게 생긴 자기를 구해준 사촌들을 도울 수 있다는 기쁨에 각자 5천 파운드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사촌 오빠인 세인트 존 목사는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위해 자비도 동정심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는 자기와 결혼을 한 후 선교를 위해 인도에 함께 가자고 요청했고, 그의 끈질긴 청혼에 제인의 마음은 잠시 흔들립니다. 

존의 청혼에 응답하기 전에 제인은 고통과 고뇌에 찬 로체스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자 로체스터를 찾아 손필드로 돌아갑니다. 로체스터를 방문한 제인에게 눈에 비친 것은 시꺼먼 폐허뿐이었습니다. 잔디도 뜰도 황폐해 있었습니다. 

제인이 떠난 두 달 후 큰 화재로 폐허만 남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로체스터는 불을 지른 미치광이 버서 메이슨을 구하려고 지붕 위로 올라갔다가 한 팔과 한쪽 눈을 잃었고, 다친 눈은 다른 눈에 영향을 주어 양쪽 시력 모두를 잃게 되었습니다.

이제 로체스터는 그곳에서 30마일 떨어진 펀딘 저택에서 쇠약한 몸으로 쓸쓸하고 우울하게 지내고 있었습니다. 마치 덫에 걸려 괴로워하는 야수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녀는 로체스터와  결혼하기로 마음먹습니다.

“손을 끌고 다녀야 하는 이 불쌍한 장님과?” 
“네, 당신과. 진심이에요.” 

로체스터는 모자를 벗고 보이지 않는 눈을 땅으로 향하고 지금까지 살아온 것보다도 더 깨끗한 삶을 살게 하는 능력을 청하는 기도를 하느님께 올리는 경건한 모습으로 서 있었습니다. 

이 소설은 가난과 역경을 이겨낸 여성의 정체성을 키워가는 성장 소설이면서 로맨스 소설입니다. 제인 에어는 사랑 앞에서도 주체적이고 용감했습니다. 떠나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어 떠났고, 사랑하는 사람이 너무나 보고 싶어 돌아왔습니다. 

정작 작가가 작품을 통해 가장 보여주고 싶어 하는 것은 당대 여성의 현실입니다. 이 소설은 시대를 넘는 메시지를 담았습니다. 《제인에어》가 발표된 시기는 1849년으로 이 시기의 여성들은 대학 교육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이때부터 30년 후 1879년에 옥스퍼드는 여성의 대학 입학을 허용하기 시작했고, 그마저도 입학만 허용했고 학위는 주지 안 했습니다. 여성이 대학 학위를 받기 시작한 것은 반세기가 더 지나서야 이루어졌습니다. 

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제인에어》는 강한 자기 주장과 주체성을 지닌 여성입니다. 19세기에 이런 사상을 가진 여성이 살아가기란 녹록치 않습니다. 여성으로서 제인의 정열적인 삶의 태도, 역경을 이겨 나가는 의지, 로체스터와의 열정적인 사랑 등을 통해 그 당시의 보수적인 전통과 사회적인 관습에 도전했습니다. 

후에 《제인에어》는 작가가 여성이라는 것이 밝혀져 더욱 인기를 얻었습니다. 고전문학 치고 구성이 단단하여 책 읽는 재미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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