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재 콩트, 살다보면…] 새가 되어 날아왔구나
[정덕재 콩트, 살다보면…] 새가 되어 날아왔구나
  • 정덕재 시인
  • 승인 2021.04.15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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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정덕재 시인] 그날, 밤늦게 집에 들어왔다. 불 꺼진 거실에는 텔레비전 화면이 조명을 대신하고 있었다. 소파에 앉아있는 아들은 집안에 들어오는 나를 아는 체도 하지 않았다. 녀석은 거실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아들의 손을 잡고 한참을 앉아있다가 눈물을 훔치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아무 말도 나누지 않았다. 아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날이었다.

아들은 1997년생이다. 세월호 참사로 떠난 아이들 대부분이 1997년생이라서 그런지 아들의 착잡한 표정은 오랫동안 지속됐다. 세월호 소식이 계속 이어지면서 나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주체할 수 없는 감정들을 토로했다. 하물며 가족들은 오죽했을까. 그들은 상명지통의 심정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살아야만 했다. 얼마 후 나는 유족들과 만날 수 있는 기억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세월호 사고로 세상을 떠난 학생들을 추모하는 작업의 일환으로 경기도교육청에서는 단원고 약전을 준비했다. 안타깝게 생애를 마친 학생들과 교사들의 삶을 간략하게 기록하는 ‘4.16 단원고 약전’이란 이름으로 책을 발간하는 작업이었다. 희생자들이 많아서 프로젝트에 참여한 인원들도 많았다. 전국에서 모여든 140여 명의 작가들이 유가족과 친구, 동료들을 인터뷰하며 그들의 삶을 복원하기 시작했다.

나는 사고가 발생한 이듬해 봄부터 여름까지 주말을 이용해 안산을 몇 차례 오갔다. 본격적인 인터뷰에 들어가기 전에 찾은 단원고 교실은 지금도 생생하다. 빈 책상에 놓여있는 꽃들은 가슴을 서늘하게 했고, 사전취재를 함께 간 작가들은 눈을 끔벅이며 눈물을 훔치거나 목으로 울음을 삼키는 모습이 역력했다.

한 사람의 생애는 그것이 짧든 길든, 모두가 똑같이 소중한 삶이다. 그 삶을 되살리는 것은 누군가의 기억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가장 많은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가족이다. 내가 약전을 맡기로 한 학생은, 4월 16일 참사 이후 일주일 뒤에 싸늘한 주검으로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뿔테안경을 쓴 사진 속 모습은 귀여운 얼굴이었다.

학생의 가족을 어떻게 만나야 할지 망설여졌다. 굳은 마음을 먹고 학생의 어머니를 만난 곳은 안산의 한 카페였다. 약전추진위에서 사전에 설명을 해 놓았기 때문에 가족들은 작업내용을 잘 알고 있었다. 인사를 나눈 뒤 나온 첫마디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물음이었다.

“작가님, 그거 믿으세요?”

그것이 무엇이냐고 되묻기도 전에 휴대폰을 열고 사진 한 장을 보여주었다. 사진의 배경은 아파트 베란다였고 주인공은 난간에 앉아있는 새 한 마리였다.

“네, 그럼요 믿죠.”

더운 날이었는데도 몸이 오싹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분은 세상을 떠난 아들이 새가 되어 돌아온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가족은 아들이 수학여행을 다녀온 뒤 이사를 할 예정이었다. 아들은 엄마와 함께 새로 이사할 집을 한 번 미리 가봤다. 세월호 사고가 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예정된 이사를 했다. 안산 시내에서 집을 옮기는 것이라서 먼 거리의 이사는 아니었다.

이사를 한 뒤 한 달쯤 지났을까. 어느 날 오후 아파트 베란다 난간에 새 한 마리가 날아와 앉았다. 잿빛 털을 가진 새는 사람이 다가가도 날아가지 않았다. 그 새는 오랫동안 난간에 앉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오후에 날아온 새가 저녁 무렵까지 있었어요, 꽤 오래 앉아있었죠. 거실을 바라보기도 하고 형이 쓰는 방을 한참 동안 쳐다보더라고요. 애가 형하고 친하게 지냈거든요. 다가가서 사진을 찍어도 날아가지 않더라고요.”

스마트폰에 담긴 사진은 분명 새가 되어 날아온 아들이었다. 아들은 이사한 집에 새로운 둥지를 튼 가족들이 그리웠고, 엄마와 오랫동안 눈을 마주치고 돌아간 것이다.

2016년 1월 12일, 단원고 학생들의 졸업식이 열렸다. 세월호 참사를 겪은 3학년 생존 학생들의 졸업식이었다. 당시 졸업식은 외부의 지나친 관심이 걱정된 학부모들의 요청으로 비공개로 진행됐다. 이날 졸업식을 전하는 뉴스에서 학교에 새들이 날아왔다는 보도가 있었다. 영상에 담긴 모습을 보면 졸업식이 시작되자 수십 마리의 새떼가 학교로 날아와 건물 위를 빙빙 돌다가 옥상에 내려앉았다.

새들은 긴 시간 동안 옥상에 앉아있다가 졸업식이 끝나고 학생들이 돌아갈 때가 되어서야 다시 날아갔다. 이날 졸업장을 받지 못한 학생은 모두 250명. 친구들의 졸업을 축하해 주려고 아이들이 새가 되어 날아온 것은 아니었을까.

“저 친구랑 축구 하다가 부딪혀 깁스를 오랫동안 했는데, 그래서 더 친해졌어.”

“저 친구는 노래 잘 불렀는데, 유명한 가수가 되면 사인을 많이 해야 한다고 수업시간에 맨날 사인 연습을 했는데.”

“너, 그거 기억나냐. 그 친구가 여자친구한테 잘 보인다고 운동을 열심히 하다가 바지가 찢어졌잖아.”

“짝꿍이랑 야자 땡땡이치고 피시방 가서 놀던 때가 재밌었는데.”

“대학에 갔으니 이제 훨씬 자유로울까. 아니면 더 큰 경쟁을 해야 할까.”

“대학가면 알바해서 해외여행 가고 싶었는데.”

옥상의 새들은 재잘거리며 친구들과의 추억을 떠올렸을 것이다. 새들은 눈부신 청춘의 아픔과 20대의 희망을 나누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이 이루지 못한 꿈들을 허공에 흩뿌리며 친구들이 걸어갈 아름다운 인생을 기원했을 것이다.

세월호 약전으로 인연을 맺은 가족과는 지금도 마음을 주고 받는다. 나는 아이의 생일이 되면 작은 과일 상자를 보내주고, 아이의 엄마는 ‘작가님은 술 좋아하시죠’ 이런 문자와 함께 맛있는 술 한 병을 보내주기도 한다.

어느새 7년이 지났다. 여전히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직도 풀지 못한 문제를 수사하라는 목소리도 높다. 진실을 제대로 규명하는 것이야말로 희생자의 영혼을 평안하게 하는 일임에는 분명하다. 세월호 참사는 과거의 사고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아픔이고 생명의 소중함을 가르치는 미래의 교훈이다.

따뜻한 봄날이다. 꽃은 아름답고 잎새는 싱그럽다. 눈부신 햇빛은 고맙고 살갗에 닿는 바람은 부드럽다. 모든 게 아이들의 눈빛이고 목소리이고 웃음이라고, 아이의 엄마는 SNS에 짧은 글을 남겼다.

“꽃이 펴도 네가 왔다고, 바람이 불어도 네가 왔다고, 비가 와도 네가 왔다고 생각할게. 눈이 내려도 네가 왔다고 생각할 게"

정덕재 시인
정덕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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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재 시인
199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으로 등단. 시집 ‘비데의 꿈은 분수다’, ‘새벽안개를 파는 편의점’, ‘나는 고딩아빠다’, ‘간밤에 나는 악인이었는지 모른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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