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역사 바로알기] 고희(古稀)와 졸수(卒壽)
[대전역사 바로알기] 고희(古稀)와 졸수(卒壽)
  • 김정곤
  • 승인 2015.02.20 15:2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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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곤 전통예절 및 향토사학연구가
[굿모닝충청 김정곤 전통예절 및 향토사학연구가]  논어에 “나는 열다섯 살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서른 살에 학문이 성립되었고, 마흔 살에 의혹이 없었고, 쉰 살에 천명을 알았고, 예순 살에 한번 들으면 사리를 알았고, 일흔 살에 마음에 하고자 하는 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는 말이 있다.

이는 위정(爲政)편의 “吾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로 공자의 자기소개서(?)이다. 여기의 “志學 · 而立 · 不惑 · 知命 · 耳順 · 從心” 등은 ‘15세 · 30세 · 40세 · 50세 · 60세 · 70세’를 일컫는 말인데, 고풍스런 나이의 별칭들이다.

우리말에서 일반적으로 나이 70을 구어(口語)로는 일흔 살이라 하고, 문어(文語)로는 고희(古稀)라고 한다. 고희는 당나라 때 시인 두보(杜甫)의 곡강시(曲江詩)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이 시에 “사람이 70을 사는 것은 예로부터 드물었다.(人生七十古來稀)”는 구절이 있다. 옛날에는 사람의 수명이 짧아서 80세 이상은 거의 드물었을 것이다. 그러니 70까지만 살아도 오래 산 것이어서 고희라 했다.

이 외에도 나이의 별칭은 ‘미수(美壽, 66세) · 희수(喜壽, 77세) · 미수(米壽, 88세) · 백수(白壽, 99세)’ 등이 있다. 또 80세를 산수(傘壽), 90세를 졸수(卒壽)라고도 한다. 그러나 고풍스러운 것 같은 이 별칭들은 전거가 없거나, 일본식 조어(造語)를 그대로 들여와 분별없이 사용하는 말들이다. 이런 국적불명의 별칭은 의외로 많다. 그러나 우리말이 아니므로 아무데나 써서는 안 된다.

[주; ‘美壽’는 아름다울 美의 윗부분을 거꾸로 놓으면 六十六이 된다. ‘喜壽’는 기쁠 喜의 초서체가 七十七과 비슷한 형태이다. ‘米壽’는 쌀 米를 파자하면 八十八이 된다. ‘白壽’는 일백 百에서 一을 빼면 九十九가 된다. ‘傘壽’는 우산 傘을 파자하면 八十이 된다. ‘卒壽’는 마칠 卒의 와자(譌字) ‘卆’을 파자하면 九十이 된다.]

우리는 일상에서 남을 호칭하거나 지칭할 때가 흔히 있다. 호칭은 어떤 사람을 직접 부르는 말이고, 지칭은 어떤 사람을 다른 사람에게 말할 때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를 통틀어 칭호라고 한다. 칭호는 사회생활에서 중요한 언어예절이다. 그러나 이 칭호도 자칭(自稱)은 할 수 있어도  타칭(他稱)은 할 수없는 경우가 있다. 때로는 큰 결례가 되기 때문이다.

지난 1월 하순의 일이다. 새누리당 원내대표이던 이완구의원이 총리후보에 내정되었다. 이때 같은 충청출신의 김종필 전 총리가 이 후보자에게 축하전화를 한 사실이 알려졌다. 당시 이를 두고 모 정치평론가가 (방송에서) “JP께서 금년에 ‘졸수’예요. 졸수는 아흔 살이에요.”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나 졸수(卒壽)는 함부로 쓰는 말이 아니다. ‘졸(卒)’은 죽다, 마치다의 뜻으로, 졸수는 ‘죽을 나이’라는 뜻이다. 태어나고 죽는 것을 ‘생졸(生卒)’이라 한다. JP더러 죽을 나이라니, 이런 망발이 어디 있단 말인가?

졸수의 유래는 이런 것이다. 한자사전에 ‘卒’의 와자(譌字; 잘못 쓰이고 있는 글자)가 ‘卆’이다. 이 ‘卆’자를 파자(破字, 자획을 나누는 것)하면 ‘九十’이다. 그래서 90세를 졸수라 한다. 우리 문헌에도 졸수가 등장하는데 독립된 단어로는 쓰이지 않는다. 대체로 뒤에 숫자를 붙여서 쓴다. 예로 ‘졸수구십(卒壽九十)’이면 아흔 살에 죽었다는 말이다. 중국에서는 이 글자(卆)를 이체자(異體字)로 분류하여 간체자와 병용하고 있다. 

필자도 이미 ‘고희(古稀)’를 넘겼다. 고희란 위에서 언급한대로 두보의 곡강시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에서 유래한다. 두어 해 전 직장후배가 전화를 걸어왔다. “선배님, 고희를 축하드립니다.” 會誌(회지)에서 보았던 모양이다. ‘고맙다’고는 했지만, 나는 고희라 할 수 있지만 남은 써서는 안 되는 말이다. (너무) 오래 살았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70을 오래 살았다니! 요즘 70살에 경로당 나가면 80~90살 ‘엉아’들의 담배심부름이나 하는 나이이다.

어이아이(於異阿異)라는 속담이 있다. 말이란 ‘어 다르고, 아 다르니’ 조심해서 해야 한다. 현대는 인생 100세 시대이다. 작년 8월 말 기준으로 대전시의 100세 이상 노인은 남자 58명, 여자 203명이었다. 이중 최고령자는 유성의 허 모씨(여)로 114세였다. 이제 70은 고희가 아니며, 90을 졸수라고 하는 것은 망발이다. 혹 부를 일이 있으면 그저 칠순, 구순이라 하면 된다.

내친김에 사족 한 줄 덧단다. 며칠 전 어느 일간지에 국내 모 기업 회장의 부고가 있었다. 그 부인을 ‘미망인(未亡人)’ 누구라고 했는데, 흔히 쓰이는 말이다. 미망인은 남편을 따라 죽어야 할 것을, 아직 죽지 못한 사람이란 뜻이다. 남편을 여읜 부인이 스스로를 일컫는 겸칭이다. 그러므로 자칭은 할 수 있어도 남은 쓸 수 없는 말이다. 슬픔에 젖은 부인에게 대놓고 ‘따라 죽지 못한 사람’이라고 한다면 얼마나 큰 결례인가? 우리 대전은 동춘 · 우암 등 禮學(예학)의 대 학자들이 살았던 고장이다. 한번 쯤 반추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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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던사람 2018-11-08 23:27:46
흔하게 쓰는 말에 이런 뜻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 알고 가네요.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