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치유의 길…천주교 순례길2] 박해의 아픔을 간직한 길
[충남 치유의 길…천주교 순례길2] 박해의 아픔을 간직한 길
천안 성거산 성지~충북 진천 배티성지 18km 구간
  • 이종현 기자
  • 승인 2021.05.31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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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정신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민들에게 치유와 힐링이 되길 기대하며 충남도내 불교와 천주교 순례길 15구간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성거산 성지 성모 마리아 상.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성거산 성지 성모 마리아 상.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굿모닝충청 글=이종현 기자, 사진=채원상 기자] “당신 천주교인이오?”…“그렇소”

조선 후기 많은 사람들은 천주교를 믿었다는 이유로 핍박을 받았다.

천주교 핍박이라는 아픔의 역사를 간직한 순례길을 지난 25일 걸었다. 천안 성거산 성지부터 충북 진천 배티성지로 이어지는 18km 구간이다.

성거산 초입에서 구불구불 포장된 임도를 따라 15분 정도 오르면 성지 주차장에 도착한다.

성거산 성지 안내 비석.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성거산 성지 안내 표석.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성거산 성지는 천주교 신자들의 삶과 신앙생활 그리고 정착 과정을 보여주는 유적이다. '천안 성거산 천주교 교우촌터'로도 불린다.

성지 표석과 함께 천안 도심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성지가 상당히 높은 곳에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경기·충북·충남 3개도 접경에 자리 잡은 성거산 성지는 봄·가을에는 들꽃과 단풍으로, 여름·겨울에는 울창한 숲과 환상의 설경으로 장관을 이뤄 순례자들을 맞고 있다.

제1줄 무덤 가는 길.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제1줄 무덤 가는 길.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어딘가 모르게 배어 나오는 진한 슬픔이 느껴진다. 이곳에 사연이 있음을 짐작게 한다.

나무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제1줄 무덤으로 향하는 길이 나온다.

38기 묘역이 조성된 제1줄 무덤에는 성거산 교우촌 출신 순교자 23명 중 병인박해 때 순교한 배문호 베드로, 고의진 요셉, 최천여 베드로 등이 안치돼 있다.

성거산 성지 제1줄 무덤.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성거산 성지 제1줄 무덤.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제1줄 무덤과 500m가량 떨어진 곳에는 신원을 확인할 수 없는 무명 순교자가 잠든 제2줄 무덤이 있다. 무덤 37기가 말 그대로 줄지어 보존되어 있다.

실제 이곳에 안장된 순교자의 수는 훨씬 더 많다고 한다.

무덤 주인이 누구든 하나님과 진리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쳤다는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숙연해진다.

제1줄 무덤에서 제2줄 무덤 사이에는 십자가의 길 14처와 실내 전례공간 겸 쉼터, 성모광장, 야외 제대, 성모상을 만날 수 있다.

성거산 성지 십자가의 길.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성거산 성지 십자가의 길.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성거산 성지 성모 광장.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성거산 성지 성모 광장.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제2줄 무덤부터 시작하는 2.1km 거리의 순교자의 길에는 순교자와 관련된 조각품과 이곳 출신 순교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50여 개의 대형 호롱이 설치돼있다.

순교자의 길을 걷다 보면 ‘야생화’가 지천에 피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숲속 그늘진 곳에서 군락으로 자생하는 ‘피나물 꽃’이다.

마치 반딧불을 상징하듯이 반짝반짝 빛을 내며 순교의 얼을 꽃피우고 있었다. 매년 4월 이 곳에서는 야생화 전시 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무명 순교자를 의미하는 피나물 꽃.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무명 순교자를 의미하는 피나물 꽃.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소학골 교우촌터에 도착했다. 교우촌은 선교사들과 신자들의 피신처이자 은신처였다.

신자들은 이곳에 교우촌을 형성, 1801년 신유박해부터 1866년 병인박해가 끝날 때까지 박해를 피해 비밀리 모여 살았다.

한국의 성지 가운데 보기 드문 해발 579m 차령산맥 줄기의 높은 고지대에 있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싶다.

성거산 성지 집터와 움막 3동.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성거산 성지 집터와 움막 3동.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박해가 계속되면서 이곳에 하나둘 모여든 신자들은 척박한 골짜기에서 움막을 짓고 생활하면서도 신앙만은 포기하지 않았다.

현재는 움막 3동과 집터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리는 표지판만 남아있다.

움막 정면에는 성모 마리아 상이 보인다. 마치 “내가 너희를 지켜주겠다”고 말하는 것 같다.

성거산 성지 성모 마리아 상.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성거산 성지 성모 마리아 상.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험난한 산세에 변변한 길도 없던 시절, 접근하기가 만만치 않았을 높이에 성지가 위치한 데에는 아픈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신자들은 핍박에 힘들었겠지만 함께 신앙생활을 했다는 점에서 행복하지 않았을까.

성모 마리아 상의 성스러운 기운이 순교자들의 영혼을 따스하게 감싸주길 소망한다.

배티성지 순례길.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배티성지 순례길.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산길을 따라 배티성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순례길과 둘레길은 각각 3.5km, 7.5km 조성돼 있다. 우거진 나무숲 아래를 걷는 코스라 조용히 사색의 시간을 갖기에 적당하다.

소나무 숲길은 이날 오전 비가 내린 탓인지 향도 진하게 느껴졌다.

배티성지 산성제대.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배티성지 산성제대.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성모 마리아 상과 함께 돌로 된 의자가 여럿 보인다. 산상제대다.

돌계단으로 된 의자가 층층이 마치 나이테처럼 보인다. 돌계단에 앉아 마음을 내려놓고 새소리를 들어보자.

산상제대에서 성지로 가는 길에는 기도의 길이 조성돼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에서 일어난 14개 사건을 표현한 것이다.

산상제대에서 성지로 향하는 길.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산상제대에서 성지로 향하는 길.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성지와 가까워질수록 잔잔한 음악도 들렸다. 그 음악에 맞춰 새들은 즐겁게 지저겼다.

마치 십자가를 연상케 하는 소나무도 보였다. 나무 사이로 들어오는 작은 햇살은 따스하게 느껴졌다.

배티성지는 한국 천주교회의 첫 번째 신학생이자 두 번째 사제인 최양업 토마스 신부와 프랑스 선교자들의 활동 거점이었다.

배티성지 성당, 최양업 신부 탄생 기념 성당.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배티성지 성당, 최양업 신부 탄생 기념 성당.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그래서인지 최양업 신부 이름이 곳곳에 남아 있다. 대성당인 최양업 신부 기념관을 비롯해 최양업 신부 박물관, 최양업 신부 탄생 기념 성당 등이 그것이다.

최양업 신부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는 현수막도 곳곳에 보였다.

대성당으로 향하는 길에는 순교자 현양비가 놓여있었다. 병인박해 당시 배티 인근에서 체포한 신자들을 묶어놓았던 선돌이라고 한다.

배티성지 최양업 토마스 신부 동상.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배티성지 최양업 토마스 신부 동상.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배티성지 대성당.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배티성지 대성당.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대성당은 견고하고 웅장한 모습으로 산속에 고요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성지 주변에는 1850년 성 다블뤼 주교가 설립한 한국 최초의 신학교 건물이 있다.

최양업 신부는 1853년 여름부터 이곳에서 신학생들을 지도했다고 한다.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순례길을 걸으면 좋겠다.

한국 최초의 신학교.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한국 최초의 신학교.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신학교 건물 주변에는 야외 제대와 십자가의 길이 조성돼 있다. 103위 성인을 상징하는 103개의 나무계단과 돌비석을 만나볼 수 있다.

이 길을 걸으니 적막감과 경건함이 온몸을 감싼 기분도 든다. 앞으로 다가올 수많은 시련과 고통을 지혜롭게 극복하는 방법을 배워보자.

배티성지 성모 마리아 상.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배티성지 성모 마리아 상. (사진=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이밖에도 배티성지 인근에는 이름 없는 들꽃처럼 살다가 순교한 신자들의 줄무덤도 조성돼있다.

지친 육신과 마음을 다잡을 곳이 필요하다면 성거산 성지와 배티성지를 가보는 것을 추천한다.

※ [충남 치유의 길]은 충청남도 지원을 받아 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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