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재 콩트, 살다보면…] 레오라는 이름의 실체
[정덕재 콩트, 살다보면…] 레오라는 이름의 실체
  • 정덕재 시인
  • 승인 2021.06.11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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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굿모닝충청 정덕재 시인]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그동안 반갑게 꼬리를 흔들던 녀석이 목줄을 잡고 있는 주인 뒤로 슬그머니 숨었다. 잠시 엘리베이터를 탈까 말까 망설였다. 머뭇거리는 사이 문이 절반쯤 닫히자 주인은 재빨리 버튼을 눌러 내가 탈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감사합니다. 레오랑 산책 가나요?”

“제가 며칠 몸이 안 좋아서 산책을 못 시켰더니 상당히 지루해하네요.”

“개가 지루해하는 걸 어떻게 알아요?”

“그걸 왜 몰라요. 하품하고 서성거리고, 저는 다 알죠.”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할 때까지 레오는 계속 얼굴을 숨기고 있었다. 내가 남의 집 개 이름까지 알게 된 것은, 1302호 아줌마의 지극한 반려견 사랑 때문이다. ‘레오야, 날씨가 뜨겁네’, ‘레오야, 바람이 부네’, ‘우리 레오 배고파’, 오십 중반의 그녀가 아파트 앞 산책길에서 이런 말을 하는 걸 자주 들었다. 그녀는 반려견을 데리고 있을 때, 레오라는 이름을 앞이나 뒤에 붙여 말하는 습관이 있다. 뿐만 아니라 개를 가슴에 안은 채 얼굴을 비비며, 본인의 입술과 개의 입술을 맞대는 납득하기 어려운 행동을 종종 했다.

“혹시, 개랑 뽀뽀한 다음에 남편하고 뽀뽀도 하시나요?”

이런 질문이 목까지 올라와도 자칫 인권침해나 성희롱 논란에 빠질 수 있다는 생각에 꾹 참은 것도 여러 번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레오는 나를 보면 꼬리를 흔들며 반가워했다. 하지만 내가 개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가까이 와서 애교를 부리는 걸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그날도 레오는 산책을 하고 있었다. 1302호 아줌마가 전화통화를 하고 있는데, 레오가 옆을 지나가는 나를 발견하고 갑자기 오른쪽 바지 끝단을 물었다. 짧은 순간 일어난 일이라서 제어할 시간이 없었다. 녀석의 반가운 표현이었는지, 아니면 공격적인 본능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당황한 나머지 왼발로 레오를 살짝 걷어찼다. 찼다기보다는 밀어냈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약간의 충격이 있었던지 레오는 작은 신음을 내며 움찔했고 곧바로 주인 곁으로 달려갔다. 목줄의 길이가 어느 정도 있는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라 그녀는 눈치 채지 못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났을 때 레오가 주인 뒤로 숨은 것은 그 일을 겪은 다음부터였다. 그 이후 레오와 거리두기를 계속 이어나갔고 산책길에서 만나면 눈에 힘을 주며 경계 신호를 보냈다. 그렇다고 아무 때나 경계심을 드러낸 것은 아니다. 기 싸움은 레오의 목줄이 2-3 미터 가량 늘어져 있거나, 그녀가 한 눈 팔고 있을 때로 한정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레오는 주인 앞으로 갔다. 레오가 그녀를 끌고 가는 모양새였다. 평소 같으면 나란히 길을 걷거나 반 발자국 뒤에서 걸어야 하는데 이전과 상황이 달라진 것이다. 주인 뒤를 따라가다 자칫 해코지를 당할 수 있다는 방어심리가 작용한 것으로 보였다.

“이 녀석이 오늘따라 서두르네.”

서두르는 이유를 나와 레오만 알고 있다는 생각에 살짝 미소가 흘러나왔다. 화제를 돌렸다.

“왜 레오라는 이름을 지었나요?”

“원래 풀 네임은 레오나르도에요.”

집을 나오기 직전에 버터를 먹고 나온 입이 분명했다. 그녀는 충청도식 영어 발음이 아니라 미국 본토 발음으로 혀를 굴려 말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라고 할 때, 그 레오나르도를 말하는 건가요?”

”맞기는 하지만 그 다빈치는 아니고 디카프리오에요.”

말을 계속 이어가다 어이없는 상황에 직면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나는 1302호 아줌마의 위아래를 살폈다. 꽃무늬 슬리퍼가 50대 꽃중년이라는 말을 실감케 했다. 어울린다는 뜻이 아니라 촌스럽다는 것이다.

”그럼 이 개 원래 이름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네 맞아요.”

“유명한 대배우 이름을 이런 개한테 붙여도 되나요?”

“아니 이런 개라뇨? 지금 우리 레오를 무시하는 건가요?”“그게 아니라 사람 이름을 개한테 붙이는 게 좀 그렇다는 거죠. 그리고 디카프리오의 명예를 실추시키거나 초상권 침해에 해당할 수도 있고......”1302호 아줌마의 반발이 나오기 전에 나는 강한 어조로 초상권에 대한 설명을 이어나갔다. 초상권은 일종의 인격에 대한 권리인데, 얼굴뿐만 아니라 이름이나 목소리 등 특정인과 같다고 여길 수 있는 모든 요소를 포함한다는 말을 길게 늘어놓았다.

”이런 작은 도시에 디카프리오가 오겠어요. 디카프리오 본인도 모르니까 괜찮아요. 그리고 레오라고 붙인 것도 제가 디카프리오 찐팬이니까, 그 사람을 좋아하는 나름의 방식 아닌가요?. 타이타닉에서 케이트 윈슬렛을 뒤에서 끌어안는 장면은 지금 봐도 명장면이죠. ”

“그래도 디카프리오가 이 사실을 알면 기분 나빠서 고소할 수도 있으니까 개명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유천동에 가면 좋은 이름을 지을 수 있는 점집이나 작명소가 많다고 친절하게 안내를 해준 뒤 걸음을 빨리 옮겼다. ‘당신은 절대로 케이트 윈슬렛이 될 수 없어요’ 하고 싶었던 이 말은 참았다, 그녀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누군가를 의식해 낮은 음성으로 말하고 있었지만, 내 지적에 상당히 기분 나쁜 말투였다.

“레오야, 넌 레오라는 이름이 좋지, 저 아저씨가 촌스러워서 그러는거야. 501호 아저씨가 아는 배우라고는 이대근 박노식 남궁원 신성일, 이런 옛날 같은 배우밖에 없을 걸. 외국 배우도 존 웨인이나 율 브린너 밖에 모를 거야. 저 아저씨 머리까지 벗겨져 못생긴 율 브린너 같잖아. 우리 레오 너무 신경 쓰지 마. 상심하지 말고.”

머리가 벗겨졌다는 말만 꺼내지 않았아도 그대로 걸었을 것이다. 고개를 돌려 큰 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레오를 좋아하면 똥이나 잘 치우세요. 지난번에 똥 안 치우고 가는 거 다 봤거든요. 디카프리오가 길에다 똥 쌌다는 얘기 들어봤어요? 디카프리오 얼굴에 똥칠을 해도 유분수지.”

1302호 아줌마의 대꾸가 들려오기 전에 나는 보폭을 넓혀 뛰듯이 걸었다. 울그락 불그락 변하고 있을 그녀의 얼굴을 상상하며 발에 힘을 주었다.

 

산책하고 돌아오는 길에 다시 레오와 1302호 아줌마를 만났다. 10미터 전방쯤에서도 그녀의 찌푸린 표정은 눈에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봉지를 들고 있었다.

“우리 레오는 빼빼로를 가장 좋아하죠.”

그녀는 어린 아이와 대화를 하듯 레오에게 말을 건넸다. 누군가 들으라는 말은 아니었어도, 습관적인 어법은 지나가는 누구라도 귀에 들어왔을 것이다.

“초콜릿 많이 먹으면 이빨 썪는데.....”

나도 중얼거렸다. 잘 들으라고 큰 소리로 말이다.

“우리 레오가 왜 빼빼로 과자를 가장 좋아하는지 아세요?”

내가 그냥 지나치려 하자 정색을 하며 말을 걸었다. 사교성이 좋은 건지 자의식이 강한 사람인지 분석이 필요한 캐릭터다. 조금 전까지 인상을 구겼던 표정은 사라졌다.

“그걸 제가 어떻게 압니까? 그리고 저는 새우깡을 좋아합니다.”

“댁이 새우깡을 좋아하든 감자깡을 좋아하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요, 우리 레오는 거의 매일 긴 막대 과자를 먹는다는 사실이 중요하죠.”

인상은 풀어졌어도 말투는 다소 까칠했다. 개가 막대 과자를 좋아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빼빼로 말고 양파깡이나 허쉬 초콜릿으로 바꿔보세요. 이렇게 말을 섞고 싶지도 않았다.

“디카프리오에 대해 얼마나 아세요?”“아줌마의 반려견 레오를 말하는 건가요? 아니면 영화배우 디카프리오를 말하는 건가요?”

1302호 아줌마의 질문에 답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답을 하고 난 뒤 그녀의 화법에 말려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디카프리오의 생일이 11월 11일이거든요. 레오를 처음 데려온 날도 그날이고요. 그래서 저는 레오에게 매일 막대 과자를 주죠.”

“그게 무슨 말인데요?”

“그렇게 눈치가 없어서야. 11월 11일이 빼빼로데이잖아요.”

레오라는 이름을 바꾸라는 나의 충고에 마음이 상한 게 분명했다. 그녀는 반려견 레오에 대한 사랑과 영화배우 디카프리오에 대한 팬심이 하나의 감정이라는 것을 주장하고 있었다.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들의 마음을 잘 헤아리지 못하는 나로서는 대응하기 쉽지 않은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앞으로 우리 레오에게 상처 주는 말은 하지 마세요.”

그녀의 목소리는 다소곳했고 화해의 태도가 묻어났다. 그 순간만큼은 반려견에 대한 진정성이 느껴졌다. 반려견 키우는데 에티켓을 지키지 않으면 주변 사람들한테 불쾌감을 주거나 위험할 수 있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상황이 적절치 않아 다음을 기약했다.

“레오가 갈비는 좋아하나요?”

그녀의 마음에 동조하는 태도를 취했다.

“고기를 먹긴 하는데 갈비만 준 적은 별로......”

“그럼 갈비를 자주 먹이세요.”

“왜요?”

“디카프리오가 LA 출신이잖아요”

“어머 그래요? 정말요? 진짜요? 왜 그걸 몰랐지.”

그녀는 해맑은 표정을 지으며, 진짜요 라는 말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 그리고 오던 길 반대 방향으로 걸음을 돌렸다.

“레오야, LA갈비 사러 가자.”

 

매일같이 LA갈비와 빼빼로를 먹는 레오의 밥상을 떠올렸다. 레오의 하루하루가 생일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동안, 미역국도 없었던 지나간 내 생일상이 스쳤다. ‘나성에 가면 편지를 띄우세요, 사랑의 이야기 담뿍 담은 편지, 나성에 가면 소식을 전해줘요’ 어느새 나는 가수 권성희의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아파트 입구에서 책가방을 메고 나오는 고딩에게, LA를 나성이라고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고 말하면 알아들을까. 아니면 ‘저 아재 꼰대가 뭔 소리를 하는거야’ 이런 반응을 보일까.

정덕재 시인
정덕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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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재 시인
199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으로 등단. 시집 ‘비데의 꿈은 분수다’, ‘새벽안개를 파는 편의점’, ‘나는 고딩아빠다’, ‘간밤에 나는 악인이었는지 모른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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