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재 콩트, 살다보면…] 따로따로 먹을까요
[정덕재 콩트, 살다보면…] 따로따로 먹을까요
  • 정덕재 시인
  • 승인 2021.06.18 11: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굿모닝충청 정덕재 시인] 점심시간이 가까워지자 동태탕 후배가 카톡을 보내왔다. 젊은 직원들과 점심을 먹자는 내용이었다. 아침에 커피를 마시면서 나눈 화제가 점심으로 이어진 것이다. 야당 대표로 30대가 선출됐다는 소식은 사무실 내에서도 며칠 동안 이어진 이슈였다. 젊은 감각을 공유하기 위해서라도 2030 세대와 잦은 교류가 필요하다는 게 나이 든 사람들의 해석이었다.

“당대표가 백팩에 자전거 출근, 신선하지 않나요?”

20대 신입직원의 반응이었다.

“백팩은 나도 메고 다니는데…”

커피를 마시던 직원들은 일제히 고개를 돌려 나에게 따가운 시선을 보냈다. 그중에 한 명은 공 하나쯤은 들어있을 법한 불룩한 배를 쳐다보았다.

“하기는 나같이 머리 빠지고 배 나온 사람은 백팩이 어울리지는 않지.”

나는 급히 반성하는 자세로 겸허하게 말했다.

“선배님, 이런 상황에서 그런 말이 나와요? 그러니까 꼰대소리 듣는 거란 말이에요.”

“그럼 기왕에 꼰대 소리 듣는 김에 한마디만 더하자.”

내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직원들은 기대하는 눈치였다. 동태탕 후배 하나만 고개를 저었을 뿐이다.

“나도 백팩에 자전거 타고 출근하는 사진 봤는데 말야. 그게 집에서부터 타고 온 것도 아니고, 또 그 자전거를 타고 퇴근을 했는지 후속취재가 이뤄져야 하는 거 아닌가. 혹시 자전거를 다른 사람이 대신 타고 갔을 수도 있고, 아니면 누군가의 자동차 트렁크에 실려 갔는지. 이런 것도 궁금하지 않나. 언론의 심층취재가 아쉬워.”

“선배는 아무튼 삐딱해.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세대교체의 바람이 분다는 게 핵심이죠.”

“그거야 나도 동의를 하지만, 나이 들었다고 무조건 뒷방 늙은이로 쫓겨나는 것도 문제 아닌가. 나이든 청춘도 있고 젊은 꼰대도 있는데 말야.”

아침에 잠시 설전이 있었다. 젊은 직원들은 재미있다는 반응을 보였고, 나보다 세 살 어린 동태탕 후배는 나를 꼰대로 몰아갔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세대 간 이해를 위해 점심을 자주 먹기로 합의를 한 것은 나름의 성과였다. 늘 비슷한 또래와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시다 보니 20년 이상 차이가 나는 후배들과 자리를 가질 기회가 많지 않았다. 물론 공식적인 자리에서 업무와 연관성 있는 대화를 나누기는 해도, 사적인 자리를 만들어 서로의 생각이나 관심사에 대해 나눌 시간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늘 ’나는 자연인이다‘를 보는 사람과 유튜브나 넷플릭스에서 영상물을 찾아보는 세대와는 생각의 차이가 분명했다. 점심식사를 위해 동태탕 후배가 임시 단체카톡방을 만든 것은 귀여운 발상이었다.

“잠시 단톡방을 만듭니다. 오늘 점심 메뉴 추천받고 식당 결정한 뒤 바로 단톡방 폭파합니다.”

나는 해장이 필요했다. 김치찌개나 부대찌개를 놓고 고민하는 사이에 카톡 하나가 올라왔다.

“날도 더운데 냉면 어떤가요?”

얼마 전 내 시집을 컵라면 덮개로 썼던 20대 신입 여직원이었다.

“소바도 좋죠. 사무실 앞 오래된 소바집.”

여직원의 냉면에 이어 30대 남자 후배는 소바를 추천했다.

“거기 맛은 좋은데 요즘 무 갈은 걸 너무 조금 줘서 아쉽더라고.”

동태탕 후배가 소바집에 딴지를 걸며 신장개업한 막국수집을 언급했다.

“살얼음 동동 떠 있는 물막국수는 어떤가?”

“육수가 얼어있으면 맛을 해치는 거 아닌가요. 이가 시릴 정도로 차가운 것보다는 적당히 시원해야 맛을 느끼죠.”

20대 단발머리 여직원은 거리낌 없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나는 육수에 대한 생각만큼은 동의한다는 뜻을 보냈다.

“시원한 육수와 차가운 육수는 맛을 느끼는 데 결정적인 차이가 있지.”

“콩국수는 어떤가요?”

소바를 주장하던 후배가 콩국수로 메뉴를 급선회했다. 걸쭉한 콩국수라는 말에 구미가 당겼다.

“도마동인가 변동인가 콩국수 맛있는 식당 있지 않나요?”

“그 집은 짠지같은 김치가 맛있지.”

“메뉴를 말씀하지 않으신 분이 한 분 있는 것 같은데…”

20대 단발머리 여직원이 나를 지목하며 메뉴를 재촉하는 카톡을 올렸다.

“글쎄. 따뜻한 국물 없을까?”

머뭇거리다가 무심코 누른 엔터키는 돌이킬 수 없었다. 내가 따뜻한 국물을 말하는 바람에 단체 카톡방은 잠시 정적이 찾아왔다. 지금까지 냉면 막국수 소바 콩국수를 거론하고 있었는데, 뜬금없이 등장한 따뜻한 국물은 금세 차가운 분위기를 몰고 왔다.

”ㅠㅠ“

단발머리의 한숨 섞인 모음 두 개는 서늘한 가운을 충분히 짐작케 했다. 젊은 직원과 이해의 폭을 넓혀 보자는 차원에서 마련된 점심이었는데, 내가 훼방을 놓은 격이 된 것이다.

“아침에 뜬금없이 자기도 백팩 맨다고 하지 않나, 지금 따뜻한 국물이 나올 타이밍인가요?”

곧바로 동태탕 후배의 지적이 들어왔다.

“어제 술 드셔서 해장 하고 싶으신 모양이네요. 그럼 각자 먹고 싶은 거 먹고 나서 커피나 같이 드시죠.”

단발머리 여직원이 올린 카톡은 강력한 펀치였다. 점심 메뉴를 정하다가 갑자기 각자 알아서 먹자는 발언은 차라리 도발이었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했다. 동태탕 후배도 당황한 눈치가 역력했다. ‘허걱’이라는 문자 하나를 봐도 쉽게 알 수 있었다.

“좋아요. 각자 드시고 소감이나 나누면서 차를 마시는 것도 좋겠네요. 저는 콜입니다.”

30대 후배가 동의한다는 뜻을 정확하게 나타냈다.

“그럼 두 명 이상 찬성하니까 각자 먹는 걸로 하시죠. 커피는 휴게실에서. 단톡방 나갑니다.”

불과 30초 남짓 밖에 걸리지 않았다. 단발머리가 단톡방에서 미련 없이 퇴장을 하자, 30대 직원도 퇴장을 했다. 남은 사람은 동태탕 후배와 나 뿐이었다.

“이게 무슨 상황이냐?”

“멘붕”

“그나저나 뭘 먹을까?”

“그걸 왜 저한테 물어봐요.”

동태탕 후배의 카톡은 단톡방에서 벌어진 상황의 책임이 전적으로 나한테 있다는 어투였다.

“네가 말한 막국수 먹던지.”

“애들이 뭐라고 하겠어요. 각자 먹자고 나간 애들인데, 우리도 따로따로 드시죠. 각자 알아서.”

갑자기 버려졌다는 외로움이 밀려왔다. 단톡방에는 나 혼자만 남았다.

 

단톡방 해프닝이 벌어진 지 1시간이 지나 시계는 12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혼자 나가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아 구내식당을 찾았다. 멀리 구석에 단발머리 20대 신입 여직원이 보였다. 대각선 맞은편에서는 30대 남자직원이 다른 직원과 함께 점심을 먹고 있었다. 혹시나 하고 동태탕 후배를 찾았는데 눈에 띠지 않았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어색할까 싶어 재빨리 뒤돌아섰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조용한 엘리베이터였다면 많은 사람이 쳐다볼 만큼 큰소리로 울렸다. 로비에 있는 커피매장으로 걸음을 옮겨 미숫가루 한잔을 주문했다. 주변을 살펴보았다. 포만감에 젖어있는 김 과장과 박 과장의 흡족한 표정을 애써 무시했다.

“점심 드셨어요?”

단발머리 여직원이 다가와 말을 건넸다.

“속이 불편해서 그냥…”

나는 말을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단톡방에서 주고받은 문장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다음에 냉면 먹자고.”

“따뜻한 해장국도 좋아요.”

단발머리 여직원은 싱그러운 웃음을 지으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커피를 주문했다. 시원한 미숫가루를 마시는데도 식은땀이 났다. 단발머리가 눈치 채지 못하게 목덜미에서 흐르는 땀을 닦아냈다.

정덕재 시인
정덕재 시인

--------------------------------

▲정덕재 시인
199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으로 등단. 시집 ‘비데의 꿈은 분수다’, ‘새벽안개를 파는 편의점’, ‘나는 고딩아빠다’, ‘간밤에 나는 악인이었는지 모른다’ 등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굿모닝충청(일반주간신문)
  • 대전광역시 서구 신갈마로 75-6 3층
  • 대표전화 : 042-389-0080
  • 팩스 : 042-389-008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광석
  • 법인명 : 굿모닝충청
  • 제호 : 굿모닝충청
  • 등록번호 : 대전 다 01283
  • 등록일 : 2012-07-01
  • 발행일 : 2012-07-01
  • 발행인 : 송광석
  • 편집인 : 김갑수
  • 창간일 : 2012년 7월 1일
  • 굿모닝충청(인터넷신문)
  • 대전광역시 서구 신갈마로 75-6 3층
  • 대표전화 : 042-389-0087
  • 팩스 : 042-389-008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광석
  • 법인명 : 굿모닝충청
  • 제호 : 굿모닝충청
  • 등록번호 : 대전 아00326
  • 등록일 : 2019-02-26
  • 발행인 : 송광석
  • 편집인 : 김갑수
  • 굿모닝충청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굿모닝충청.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mcc@goodmorningcc.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