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재 콩트, 살다보면…] 고기의 유혹
[정덕재 콩트, 살다보면…] 고기의 유혹
  • 정덕재 시인
  • 승인 2021.07.17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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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정덕재 시인] 오이 하나 두유 한 잔으로 아침 식사를 했다. 평소 같으면 ‘오이 하나 두유 한 잔으로 아침식사를 대신했다’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밥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꾸기로 마음먹은 뒤, 쌀밥에 대한 집착을 버려 나갔다. 빵 한 조각, 달걀 하나, 바나나 한 개도 충분한 끼니가 된다는 생각을 하며 고기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채식주의자로 하루 세끼의 식단을 구성하기는 쉽지 않다. 고기 중독자는 아니라도 고기 맛을 기억하는 사람에게 고기의 유혹을 넘어서는 건 일종의 수련이었다. 물론 수련은 실패를 거듭하는 과정이다.

“선배님, 점심 뭐 드실까요?”

동태탕 후배가 아침부터 점심 메뉴를 챙겼다. ‘동태탕 드실까요?’ 이렇게 물어보지 않은 걸 보면, 이번 주에 동태탕이나 알탕을 적어도 두 번은 먹은 것으로 추정됐다.

“날도 더운데 냉면 어뗘?”

“좋죠, 선배님 자주 가는 그 집은 냉면에 올라오는 편육이 맛있어요. 고기를 적당히 말리는 것도 상당한 기술인가 봐요.”

편육이라는 말에 잠깐 침이 고였다. 요즘 냉면집 중에는 달걀 지단이나 오이채를 고명으로 마무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내가 즐겨가는 냉면집 편육은 씹으면 씹을수록 단맛이 우러나온다. 2대째 이어가고 있는 가게가 자랑으로 내세우고 있는 점이기도 하다.

“그 집 늦게 가면 줄 서서 먹는데 일찍 나가시죠?”

후배가 카톡을 보내온 시간은 11시 20분, 11시 30분이 되면 자리에서 일어나라는 신호다. 정해진 식사시간보다 10분이나 20분 정도 일찍 나가는 건 대수롭지 않아도, 30분 먼저 일어나는 건 눈치가 보이기 마련이다.

“줄 서서 먹는 게 아니라 줄 서서 기다리는 거겠지. 우리나라에서 줄 서서 먹는 집은 거의 없을 걸, 줄 서서 기다렸다가 앉아서 먹는 거지.”

나는 정색을 하며 줄 서서 먹는다는 표현이 잘못됐다며 수정문자를 보냈다. 예상과 다르지 않은 ‘헐’ 이란 답장이 왔다.

식당에 도착한 시간은 11시 40분, 가게 안은 붐볐다, 이미 식사를 마치고 이를 쑤시며 나오는 아저씨들도 있고, 냉면국물을 들이키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 이들도 여럿 있었다. 자리를 둘러보자 모퉁이에 칸막이가 있는 2인석이 보였다. 12시 지나 아는 사람이 들어와도 금방 눈에 띌 자리가 아니었다.

“냉면하고 만두 하나 먹을까요?”

“그러자고.”

“근데 이 집은 고기 반, 김치 반 이렇게 안 되는 게 아쉬워요.”

“만두 익는 시간이 달라서 그런 거 아닌가.”

“옆 테이블에서 고기만두 시키면, 우리는 김치만두 시켜 반반씩 나눠 먹어도 좋을 텐데.”

후배는 기발한 생각이라는 듯 웃음을 지으며 동의를 구했다.

“그게 쉽지 않을걸. 만두피가 얇아서 젓가락으로 집을 때 찢어지는 경우가 있거든, 만약에 반반씩 옮기다 찢어지면 만두소가 흩어질 테고 책임 소재 때문에 싸움이 날 수도 있지 않나?”

누군가 옆에서 듣고 있기라도 하면, ‘참으로 고민없이 사는 사람들이구나’ 이런 생각이 들 만큼, 한가로운 얘기를 하는 사이 만두와 냉면이 함께 나왔다. 냉면 위에 곱게 놓인 편육은 보기만 해도 건조 상태가 적당해 보였다. 입맛을 다시며 젓가락을 드는 순간, 앞에서 공격적으로 날아오는 젓가락이 보였다.

“선배님, 채식한다면서요?”

대답할 겨를도 없이 후배의 젓가락은 내 그릇에 있는 편육을 낚아챘고, 고기는 입안으로 들어갔다.

“역시, 이 집은 편육이야.”

후배는 눈길을 마주치지 않고 이번에는 자신의 냉면 그릇에 있는 편육을 집었다. 짧은 시간에 벌어진 일을 화투판 전문용어로 말하면, 후배는 ‘일타쌍피’의 성과를 거둔 셈이다. 나는 별다른 반응을 보일 수가 없었고, 차가운 육수를 마시며 고기 한 점을 먹지 못한 화를 다스렸다.

다음 날, 단발머리와 젊은 남자직원 그리고 나, 셋이 점심을 먹기로 했다. 편육을 빼앗긴 울분이 식지 않아 동태탕 후배는 제외시켰다.

단발머리는 다이어트를 하는 동안에도 햄버거, 라면, 과자를 먹고 싶은 충동이 자주 있었지만 굳은 마음으로 참았다고 했다. 다만 한 달에 한 번은 식단에 예외를 두자고 나름의 기준을 정해 선택한 게 햄버거, 우리는 프랜차이즈 매장을 찾았다.

매장에 들어가기 직전 휴대폰이 울렸고 나는 같은 메뉴로 주문해 달라고 했다. 긴 통화를 마치고 화장실에 들어가 손을 씻고 나오니, 세트 메뉴가 탁자 위에 놓여 있었다. 단발머리는 이미 한입 베어 물어 볼이 부풀어 올라 있었다.

“오랜만에 먹는 맛이 어때?”

햄버거가 입안에 가득 들어 말은 하지 못하고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나는 포장지를 벗겼다. 익히 알고 있는, 그동안 먹어본 햄버거와는 두께에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옆면을 살펴보았다. 양배추와 토마토가 보였지만 고기 패티는 보이지 않았다. 햄버거가 다이어트한 것으로 착각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아, 여기도 비건 햄버거를 파는구나.”

“그게 아니라, 똑같은 거 시켜서 제가 패티만 뺐는데요.”

단발머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을 했다.

“내 햄버거에서 고기 패티를 뼀다고?”

“네, 드시기 좋게요.”

“먹기 좋게? 근데 왜 뺐는데?”

“요즘 비건으로 바꿨다고 하셔서, 제가 드시기 좋게 패티를 뺐죠.”

“그 뺀 패티는 어떻게 하고?”

“아까 앉으시기 전에 먼저 먹었죠, 육즙이 살아 있더라고요.”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복기를 시작했다. 매장에 들어서기 직전에 걸려온 전화 때문에 패티를 빼앗겼는가. 화장실에서 손을 씻는 사이 패티가 단발머리 입에 들어갔는가. 머리는 복잡해졌다.

스무 살은 더 어린 직원 앞에서 패티 한 장으로 소리를 지를 수도 없는 법, ‘내가 고기를 얼마나 먹고 싶었는데’, 느닷없이 채식주의자가 된 중년의 사내가 어처구니없는 고백을 할 수도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의연한 대처를 해야 한다는 이성적인 판단이 감정을 억눌렀다.

“채식을 하니까 머리도 맑아지고 몸도 가벼워져서 한결 컨디션이 좋아.”

스스로 생각해도 낯간지러운 말이었다. 채식 사흘째도 되지 않은 사람이 할 말은 아니었다. 단발머리 옆에 있는 남자직원이 큰 동작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다음에 햄버거 먹을 때 패티는 제가 먹을게요.”

과장된 몸짓은 일종의 전략이었다. 남자직원은 다음번 고기까지 약탈하겠다는 선포를 했다. “근데 내가 채식한 지 얼마 안 돼서 직원들이 잘 모를 텐데, 어떻게 알았어?”

단발머리는 콜라를 마시던 빨대에서 입을 떼고 감자튀김을 집었다.

“어제 냉면 고명으로 올라온 편육 한 점도 안 드신다고, 직접 고기를 집어 건네주셨다고 해서 알았는데요.”

결국, 오늘 패티 약탈사건의 배후는 동태탕 후배였다. 모처럼 햄버거의 식감을 느끼고 싶은 부푼 마음은 산산조각이 났고, 강요된 채식주의자의 허탈함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또 어떤 상황에서 고기를 빼앗길지 불안이 밀려왔다.

정덕재 시인
정덕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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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재 시인
199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으로 등단. 시집 ‘비데의 꿈은 분수다’, ‘새벽안개를 파는 편의점’, ‘나는 고딩아빠다’, ‘간밤에 나는 악인이었는지 모른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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