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크 고장 난 박기자] 지금 당신은 무엇을 검색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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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걸릴 수 있는 마음의 감기, '우울증'
“환자마다 다른 치료방법, 전문가 상담 꼭 필요”
'극심한 무기력'→'뭐라도 해보자'
  • 박종혁 기자
  • 승인 2021.07.14 15:28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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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어릴 적부터 궁금증이 생기면 브레이크가 없었습니다. 얼마나 추진력이 굉장했냐면 업무적으로 막힌 부분을 해결하고자 이등병 때 육군 인사 참모에게 전화해 원활히 처리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궁금증 해결 능력(?)을 바탕으로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봤던 주제들을 깊이 파고드는 기획 기사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우울증은 감기처럼 누구나 흔히 걸리지만 방치하면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 조치가 꼭 필요하다. 사진=게티이미지 뱅크/굿모닝충청=박종혁 기자
우울증은 감기처럼 누구나 흔히 걸리지만 방치하면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 조치가 꼭 필요하다. 사진=게티이미지 뱅크/굿모닝충청 박종혁 기자

[굿모닝충청 박종혁 기자] # 대전에 사는 어느 30대 남성의 우울증 체험기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날이었다. 일정을 모두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현관 비밀번호를 삑삑 눌렀다. 늘 그렇듯 어둡고 조금 어질러진 방이 보였다. 조금 무리했던 걸까? 옷을 갈아입을 힘조차 남지 않아 침대 위로 쓰러져 누웠다. 엎드린 채로 창밖의 빗소리에 귀 기울였다. 그렇게 잠시 멍하니 빗소리를 듣다 보니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 같아 두려웠다.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은 전화기를 붙잡고 이리저리 전화번호부를 뒤져봤지만, 마땅히 연락할 사람이 없어 마지못해 다시 내려놓았다. 그렇게 평소와 다른 날이 됐다.

우울증은 흔히 ‘마음의 감기’라고 불리기도 한다. 감기처럼 누구나 흔히 걸리지만 조기에 발견하면 쉽게 치료할 수 있는 질환이란 뜻이다. 하지만 우울증은 감기처럼 일정 기간이 지난다고 낫지 않는다. 방치하면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 조치가 꼭 필요하다.

OECD 통계에서 한국의 우울증 발병률은 36.8%(지난해)로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으나 환자들은 쉽게 병원 문을 두드리지 않는다.

대전지역의 한 정신과 의사는 “자기가 우울증인 사실을 모르거나 알고도 차마 병원 문을 두드리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라며 “몸을 다치면 바로 병원에 가듯, 마음이 다쳤을 때도 병원에 바로 와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처음엔 우울감을 그저 잠깐 찾아왔다 가는 불청객 수준으로 생각하고 ‘금방 괜찮아지겠지’라고 생각했으나 그렇지 않았다. 사진=게티이미지 뱅크/굿모닝충청=박종혁 기자
처음엔 우울감을 그저 잠깐 찾아왔다 가는 불청객 수준으로 생각하고 ‘금방 괜찮아지겠지’라고 생각했으나 그렇지 않았다. 사진=게티이미지 뱅크/굿모닝충청=박종혁 기자

그의 말대로였다. 처음엔 우울감을 그저 잠깐 찾아왔다 가는 불청객 수준으로 생각하고 ‘금방 괜찮아지겠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눈물이 나기도 하고, 온종일 무기력감에 휩싸여 자신이 무가치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음주는 전혀 도움이 안 됐다. 마시는 순간 잠시 기분이 좋아졌지만, 머지않아 끝없는 절벽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러던 다음 날 새벽,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들 만큼 우울감이 몰려왔고, 손가락은 저절로 움직이며 핸드폰에서 ‘안 아프게 가는 법’, ‘조력자살’ 등의 키워드를 검색하고 있었다.

그 순간, 온몸이 싸늘해지면서 식은땀이 났다. ‘이러다가 진짜로 큰일이 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아 이대로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도움이 필요했다.

정신병원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부끄러웠지만 용기를 내어 상사에게 연락했다.

그는 “괜찮다, 살다 보면 그럴 수 있다”며 “오늘은 아무 걱정하지 말고 푹 쉬고 다음에 보자”라고 말하며 부담을 덜어줬다. 감사한 일이었다.

병원은 평소 컨디션이라면 걸어서 5분 거리에 있었으나, 도착하기까지 약 30분이 소요됐다. 머리가 복잡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면, 혹시 누군가와 마주칠까 두려워 계단을 통해 병원으로 들어갔다.

우울감을 겪는 사람에게는 주변인들의 격려와 지지가 필요하다. 사진=게티이미지 뱅크/굿모닝충청=박종혁 기자
우울감을 겪는 사람에게는 주변인들의 격려와 지지가 필요하다. 사진=게티이미지 뱅크/굿모닝충청=박종혁 기자

어떤 도움이 필요하냐는 의사의 질문에 “우울감이 사라지지 않는다”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동안의 증상에 관해 털어놓자 그는 “술을 마시는 것은 우울감 해소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오히려 더욱 깊은 우울감에 빠져 극단적 선택을 할 가능성만 높일 뿐이다”라고 경고했다.

이어 그는 “맛있는 음식과 좋은 음악, 그리고 따뜻한 격려가 있다면 많이 나아지실 거다”며 “규칙적인 생활 습관이 우울감 해소에 도움이 되므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날 것과 운동을 시작해볼 것을 추천한다”라고 말했다.

혹시 정신과 진료 기록이 남아 불이익이 있을까 걱정이라는 말에 의사는 “정신과 진료 기록이 취업이나 입시에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오해가 있으나 본인의 동의 없이는 열람할 수 없다”며 “이 때문에 치료 시기를 놓치고 병을 키우는 사람들이 많다”라고 설명했다.

약은 다행히 병원 안에서 받을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약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몇 시간 뒤 마법 같은 일이 벌어졌다. 여전히 무기력감이 남아 있고, 조금 멍한 느낌이지만,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의지가 생긴 것.

예를 들면, 기존에는 침대나 바닥에 딱 붙어서 움직이지 못했다면, 진료를 받고, 약을 먹은 뒤엔 ‘그래도 뭐라도 해봐야지’라는 생각과 함께 다시 힘이 생기면서 갑작스레 산책하러 나가거나 청소를 하기도 했다.

의사는 “우울감을 겪는 사람에게는 주변인들의 격려와 지지가 필요하다”며 “환자마다 다른 치료와 처방이 필요하므로 전문가와의 상담이 꼭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혹시 본인이나 가족이 우울감을 겪고 있다면 전문가와 상담해보기를 추천한다.


우울감을 겪는 사람들에게 힘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 노래를 만들었습니다. 실력이 많이 부족하지만 작은 위로가 되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으면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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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2021-07-21 13:33:02
아무도 널 탓하지 않아, 슬퍼하지마, 지나갈 거야
기자님께서 전해주시는 메세지가 큰 위로가 됩니다.

이 기사를 보는 모두가..
우울증이 찾아왔을 때 혼자서만 고민하고, 힘들어하고, 혹 스스로를 탓하고 있었다면 ..
이제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권고기준을 지키지 않고 쓰여지는 자살보도..
자살사건 그대로를 무의미하게 쓰는 자살보도..
이슈가 될만한 자극적인 유명인 자살보도,.

자살예방 보도는 찾아보기 힘들었는데,
오늘 진심으로 쓰여진 이 기사를 보고 힘이 납니다 !

누군가를 살리는 힘은 멀리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ㅠㅠ 2021-07-14 17:31:50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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