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알아가는 심리상담] ‘저항’을 만나다
[마음을 알아가는 심리상담] ‘저항’을 만나다
  • 김경숙 트루비 심리상담·통계연구소 대표
  • 승인 2021.07.31 09:3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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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 굿모닝충청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굿모닝충청
김경숙 트루비 심리상담·통계연구소 대표, 순천향대 시간강사, (전) 아산시청소년상담복지센터 센터장, 교육학 박사, 청소년상담사, 상담심리사
김경숙 트루비 심리상담·통계연구소 대표, 순천향대 시간강사, (전) 아산시청소년상담복지센터 센터장, 교육학 박사, 청소년상담사, 상담심리사

[굿모닝충청 김경숙 트루비 심리상담·통계연구소 대표]  제법 비싸게 산 자켓이 있다. 며칠 지나 입어보니 매장에서의 그 멋진 느낌과 사뭇 달랐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슬그머니 이것을 구매한 나의 행동에 응징의 화살이 집중되었다. 충동구매였나? 모든 것을 압도했던 구매 타당성이 이제는 의심의 먹구름으로 변했다. 이와 유사한 기분인가?

단 두 번째 상담에서 내담자 A는 모든 것이 좋아졌다고 잠도 잘 잔다고 이제 상담 안 해도 된다고 종결 의사를 내비쳤다. 나는 냉큼 속으로 ‘그렇지, 나도 재미가 없던 참이야, 매번 너의 반응을 기다리는 것 따분했어’ 하면서 암묵적 동의를 품고 기다렸다는 듯이 선뜻 동조해 버리고 말았다.

그 나이 또래들이 만사 귀차니즘 병에 걸려있다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내가 만나는 내담자의 저항이 내겐 불편하게 느껴졌다. 이 무슨 꼰대 같고 권위에 찌든 오만인가? 아무튼 이 바닥 상담 계의 전설적 진리는 “모든 내담자는 수동적이든, 광란적이든 저항한다!”이다.

이 상담은 내가 내담자의 집으로 찾아가서 만난다. 길 찾는 눈이 어리버리한 나는 첫날부터 으리으리한 아파트의 입구를 찾지 못해 그리고 겹겹이 쌓인 비밀스런 유리문을 통과하느라 헤맸고 짜증이 스물스물 올라왔다.

더구나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억지로 상담 시간을 맞는 A의 모습(엄청 큰 컴퓨터 앞에서 해드폰을 낀 채 내가 들어가도 알아차리지 못하는)을 보자 급속히 내 심장은 이게 ‘역전이(Countertransference)구나’ 싶은 게 물컹거리고 올라왔다. (역전이: 치료자의 내담자에 대한 감정적 반응).

어른 같기도, 애 같기도 한 A는 나를 흘끗 훔쳐보며 아주 귀찮다는 듯이 억제된 무표정으로 일관했다. 난항이다. 표류할 듯하다. 하, 거기다 외모에 어울리지 않게 기어드는 목소리는 나의 청각신경을 치켜세웠고 말꼬리는 문장마다 다 흐렸다. 회기는 갑갑했다,

“치료자가 만약 지루함을 느낀다면, 내담자가 그 지루함을 끌어내는 어떤 일을 치료자에게 하고 있는 것이다.”라는 정신의학자 얄롬(Yalom)의 말이 구세주 같이 떠올랐다.

간단히 말해 내 탓이 아닌, 내담자 네 탓이라니 얼마나 편리한가? 이럴 땐(역전이가 올라올 땐) 상담자 자신의 느낌에 접근하고 그 느낌을 내담자와의 상호작용을 측정하는 바로미터로 활용하는 것이 상책이다. 그러니까 이 일을 잘하려면 상담자는 접촉된 자각을 친절하고 재치있게 피드백하는 기술을 써야 한다. 강력한 무기, 마술 부적이다.

그러나 딱히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힘든 나 자신을 인식하며 마지못해 그 마술을 꺼내 들었다. “오늘 상담 가운데 나와 **(너)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좀 생각해 볼까?” 이미 그 찰나, 내가 이 상담에서 내담자를 끌어올릴 동력까지 만들어 내야 하나, 그냥 살게 둘까, 내 안에서도 확신을 잃었다. 결국, 나는 주어진 50분 상담에서 내담자와는 20분, 이후 거의 1시간 남짓 그 엄마의 장황한 이야기에 붙들려 있었다.

돌아오는 길은 복잡한 느낌이었다. A의 저항에 나도 합세하여 이때라 하고 밀어낸 것이 그를 위한 것이었나? 나를 위한 것이었나? 아니면, 그 엄마의 쎈 불안으로부터 A를 해방시키려 한 나의 수동적인 몸짓이었나? 혹시 그런가, 나는 그 엄마의 과도한 불안에 휘둘려 살아가는 듯한 A에게서 모호한 연민을 본능적으로 감지하고, 그 엄마와 공모하기 싫어 그 자리를 도망치듯 피했나? 하! 역전이 이야기가 너무 길었다.

자켓을 물리고, 상담을 물리고 싶은 찝찝한 심정을 미해결로 남긴 채(아마도 전의식에 머물러 있으리라) 오늘의 태양은 어제와 다르다는 오만으로 오늘은 H와 마주했다.

우선 H는 달랐다. H의 자기몰입은 경탄스럽다. 자신 내면의 통찰과 은유적 표현력이 놀라워서 회기마다 깊이와 흐림이 지구의 원심력이라도 뚫을 듯하다.

H는 빠른 속도로 내면의 탐색과 자기 이해가 이루어져 갔고 미세먼지 걷힌 선명한 느낌으로 회기마다 의미있는 변화를 창조했다. 범죄 피해의 억울함과 실직으로 인한 우울과 불면을 호소했던 H는 어느 회기부턴가 눈물로 범벅이 되어 온 회기를 마치곤 했다.

심리치료는 “정서 표현”과 “정서 분석”이 연속적으로 이루어진다. 표현을 격려하지만 표현된 정서의 의미와 내용을 숙고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리라. (H님이 전 주에 말했던 ‘피해자 코스프레’를 더 설명해 볼까요?) 그 말에 H는 금세 눈시울이 붉어지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울음의 의미가 무엇일까? (H님의 눈물로 이로운 것이 있나요?) “나는 울지 말고 다른 동료를 위로했어야 했어요” 이렇게 진전된 내용은 클라이맥스가 되었고 그 다음 주 H는 감기라며 상담에 오지 못했다. ‘감기’라... 나는 ‘혹시... 뭘까?’하는 마음에 머물렀다.

한 주를 띤 6회기에 나는 H의 저항을 다루기로 마음먹었다. ‘스토리가 아닌 마음을 따라가라’ 는 수퍼바이저의 조언은 명언이다. (저도 생각했어요. 우리가 그동안 급속히 빨리 온 감이 드네요. 1회기에서 5회기 과정이 H님에겐 어떠했나요?) H는 느긋한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처음엔 소송 스트레스만 풀려 했어요. 근데 선생님 앞이라 그런지 내 속 얘기만 하고 내 치부만 드러낸 것 같아 민망했어요. 지금도 살짝 민망한 게 있어요” 한다. 상담자인 내 앞에서 우는 느낌을 살펴준다. 상담자의 자기개방 이때라. (저도 맨 처음 상담받을 때 많이 울었어요). H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받을 때요?, 할 때요?” (저도 받아요). 어떠했겠나? 6회기 역시 우리의 치료적 관계의 끈끈함은 최고였다. 그날, 더 이상 자켓 따위는 내 마음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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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용섭 2021-08-06 18:35:27
김대표님의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항상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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