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설화(雪花) ②
[연재소설] 설화(雪花) ②
  • 유석
  • 승인 2015.03.11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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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유석 김종보]

차가운 둥지
과거에 낳은 두 자식들을 수년이 지나도록 만나지 못하고 있는 것도 그를  괴롭혔다. 미란은 그것을 무기삼아 남편의 목을 더 조여댔다. 지수는 다희가 희망이었지만 아이의 미래마저 불투명하다보니 불안감은 가실날이 없었다.

그는 알다 가도 모를 일이 여자의 본능이라며 혀를 찼다. 미란이 자신의 뱃속으로 낳은 자식을 학대 할 때마다 모든 것이 자신의 무능력 때문이기에 아이를 낳은 것까지 후회 했다. 설령 갈라서게 되더라도 위자료를 내 주어야 하는 것도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미란이 해가 갈수록 지수와 헤어지는 조건에 대한 위로금을 더 올려놓게 되자 초조와 불안감은 더했다. 자연 집안에 평화란 찾아 볼 수 없었다. 툭 하면 그녀의 음주와 행패, 기물파손에 따른 공포와 살벌한 분위기 속에 치어 죽는 건 지수뿐이었다. 이를 바라보던 가족들이 아이를 입양시키자는 의견도 분분했지만 그때마다 반대했다. 두 번째 결혼까지 실패했다는 오점을 남기는 것도 싫었지만, 양심상 어린 딸을 다른 가정으로 보낼 수 없기 때문이었다. 철부지들의 불장난도 아닌 순간의 판단미숙으로 인해 고통의 파도는 잠들날이 없었다.

애초부터 불안했던 사랑의 헨리헤성은 그를 유혹하고도 모자라 뒤늦게 인생을 통째로 데워 죽이는 악마의 도가니로 변해 있었다. 어떤 돌파구가 없다고 주저 않을수는 없었다. 비록 양편에 서 있는 삶의 장벽이 아무리 높다 해도 무책임하게 어린 딸을 내 버릴 수는 없었다.


그런 와중에도 그는 꿈을 갖고 있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지난 날 그는 가정형편이 좋지 않아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다. 그 후 수많은 세월이 흘렀어도 꿈을 버리지 못해 직장과 독학을 해가며 그림붓을 놓지 않았다. 그런 모습을 미란은 싫어했다. 주제 파악도 못하는 인간이라며 핀잔을 주기 일쑤였다. 그래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림 그리는데 있어 그녀가 도움 준 것도 없지만 그 꿈은 지수에게 생명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국전에 나가 입상하겠다는 꿈을 갖고 있었고, 먼 훗날 제2의 인생을 살아갈 준비도 세워놓았다. 다희도 그를 닮아서 그런지 예능에 뛰어나 노래와 함께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다. 지수는 그런 딸을 바라볼수록 가슴이 아팠다.  해가 바뀌어도 어린 딸의 출생신고는커녕 아직 혼인신고도 못하고 있는 현실이 늘 두려운 존재가 되어 그를 괴롭혀 댔기 때문이었다.

몇 년 있으면 다희가 유치원을 가야하기에 그의 가족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미란과 다투는 것도 다 그런 이유가 있었다. 이 과정에 미란과 정 마저 멀어져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자 자연 부부관계까지 중단하게 되었다. 어쩌다 관계를 갖는 것은 그녀가 기분 좋을 때 지수가 그 틈을 타 쌓인 욕망을 풀기위해 행동에 들어가면 매번 상처만 받고 돌아서야 했다.

너, 나에게 보약해줬니…? 그녀는 부부관계도 돈과 관련된 흥정으로 해결하려 했다. 어쩌다 집안에서 힘든 일을 하면 으레 박카스 종류의 드링크를 사오지 않으면 인정 없는 남자라며 그 자리서 자존심을 깍아 내리는 여자였다.  지수는 본능적 욕정을 해결할 수 없을 때마다 미란이 잠든 사이 화장실에 들어가 헤어진 설화를 떠올리며 자위행위로 대리만족을 해야만 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이를 눈치 챈 금희의 성화에 결국 가지 말아야 할 곳까지 찾아가 풀기도 했다. 시간이 갈수록 두 사람 사이의 사랑은 미움의 골이 더 깊게 파여져만 갔고, 미란은 지수가 전처의 채무를 갚아가고 있는 것에 대해 심한 고통을 받다보니 날이면 날마다 남편을 들볶아 댔다.

모든 것이 지수의 생각과는 딴판이었다. 그녀는 툭 하면 결별을 선언 할 때마다 위자료를 내놓으라며 엄포를 놓기 일쑤였다. 당장 전세방거리 보증금을 요구하지 않으면 월세방을 얻어주고 방세와 생활비를 청하기도 했다. 그것은 지수에게 이중살림을 하게 만드는 또 다른 고통이 되는 길이었다. 때로는 다희를 데려가겠다고 선수를 치며 양육비를 함께 요구하기도 했다. 지수는 섣불리 행동에 나설 수도 없었다.

“그러니까 어떻게 할 거야…?”
“뭐를…?”

“뭐라니! 지금 쪽을 낼 건지, 생활비를 더 올려 줄 건지 둘 중에 하나를 결정하라구”
“내가 지금 너한테 월급을 올려주고 싶지 않아서 안 올려주고 있는 줄 아니…?”
진실은 먹혀들지 않았다. 적반하장이었다. 또 다시 지난날의 설화를 들먹이며 몰아부쳤다.

“너는 지금 옛날 네 마누라가 진 빛 갚아주느라 죽기살기로 나가 돈 벌고, 나는 목적 없이 네 뒷바라지나 하라구…?”

그녀는 살림하는 자신을 스스로 하루벌이하는 도우미 같다며 남편을 몰아 세웠다. 매번 월급타령에 지난날의 설화가 진 빚을 늘어놓으며 시비를 걸어왔다. 지수는 한 겨울 강물에 빠진 사람이 되어 그 어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미란을 만나 과거 잃어버린 사랑을 이어가려 했지만 운명은 그에게 달콤한 시간을 너무 짧게 내 주었다. 그녀가 월급이 적다며 자존심을 송두리째 무너뜨릴 때는 지난날이 후회되면서 남몰래 설화에 대한 증오가 서릿발처럼 솟아오르기도 했다.

비록 자신이 태만하게 내 버려 둔 것에 대한 잘못은 크더라도 한편으로는 지난날 설화의 무책임했던 행동도 용서받지 못할 일이었기에 힘들 때 마다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설화에게 자유의 고삐를 마음껏 풀어놓은 결과가 지금 자신에게 쓰디쓴 고통을 받고 있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불어 닥친 인생의 겨울바람에 불시착한 끝자락에서 악처를 만나 깊은 수렁에 빠져들 줄은 몰랐다. 뒤늦게 이어보려 허공의 주인 없는 연줄을 따다 잃어버린 홍실을 만들어보려 했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음모의 덫에 걸려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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