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재 콩트, 살다보면…] 마카롱은 어떤가요
[정덕재 콩트, 살다보면…] 마카롱은 어떤가요
  • 정덕재 시인
  • 승인 2021.09.12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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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굿모닝충청 정덕재 시인] 코로나19 백신 2차 접종하는 날, 예약한 동네 병원 문을 열고 들어가자 5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남녀 여럿이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손목에 모더나와 화이자라고 쓰여 있는 스티커를 붙인 이들은 다소 긴장한 모습이었다.

접수창구에서 예약확인을 한 후 간호사가 건네준 문진표를 들고 접수대 옆에 있는 탁자로 갔다. 글씨가 보이지 않았다. 문진표를 들고 거리를 조절해 보았지만 시야는 흐릿했다. 종종 있는 일이어도 여전히 당황스러웠다.

“빌려드려요? 우리 나이 되면 항상 가지고 다녀야 하는데, 저도 아직 습관은 안됐지만.”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걸 눈치챘는지 옆에서 막 문진표 작성을 끝낸 여성이 돋보기를 건넸다. 비슷한 또래로 보기에는 젊어 보였다. 색이 바랜 꽉 조이는 청바지는 하체를 탄력 있게 만들었고, 헐렁한 셔츠는 날렵한 이미지를 연출하는 데 손색이 없었다.

‘우리 나이요?’ 이런 반문을 던지기도 전에 얼떨결에 돋보기를 받아 들었다. 최근에 해외여행을 갔는지, 호흡기 증상이 있는지, 먹고 있는 약이 있는지 등등 일반적인 내용이라 빈칸을 채우는데 어렵지 않았다.

“돋보기를 써서 그런지, 젊어 보이시네요.”

나는 앉아서 휴대폰을 보고 있는 돋보기 주인에게 감사의 표시를 전했다.

“젊지는 않은 것 같은데 젊어 보인다, 그 말씀인가요?”

조금은 도전적인 말투였다. 앉아있는데도 뱃살이 접혀있지 않았다. 비교적 몸 관리를 잘 하고 있는 여성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뱃살을 수축시켰다,

“그게 아니라 젊고 아름답다고요.”

나는 돋보기 주인의 심경을 거스르지 않으려 진지하게 대답을 했다. 그녀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냥 웃자고 농담한건데…”

“농담도 참 고급스럽게 하시네요.”

“선생님도 말씀을 재밌게 하시네요.”

“선생 아닌데…”

나와 그녀는 탁구공을 경쾌하게 넘기고 받듯, 농담을 주고받으며 2차 접종의 긴장감을 해소시켜 나갔다.

“주변 사람들 얘기 들어보면 2차 접종 때 더 힘들다고 하던데요.”

“저도 그런 얘기 듣긴 했는데,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죠.”

“젊은 사람들이 더 아프다는 얘기도 있던데.”

“그럼 그쪽은 더 아프겠네요. 한참 젊으니까.”

그녀는 잇몸을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여러 차례 경험에 따르면, 대개의 나이든 여성들은 젊어졌다거나 날씬해졌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사무실 엘리베이터에서 목격한 사례가 셀 수 없이 많다. 몸무게가 나보다 더 많이 나가 보이는 여성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다 문이 열렸을 때, 그 여성이 아는 후배가 들어오면서 던지는 대개의 첫마디는 이렇다.

“언니, 살 많이 빠졌네.”

목을 돌리지 않고 눈알만 살짝 돌려 흘낏 쳐다봐도 거짓말이 분명하다. 살이 빠진 흔적은 전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고 있던 여성은 자연스럽게 대답한다.

“너는 갈수록 젊어지네. 나이를 거꾸로 먹나 봐.”

이 또한 거짓말이다. 내 존재는 아랑곳하지 않고 두 여성은 하하호호 웃으며 서로를 칭찬한다. 나는 이런 목격을 통해 터득한 상황을 돋보기를 빌려준 여성에게 아낌없이 쏟아 부었다.

 

“안 아프셨어요?”

주사를 맞고 대기실에서 15분 이상 머무르라는 말을 지키느라 그 여성과 또다시 얼굴을 맞대었다.

“요즘은 주사 바늘이 좋은 건지, 주사 놓는 솜씨가 좋은 건지, 맞는 줄도 모르겠어요.”

“그러니까요. 오늘 밤이 걱정되네요. 이럴 때는 혼자 사는 게 좀 서글퍼요.”

혼자 산다는 말을 내뱉은 그녀의 표정이 다소 침울해 보였다.

“별일이야 있겠어요. 안 좋으면 타이레놀이나 게보린 드시면 되겠죠.”

“좀 아프면 내가 젊어서 그래, 하면서 위안을 하면 되겠죠. 아까 접수할 때 확인하는 거 보니까 그쪽도 저하고 동갑이던데 많이 아프면 젊다고 생각하세요.”

“그럴게요. 근데 동네에서 자주 못 보던 분인데 근처 사세요?”

나이가 동갑이라는 말에 친근한 느낌이 들었고, 혼자 산다는 말에 더욱 호기심이 일었다.

“동네 살긴 해도 바깥 출입을 잘 안 해서요. 근데 앞으로는 자주 볼 수 있을 거에요. 얼마 전 중학교 가기 전 첫 번째 골목에 가게를 오픈했거든요.”

새로 문을 연 술집이나 음식점이 있으면 꼭 한번 가보고 평가하는 게 동네 애주가들이 지키는 철칙이기 때문에 그녀의 말은 무척 반가웠다.

“주로 안주는 어떤 걸로…”

그녀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게 안주가 될지…”

“술 마시는 사람들이 안주 탓하는 건, 무사가 전쟁에서 졌을 때 칼을 탓하는 것과 똑같죠. 우리는 아무거나 잘 먹습니다. 닭발 족발 새우깡 피자 삼겹살 순대, 심지어 순대 찍어 먹은 소금 묻은 손가락도 안주가 되죠. 따뜻한 물만 있어도 안주가 된다고 말하는 애주가도 있는데요, 뭘.”

물도 안주가 된다는 말에 자신감이 붙었는지 여성은 해맑은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옅은 향수가 코끝을 자극했다.

“마카롱.”

“네 뭐라고요?”

“마카롱 모르세요? 마카롱.”

처음에는 프랑스 대통령 마크롱이 즐기는 음식을 재미있게 말하려는 줄 알았다. 다시 질문을 반복하려다 꾹 참았다. 마크롱이 아니라 마카롱이 분명했다.

“저희 가게 옆에 순댓집이 있는데, 마카롱 사다가 같이 드셔보세요, 색다른 안주가 될 거 같네요.”

 

순간 상상을 했다. 동네 술꾼들과 술을 마시기로 한 날 저녁, 나는 자연스럽게 마카롱 가게로 일행을 인도하고 있었다. 술은 고기와 마셔야 한다고 주장하는 1인과 소주는 회와 가장 잘 어울린다고 주장하는 1인에게 나는 고개를 숙인 채 나직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안주로 마카롱은 어때?”

두 명의 격렬한 반응에 아무런 대꾸도 못하고 있는데, 그녀가 일어나며 상상을 깨는 인사를 건넸다.

“2차 접종도 했는데, 우리 다음엔 안전하게 만나요. 안주로 마카롱도 좋다고 하셨으니까, 기다릴게요. 이제 코로나는 안녕하면서 떠나보내고, 우리가 안녕하면서 만나도 좋겠죠.”

나는 차마 기다리지 말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말문이 막힌 게 아니라 목이 막혀왔다. 마카롱 하나가 목에 걸려 내려가지 않는 것처럼.

정덕재 시인
정덕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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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재 시인
199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으로 등단. 시집 ‘비데의 꿈은 분수다’, ‘새벽안개를 파는 편의점’, ‘나는 고딩아빠다’, ‘간밤에 나는 악인이었는지 모른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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