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 134] 비누나무, 무환자나무...부여군 임천면 만사리 무환자나무
[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 134] 비누나무, 무환자나무...부여군 임천면 만사리 무환자나무
  • 채원상 기자
  • 승인 2021.09.14 09: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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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글 백인환 기자, 사진 채원상 기자] “옛날 어린이들은 호환, 마마, 전쟁 등이 가장 무서운 재앙이었으나...”

8~90년대 비디오테이프는 불법·불량 비디오를 보지 말라는 캠페인으로 영화 시작 전 이 문구가 맨 앞에 등장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호환·마마’라는 단어를 잊지 못한다.

호환은 말 그대로 호랑이에게 당하는 화를 의미한다.

조선시대는 농업과 상공업 발달로 인구가 증가하고 토지 개간이 증가하여 호랑이와 맞닥뜨리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전국에서 호랑이에게 물려 죽거나 다친 사람들이 많았다.

서울만 한정해도 사상자가 수백 명이 나올 정도로 호랑이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마마 또한 강력한 전염성을 가진 두창 바이러스로 한번 발병하면 수많은 사람 목숨을 앗아가거나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해도 얼굴에 심한 ‘곰보’ 흉터가 남아 민간에서는 무서운 병을 피하려는 의도로 ‘마마’라고 높여 불렀다.

지금이야 호랑이는 멸종했고, 천연두는 인류가 박멸한 바이러스 중에 하나라서 더 이상 마주할 기회는 사라졌지만, 조선시대는 한 사람의 운명을 결정하는 근심거리였다.

조선의 부모들은 불확실성이 높은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선 집과 마을 주변에 영검할 대상에 빌고 또 빌어야만 자식들이 오래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부여군 임천면 만사리 무환자나무는 이런 마음을 담아내기에 부족함이 없는 나무이다.

‘집안에 심어두면 환자가 생기지 않는다’는 의미의 무환자(無患子)나무는 ‘귀신을 쫓아 자녀에게 화가 미치지 않는다’라는 무환수(無患樹)라고도 부른다.

불교에서는 열매 안의 단단한 씨앗으로 엮은 108개의 염주를 새기면 번뇌와 고통이 사라진다고 ‘염주나무’, 또는 ‘보리수’라 했다.

한 나무에 병과 우환, 번뇌까지 사라지게 할 수 있는 나무라니 이보다 더 좋은 나무가 없을 듯하다.

하지만 무환자나무는 아무 곳에서나 쉽게 자라지 않는다.

인도를 비롯해 중국, 타이완, 일본 남부에서 자라는 아열대성 나무라서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 전라도 및 경상도와 같이 남부 지역에 주로 분포한다.

이런 점에서 400살이 넘었고 남부에서 주로 분포하는 무환자나무가 부여에 자리 잡은 사연은 알길 없으나, 임진왜란 직후 전주 이씨들이 들어와 살면서 아이들이 무탈하게 커가기를 간절히 바란 마음으로 무환자나무를 심었을 것 같다.

나무는 한차례 큰 시련을 겪었다.

원줄기가 부러져 새로운 가지로 나무 형상을 만들어 가고 있다.

언제 부러졌는지 모를 정도로 노거수의 풍채답게 가지들이 힘차게 뻗어가는 모습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400살의 나무가 변하듯이 무환자나무를 바라보는 시선도 바뀔 때가 됐다.

호환과 마마와 같은 공포의 대상이 사라진 현대에는 다른 희망의 가치를 발굴해야 한다.

최근 무환자나무는 열매 껍질과 줄기, 그리고 가지 속껍질에 일종의 계면활성제인 사포닌이 들어있어 다양한 목욕 용품으로 활용되고 있다.

인도에서 유래한 무환자나무는 라틴어로 ‘인도의 비누’이고, 영어 이름도 ‘소프베리soapberry’라고 ‘비누 열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가 잿물로 빨래를 했다면, 인도는 무환자나무의 성분으로 세탁을 했다고 한다.

마마와 같은 또 다른 공포의 전염병으로 세상이 어수선할 때다.

바깥 활동을 하고 온 우리 아이들에게 무환자나무로 만든 천연 비누로 손을 씻겨주면서 조선의 부모처럼 아이의 건강과 무탈함을 기원하는 것도 좋을 듯싶다.

부여군 임천면 만사리 산32-19 : 무환자나무 1본 402살(2021년 기준)

[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는 충청남도 지원을 받아 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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