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판사 됐어요! ㅠㅠ”[브레이크 고장 난 박기자]
“엄마! 나 판사 됐어요! ㅠㅠ”[브레이크 고장 난 박기자]
대법원 양형위원회 ‘국민 양형 체험 프로그램’
실제 사건을 기반으로 양형 체험 가능
  • 박종혁 기자
  • 승인 2021.09.15 09: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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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어릴 적부터 궁금증이 생기면 브레이크가 없었습니다. 얼마나 추진력이 굉장했냐면 업무적으로 막힌 부분을 해결하고자 이등병 때 육군 인사 참모에게 전화해 원활히 처리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궁금증 해결 능력(?)을 바탕으로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봤던 주제들을 깊이 파고드는 기획 기사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세상에! 저 사람이 징역이 아니라고?"

국민 양형 체험 프로그램에서 판사 체험을 할 수 있다. 사진=양형체험 프로그램 갈무리/굿모닝충청=박종혁 기자
국민 양형 체험 프로그램에서 판사 체험을 할 수 있다. 사진=양형체험 프로그램 갈무리/굿모닝충청=박종혁 기자

[굿모닝충청 박종혁 기자] 언론이나 기타 미디어 등을 통해 흉악한 사건을 접했을 때, 범죄자들이 예상보다 훨씬 적은 형을 받아 의아했던 적이 있다.

최근 사건 중에는 실시간 인터넷 방송을 하던 미성년자들에게 접근해 성적 학대를 일삼은 A씨(25)가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사건이 있었다.

A씨에 대한 선고 결과를 알기 전엔 ‘미성년자에게 몹쓸 짓을 한 A씨는 당연히 감옥에 5년 이상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실제로 A씨가 선고받은 형은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이었으며, A씨는 집행유예를 선고받았기에 감옥행을 면할 수 있었다.

당시 재판부는 ▲범행 대상이 미성년자인 점 ▲여러 차례에 걸쳐 추행한 점 ▲범행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점 ▲형사처벌 전력이 없는 점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했다고 밝혔다.

 

"궁금하면 직접 해보면 되지"

양형체험.프로그램은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제작됐다 사진=양형체험 프로그램 갈무리/굿모닝충청=박종혁 기자
양형체험.프로그램은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제작됐다 사진=양형체험 프로그램 갈무리/굿모닝충청=박종혁 기자

양형기준에 궁금증이 생겨 알아보던 중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양형체험 프로그램을 찾았다.

양형체험 프로그램은 참여자가 판사가 돼서 ▲사건 기사 ▲사건 영상 ▲검사 의견 ▲변호인 의견 ▲피고인 의견 ▲기타 자료 등을 보고 피고인에게 적절한 형이 얼마인지를 고민해 구체적인 판결을 선고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선택할 수 있는 사건은 총 6가지로 ▲도주치상(뺑소니) ▲공무집행방해 ▲사기 ▲강제추행 ▲살인 ▲절도 등이 있다.

사건을 고른 후 기사만 보고 형량을 예측해 본 뒤 다양한 자료를 바탕으로 판결을 선고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선고 이후엔 실제 사건에서 선고된 형량과 비교해 볼 수 있다.

양형체험에서 제공하는 기사. 사진=양형체험 프로그램 갈무리/굿모닝충청=박종혁 기자
양형체험에서 제공하는 기사. 사진=양형체험 프로그램 갈무리/굿모닝충청=박종혁 기자

박기자가 고른 사건은 ‘공무집행방해’였다. 프로그램에서 제공한 기사에서 A씨는 새벽 시간에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에게 13cm 상당의 칼날을 휘두르며 위협한 혐의를 받고 있다.

A씨는 당시 “밀린 임금을 받지 못하자 화가나 만취 상태에서 행패를 부리게 됐다”고 진술했다.

프로그램에서 제공한 기사를 통해 간단히 사건을 파악한 후 형량을 선택했다.

박기자는 A씨가 위험한 물건을 휘두르며 경찰을 위협했으니 ‘징역 2년 초과 3년 이하’가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A씨가 흉기를 꺼내들자 경찰이 제압하는 모습. 사진=양형체험 프로그램 갈무리/굿모닝충청=박종혁 기자
A씨가 흉기를 꺼내들자 경찰이 제압하는 모습. 사진=양형체험 프로그램 갈무리/굿모닝충청=박종혁 기자

본격적인 재판에 앞서 사건 현장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영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영상에서 A씨는 만취한 상태로 편의점 문을 가로막은 채 걸터앉아 행인들에게 시비를 걸고 있었다.

편의점에서 나가려던 손님과 A씨가 실랑이를 벌이다 A씨가 자리에서 일어나 편의점 안으로 들어오려 하자 이를 목격한 편의점 근무자 B양은 A씨가 편의점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문을 잠근 뒤 경찰에 신고했다.

잠시 후 도착한 경찰은 A씨를 일으켜 집으로 돌려보내려 했으나, A씨는 “내가 내 돈주고 술 먹겠다는데 웬 참견이야”라며 경찰을 밀쳐냈다.

경찰의 만류에도 계속 몸부림치던 A씨는 화를 참지 못하고 경찰에게 흉기를 들이밀고 휘두르다가 결국 제압됐다.

A씨 사건에 적용할 규정. 사진=양형체험 프로그램 갈무리/굿모닝충청=박종혁 기자
A씨 사건에 적용할 규정. 사진=양형체험 프로그램 갈무리/굿모닝충청=박종혁 기자

영상을 통해 사건 당시의 상황을 파악한 뒤에 양형 조건을 확인했다.

A씨는 이 사건에서 경찰을 밀치고 흉기를 휘둘러 협박했으므로 공무집행방해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공무집행방해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또한 양형에 있어서 참조해야 할 조건들이 있다.

참작 조건은 ▲범인의 연령 ▲성행 ▲지능 ▲환경 ▲피해자와의 관계 ▲범행동기 ▲범행 수단▲범행 결과 ▲범행 후의 정황 등이 있다.

선택 가능한 형벌을 징역, 벌금형, 집행유예가 있으며, 집행유예는 선고형이 벌금 500만원 미만이나 징역 3년 이하면 선고할 수 있다.

법정 내부. 사진=양형체험 프로그램 갈무리/굿모닝충청=박종혁 기자
법정 내부. 사진=양형체험 프로그램 갈무리/굿모닝충청=박종혁 기자

양형 조건을 확인한 박기자는 법정으로 들어갔다.

재판이 시작하자 검사는 사건 당일 A씨가 저지른 행동에 관해 설명했다.

A씨 측 변호인은 재판부에 “A씨는 당시 만취 상태였다”며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점을 고려해달라”고 말했다.

이에 검사는 재판부에 “술에 취한 상태에서 인사불성인 주취자가 119구조대원이나 경찰에게 폭행을 가하는 일이 늘어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됐다”며 “피고인은 흉기를 들어 경찰관을 위협해 사건을 가볍게 보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또한 검사는 “피고인은 이미 동종전과가 있으며, 주취 상태의 공무집행방해는 재범 확률이 높다”며 “또한 피고인은 위험한 물건을 휴대해 경찰을 위협했다”라고 가중처벌을 요구했다.

이에 변호사는 “피고인은 술에 취해 우발적으로 사건을 저질렀으나 반성하고 있다”며 “경찰관에게 흉기를 휘둘러 공무집행 방해한 것은 사실이나 다른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라고 설명했다.

끝으로 피고인은 “저로 인해 고생하신 분들과 경찰관들에게 죄송하다”며 “선처해주신다면 금주하겠다”고 말했다.

A씨의 엄벌을 요구하는 진정서. 사진=양형체험 프로그램 갈무리/굿모닝충청=박종혁 기자
A씨의 엄벌을 요구하는 진정서. 사진=양형체험 프로그램 갈무리/굿모닝충청=박종혁 기자

재판을 마친 박기자는 보다 정확한 판결을 위해 진정서와 탄원서를 확인했다.

먼저 A씨를 경찰에 신고한 편의점 근무자는 진정서에서 “피고인은 새벽에 편의점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고 편의점 안으로 들어오려고 했다”며 “경찰관을 위협하고 사회에 불안함을 조성하는 이런 범죄를 강력히 처벌해야 한다”고 적었다.

피고인 A씨의 어머니는 탄원서에서 “어렸을 때 착했던 아들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사기를 당하고 임금 체불에 시달리는 등 나쁜 일들을 겪자 술에 의존하게 됐다”며 “어머니로서 강하게 바로잡았어야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라고 적었다.

이어 “밤낮으로 고생하는 경찰관들에게 죄송하다”며 “너그러운 마음으로 최대한 선처를 부탁드린다”라고 호소했다.

선고 화면. 피고인의 인생을 뒤바꿀 수 있는 결정이라는 문구가 인상적이다. 사진=양형체험 프로그램 갈무리/굿모닝충청=박종혁 기자
선고 화면. 피고인의 인생을 뒤바꿀 수 있는 결정이라는 문구가 인상적이다. 사진=양형체험 프로그램 갈무리/굿모닝충청=박종혁 기자

관련 자료를 모두 확인한 박기자는 선고를 위해 생각을 정리했다.

A씨는 위험한 물건을 휴대했으며, 반복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다만, A씨가 술에 의존하게 된 동기와 우발적 범행을 저질렀다.

양형 기준표를 참고해 A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체험자가 내린 판결과 실제 판결을 비교해 볼 수 있다. 사진=양형체험 프로그램 갈무리/굿모닝충청=박종혁 기자
체험자가 내린 판결과 실제 판결을 비교해 볼 수 있다. 사진=양형체험 프로그램 갈무리/굿모닝충청=박종혁 기자

선고를 마친 박기자는 형량을 비교해봤다. 기사만 보고 형량을 예측했을 땐 징역 2년 초과 3년 이하의 실형이 나왔지만, 재판과 기타 자료 등을 통해 판단한 결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A씨의 실제 재판에서 당시 재판부는 위험한 물건을 휴대한 부분을 가중요소로 인정해 A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양형체험 프로그램을 마친 다른 참여자들은 체험 전에는 ‘징역 1년 초과 2년 이하의 실형’을 가장 많이 선택했었지만, 체험을 모두 마친 뒤에는 ‘집행유예’를 가장 많이 선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끝으로 “양형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받은 데이터는 향후 양형기준 마련에 기초 자료로 활용될 예정이다”라는 문구와 함께 프로그램은 끝났다.

한편, 양형체험은 양형위원회(https://www.scourt.go.kr/sc/exp/main.work)에서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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