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재 콩트, 살다보면…] 퇴직금이 궁금한 날
[정덕재 콩트, 살다보면…] 퇴직금이 궁금한 날
  • 정덕재 시인
  • 승인 2021.09.29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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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굿모닝충청 정덕재 시인] 최근 같이 일하던 젊은 남자 동료 하나가 다른 직장의 경력직 시험에 합격했다. 그와는 업무 연관성이 많아 하루에도 몇 차례 말을 섞으며 의견을 나누는 관계다. 특히 컴퓨터를 활용해 처리하는 일이나 휴대폰으로 다양한 정보를 확인할 때는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가 나를 도와준 후에는 상심하지 말라며 종종 위로의 말을 건네기도 했다.

“아버지도 인터넷 사용은 잘 몰라서 저한테 자주 물어보세요. 다들 그러니까 언제든 물어보셔도 됩니다.”

이런 말이 위안이 되지는 않는다. 때로는 나이 들어가는 걸 실감케 해 울적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물론 그에게는 내색하지 않았다.

나이 차이가 나서 그런지 업무 이외 사적인 만남을 갖는 편은 아니었다. 어쩌다 가끔 점심을 먹거나 분기에 한 번 가량 간단하게 저녁을 먹을 정도다. 3년 남짓 맺은 인연이 아쉬웠는지 동태탕 후배가 먼저 말을 꺼냈다.

“다음 주부터 안 나온다고 하는데 소주라도 한 잔 해야 되지 않을까요?”

“그러게, 코로나 땜에 장소가 마땅찮아서.”

“동태탕만 문 안 닫았어도 좋았을텐데…”

“요즘 다니는 대구탕 가게는 어때?”

동태탕을 워낙 즐겨 별명이 동태탕이라 불리는 후배는 즐겨찾던 동태탕 전문점이 문을 닫으면서 한동안 배회했다. 그러다가 찾은 곳이 대구탕을 주메뉴로 하는 식당이다. 그날 저녁 갑작스럽게 자리를 마련했다. 이직도 급하게 이뤄져 따져볼 송별회 날짜가 많지 않았다.

“옮기는 회사 조건은 괜찮나?”

“여기서는 계약직이라 좀 불안하잖아요. 정년이 보장된다는 것 하나 때문에 마음의 결정을 내린겁니다.”

“여기 퇴직금은 얼마나 되나?”

“아직 모르겠습니다. 정산하면 알려준다고 했는데, 남은 소형차 할부도 다 갚기 힘들걸요.”

그의 나이는 서른 초반, 이직을 하는 것도 자연스럽다. 요즘은 처음 들어간 직장을 평생직장으로 여기는 시대가 아니라고 말한다. 고용 불안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도 도처에 많이 있다.

“우리야 이제 나이 들어서 갈 데도 없고, 옮길 직장이 있다는 것도 큰 즐거움이지.”

나는 깊은 숨을 내쉬며 퇴직을 앞둔 나이임을 알려 주었다.

“갈 데가 왜 없어요? 경로당도 가고, 등산도 가고…”

동태탕 후배는 웃으며 농담을 던졌다.

“쓸쓸하게 왜 그러세요. 두 분 다 건강하신데. 그리고 요즘은 인생이모작을 사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나와 동태탕 후배가 퇴직 얘기를 하는 게 부담됐는지 떠나는 직원이 힘을 북돋아 주었다. 그는 인생이모작이라는 낱말에 힘을 주며 술병을 들었고, 우리 둘은 빈 잔을 들어 술을 가득 받았다.

“제가 남기고 가는 젊은 기운이라고 생각하시고 많이 받으세요.”

그가 두 손으로 술병을 잡고 어른스럽게 말을 하며 술을 따르자, 헤어지는 자리라는 게 실감이 났다.

“고맙네, 자네의 기운을 받아 이모작을 열심히 준비하지.”

나는 활짝 웃으며 화답을 해주었고, 동태탕 후배는 이모작이 쉽지 않은 나의 저질체력을 농담으로 받았다.

“이모작도 땅이 좋아야 이모작을 하죠.”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술병은 쌓이고 주변 테이블은 비어갔다. 일어날 시간을 알려주는 흔한 식당 풍경이 게슴츠레해진 눈에 들어왔다. ‘마지막 한 병 더’를 고집하는 후배를 일으켜 세웠다. 셋은 골목을 걸어 나와 은행나무 가로수가 있는 버스 승강장 아래에 섰다. 밤바람에 쿰쿰한 냄새가 실려 왔다.

“재수 없는 사람이나 재수 없는 일 만나면 그냥 똥 밟았네 그렇게 생각하라고. 그래야 자네 마음이 편해진다고.”

동태탕 후배가 혀가 꼬인 상태로 덕담을 건넸다. 젊은 직원도 취해 있었다.

“지금 은행 밟고 있어서 똥 밟았네 얘기 하시는거죠” 그는 소리를 크게 내며 웃었고 후배는 은행나무를 올려다보았다.

“최소 6년은 다니라고.”

나는 그와 마지막 악수를 나누었다.

“왜 하필 6년이에요?”

“그래야 퇴직금 50억은 받을 거 아닌가.”

정치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50억 원을 떠올리며 우리는 힘없이 손을 흔들었다.

“선배님, 우리 뻥튀기 기계나 하나 살까요?”

취한 몸으로 은행나무를 흔들던 동태탕 후배가 말을 꺼냈다.

“갑자기 뻥튀기는 왜?”

“퇴직금 넣어서 열 배쯤 튀겨 보려고요.” 은행나무가 은행 창구의 대출직원이라도 되는 듯, 후배는 비틀거리면서도 계속 나무를 흔들었고 은행알 몇 개가 머리 위로 떨어졌다. 퇴직금이 궁금한 날의 송별회는 지독한 냄새로 마무리 지었다.

정덕재 시인
정덕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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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재 시인
199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으로 등단. 시집 ‘비데의 꿈은 분수다’, ‘새벽안개를 파는 편의점’, ‘나는 고딩아빠다’, ‘간밤에 나는 악인이었는지 모른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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