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 144] 갈등(葛藤)이 아니라 소통과 배려...서산 운산초 등나무
[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 144] 갈등(葛藤)이 아니라 소통과 배려...서산 운산초 등나무
  • 채원상 기자
  • 승인 2021.11.20 11:3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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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글 백인환, 사진 채원상 기자] 개인적으로 등나무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는 다큐멘터리 ‘말하는 건축가(2012년)’이다.

공공건축의 큰 발자취를 남겼던 건축가 정기용이 암과 사투하면서 자신의 작품과 철학을 보여준 영화인데, 그의 대표적인 ‘무주 공공프로젝트’에서 눈에 띄던 작품이 바로 ‘등나무운동장’이었다.

산간오지에 위치한 무주군의 공설운동장은 주민들을 위한 행사를 열어도 주민들이 찾지 않는 일이 잦아 군청은 고민이 많았다.

이유는 땡볕을 그대로 받으면서 행사에 참여하지 않으려는데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정기용은 운동장 주변에 심어진 240그루의 등나무가 옆으로 빨리 자란다는 특성을 이용해 지지대와 와이어를 설치해서 운동장 천장을 등나무로 엮어 만들었다.

등나무는 얼마 안 있어 특유의 성장 속도로 운동장

천장까지 덮어버렸고, 여름에도 땡볕을 걱정하지 않을 만큼 그늘이 생긴 뒤로는 ‘무주반딧불축제’나 ‘무주산골영화제’에 참석한 이들에게 환상적인 경험을 제공할 수 있게 됐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등나무운동장은 이제 무주의 대표적인 상징물이 된 것이다.

‘갈등(葛藤)’이란 한자어는 ‘칡 갈(葛)’자와 ‘등나무 등(藤)’을 조합한 한자어이다. 칡과 등이 각각 왼쪽과 오른쪽으로 감아 올라가면서 얽히고설킨 관계에서 유래한 말이다.

갈등은 두 성격의 대립 현상(위키피디아)이며, 서로의 이익에 상충하는 방향으로 상호작용하는 과정(나무위키)이다. 복잡하고 다원화된 요즘은 과거에 비해 개인 간, 집단 간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이 더욱 표면화되는 것을 우리는 매일 경험하고 보고 산다.

한편으로는 급속한 사회 변화, 가부장 중심에서 성 평등 사회 진입, 신자유주의와 빈부격차와 같이 세대·성별·경제적 불평등에서 오는 갈등은 조화롭고 공생하려는 삶의 방식으로 가고자 하는 이유가 되곤 한다.

갈등이 드러나야 해소하는 방향과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할 수 있는 이치와 같다.

서산시 운산초등학교의 등나무, 갈등보다는 치유 공간이란 생각이 들었다.

5월의 등나무는 연한 보랏빛 꽃우산이 되었다가 여름에는 소나기나 땡볕을 피하기 좋은 장소가 됐고, 가을에는 책 보기 좋은 바람길이 되어 학교와 주민들이 늘 찾는 매력적인 공간이다.

친구와 싸워도 등나무 아래라면 저절로 화해를 할 수 있을 것 같고, 선생님에게 깊숙이 감추었던 비밀을 털어놓을 수 있었던 이 장소는 모두의 마음을 열게 하는 신비로운 공간이다.

등나무는 햇빛을 받기위해 줄기마다 서로를 밟고 올라가기보다는 옆으로 뻗어 자신을 낮추려는 성품을 지녔다.

나무 옆에 지지대가 있다면, 기꺼이 도움을 받아 자신을 거기에 맞추어 땡볕을 피하려는 사람들이나 동물에게 그늘을 만들어 준다.

갈등의 어원을 등나무에서 찾으려던 모습과 달리 등나무는 다른 이들을 배려하기 위해 자신을 낮출 줄 아는 모습이었다.

더욱이 자신의 품에 오게 된 많은 이들은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을 경험하면서 다른 이들과 어떻게 대화하고 소통해야 할지를 아는 지혜로운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

올해 실시한‘2022개정 교육과정의 미래 인재상’과 관련된 주요 단어 중, 배려가 1순위이다.

경쟁적으로 학업성취도와 학력 스펙에 매몰되어 아이들을 경쟁으로 압박했던 학교 현장도 이제는 알게 된 것이다.

경쟁이 아니라 소통과 배려가 불확실한 미래를 살아가야 할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란 사실을 말이다.

건축가 정기용은 무주군수가 심어놓은 등나무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늘 무주 주민들과 살면서 그들이 불편하고 고민하는 사항을 꼼꼼히 관찰했다.

등나무의 성품이 주민들의 삶을 배려할 수 있다는 사실은 결국 ‘소통과 배려’에서 찾게 됐다.

이제 ‘위드 코로나’ 시대에 아이들은 지난 2년보다 친구들과 더 가깝게 지낼 수 있을 것이다.

가까워지는 만큼 서로 다투는 일도 많아질 것이다.

그러나 운산초등학교는 걱정할 일이 없을 것 같다.

155년 동안 소통과 배려의 경험과 지혜로운 등나무가 아이들에게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 주는데 아낌없이 공간을 내어 주기 때문이다.

서산시 운산면 운암로 1037(운산초등학교) : 등나무 1본 155살(2021년 기준)

[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는 충청남도 지원을 받아 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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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지 2022-05-03 22:15:20
아름다운 글 잘 읽었습니다. 그 어느때보다 배려와 이해가 필요한 사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등나무를 보며 경쟁보다는 배려의 자세를 배워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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