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피루스의 궁리》 '삼국지'... 꼭 안 읽어도 된다
《파피루스의 궁리》 '삼국지'... 꼭 안 읽어도 된다
  • 강미숙 소셜칼럼니스트
  • 승인 2021.11.29 18:56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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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숙 소셜칼럼니스트는 29일
강미숙 소셜칼럼니스트는 29일 "《삼국지》, 그까이꺼 몰라도 된다. 하지만 국정운영의 철학을 묻고, 전지구적인 패러다임 전환의 시기에 중세적 인간이 지도자가 되면 내 삶이 어떻게 무너질 수 있는지 더 세련되고 구체적으로 공격하는 전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굿모닝충청 정문영 기자〉

삼국지... 꼭 안 읽어도 된다》

- 강미숙 소셜칼럼니스트

윤석열이 서울대 학생들과의 간담회에서 오간 《삼국지》 질문이 세간의 화제다. 《삼국지》에서 좋아하는 인물이 있느냐는 질문에 윤석열은 《삼국지》와 관계없는 《닥터 지바고》, 쇼스타코비치를 어버버 답했다며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서울대 학생들의 질문의 수준에 놀라고 윤석열이 무식한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며 혐오를 감추지 않는다.  

특별할 게 없는 질문에 아는 게 없는 《삼국지》를 비껴가기 위해 《닥터 지바고》, 쇼스타비치를 언급했지만 그또한 속빈 강정임이 드러났으니, "차라리 고시 공부하느라 못 읽어봤다, 대충은 알지만 인물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할 정도는 못된다"고 했으면 호감도가 높아졌을 텐데, 괜히 아는 척 하려다 오히려 더 우습게 된 꼴이니, 지켜본 청년세대들이 어떻게 느꼈을지 궁금하다.

윤석열이 청년시절 《닥터 지바고》 완역본이 나왔는지 모르겠는데, 매년 영화를 보았다면서도 구체적으로 할 수 있는 말은 없는 걸 보면 '로미오는 읽었는데 줄리엣은 못 읽었다'는 유머가 어울릴 법한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리고 그는 어떤 경우에도 '모른다'는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란 걸 확인시켰다. 이것이 윤석열의 본질이니, 앞으로도 비슷한 일은 계속 발생할 것이다. 향후 우리는 이런 일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그의 처참한 수준의 문해력과 발화능력이야 더 놀랄 것도 없지만, 이것이 한국 검찰의 수준이거나 평균값이라고 생각하면 오싹해진다. 역사, 철학, 예술을 종횡무진 누비며 때론 정곡으로, 때론 풍자와 해학으로 사람들을 쥐락펴락 하는 진혜원 검사 같은 이는 진정 검찰의 0.1%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 싶고, '저 정도의 저급한 청취력과 독해력으로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건들을 왜곡시켰을까'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다. 하물며 그런 자가 일국의 대통령을 하겠다니, 윤석열 그자가 아니라 이런 상황에 놓인 현실이 개탄스럽다.

그러나 이와는 다소 다른 결로 학생들의 질문과 윤석열의 대답,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반응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삼국지》를 안 읽은 게 죄는 아니다. 질문한 여학생도 《삼국지》를 제대로 읽어봤을지 의문이다. 나는 월탄 박종화의 문장으로 《삼국지》를 처음 읽었지만, 요즘 대학생들 중 《삼국지》를 그것도 이문열, 황석영의 《삼국지》를 분별해가며 읽은 친구들이 얼마나 될까.

이 지점에서 나는 참 슬프다. 누가 이 아이들을 이렇게 만들었는가. 기성세대인 우리 자신들이다. "라떼는삼국지를 끼고 살았는데 요즘 애들은..." 할 게 아니라, 아이들이 《삼국지》든 뭐든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도, 물리적인 시간도 없게 만든 것이 곧 우리 자신이었음을 인정하는 것부터 해야 한다. 조직을 장악하는 비결을 묻는 서울대생의 저급한 인식수준을 문제삼는 것은 하나를 보고 전체를 매도하는 격이 될 수도 있다.

서울 주요대학의 커뮤니티를 일베성향이 장악하고 있으며, 그들이 청년을 과대표한다는 것은 이미 조국 검언유착 때 익히 보아 왔다. 우리가 연대하려고 하는 청년세대는 이미 자신을 기득권으로 인식하기에 기득권 카르텔을 깨려고 하는 조국에게 알러지 반응을 보이던 그들이 아니라, 그 외연에 있는, 기득권의 사회·문화적 자본에 밀려 헤게모니를 장악하지 못하고 있는 평범한 청년들이다. 그러나 그들도 간담회에 나온 청년들을 싸잡아 조롱하는 것까지 동의하지는 않을 것이다. 조롱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은 법이다.

청년들이 책을 안 읽는다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결핍이 없으면 절실한 것도 없다. 넓게 잡아 60년대 생까지는 책보다 밥이 우선이었던 시대였기에, 책에 대한 결핍이 매우 큰 세대였다. 하지만 2030세대가 10대를 보낸 90년대는 청소년과 어린이 출판시장의 르네상스를 맞이한 시절이다. 교양인의 척도인 양, 집집마다 전집류의 책이 빽빽하게 꽂혀있는 게 잘나가는 거실 인테리어였다.

내 기억으로 위인전, 전래동화, 세계명작 등등의 전집류가 휩쓸고 간 자리에 다양한 판형과 다양한 주제의 번역 그림책과 번역 청소년 문학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그 위에 국내 청소년 문학 작가군도 두터워지며 저학년, 중학년, 고학년으로 구분하는 창작동화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에 발맞춰 차츰 중고등학생을 독자층으로 하는 정치, 사회, 경제, 과학, 예술 전 분야에 걸친 양질의 책이 어마어마하게 쏟아져 나왔다.

이 시기는 다음 세대를 인권과 평화감수성, 시민으로서의 덕성을 갖춘 아이들로 잘 길러내자는 암묵적인 합의가 있었던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폭발적으로 성장했으니, 가히 청소년 출판의 르네상스라 할만 했다. 나는 91년 5월투쟁 이후 진보진영의 좌절된 정치적 상상력이 한 축으로 출판계, 다른 한 축으로 사교육 시장을 점령했다고 생각한다. 아이러니하게 시공사를 운영한 전두환의 아들도 엄청난 돈을 벌었을 것이다.

어른들은 자신은 어릴 때 접할 수 없었던 책읽는 환경을 아이들에게 제공해주고 싶어했고 ,학교에서도 독서를 강조했다. 읽었는지 확인은 해야겠기에 기계적인 독서기록장 강요와 단순한 대답을 유도하는 독서골든벨이 대표적인 독후활동으로 자리잡는 만행을 저지르긴 했지만, 이 시기 학교 도서관 인프라도 괄목할 만한 변화를 가져왔다.

하지만 기성세대는 책을 지식습득의 통로로만 여겼지, 아이들 스스로 사유하기를 돕지는 못했다. 그나마도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바보야 이젠 국영수야' 하며 책읽는 아이들 앞에서 조급해 했다. 부모들은 '우리 애가 어릴 땐 책을 쌓아두고 읽을 정도로 책을 좋아했는데 이젠 통 안 읽네요' 했지만, 정작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해야 하는 아이들에겐 책 읽을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쯤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들은 부모세대가 경험한 책의 결핍을 해소하는 대상이 되었고, 부모와 서점에 가서 이 책 저책 살펴보고 만져보는 즐거움, 지식과 지혜의 보고인 책과 교감을 나누는 짜릿함이 아니라, 주어진 책을 숙제하듯 읽고, 누가 정하는지 알 수도 없는 책 꾸러미를 매주 받아 수동적으로 욱여넣는 방식에 길들여졌다. 《삼국지》가 결코 정답은 아니지만, 지금 20대 청년들이 정체성을 찾아가는 시기 열권이 거뜬히 넘는 《삼국지》를 권한 부모가 얼마나 있었을까. 아이들은 책 속에서 성장하기를 바란 어른의 기대와 달리, 책 과잉의 시대를 거치며 역설적으로 지식과 정서적 결핍 시대로 접어들었다.

그래서 지켜보는 청년들은 모두가 개탄해마지않는 ‘무려 서울대 학생’임에도 《삼국지》를 읽지도 않았을 것 같은 친구의 질문이나, 조직을 장악하는 비결을 묻는 학생, 이에 어버버 대답하는 윤석열에게 감정이입하고 이들을 무식하다고 조롱하는 사람들에게 더 거부감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이 지점에서 공부할수록, 교육수준이 높을수록, 학벌이 높을수록 공적의식을 약화시키는 교육구조를 탓해야 한다. 그리고 그 상당한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그러니 대선을 앞둔 이 시점에서 윤석열의 무식함을 조롱하는 것은 단순 배설을 넘어 어떤 공익적 가치가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극우 유튜버들은 언급할 가치도 없지만, 진보성향의 일부 유튜브도 죄다 남성 중심의 조롱과 비아냥, 욕설과 자화자찬이 불편해서 유일하게 즐겨보는 채널은 〈빨간아재〉를 비롯해 두세개 뿐이다.

조롱과 혐오의 상징이 된 일베를 비난하면서 우리가 윤석열을 조롱하고 혐오하는 것은 괜찮은가. 정치적 지향점이 비슷한 나도 가끔 불편함을 느끼는데, 이런 방식이 다른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까? 사람의 생각을 바꾸게 하는 것은 논리가 아니라, 오직 감동과 공감뿐이다. 《삼국지》를 읽어본 사람보다 안 읽은 사람이 더 많을 테고, 특히 《삼국지》를 구닥다리 영웅이야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청년들에겐 꼰대짓으로 보여질 가능성이 높다.

조롱과 야유에서 그치지 않고 결속을 다지는 유머가 되려면, 인간적인 모멸감을 주는 비하는 삼가야 한다. 어떤 유튜버는 《삼국지》를 질문한 여학생에게 '일국의 대통령 후보에게 그런 쓰잘데기 없는 걸 묻는다'며 한심하다 말하는데, 난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에게 어떤 인물유형에 호감을 가지는가 질문하는 것은 지도자의 철학을 가늠해볼 수 있는 유의미한 질문이라고 본다. 그것까지 싸잡아 비난하는 것으로는 그 자리에 모인 윤석열 지지자들뿐만 아니라, 한 걸음 두 걸음 떨어져서 관망하고 있는 숱한 청년들에게 호감을 사기 어렵다.

사람들은 무식한 줄 알면서, 그의 저급한 인간됨됨이를 창피해하면서 왜 지지하는 걸까 생각해 보아야 한다. 선거 홍보전략의 ABC중의 하나는 중졸 50대 여성을 기준으로 삼으라는 것이다. 논리로만 선거를 한다면 진보가 하등 불리할 게 없지만, 선거는 미묘한 인간의 심리를 들여다보아야 하고 그렇기에 좀 더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

윤석열을 보며 더욱 분명해지는 것은 민주주의는 정치체제가 아니라 삶의 양식, 즉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근본질문으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삼국지》, 그까이꺼 몰라도 된다. 하지만 국정운영의 철학을 묻고, 전지구적인 패러다임 전환의 시기에 중세적 인간이 지도자가 되면 내 삶이 어떻게 무너질 수 있는지 더 세련되고 구체적으로 공격하는 전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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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2 2021-11-30 08:42:05
우연히 글을 읽었습니다. 삼국지는 철학적 정치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죠. 기술적인 세계일수록 인문적 성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걱정입니다. 조금의 제약이 있던 권력자에게 이제 모든 권력을 몰아주려 하다니 이제 이 나라는 어떠한 과정을 밟게 될지 걱정입니다.

나그네 2021-11-30 02:25:49
그의 처참한 수준의 문해력과 발화능력이야 더 놀랄 것도 없지만, 이것이 한국 검찰의 수준이거나 평균값이라고 생각하면 오싹해진다. '저 정도의 저급한 청취력과 독해력으로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건들을 왜곡시켰을까'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다. 하물며 그런 자가 일국의 대통령을 하겠다니, 윤석열 그자가 아니라 이런 상황에 놓인 현실이 개탄스럽다.

너무나 공감합니다.
독재살인마 박정희에 의해 아무리 동서 간의 시각 차가 심하다지만, 이런 수준의 인물을 지지하는 자들의 두뇌구조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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