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 156] 당진 두레문화를 증명하는 모과나무...당진시 송악읍 가학리 모과나무
[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 156] 당진 두레문화를 증명하는 모과나무...당진시 송악읍 가학리 모과나무
  • 채원상 기자
  • 승인 2021.12.05 12: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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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글 백인환, 사진 채원상 기자] 잎이 떨어진 뒤 나무에 대한 관심은 사그라진다.

나무도 휴면기에 들어가 생기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반면에 모과나무처럼 그동안 보이지 않던 나무껍질이 새롭게 보였다.

“나는 모과의 잎과 열매가 모두 떨어진 뒤, 겨울에도 간혹 모과나무를 찾는다. 산고의 흔적을 다시 한번 보기위해서다. 모과나무는 산고의 흔적 때문에 껍질이 얼룩덜룩 반점투성이다. 나는 이 껍질 반점을 무척 좋아한다. 반점은 한 생명체가 살아가면서 남긴 흔적이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의 사람들이 대부분 몽고반점을 가지고 있고 몽고반점이 한국인의 정체성이듯이, 반점은 한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힘일지도 모른다”

나무철학자 강판권은 ‘나무철학(2015)’에서 모과나무 반점에 대한 의미를 생명체의 흔적이라고 했다.

“삶은 어떤 흔적이든 남길 수밖에 없다. 어떤 모양이든 그 흔적은 아름답다. 남긴 흔적은 사람마다 각각 다르기에 더욱 아름답다. 역사책에는 역사에 큰 흔적을 남긴 사람만이 기록되어 있지만, 인류의 역사는 역사책에 기록된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다”

흔적은 명시적인 정보를 담고 있지 않지만, 강판권 교수의 말처럼 모과의 흔적은 경험과 학습에 의해 몸에 쌓인 암묵지(暗默知, tacit knowledge) 같은 것일지 모른다.

당진시 송악읍 가학리의 모과나무에는 수백 년 동안 내려오던 마을 공동체의 흔적이 묻어 있다.

이 마을에는 전국에서 보기 어려운 두레문화가 최근까지 전해오고 있는데, 음력 정월대보름에 마을 우물가에 볏가릿대를 세워 그 해 풍·흉년을 점치고 기원하는 ‘볏가릿대 세우기’와 ‘거북놀이’라는 전통놀이다.

이 전통놀이는 조선 전기부터 시작한 ‘이앙법(모내기)’과 맞닿아 있다. 모내기는 농민들의 노동력을 최대한 조직화하고 집중해야만 가능했던 농법이었다.

그러나 수리시설이 부족한 시대에 물이 많이 필요한 이앙법은 당시 조선 왕조와 양반들에게는 마뜩하지 않았다.

가뭄이 날 경우, 그해 농사는 포기해야 하는 위험성으로 법으로까지 금지했었다.

소작하는 민중들 입장에서는 기존 방식보다 훨씬 많은 쌀을 수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앙법은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

결국 조선후기에는 이앙법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보편적인 농법으로 정착하게 되었고, 마을마다 이앙법과 김매기 등의 농사일을 조직적이고 집중적으로 하기 위한 두레가 마을에 정착하게 된 것이다.

보다 강고한 성격의 두레조직, 지휘체계 확립을 위해서는 풍물과 노동요는 반드시 필요했었고,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농촌의 전통놀이와 농촌 이미지는 이때의 이앙법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런 두레 문화는 최근까지 당진시 송악읍 가학리의 모과나무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왔다.

모과나무 앞에는 대동샘이라는 식수와 논에 물을 대던 대형 우물이 있었고, 마을 주민들은 이곳에 볏가릿대를 세워 그해의 풍년을 점쳤던 것이다.

모든 주민들이 풍물 장단에 덩실덩실 춤추며 노동요를 부르면서 흥에 겨웠던 거북놀이도 가학리 모과나무 아래서 벌어졌다. 모두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던 마음이 모과나무로 모아지면서 힘겨운 농사일을 이겨낼 수 있었다.

가학리 두레문화는 국립민속박물관의 ‘민속현장조사’ 아카이브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그 현장 사진에도 모과나무는 지금처럼 서 있었다.

당진시 송악읍 가학리 369 : 모과나무 175년(2021년 기준)

[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는 충청남도 지원을 받아 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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