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병원에서 온 편지] 친구의 아버지를 보내드리며
[요양병원에서 온 편지] 친구의 아버지를 보내드리며
  • 굿모닝충청
  • 승인 2021.12.18 11:4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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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시대를 넘어 이젠 120세를 기대하는 세상이다. 모두들 노후의 아름다운 죽음을 상상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요양병원. 그곳에서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종사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아름답게 인생 여정을 마무리할 수 있는 어르신들의 이야기와 지나온 생활을 들어본다.

 

[굿모닝충청 배영후 참조은요양병원 이사] 2021년 12월 달 초. 우리 병원에 모셨던 친구의 아버지께서 소천하셨다.

처음 암 진단을 받은 지 10년.

그간 잘 견뎌오시다 최근 췌장암 말기, 온몸으로 이미 전이가 다 된 상태에서 입원 중이었던 대학병원에서는 더는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으니 호스피스를 알아보라 했다고 한다.

말기암 환자 중에는 호스피스를 알아보다가 예약이 너무 밀려있거나 자리가 없어 요양병원으로 오시는 경우가 많다.

친구 녀석도 어차피 코로나로 인해 면회가 어려운 상황이라면 호스피스보다는 차라리 요양 병원에 모시는게 마음이 편할 것 같다고 해 우리 병원으로 모시게 됐다.

사실 말기암 환자에게는 특별히 해드릴 수 있는 치료가 없다.

마약성 진통제를 이용한 통증조절과 정맥영양공급, 그리고 정서적 지지. 이미 요양병원에 입원할 때부터 환자와 보호자 모두 죽음에 대해 받아들이고 온다.

연령대도 다양하다.

한창 가족을 부양해야 할 40대 가장에서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최선을 다해보겠다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우리와 환자, 보호자는 모두 알고 있다.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라는 것을. 안녕한 척하지만 긴 작별을 준비해야 하는 시간이라는 것을.

말기암 환자의 대부분이 인지가 온전한 상태에서 오다 보니 입원 당시에는 겉으로 봐서는 이분이 아픈 분인지 알아채기 어려울 때가 많다.

또 통증 조절이 잘 되다 보면 환자의 컨디션이 회복될 때도 있다.

혹시나 암이 완치되는 기적이 생긴 게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그래서 임종하신 모습을 보면 더 실감이 나지 않는다.

멀쩡하게 대화를 나눴던 게 불과 며칠 전이라, 가만히 주무시고 계시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요양병원에 있으면서 수없이 보아온 임종의 모습이지만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여전히 낯설 때가 많다.

목숨(사람이나 동물이 숨을 쉬며 살아 있는 힘)이 붙어있으면 살아있는 것이고, 목숨이 없으면 죽음이라는 것.

그 누워있는 모습은 너무나 똑같은데 이 목숨의 차이로 삶과 죽음이 구분된다는 것.

우리는 그 죽음 너머를 가보지 않았기 때문에 환자에게 그 너머에 대해 알려줄 수는 없다.

다만 그 너머로 가는 길이 편안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뿐이다. 한 번 더 통증을 조절해드리고, 한 번 더 살아있는 오늘을 감사하게 해드리고, 한 번 더 주변에 소중한 사람들에게 감사할 수 있게 해드리고, 한 번 더 아직 내려놓지 못한 무거운 짐을 내려놓게 해드리는 것.

물론 기적이 있을 수 있다는 희망을 놓지 않게 해드림도 필요할 때가 있다.

환자 임종 후 빈소에 마지막 인사를 드리러 가면 보호자들이 이야기한다.

우리 어머님, 우리 아버님 편안하게 돌아가실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지난 주말, 딸래미와 마더 테레사에 대한 책을 보던 중 한 장면을 보고 가슴이 뭉클해졌다. “죽어 가는 사람이라고 해도 길에서 죽게 놔둘 순 없지요.” 테레사 수녀는 이렇게 죽어 가는 사람들을 보살피며,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이미 대학병원에서는 더 이상 해드릴 게 없으니 모시고 오는 곳, 요양병원.

모든 이의 삶이 존엄하듯, 모든 이의 죽음도 존엄해야 하기때문에 우리는 오늘도 그 일을 위해 묵묵히 최선을 다할 뿐이다.

세상은 모를지라도, 우리가 케어한 환자와 가족은 그 진심을 알기 때문에.

아버지 우리 병원에 계시는 동안 “아들 잘 둬서 이렇게 남은 시간 편안하게 지내고 있다”는 아버지의 진심 어린 칭찬 듣게 해줘서 고맙다는 친구의 말에 심심한 위로를 건넨다.

갑자기 이런 문구가 생각나는 하루다.

환자들은 흔히 당신이 한 말을 잊어버리곤 한다.

사람들은 흔히 당신이 한 일을 잊어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당신에게 받은 느낌을 결코 잊어버리는 일은 없다.

- 마야 엔젤루 (Maya Angel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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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영 2021-12-27 21:44:41
가슴이 먹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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