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재 콩트, 살다보면…] 세끼를 한 번에 먹네요
[정덕재 콩트, 살다보면…] 세끼를 한 번에 먹네요
  • 정덕재 시인
  • 승인 2021.12.20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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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굿모닝충청 정덕재 시인] 하늘은 구름이 가득 덮여 있어 금방이라도 눈을 뿌릴 기세였다. 건물 밖으로 나오니 찬바람이 불어왔다. 풀어 놓았던 외투 단추를 잠그며 점심 메뉴를 몇 가지 말했다.

“따뜻한 우동이나 짬뽕, 아니면 동태탕 어때?”

“난 당근 동태탕이지.”

닉네임이 동태탕인 후배는 좌고우면하지 않고 자신이 즐기는 동태탕을 골랐다.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동태탕을 먹는다는 후배는 겨울에 그 횟수가 부쩍 늘어난다. 그는 삼시 세끼 동태탕을 먹어도 전혀 물리지 않을 자세를 갖고 있다. 어떤 날은 동태찜, 어떤 날은 동태탕에 사리 추가, 어떤 날은 동태 내장탕, 이 동태탕 사랑은 저녁에 노가리나 먹태 안주로 이어지기도 한다.

“저는 외투에 냄새 배는 게 싫은데, 따뜻한 우동 어때요?”

신입의 말에 동태탕 후배가 레이저가 나올 것 같은 눈빛으로 쳐다봤다.

“그렇게 강요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도 갑질이지.”

나는 후배의 어깨를 치며 웃어주었고 신입은 눈빛을 회피하지 않고 또박또박 말했다.

“맞아요. 요즘 같은 시대에 점심을 강요하면 안 되죠.”

“참 세상 좋아졌다. 우리 때는 과장님이 짜장면 하면, 아무 말 없이 짜장 먹었는데, 요즘은 식성들이 참 다채로워져서.”

동태탕 후배는 주저리주저리 옛날이야기를 쏟아냈다.

“오늘 같은 날은 따끈한 우동 좋지.”

나는 후배의 말을 끊고 신입의 의견에 힘을 실어 주었다. 개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우동집은 자리 배치가 비교적 넓어 코로나 상황에서 적당한 음식점이다. 식당 앞에 도착하자 입구에 서너 사람이 모여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그들이 문을 막고 있어 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기다렸다.

“저거 방역패스 확인하는 거 아닌가요?”

신입의 말에 우리는 일제히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음식점에서 2차 접종 여부를 확인한다는 뉴스를 듣긴 했지만, 언제부터 시행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 상태라서 서둘러 검색을 했다.

“이상하네 접속이 잘 안되네.”

손놀림이 빠른 신입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내 휴대폰은 신상이니까…”

동태탕 후배는 얼마 전 교체한 휴대폰을 자랑하며 접종증명서를 검색했다. 불과 몇 초 걸리지 않았다. 후배는 뒤를 힐끗 보며 웃음을 지었다.

“우동 세 개랑 유부초밥 시켜 놓을게요. 천천히 들어오세요.”

접종증명서를 쉽게 확인했다는 것만으로 후배의 걸음은 거만해졌다. 평소에는 사극에 등장하는 이방처럼 촐랑댔지만, 검색에 성공한 순간 영의정 걸음만큼이나 느릿느릿 위엄있는 뒷모습을 보여주며 주문을 넣었다.

나는 휴대폰에 깔린 앱을 열기 위해 여러 차례 접속을 시도했지만 열리지 않았다. 손님들의 대기하는 줄은 조금씩 길어지고 있었다. 일부는 식당 안으로 들어가고, 일부 일행은 나와 신입처럼 투덜대며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동태탕 후배가 앉아있는 테이블 위로 세 개의 우동 그릇과 유부초밥이 보였다. 후배는 얼굴에 환한 웃음을 지으며 젓가락을 들어 보인다. 먼저 먹겠다는 모습이다. 허기는 밀려왔고 접속은 더 이상 진전이 없었다.

“그냥 갈까요. 어디 테이크아웃 되는데서 사다가 회의실에서 드실까요?”

신입은 뜻밖의 제안을 했다. 고개를 돌려 식당 안을 바라보았다. 후배는 우동 면발을 경쾌하게 빨아들이고 있다. 면발 흡입 한 번, 초밥 한 번, 규칙적으로 젓가락을 움직였다.

“그럼 저 친구는…”

나는 손가락으로는 후배를 가리켰고 얼굴은 신입을 바라보았다.

“어쩔 수 없죠. 앱이 열리지 않으니 식당 안에서는 먹을 수 없고. 그냥 혼자 다 드시고 오라고 말씀 한번 해보세요.”

신입은 나에게 난생 처음으로 경험하는 책임감을 심어 주었다.

“뭐라고요. 우동 세 그릇을 어떻게 다 먹어요. 제가 돼지도 아니고. 참 어이가 없네.”

동태탕 후배에게 신입의 말을 전하자, 예상대로 난감한 반응을 보였다. 내가 그 자리에 혼자 앉아 있어도 같은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그럼 어쩌겠냐. 우리도 먹고 살아야지.”

후배의 눈과 마주치지 않으려 허공에 말을 뱉자마자 빛의 속도로 뛰쳐나왔다. 신입은 고개를 돌려 식당 안 풍경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고, 나는 차마 고개를 돌리지 못했다.

“거의 울기 직전의 표정입니다. 평생 기억에 남을 식사 장면인 것 같은데요. 동태탕 선배님은 코로나 때문에 세끼를 한 번에 먹네요.”

정덕재 시인
정덕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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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재(시인)
199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으로 등단. 시집 ‘비데의 꿈은 분수다’, ‘새벽안개를 파는 편의점’, ‘나는 고딩아빠다’, ‘간밤에 나는 악인이었는지 모른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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