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일기] 내게 힘이 되는 소중한 울타리 ‘가족’
[다문화 일기] 내게 힘이 되는 소중한 울타리 ‘가족’
  • 예은경
  • 승인 2015.03.27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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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예은경 베트남] 안녕하세요? 저는 베트남 따이닌에서 온 예은경이라고 합니다. 2005년 7월에 꿈에서만 그리던 한국에 시집오게 되었습니다. 신혼은 금산 시댁에서 시작했습니다. 시부모님께서 3년 동안 시부모님과 같이 살아야 한국문화를 배울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누구나 힘들겠지만, 저도 무척 힘이 들었습니다. 낯선 환경, 음식, 언어, 문화의 차이는 한국에 온 걸 후회하게 만들었고, 매일 밤 고향 생각만하다가 울고 잠이 들었습니다.

시댁은 시골이라서 힘들게 밭일과 논일을 많이 해서 그런지 다리가 아프고 허리를 구부리고 다니시는 70대 중반 시어머님이 저를 위해 음식을 하시며 “먹었니? 이것 좀 먹어 봐라! 맛은 어떠니?” 물어보실 때마다 고향에 저의 엄마가 생각나서 눈물을 쏟고 울었습니다.

저의 시아버지는 항상 밖에 나가셔서 일만 합니다. 밥을 드실 때쯤 저녁에 들어오십니다. 목소리도 커서 쩌렁쩌렁 하십니다. 저는 한국말을 잘 몰라서 어머니가 아버님과 대화할 때  싸우시는 줄 알고 무서워서 전 지금까지도 혼날 까봐 아버님이 오시면 피하기 일쑤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지만 그때는 왜 그렇게 무서웠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6개월이 흐른 어느 날이었어요. 저녁식사를 하신 후 안방에 계신 시아버지가 저를 부르시길래 겁이 난 얼굴로 시아버지에게 다가갔습니다. 돈 봉투를 주시는 겁니다. 아버님이 하시는 말씀이 “너희 집 형편이 안 좋다면서. 이거 부모님에게 보내드리고 새집을 지어드려라. 부모님이 편하게 계셔야 너도 걱정 없이 여기서 편하게 행복하게 살지. 그래야 나와 시어머니도 행복 하단다” 하고 말씀하셨어요.

당황해서 두근거리던 마음은 없어지고 눈물을 흘리며 시아버지에게 “고맙습니다” 인사만 계속 했습니다. 호랑이같이 보였던 시아버지를 피하던 제 자신이 바보 같고 그 동안 너무 잘못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시부모님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고마운 마음으로 저도 한국말도 배우고 요리도 배우고 농사철에는 부모님과 농사일도 하며 열심히 살았습니다. 시부모님이 일하고 늦게 오실 때는 제가 된장국도 끊이고 집에 돌아오신 부모님의 어깨도 주물러 주면서 이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무뚝뚝한 제 남편은 작은 회사를 다닙니다. 결혼하기 전에 베트남에서 한국 드라마를 봤을 때는 남자 주인공들이 너무 자상하고 로맨틱한 매력과 가족에 대한 강한 책임감에 푹 빠져서 한국 남자와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힘들게 남편과 결혼해서 낯선 한국 땅에서 오직 한 남자의 로맨틱한 사랑과 결혼 생활을 기대했었는데 그런 생각과는 너무 차이가 많았고 환상이었습니다. 로맨틱한 남편은 보이질 않았습니다. 남편은 매일 7시 출근해서 밤 9시에 돌아옵니다. 집에 오면 말없이 바로 잠을 잡니다. 물론 말은 안 통하지만 조금이라도 대화하면서 한국말도 가르쳐 주면 좋잖아요? 그런데 그런 것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온지 2~3주가 되었을 때 처음 남편이 대전 시내를 구경시켜 주었습니다. 우리의 걷는 모습은 부부 같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항상 혼자 앞에서 걸어갑니다. 저는 길을 몰라 남편을 따라 가느라 정신없이 뛰어 다녔습니다. 남편과 시내구경을 나온 건지 운동을 하려 나온 건지 알 수가 없었어요.

하여튼 데리고 나와서 고맙다고 해서 집에 가는 길에 베트남식으로 애정 표현을 남편얼굴에 살짝 했더니 갑자기 남편이 운전하다가 길 가운데에서 급히 자동차의 브레이크를 밟은 채 크게 화를 냈습니다. 베트남에서 남자 얼굴을 살짝 때리는 것은 애정표현이거든요. 남편이 도대체 왜 제게 그렇게 화를 냈는지도 모르고 울기만 했습니다. 그때는 베트남으로 갈 수 있었으면 바로 가고 싶었던 심정이었어요.

그것뿐만 아니라 저는 출산할 때 혼자 11시간 동안 고통을 겪으면서 홀로 아기를 낳았습니다. 여기까지는 아마 많은 사람들이 아마도 남편이 일 때문에 바빠서 곁에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시겠지요? 하지만 결코 그게 아니었어요. 옆방에서 쿨쿨 잠을 자고 있었답니다. 과거의 일이지만 그때는 많이 서운 했습니다. 타향에서는 나를 정말 걱정해주는 사람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한국에 시집 온 것을 많이 후회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곧 어쩔 수가 없음을 깨닫고 내가 선택한 길이 힘들어도 돌아가고 싶지 않았으며 그냥 잘 참고 좋은 생각만하면서 열심히 살다보면 좋은 일도 생긴다는 말을 믿고서 살아왔습니다. 

그렇게 살아오던 중 바로 재작년이었어요. 2013년 6월에 제가 갑자기 머리가 많이 아파 을지대학병원 응급실로 갔더니 진단결과 뇌동맥류와 관련된 심각한 질병이란 갑작스럽고도 매우 불행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병원 측에서는 빨리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으며, 수술하기 전 동의서를 작성할 때 의사의 의견은 수술을 하지 않거나 수술을 실시하는 도중에도 사망할 수도 있다는 의견에 남편의 눈에서 흐르던 눈물이 보였습니다.

제 남편은 어렵게 수술을 하는 것에 동의했습니다. 무려 4시간동안 수술을 했던 결과 다행히 수술은 잘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중환자실에서 그렇게 무뚝뚝하고 말이 없던 남편이 눈물까지 흘리고 8년 동안 남편한테 한 번도 못 듣던 소리를 들었습니다.

“수고 했어. 당신이 없으면 나는  못살아. 빨리 나아야 해. 사랑해.”
그때는 비록 수술을 한 직후라서 몸은 힘들었지만 정말 따뜻한 남편의 말을 들을 수 있어서 제 병이 다 나은 것 같았습니다. 병원에 한 달 정도 입원하는 동안, 남편은 밥도 먹여주고 화장실에 갈 때는 내손을 꼭 잡고 같이 다녔습니다. 지금도 남편은 제 몸이 걱정되어 다른 말은 안 해도 항상 몸 건강을 지키면서 일하라고 하는 말을 자주 해줍니다.

살면서 서운한 경우가 있어도 그때 일을 항상 떠올립니다. 너무 자상한 남편의 그때의 마음을 다시 생각하면서 서운해도 금새 잊어버립니다.

부부생활에 보람이라는 건 자식이겠지요! 제게도 예쁜 딸이 하나 있어요. 남편과 저를 반씩 닮은 우리 예쁜 딸은 이제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답니다. 아직은 제 도움을 많이 필요로 하는 나이지만, 어떤 때 보면 저보다 어른스러운 때도 있습니다.

딸아이가 어느 날 학교에 갔다 와서 제게 이렇게 말했어요. 학교에서 친구들이 “너희 엄마 혹시 베트남 사람이니?” 하면서 놀려대기에 “그래 맞아. 너희 엄마는 베트남 말은 못하지? 우리 엄마는 잘해” 하면서 평소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와 함께 대화 하려고 저에게 배운 베트남말로 친구들한테 이야기를 했답니다.

이 말을 듣고 미안한 마음에 눈물이 핑~ 돌아서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른 한국 엄마들처럼 잘해주지도 못하고 더 가르쳐주지도 못하고 힘들게 키워왔는데 지금까지 아프지 않고 밝게 잘 자란 딸아이를 보면 정말 사랑스럽고 대견 합니다.

저는 오늘 한 가지만 여러분께 전달하고 싶습니다. 한국에서 살다 보니 서로 문화적인 차이점도 많이 느끼고 힘들지만 타향에서 살면서 내가 정말 행복하기 위해선 그 환경에 맞춰야만 행복해 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감사합니다.   
※ ‘다문화 일기’ 시리즈는 대전 다문화가족사랑회(회장 박옥진, 042-825-7233)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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