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 162] 희망을 담은 향나무...천안시 수신면 해정리 향나무
[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 162] 희망을 담은 향나무...천안시 수신면 해정리 향나무
  • 채원상 기자
  • 승인 2022.02.22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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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글 백인환 기자, 사진 채원상 기자] 천안시 해정리 향나무의 줄기는 하늘보다는 땅으로 기어가는 모습이다.

옆으로 자라는 눈향나무는 고산지대의 거친 땅과 변덕스러운 바람을 이겨내려고 스스로 선택한 고육지책이라면 해정리 향나무는 무슨 이유일까?

위에서 볼 때는 잘 몰랐었는데, 아래로 이동해서 나무를 보니 그 이유가 드러났다.

햇빛을 가리는 그늘막처럼 향나무 두 그루는 우물을 가려주려고 줄기가 아래로 향했던 것이다.

향나무는 약간의 경사진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주민들이 음용수로 사용하지 않고 외부의 오염물질을 막는 차원에서 우물은 뚜껑으로 덮여 있다.

상수도 시설이 보급된 지금, 우물은 주변 논에 물을 대는 수준에서 사용할 듯싶다.

그러나 상수도가 없던 시절, 깨끗한 물만으로도 마을 주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우물은 생명줄이었다.

사람이 모인 곳을 ‘시정(市井)’이라 한다.

여덟 집이 각기 농사를 짓고 우물이 있는 곳은 공동 경작해서 세금을 냈던 시절에 마을은 우물을 중심에 두고 형성됐다.

정월 용날에 샘제를 지내고, 칠석(음력 7월 7일)과 백중(음력 7월 15일) 때는 우물을 청소하고 제를 올려 부정을 막을 정도로 우리의 세시풍습에도 우물은 중요했다.

그래서 마을의 중심을 지키려면 특별한 나무가 필요했다. 공간을 상징하면서 인간의 동선과 행태에 적당한 나무라야 했을 것이다.

물 정화 기술이 없던 시절에 외부에서 유래하는 오염물질이 들어가지 않게 하려면 늘 푸른 나무여야 했고, 잎이 무성하거나 빽빽하게 나야 했다.

이런 점에서 향나무는 녹조가 끼지 않도록 햇빛을 막아주면서도 먼지까지 막아줄 수 있는 나무다.

더욱이 더러운 것을 정화시켜주는 나무였으니 우물가에 심기에 향나무만 한 나무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우물은 기본적으로 커뮤니티 공간이다.

매일 물을 길어 나르는 사람들의 정보가 모이고 유통되는 현장이다.

거짓과 진실이 섞여 오해와 소문이 넘쳐흐르면서도 울분과 감동으로 마을 사람들의 공감과 연대의식을 키우는 장소였다.

특히 여성들에게는 대가족 위계 사회에서 갑갑하고 부당한 현실을 떠들고 서로 공감하는 장소로 우물만한 곳은 없었다.

그런 점에서 우물 밖으로 새나가는 험담을 막아주고 시야를 가려줄 수 있는 나무로 향나무가 제격이었다.

향나무는 재앙을 막고 액을 극복하는 벽사(辟邪)의 능력도 갖추었다.

더러운 것을 맑게 하는 청정(淸靜)의 힘으로 나쁜 기운을 없앤다는 믿음의 나무였다.

전염병과 외적의 침입, 자연재해가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었던 시절에 이 모든 재앙으로부터 벗어나 건강하게 살려면 신비로운 힘이 필요했다.

백성부터 임금까지 종교의례에 어김없이 향을 피우는 것도 향나무에 희망을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더 나은 세상을 바라는 염원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우리는 과학기술이 발달한 현대에도 전염병에 시달리고 있고, 전쟁의 위험은 더욱 높아졌고, 여전히 무속의 힘이 기승을 부리는 시대에 살고 있다.

곤궁했지만 삶을 위로받고 희망을 잃지 않았던 선조들의 삶처럼 향나무에 희망을 담아 미래를 기약하는 시간을 가져볼 때이다.

천안시 수산면 해정리 527-1 : 향나무 2본 422년(2022년 기준)

[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는 충청남도 지원을 받아 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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