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 164] 금산의 항일 역사를 기억하는 사관(史官), 느티나무...금산군 추정리 느티나무
[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 164] 금산의 항일 역사를 기억하는 사관(史官), 느티나무...금산군 추정리 느티나무
  • 채원상 기자
  • 승인 2022.02.28 11: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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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글 백인환 기자, 사진 채원상 기자] “생사(生死)의 명(命)은 재천(在天)이라, 다만 의(義)를 좇아 순(殉)할 뿐이다”

“오늘은 한 번 죽음이 있을 뿐이니 하나의 의(義)자에 부끄러움이 없도록 하라”

금산군 ‘칠백의총’전시실에 새겨진 문구다.

수많은 전쟁과 외세 침략에 맞선 우리 선조들은 자신들의 목숨을 하늘에 맡긴 채, 기꺼이 의로운 죽음을 선택했다.

예부터 금산은 충청남북과 인접하고 영남과 호남을 잇는 전략적 요충지이다. 특히 곡창지대인 전라도로 들어가는 관문 앞의 금산은 전쟁을 피할 수 없었다.

1592년 4월 13일 조선을 침략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도 명나라까지 점령하기 위해선 전라도가 꼭 필요했다.

더구나 전쟁이 시작되고 파죽지세로 한양으로 향하던 일본군은 전쟁이 장기화하는 조짐이 보이자 쌀을 확보하고자 금산에 정예군을 보냈다.

임진년의 음력 6월 말부터 8월 말까지, 빼앗으려는 일본군과 지키려는 조선군의 2개월간의 치열한 전투는 이렇게 시작됐다.

일본군 1만5천여 명은 금산성을 점령하고 전주로 진격했다.

그러나 가는 길목에 험난한 웅치와 이치 고개를 넘어야 했는데, 조선군과 의병의 저항으로 일본군의 전라도 진입은 불가능했다.

금산성으로 퇴각한 일본군은 여러 차례 의병들의 공격에 버티다가 전쟁이 조선에 유리하게 돌아가자 9월에 경상도로 철수하면서 끝내 전라도는 지켜졌다.

유성룡은 금산전투를 “일본군의 용맹있는 자는 웅령싸움(웅치전투)에서 많이 죽었으므로 기운이 이미 다 없어졌다”라고 ‘징비록’에 기록하면서 “전라도 한 도 만이라도 보전된 것은 이 싸움으로 인하였다”라고 높이 평가했다.

‘선조수정실록’도 “왜적들이 조선의 3대 전투를 일컬을 때 이치의 전투를 첫째로 쳤다”라며 금산전투가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기록하고 있다.

여러 금산전투 중에서 금산성을 공격하던 의병장 조헌, 승병장 영규, 해남현감 변응정 등은 앞서 순절한 고경명과 함께 금산성을 공격하지 못한 약속을 지키려고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일본군을 무찌르다가 이를 모를 의병들과 함께 모두 전사했다.

일본군과의 처절한 싸움은 임진왜란 전에도 있었다.

조선초기였던 1402년(태종 2년) 임오년, 정규군은 아니지만 노략질을 일삼던 왜구들이 민간의 재물을 약탈하고 아녀자를 농락하여 민생이 도탄에 빠지자 정인조 장군은 의병을 모아 금산군 추부면 일대에서 왜구를 물리쳤다.

정인조 장군은 조선을 세운 이성계와 함께 고려말부터 왜구를 물리쳤던 장군이었다.

특히 고려 우왕 때, 500척의 대규모 군단을 이끌고 지금의 충남 서천군 장항 일대로 쳐들어 온 일본장군 아지발도(阿只抜都: 아키바츠)라는 소년 왜장을 물리쳤던 용맹한 장수였으나 끝내 왜구와의 금산 전투에서 순절했다.

의로운 장군에게 임금은 ‘충렬(忠烈)’이라는 시호를 내렸고, 금산의 유림은 정장군의 의로움을 추모하기 위해 장군의 위패를 모신 사당을 짓고자 애를 쓰면서 1989년에 충렬사가 새롭게 조성됐다.

충렬사가 조성되기 전까지는 사당 옆에 자리 잡은 425살의 느티나무가 정장군을 추모하고 기억하고 있었다.

사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일제는 금산의 항일의병 유적지를 폭파시키거나 헐어버리면서 모두 훼손했다.

다행히 항일의병 역사를 가슴에 품고 있던 주민들은 일제의 눈을 피해 땅속에 항일유적을 묻어두어, 해방 이후에는 유적을 복원할 수 있었다.

의병 역사는 노거수를 통해 여러 이야기로 입으로 전해내려 오면서 주민들의 기억 속에 살아남을 수 있도록 했다.

금산 추부면 추정리 느티나무도 충렬사 정장군의 하마비와 일본군의 이야기 한토막이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에 한 일본군이 말을 타고 정장군 돌비석(하마비, 下馬碑) 앞을 지나가고 있었어. 그 비석 앞으로는 말에서 내려 인사하고 가야 하는데, 그 놈은 그냥 지나쳤지 뭐야! 그러곤 바로 말에서 떨어졌지!”하는 어르신의 이야기에는 정장군을 여전히 존경하고 함께 추모하려는 분위기였다.

역사는 기록도 있지만, 이렇게 보호수로 이어져 오는 이야기도 또 하나의 사관일 듯싶다.

금산군 추부면 추정리 335-1 : 느티나무 1본 425년(2022년 기준)

[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는 충청남도 지원을 받아 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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