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충청 글 백인환 기자, 사진 채원상 기자] “팽나무와 둥구나무(느티나무) 잎을 보고 한 해 농사를 점친다는 말은 맞습니다. 어느 동네는 잎이 고르게 펴야 풍년이라고 하고, 어떤 마을은 위에서 아래로 잎이 나야 풍년이라고 하더군요. 반면에 보호수 잎이 제대로 나지 않을 때는 대부분 흉년이라고 예상하는 것 같습니다”
보호수 이야기에 관심 있는 금산의 한 귀농인이 마을 노인에게 전해들은 이야기를 나름 정리해서 한 분석이다.
“슈퍼컴퓨터가 분석해도 날씨 예보가 여전히 틀리는 세상인데, 옛날에는 어떻겠어요? 정초부터 보호수 앞에서 기도하고, 모내기 전에 보호수 잎사귀 보면서 점치는 마음이 이해돼요”
과학이 지배하는 세상에도 날씨 변화에 민감한 농사일을 하다 보니 하루에도 수차례 하늘을 본다는 그는 옛날 농사일에 날씨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특히 물이 부족해서 모내기를 할 수 없거나 모가 말라버리는 가뭄이라도 발생하면 농부들은 마음이 타들어가는 거죠. 그러면 비가 올 때까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인디언 기우제’를 할 수 밖에 없을 겁니다”
귀농인은 겨울철 가뭄도 무섭지만 간신히 보릿고개를 넘겨 목숨이 간당간당할 때 물이 없어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상황에는 인간이 선택할 수단이 하늘밖에 없을 거라고 했다.
“금산에 용담댐이 생긴 것이 2001년 정도이고, 논 곳곳에 물이 들어오도록 수로정비를 한 것도 얼마 안됐으니, 사실 20세기 중후반까지 기우제를 했을 겁니다”라며 귀농인은 금산에서 한 해 농사를 점치고 기우제를 지내는 일은 일상이었을 것이라 추측했다.
“실제 부리면 평촌리는 금산의 대표적인 기우제 행사인 ‘농바우끄시기’를 보여주는 전수관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매우 특별한 기우제라고 합니다”
농사를 천하의 근본으로 삼은 우리 민족에게 ‘물의 이로움(水利)’을 극대화하고 가뭄이라는 불가항력의 기상이변에 대응하려는 노력은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됐다고 한다.
특히 조선시대는 나라가 직접 관장하는 ‘국행기우제(國行祈雨祭)’를 경국대전에 표기해서 법제화했을 정도로 기우제는 국가적으로도 장려했다고 한다.
그리고 민간도 기우풍속이 발전되어 왔는데, 금산은 우리나라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독특한 기우제의 모습을 갖춘 ‘농바우끄시기’가 평촌리에서 전수되고 있는 것이다.
금산군지는 ‘농바우끄시기’를 남성들을 배제하고 여성들이 주관하는 행사로 주술적 장치와 독특한 상징성을 가지며, 여느 기우제와 견주어 주술적 장치가 풍부한 기우제로 평가했다.
“금강변에 농(籠)처럼 생긴 바위가 위태롭게 절벽에 걸려 있는데, 바위가 떨어지면 하늘이 놀래서 비를 내려준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그래서 가뭄이 생기면 이 바위를 동아줄로 꼬아서 부녀자들이 줄다리기를 하듯 끌어내리는 ‘농바우끄시기’를 했다고 합니다”
귀농인은 금산의 독특한 기우제에 숨은 연유가 매우 흥미롭다고 말을 이어 갔다.
“바위가 떨어지면 당연히 엄청난 굉음과 진동이 생길 거고 하늘이 놀래서 비를 내려준다는 전설은 나름대로 논리적이라 할 수 있지만, 여성들이 하늘에 대고 ‘내가 바위를 끌어내릴 거야’하는 노골적인 위협 행위가 너무 재밌지 않나요?”라며 귀농인은 코로나에서 해방된다면 농바우끄시기 행사를 직접 관람할 것이라고 웃으며 얘기했다.
“사실 제가 이곳으로 귀농한 것은 강변의 깎아지른 절벽은 죄다 ‘적벽(赤壁)’이라며 너무 뻔한 스토리를 갖고 있지만, 부리면의 적벽과 농바우끄시기 기우제의 이야기에 빠져서 이곳으로 이사 오게 됐습니다”고 평촌리를 귀농지로 선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아시겠지만, 금산은 임진년의 일본군과의 처절한 싸움 때문에 장군설화가 많습니다. 마침 저 농바위도 ‘장수와 갑옷’전설과 맞물려 있어서 다양한 설화가 생겼죠. 마침 기우제와도 연관됐고요. 모두 동네 어르신들이 말씀해주신 이야기입니다. 제가 팽나무와 둥구나무에 자주 찾아오는 이유이죠”
이야기가 풍부한 마을이 좋다고 귀농한 그에게 기자도 평촌리가 다시 보였다.
사이좋게 300년을 버티고 마을 이야기를 전하는 팽나무와 둥구나무 아래에서 가지를 올려 봤다. 그리고 두 그루의 잎이 언제 필지 무척 궁금해졌다.
금산군 부리면 평촌리 17-3 : 느티나무와 팽나무 2본 290년(2022년 기준)
[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는 충청남도 지원을 받아 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