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크가 초콜릿을 넣고 쏴대면 얼마나 좋을까?” 
“탱크가 초콜릿을 넣고 쏴대면 얼마나 좋을까?” 
《왕식이 길배 금은끝순이》 지역 원로 소설가 김수남이 펴낸 동화집 
1950년대 대전천 주변 풍경과 ‘엄니’의 기억을 소년의 시선으로 담아내 
책의 아름다운 그림은 월트디즈니 애니메이션 아티스트 조창례의 작품
  • 김선미 편집위원
  • 승인 2022.05.05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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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남 글, 조창례 그림 '왕식이 길배 금은끝순이'
김수남 글, 조창례 그림 '왕식이 길배 금은끝순이'

[굿모닝충청 김선미 편집위원]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이 있는 5월 가정의 달에 우리들의 지난 시절을 흑백사진처럼 보여주는 따뜻하고 가슴 뭉클한 동화 한 편이 나왔다. 

꿈에서라도 쇠고깃국에 하얀 쌀로 지은 고봉밥을 배불리 먹는 게 소원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뭐든지’로 배를 채우고 싶었던’, 지지리도 가난했으나 사람 사이에 흐르는 온기와 정으로 가난의 강을 함께 건너던 소년들의 이야기를 담은 동화집이다. 

지지리도 가난했으나 사람 사이의 온기와 정이 넘치던 시절의 이야기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여전히 젊은 감각으로 문학에 대한 열정을 쏟아내고 있는, 대전에서 활동하고 있는 소설가 김수남 선생. 이번에는 소설집이 아니라 동화집을 선보였다. 동화집  《왕식이 길배 금은끝순이》 <이든북 펴냄>은 6‧25전쟁 직후의 대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전후 50년대의 도시 풍경과 생활상을 소년들의 시선으로 손에 잡힐 듯 세세하게 그려냈다.

대전천 중교다리 둑방길 근처, 하꼬방이라 불리던 판잣집에서 살던 동구. 책 표제에 등장하는 왕식이와 길배는 친구이고, 금순이 은순이 끝순이 세자매를 싸잡아 부르는 금은끝순이는 친구가 아닌 것도 아닌 옆집 사는 여자애들이다. 동화는 선생의 문학세계를 관통하는 해학과 유머를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에 녹여내, 읽는 내내 웃음 다발을 안긴다. 

“하반신이 마비된 탱크가 원동 사거리에 있었다.” “탱크가 초콜릿을 넣고 쏴대면 얼마나 좋을까?” 가게에 진열된 오징어 다리 두 개가 없어지자 엄마는 야단치는 대신 “이것들아 오징어 다리 떼먹지 말어. 오징어가 목발 짚구 다니게 생겼어.”라고 할 뿐이다. 화가 날법한데 해학과 유머로 넘기는 ‘엄니’의 여유와 장난기에 웃음이 빵 터진다. 

“이것들아 오징어 다리 떼먹지 말어. 오징어가 목발 짚구 다니게 생겼어.”

“낮에는 빨래터, 밤이 되면 낮에 함께 빨래하던 엄니들의 목욕동무가 된다.” 엄니들의 공중목욕탕이 되는 대전천 풍경. 엉성한 나무판자로 여탕 남탕을 막은 공중목욕탕. 하필 입구에서 금은끝순이를 만나 망측스러워했던 기억을 풀어내는 입담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아련하고 풋풋한 추억을 따스하게 담아낸 빛바랜 사진처럼 다가오는 동화집은 작가의 체험이 담긴 성장소설이다. 한편으로는 너무도 일찍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향한 팔순 아들의 사모곡이자 헌사이기도 하다. 

“재밌는 동화작가가 되고 싶다”는 아들에게 동화책 한 권을 디밀고 너무 일찍 세상을 놓아버리고 훌쩍 사라진 엄니. “네가 소년이었던 걸 잊지 말어.”라던 엄니의 체취와 흔적이 동무들 이야기와 함께 책 갈피갈피마다 배어 있다. 어린이날에 이어 곧 어버이날이다. 어린이는 물론 어른들이 읽으면 더 좋을 듯하다.

스무 살에 ‘조부사망급래(祖父死亡急來)로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소설가 김수남 선생
소설가 김수남 선생

글보(자호) 김수남은 1944년 일본에서 태어나 아기 때 대전으로 와 대전중·고등학교와 충남대를 다닌 대전 토박이다. 1966년, 대학 재학 중인 약관 스무살에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조부사망급래(祖父死亡急來)가 당선되면서 작가의 길을 걸었다. 

소설가가 드물었던 지역문단에서 대전을 대표하는 작가로 왕성한 활동을 해오던 그는 1980년대 말 당시 지역 일간지에 게재하던 연재소설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중단되며 오랜 시간 펜을 놓았다. 2010년대에 들어서며 지역의 오래된 ‘호서문학’을 통해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한다. 지난해는 30여년 만에 소설집 《그자들은 쇤네를 똥개라 불렀습죠》를 냈다. 이외에 《유아라 보이》 《달바라기》 《개똥지빠귀가 우는 것은 슬퍼서가 아니다》 《취국(醉國)》 등 소설집과 수필집 등이 있다. 

동화집은 그림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1950년대의 풍경과 배고픈 소년들의 영혼을 어루만지는 아름답고 따뜻한 그림이 함께해 더욱 눈길을 끈다.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월트디즈니 애니메이션 픽쳐스 아티스트 조창례의 그림들이다. ‘라이온킹’, ‘알라딘’, ‘인어공주’, ‘뮬란’의 주인공들이 그녀의 손끝에서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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