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민기자 눈] 가야산 인경재와 인경사(印經寺)
    [시민기자 눈] 가야산 인경재와 인경사(印經寺)
    • 이기웅
    • 승인 2015.04.29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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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기웅 예산 시민기자

    [굿모닝충청 예산 이기웅 시민기자] 조선시대 후기 내포가야산에서 목판인쇄(인경印經) 문화가 피어났다는 것을 아는 이는 그리 많을 것 같지 않다..

    알고 보면 내포가야산은 경주의 남산 보다 더 많은 수의 사찰이 있었으며 한 때 불교문화가 꽃을 피웠던 곳이다.

    17세기 초에 폐사한 것으로 보여지는 백제시대 가람인 가야산의 가야사 그곳에서는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등 다양한 불경이 인쇄됐던 시기가 있었다.

    가야사에서 인경을 하기 시작한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남아 있는 문헌상으로 숙종과 영조시대 활발한 인경작업이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1762~1768년에 가야사에서 많은 수의 불경이 인쇄되는데 우리나라의 인경문화와 가야산의 인경사에서 있었던 인경에 대해 추적해 본다.

    마을에서는 오래전부터 인경과 관련이 있는 인경재(빈발 옆의 계곡으로 10여 곳의 암자)의 정상부분에 인경사가 있어 그곳에서 다양한 불경이 인쇄되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묘범연화경을 인쇄한 절집이 가야사로 기록 되지만 가야사는 1753년 이전에 폐사됐고 법통을 이어가던 인경사는 가야사의 내암으로 가야사로 모칭되었던 것으로 보여지고 인경 작업은 가야사가 아닌 인경사에서 인쇄작업이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예헌 이철환이 여행한 1753년의 가야사는 이미 사라지고 백제시대 가람으로 전설과 황량한 절터만 남아 가야사터 그곳은 허전함만 가득하다고 기록한다.

    그가 가야산을 수 차례 여행하며 남긴 ‘상산삼매’에서 가야사는 이미 폐사했으며 가야사금탑이 전화(戰火)에 상처를 입었지만 가야사의 법통이 끊기고 주변에 있던 인암과 남전의 스님들이 조잡하게 수리했다고 기록한다. 가야사가 있던 입구에 거대한 누를 지었으나 모두 무너졌으며 남전과 묘암사 등 어렵게 가야사의 법통을 이어가고 있다고 기록한다.

    당시에 이철환의 기록은 가야사지 주변에 6개정도의 사찰이 남아 있으며 가야사지에 흩어진 석조유물을 보며 절이 그리 곱지 않게 파괴되었음을 알 수 있다.

    가야사가 있었던 위치와 구조는 현재의 남연군묘 옆과 앞쪽으로 깊은 계곡이 아닌 평지에 있는 가람이다. 즉, 왜구나 외부의 침입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 있는 것이다.

    한지 생산은 가야사 옆의 탁석천에서 생산하고 중요한 인경작업은 가야산의 정산부근에 있는 가야사에 속해 있던 인경사에서 왜구와 외부의 침입을 피해서 작업이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인경사의 위치는 바다와 접해 있는 해미지역은 물론이고 내포지역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높은 위치에 있고 높은 산속이지만 내포와 해미, 당진지역으로 도피하기 최적의 장소에 위치해 있다.

    실재 인경재의 인경사 위치는 가파른 능선을 따라서 올라야 하고 험한 암벽 옆에 위치하고 있다,

    옆에는 가야산에서 안흥정이 있는 해미지역으로 최단거리로 도달할 수 있는 하나의 능선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가야산에서 가장 빠르게 바닷길로 연결되는 빈발과 용무골을 중심으로 많은 절집이 있었는데 용연사와 또는 인경사가 인쇄를 담당한 그 중심 사찰로 보여진다.

    가야사에서 인경이 가능했던 조건은 많다.

    우선 17세기 이전까지는 가야사는 수덕사를 말사로 둘 정도의 사세(寺勢)를 가진 절이었고 내포지역의 정치와 그 시대 문화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조선 후기 불교는 유교세력의 핍박 속에 겨우 명맥만을 유지한 모습이고 여러 면에서 핍박을 받는다.

    절에서 스님들이 가장 힘들었던 것이 종이제작에 과도한 부역은 절의 황폐화에 일조를 했다고 한다. 조선 후기에는 이런 부역에 견디지 못하고 중들이 불 지르거나 도망감으로써 황폐화된 절들이 많았다고 하며 가야사의 흥망성쇠와 관련도 있을 수 있겠다고 추측한다.

    또 가야산에는 한지의 원재료인 닥나무가 자생하여 한지생산에 유리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인경과 종이와 관련해서 기록에는 가야산의 가야구곡중 가야사와 접해 있는 냇가에 탁석천이라는 넓다란 바위가 있는데 그곳에서 스님들이 동원되어 한지를 생산했다고 전해진다.

    탁석천은 가야사와 대가람 터로 불리는 묘암사,남전의 중심에 있으며 스님들이 종이를 생산했다는 구전이 있다.

    아직도 그곳에는 닥나무가 자생하고 있어 전설과 같은 이야기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하겠다.

    종이 생산에 필요한 풍부한 물과 가야산의 수목을 이용한 땔감 주변에 한지의 원료인 닥종이나무가 있어 가야산에서의 한지 생산과 인경에 대한 전설과 같은 구전을 뒷받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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