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 185] 느티나무 그늘에서 호사를 누리다....서천군 마산면 느티나무
[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 185] 느티나무 그늘에서 호사를 누리다....서천군 마산면 느티나무
  • 채원상 기자
  • 승인 2022.08.17 12: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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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글 백인환 작가, 사진 채원상 기자] 서천군 마산면 관포리의 느티나무는 마을 안으로 들어가야 만날 수 있다.

옹기종기 모인 집 사이를 지나 만난 관포리 느티나무는 한 그루이지만, 산비탈에 위치한 모양새가 하나의 숲이었다.

바쁜 여름 농사철에 혹시나 도로에서 차가 마주할까 봐 우물가에 주차하고 걸어온 좁은 길은 짧지만, 그새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그래도 마을의 생김새를 보면서 다다른 산비탈의 느티나무 아래는 걸어온 보람을 느낀다.

무더위를 느낄 새 없이 이내 시원한 바람에 마을 지붕과 그 너머의 논들을 훤히 볼 수 있는 그림 같은 전망이 나타난다.

어디 그뿐인가?

보호수 아래는 늘 여럿이 앉을 벤치가 대부분인데, 이곳은 평상이 떡하니 자리한다.

평상에 바로 누웠다.

앉는 것과 눕는 차이가 크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낄 수 있었다.

쏟아지는 햇살은 모두 잎으로 가려주고, 무더위를 몰아내는 바람은 끊임없이 불어오면서 온몸의 땀은 금세 식었다.

소박한 평상에서 마시는 싸구려 커피도 스타벅스의 여느 커피가 부럽지 않을 만큼 관포리 느티나무는 한낮의 야외 카페였다.

老槐偃蹇如虯龍 늙은 느티나무 규룡처럼 구불구불 뻗어 있고

綠陰滿地涵淸風 대지 가득한 푸름 속에 서늘한 바람 부네

珠箔錦幕深復深 주렴 드리운 비단 장막 그윽이 깊으니

淸晝睡味如粥濃 한낮 단잠이 진한 죽을 먹는 듯하네

一夢賭得南柯天 꿈속에서 남가군의 태수라도 되고 나면

南柯日月無中邊 남가군의 밤낮은 그저 아련하다네

枕上片時百年樂 달콤한 낮잠 속에 백 년 기쁨이 있으니

不必羽化登神仙 굳이 날개 달고 선계에 가 신선되어 무엇하리

정동주 시인이 쓴 ‘느티나무가 있는 풍경(2002년)’의 ‘하늘 마당에서 꾼 꿈’편에 소개한 조선 초기 서거정의 ‘槐陰晝枕 느티나무 그늘에서 낮잠을 자다’라는 시의 전문이다.

책에는 이 시와 함께 느티나무 아래서 낮잠에 빠진 할아버지 사진이 나온다. 느티나무 그늘에서 시원하게 식혀진 시멘트 바닥에 대자로 누운 노인의 모습이다.

관포리의 느티나무를 찾은 마을 주민의 모습도 그러하다.

소박한 평상 하나에 의지한 채 잠시 누워 하늘을 쳐다보거나 눈을 감아도 모든게 호사스럽다.

600년 전, 서거정이 읊었던 느티나무 아래의 낮잠은 지금의 모습과 다르지 않는다.

느티나무 그늘은 시공간을 초월해 여전히 매력적인 곳이다.

관포리 느티나무는 다녀온 뒤에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가을이 기다려지는 보호수다.

서천군 마산면 관포리 49-1 느티나무 1본 460년(2022년)

[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는 충청남도 지원을 받아 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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