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호의 책으로의 여행] 인간은 누구도 완벽하지 않다
[임영호의 책으로의 여행] 인간은 누구도 완벽하지 않다
  • 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 승인 2022.09.14 09: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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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혼
죽은 혼

러시아 문학이라면 의례 톨스토이(1828-1910)나 토스토엡스키(1821-1881)를 떠올립니다. 도대체 고골(1809-1852)이란 자는 누구인가? 더군다나 《죽은 혼, Mertvye Dushi》이라는 소설 제목도 법상치 않습니다. 고골의 정식 이름은 니콜라이 바실리 예비치 고골(Gogol)입니다. 

푸시킨(1799-1837)과 동시대 사람으로 톨스토이나 토스토엡스키의 선배 격에 해당됩니다. 시대를 들추는 문학의 사회성을 강조하는 사실주의 작가들이 그러하듯, 봉건사회 유물인 농노(農奴) 제도와 새로운 물결인 산업사회에서의 금전만능주의라는 사회 풍조를 풍자하고 비판하였습니다. 

니콜라이 바실리 예비치 고골
니콜라이 바실리 예비치 고골

고골은 1809년 3월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나 20살 되는 해 청운의 뜻을 품고 러시아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상경하여 활동합니다. 그는 초기에 시를 발표했지만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였고, 하급 관리 생활을 하면서 창작활동을 이어 갑니다. 

그는 러시아를 떠나 로마에 머물면서 가장 존경했던 푸시킨을 만나 조언을 받고 1836년부터 《죽은 혼》의 집필을 시작 1842년 발표하여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킵니다. 

《죽은 혼》의 혼(魂)은 Dushi를 옮긴 것으로 러시아어로 농노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결국 《죽은 혼》은 죽은 농노를 의미함과 동시에 산송장과 같은 정신적으로 죽은 자들을 의미합니다.

오로지 돈을 위해 러시아 전역을 돌아다니다
N이라는 러시아의 지방 도시의 여인숙 앞에 파벨 이바노비치 치치코프라는 신사가 사륜마차를 타고 도착합니다. 마부 셀리판과 하인 페트루시카을 거느린 그는 여관에 여장을 풀고 나서 이 지방의 지사는 누구이고, 지방의회 의장은 누구이며, 또 지방검사는 누구인지, 한마디로 이 지역의 내로라하는 고관대작들에 대하여 자세하게 알아보고, 이곳의 지주들에 대하여도 농노는 몇 명인지, 어디에 사는지, 심지어 지주의 성격은 어떠한지 꼬치꼬치 물어 파악했습니다.
 
그의 일정은 곧바로 그 지역의 유지들을 찾아 나서는 것으로 채워졌습니다. 치치코프는 지사와 경찰서장, 지방의회 의장, 지방검사를 만났고 그리고 지주들이 여는 연회에 참석하였습니다. 

그는 그들의 환심을 사는 특별한 재주를 가지고 있습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적당한 목소리로 아주 예의 바르고 겸손하게  때로는 아첨 섞인 말을 하면서 세상 돌아가는 일에도 박식한 모습을 보여주고 요긴한 정보를 주면서 그 작은 도시의 유지들의 마음을 금방 사로잡았습니다. 그들은 자기 집으로 초대까지 하였고, 이 새로운 손님에 대한 좋은 평판이 도시 전체에 퍼져 나갔습니다. 

죽은 농노를 사들이다
아무도 치치코프가 이곳에 온 이유를 정확하게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치치코프는 1주일이 지나자, 연회에서 알게 된 여러 지주들을 차례로 방문하여 '죽은 농노'를 사들이는 일을 벌입니다. 실질적으로 사망했지만 명부상 살아있는 농노들을 사들려 등기를 옮기는 이 치치코프를 도저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돈에 홀린 탐욕스러운 지주들은 죽은 농노는 공연히 인두세만 내는 쓰레기에 불과한데 이렇게 정리할 기회를 주어서 고맙다는 말까지 덧붙였으나 무엇인가 찜찜해 했습니다. 치치코프는 죽은 농노의 명부를 보면서 그들이 살아왔던 삶과 그들이 맞이했던 죽음을 상상하며 그들 하나하나에 말을 건넸습니다.

치치코프의 농노 구입 건은 곧바로 장안의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는 틀림없이 백만장자일 거라는 소문이 돌았으며, 이 지역 사람들 전체가 그를 떠받들었고, 특히 그 도시의 귀부인들로부터 총애를 받았습니다. 얼마 후 현 지사가 초대한 열린 무도회에 참석한 그는 참석한 모든 사람들의 특별한 주목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치치코프는 무도회 내내 지사의 딸인 한 소녀에게 눈길을 거두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의 태도가 모든 부인들을 실망시켰고  어떤 이는 독설을 퍼붓기까지 하였습니다. 성격이 직설적으로 무모하게 덤벼들기를 좋아하는 허풍쟁이 노즈드료프의 입에서 치치코프가 죽은 농노를 산다는 것을 폭로하자 치치코프가 지사 딸과 사랑의 도피 행각을 했다는 등 조리에 맞지 않는 뜬금없는 소문이 N읍을 들쑤셨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도둑이나 사기꾼, 위조지폐범 나아가 변장한 나폴레옹이나 몰래 파견된 새로운 총독, 나폴레옹 전쟁 때 다친 상이군인 등 모든 것을 동원하여 상상하였습니다. 이제 도시 전체가 ‘도대체 그는 누구인가?’라는 의구심과 함께 염려와 불안으로 그에게 등을 돌렸고, 결국 그는 이 도시를 떠나기로 하였습니다.

돈이 전부라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따르다 
치치코프는 출신 배경이 초라하고 모호합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도 없는 한마디로 흙수저입니다. 친구도 없고, 함께 어울릴 패거리도 없었습니다. 친척 할머니에게 맡겨져 오로지 자기 힘으로 세상 풍파를 헤쳐 나가는 그는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살았습니다.  

“열심히 공부하라. 윗 사람에게 마음을 들게 하라. 무엇보다 저축해라. 친구는 여차하면 너를 배신할 수 있지만, 돈은 아무리 불행에 처하더라도 너를 배반하지 않는다. 돈이라면 이 세상에서 못한 일이 없고 뭐든 이겨 나갈 수 있다.”

그는 근면하고 단정한 모범생 소리를 들으면서 졸업식에서 우등상을 받았으며 돈을 벌기 위하여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으나 오로지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 언변으로 사람들을 설득하고 그것으로 일을 성공시키는 인내와 열정만은 특별하였습니다. 

지방관리로 근무할 때 탁월한 수완을 발휘하여 뇌물을 받았으며, 세관에서 근무할 때 밀수 조직과 결탁해서 밀수를 눈감아 주는 대가로 많은 뇌물을 받아 부하직원의 밀고로 해직되었습니다. 지금은 흉작이나 전염병 등으로 다른 지역보다 고통이 심한 러시아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죽은 농노들을 살아있는 농노로 둔갑해 사들여서 대출을 받아 한몫 챙기고 있습니다. 게다가 300루블의 재산을 가진 노파가 죽자, 유서를 조작하여 유산 일부분을 가로챈 것이 들통났습니다. 

그는 인간적으로도 법률적으로도 사기꾼이고 법죄인입니다. 이제 부자가 되어 마치 인생에서 새로운 길에 접어든 것 같았으나 모든 것이 하나씩 들통이 나고 증거와 함께 고발되었습니다. 그는 총독에 불려가 심문을 당했고, 사기죄로 감옥에 갇혀 끔찍한 처지에 놓였습니다.

인간은 누구도 완벽하지 않다
그때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무라조프가 총독에게 치치코프를 석방해 달라고 진심으로 요청합니다. 총독은 증거가 있고, 관련된 사람도 잡혔고, 수치스럽게도 도시의 최고 관리들도 연루되었다는 말로 거절했습니다. 

무라조프는 치치코프가 유달리 나쁜 사람이 아니고, 욕망의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해 유혹에 넘어간 그냥 하나의 인간으로 그런 잘못을 저질렀다고 말하고, 자신이 불쌍한 그의 영혼을 구원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주인공 치치코프는 지극히 현실적인 인물로 고골이 창조한 러시아적 인물인 동시에 보편적인 인물입니다.  

“우리 중 그 누가 완벽할 수 있을까요? 우리 도시의 관리들도 인간입니다. 장점이 많고 일에 능통하지만 누구나 죄에 빠질 수 있지요. 우리 인간이란 그런 의도가 없이도 매 걸음 불의를 행하고, 매 순간 다른 이의 불행의 원인이 됩니다. 저는 물론이고 각하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무라조프는 총독으로부터 석방이 허락되자 치치코프에게 서둘러 이곳을 떠나라고 말하고, 헛된 꿈을 버리고 진실로 새로운 길을 가라고 충고합니다. 그의 내적인 영혼 상태는 아직은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모르지만 이제 새롭게 무엇인가 하려고 마음먹었습니다. 이는 산업화로 인한 자본주의 가치관으로부터 탈피하고 영혼의 가치를 강조합니다.
  
“사람들은 재산이 행복의 근원인 양 서로 뺏고 싸우고 한다네. (······) 영적인 재산을 쌓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이 땅에서의 재산도 쌓이지 않을 것이고, 설사 쌓는다 해도 다 소용이 없으며 곧 허물어지는 것을. (······) 이제 죽은 혼은 생각하지 말고 산 영혼을 생각하도록 하게. 그리고 앞으론 다른 길로 나아가길 바라네.”

2부는 끝내 미완으로 끝나다 
고골은 지옥·연옥·천국 3편으로 된 단테(1265-1321)의 《신곡》처럼 인간의 온갖 추한 모습들이 담겨 있는 《죽은 혼》 1부에 이어 바로 2부의 집필에 들어갔으나 불만족해서 인지 완성했지만 불태우고, 또다시 완성했으나 불태워서 2부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는 치치코프라는 한 영혼을 통하여 러시아 나아가 인류 보편의 영혼을 파헤치려 했고, 이런 작가 정신은 인간에 대한 심오한 성찰과 인간의 죄에 대한 연민을 노래한 투르게네프,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로 이어져 위대한 러시아 문학작품을 낳았습니다. 어느날 치치코프에게 누군가 보내준 편지 내용입니다.

당신에게 묻건대, 우리들의 삶이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슬픔의 골짜기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요? 당신에게 묻건대, 이 세상이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의 무리 아닌가요? (······) 그대에게 말하리라. 슬픔과 고독 속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고.

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고골은 이 작품에서 주인공 치치코프와 러시아의 국민성에 대한 친절한 해설자로서 역할을 합니다. 마치 우리의 판소리에서 고수(鼓手)가 흐름을 잘 탈 수 있도록 추임새와 사설을 늘어 놓는 느낌입니다. 

끝으로 저자가 ‘손님을 환대하는 것은 러시아에서는 일종의 엄격한 규율 같은 것이다’라고 말한 대목 때문인지 러시아를 한번 여행을 해보고 싶은 생각을 갖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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