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고교교육 진단 ①] 전인교육·수시 앞세워 ‘교사왕국’ 건설
[특별기고-고교교육 진단 ①] 전인교육·수시 앞세워 ‘교사왕국’ 건설
수시는 고교, 정시는 학원? 이러고도 공교육 정상화 주장하나
  • 고광률 소설가
  • 승인 2022.09.14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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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사진=게티이미지뱅크/굿모닝충청 김지현 기자
자료사진=게티이미지뱅크/굿모닝충청 김지현 기자

[굿모닝충청 고광률 소설가] 현행 고교 교육 제도와 운영의 문제점을 제기하면, 그때마다 전가의 보도인 양 2015년 고교 공교육 정상화 방안을 들고나온다. 이것을 때로는 방패로, 때로는 칼로 사용한다.

우리나라는 공교육 문제를 거론할 때마다 전인교육과 교육 과열로 인한 사교육 문제(사교육비를 연간 20조까지 보기도 한다)를 말한다. 그래서 교육 정책 입안 등 관계자들은 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는 ‘덫’을 만든 것이 2015 공교육 정상화 방안인 양 자랑스레 말하는 것이다.

과연 그러한가.

모든 문제와 의문을 한꺼번에 통째 제기할 수는 없으니 고3 학부모로서, 교육 현장 근무자의 한 사람으로서의 체험을 바탕으로 심각하고 이해조차 안 되는 몇 가지만을 다뤄보고자 한다.

필자가 수개월 동안 곁에서 지켜본 것만으로도 이 정도이니, 보다 깊이 들여다보면 그 실상이 어떠할지는 짐작조차 어렵다.

“암기가 전인교육인가?”

대입제도로 크게 두 가지가 있다. 내신 성적으로 입학하는 수시와, 수능시험을 치르고 입학하는 정시가 그것이다. 얼핏 학생들에게 다양한 기회와 다각적 경쟁 방식 제공을 위해 두 개의 길을 만들어놓은 것 같지만, 정작 학생들에게는 실질적인 접근과 선택이 용이하지 않기에 유명무실하다고 볼 수 있다. 대입제도가 두 가지라면 두 가지 교육을 교육 현장에서 공정하고 형평성 있게, 차별 없이 가르쳐야 할 터인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내신 성적으로 대학을 가는 수시는 고교 교사가 해당 과목을 각각 가르치고, 평가하고, 진학 대학을 안내(유도 또는 지도)한다. 그러니까 해당 학교 교사들이 학생을 가르치고 평가하고 대학까지 진학시키는 것이다. 진학을 안내할 때는 하향이어도 안정권 지원을 권고한다. 대입의 모든 것이 교사의 손에서 원스톱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수시는 이렇게 고교 교사의 권한과 재량 하에 이뤄진다. 수시에 있어서는 교사가 전지전능한 신과 같은 존재요, 미다스의 손인 것이다.

그러나 전국의 고교생들 전체와 함께 수능시험을 치르고 경쟁해야만 하는 정시는 이와 경우가 다르다. 교사는 해당 과목을 가르칠 수만 있을 뿐, 평가할 권한이나 재량이 없다. 평가는 수능 문제를 내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해당 교사가 가르친 것을 내신 관련 평가처럼 해당 교사가 직접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제삼의 기관에서 평가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두 제도 사이에 어떤 차이와 문제가 있는지 살펴보자.

우선 내신으로 대학을 가는 수시는 전인교육 차원에서, 고교 공교육 정상화 차원에서 도입된 제도라고 한다. 그러니까 수시가 바람직한 교육 정신에 적합한 제도라는 것이다.

이 말 자체가 웃기는 것이 그렇다면 정시는 반 전인교육적이고 반 고교정상화인 교육 또는 수시보다 바람직하지 못한 열등한 제도란 말인가. 이런 이율배반이 어디 있겠는가.

아무튼 각각 수시와 정시를 희망하는 학생이 같은 학교 같은 교실에서 같은 교사로부터 같은 과목을 같이 교육을 받는데, 수시 중심의 교육을 받는다. 아니, 수시 중심의 교육을 받게 되어 있고, 또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를 제기하면 교사들은 수시와 정시가 다 같은 과목인데, 어떻게 다를 수 있다는 것이냐고 강하게 항변한다. 그러나 이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항변이라는 것을 본인들도 잘 안다. 왜냐하면 예를 들어 같은 국어지만, 수시와 정시에 있어 평가 문제의 수준이 천양지차인 것이다. 교사가 가르친 것이 내신 문제에는 그대로 나오지만, 그래서 암기만으로도 얼마든지 풀 수 있으나, 수능 문제는 그 교사의 가르침만으로 풀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 바로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일타 강사의 사이버 수업을 듣고 사교육을 하는 이유가 있다.

교사는 자신이 가르친 것을 자신의 평가 문제로 출제하지만, 수능에서의 문제는 이와 다를 수밖에 없다. 두 가르침과 문제의 수준이 어느 정도 유사하다면 이를 시비 걸 수 없겠으나, 달라도 너무 다르고 차이가 나도 너무 차이가 난다. 그러니 교사가 수시 중심 교육을 한다는 것이다.

내신용 문제는 교사의 가르침을 암기만 하면 해결 가능하지만, 수능용 문제는 폭넓은 배경지식, 이해, 해석 및 분석, 창의적 판단력 등 종합적인 사고력과 창의력이 없으면 해결이 어렵다. 그래서 내신 국어 100점짜리가 모의고사 국어 점수는 60점 안팎을 헤매기도 한다. 암기가 전인교육이고 공교육 정상화 교육이라는 말인가.

이런 학업 수준(학습 능력)의 차이로 수시와 정시 진학생이 같은 대학에 진학할 터인데, 그럴 경우 그 두 학생의 기초(기본)교육 수준이 어떠하겠는가. 이것을 대학이 떠안고 있는 것이다. 대학생의 문해력, 독해력, 이해력, 배경지식 등이 문제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학생 아닌 ‘교사 중심’ 교육”

고교 교사도 이런 문제, 즉 수능시험의 어려움(학생도 어렵지만, 교사들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지라, 가능하면 학생을 정시가 아닌 수시로 유도하는 것이다. 근거가 있는 주장이냐고 하겠지만, 고3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근거는 차고 넘칠 것이다.

그래서 내신 성적 산출을 위한 1학기 기말시험 때까지는 수시 중심 수업을 집중적으로 진행하고, 정시를 희망하는 학생들을 수시로 유도 또는 설득해가며 정시 준비 공부를 ‘요령껏’ 통제한다는 것이다.

이 말이 대체 무슨 말인지 선뜻 이해가 안 될 것이기 때문에 덧붙인다. 수능의 시험과목은 6개 과목이나, 내신 시험과목(즉 교과목)은 고3의 경우 최대 13과목 안팎이다. 수능을 볼 학생도 이 전인교육을 위해 만든 공교육과정 과목을 다 공부하고 시험을 봐 이수해야만 하는 것이다.

수시 지망 학생에서 고3 교과목의 전체 수업은 필요충분조건이 되지만(대입에 모두 반영된다), 수능 지망 학생에게는 이수, 즉 고교 졸업 자격을 얻기 위한 필요조건일 뿐이다.

그래서 학교에서 보다 집중적으로 수능 과목 중심의 ‘자습’을 하려고 하지만, 이를 할 수가 없다. 교사들이 교권이라는 황당한 논리를 앞세워 이를 제지하고 통제해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공식적으로는 전인교육과 교육과정 준수이고, 비공식적으로는 수시 유도인 것이다. 그러니까 고교는 개별 학생들의 교육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교사들의 교권과 생계를 위해 존재하는 기이한 형국이 됐다는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에 대한 교육청 담당 장학사의 입장은 놀랍도록 떳떳하고 단호하다. 제도에 따를 뿐이고, 현장에서는 이 제도에 따라 교육이 정상적으로 차질 없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니 문제 될 것이 없다는 것이다. 실행 상의 ‘사소한’ 문제는 학교장 또는 교사의 재량에 해당하기 때문에 문제 될 것이 없다고도 했다.

과연 그러한가. 그러하지 않다는 것은 필자와 논쟁을 벌였던 장학사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고교도, 적어도 필자가 경험한 일반 고교는 학생 중심 교육이 아니라 학교장을 중심으로 한 교사 중심 교육을 하고 있었다. 교장의 신념이 진리요, 학칙과 다름없어 보였다. 어디 이 학교만 이러하겠는가. 그러기를 바랄 뿐이다.

필자는 수시 대 정시 교육에 따른 학교의 일방적인 교육과정 진행 문제를 들여다보기 위해 학교 학부모이자 운영위원인 자격으로 해당 학교에 수시 대 정시 진학 비율을 질의했다. 학교는 90대 10이라고 했으나, 근거를 제시하지 않아 교육청에 문의했다. 교육청의 담당 장학사는 그건 정보공개 대상이기 때문에 해당 고교 홈페이지를 보면 알 수 있다고 답을 했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봐도 답이 없어 다시 문의하자, 다른 답이 왔다. 전국 대학들의 항의로 인해 제공하지 않고 있으며, 해당 고교가 공개하지 않으면 알 수 없고, 또 이를 법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고교를 관리·감독·지도하고 있는 교육청은 이 통계가 있을 것이 아니냐고 묻자, 교육청도 없고, 또 교육청이 각 고교에 통계를 달라고 할 법적 근거도 없다고 했다. 정말로 그랬다. 그래서 이에 대해 교육부에 민원을 제기했으나 교육부도 이런 통계는 없다고 했다.

필자는 놀랍고 기가 막혔다. 수시 대 정시 진학에 대한 기본 통계조차 없이 어떻게 그 중차대하다는 입시교육과 진학 지도를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주먹구구식으로?

“기본을 버리고 멋을 가르치나”

말이 좋아 고교 공교육 정상화고 전인교육이지, 고교 당국에서는 자신들이 모든 권한과 재량을 가진 수시 제도를 십분 활용해 교사 중심 교육을 한다. 1‧2학년 시절 내신을 망쳐 또는 다른 사정이 있어 어쩔 수 없이 수능을 통해 대학에 진학할 수밖에 없는 학생들은, 교사들의 눈치를 보며 학교에서 ‘도둑 자습’을 하고, 일타 강사나 EBS 강의에 자신의 대학 진학을 맡겨야 하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1학기 기말고사가 끝나도 수능을 위한 교육은 학교가 아닌 학원이나 ‘인강’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한다. 이게 공교육 정상화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야말로 어른들이 만든 학벌 중심사회에서 어른들이 만든 불합리하고 기형적인 대입제도에, 어린 학생들만 이중 삼중으로 고통을 겪으며 희생을 강요당하고 있는 꼴이 아닌가.

혹자는 문·이과(文理科) 교육의 분리와 이원화로 중·고등학생들이 절름발이 교육을 받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한다. 맞다. 문제다. 그러나 이 문제 못지않게 심각한 문제는 고교에서 질과 양의 차이가 큰 모순되고 불합리한 교육이, 제도의 틀 속에서 제도의 보호 아래 떳떳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현행 대입제도 속에서 수시는 고교 교사가, 정시는 학원 강사가 각각 분할해 교육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를 두고 공교육 정상화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여전히 일제 강점기의 식민교육제도를 기반으로 하고, 미국의 교육 제도를 골격으로 삼아 만든 이종교배형 교육 제도로부터 강한 지배를 받고 있기는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바꿔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해방 이후 우리 교육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는 개도국과 중진국이 아닌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만큼 암기와 답습, 모방과 응용의 교육이 아닌 사고력과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창의적 교육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정체성 모호한 하이브리드 식 고교교육을 버리고, 주체적이며 창의적인 교육 방식을 찾아야 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말이다.

우리나라 교육은 복마전이다. 이해당사자들이 서로의 기득권을 가지고 득시글대는 곳이 교육계가 아니던가. 관료들의 기득권 또한 만만치 않은지라 행정적으로도 난망한 것이 교육 개혁이다.

아이러니하지만, 교육 문제는 오직 올바른 정책을 바탕으로 한 정치적 결단으로만 해결될 문제다. 중학생들을 고교 입시의 지옥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준 것은 1974년 고등학교평준화정책이었다. 이 정책을 만들고 시행한 ‘숨은’ 의도와 목적이 어디에 있었건 간에, 이 정책이 고교 입시 지옥을 없앤 것이다. 이때 국민 의견 수렴 및 통합은 없었다. 애당초부터 불가능한 문제이기도 했다.

무엇이 진정 학생들을 위한 것이고, 무엇이 진정 나라 미래에 도움이 되는가를 생각해 봐야 한다. 교육열이 세계 1위고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허울뿐인 학벌 중심사회를 살아가고 있으나, 대학은 연구중심대학으로서 ‘창조 권력’을 창출하는 대학으로서 세계 100위권에 드는 대학이 단 한 곳도 없는 나라에 살고 있다.

대학 교육은 고교교육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다. 고교교육이 제도의 덫에 걸려 암기와 답습의 프레임에 갇혀있다면, 대학은 사고력과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창조 교육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고교가 기초·기본 교육을 하지 않고, 대학의 다양한 전공 교육에 대한 선택적 선행학습을 하고 있다니, 그리고 이것을 향후에는 ‘고교 학점은행제’를 만들어 제도화해 실행하겠다고 하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글쓰기를 가르치면서 문장을 올바로 구사할 수 있는 문법, 맞춤법, 띄어쓰기를 먼저 가르치지 않고 비유, 수사, 기교를 가르치는 사람이 있다.

고광률 소설가
고광률 소설가

기본기가 아닌 폼(멋)을 먼저 가르쳐주는 것이요, 문장이 아닌 문채(文彩)를 가르쳐주는 것이다. 문채는 문장이 아니라 제 가끔인 개성이자 멋이다.

그런데 문제는 문채를 글쓰기의 기본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문채(멋)에 먼저 빠지면 문장(기본)을 바로잡아주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왜 고교에서 기본이 아닌 멋을 가르치려 하는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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