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고교교육 진단 ②] 고교 학운위, 합법적 ‘짬짜미’ 온상인가?
[특별기고-고교교육 진단 ②] 고교 학운위, 합법적 ‘짬짜미’ 온상인가?
자기 자식만 대표하는 학부모 운영위원… 교육당국은 “나 몰라라”
  • 고광률 소설가
  • 승인 2022.09.21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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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사진=게티이미지뱅크/굿모닝충청 김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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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고광률 소설가] 우리나라 초·중·고교마다 학교운영위원회(이하 학운위)가 있다. 관계 법규를 묶은 ‘학교운영위원회 구성과 운영에 관한 편람(대전시교육청 혁신정책과 발행. 이하 편람)’에 의하면 ‘학교운영위원회는 학생, 학부모, 교직원 및 지역사회의 요구를 학교 교육에 적극 반영함으로써 학교 운영에 대한 정책 결정의 민주성·합리성·투명성을 제고하고, 학교의 자율성과 책무성을 강화하는 제도’라고 나와 있다.

다시 말해 교육수요자에게는 참여 기회와 권한을 주고, 교육공급자에게는 그 반대급부로 자율을 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두 가지는 양가성(兩價性)을 띠고 한 묶음으로서 작동하는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필자가 학부모이자 학교 운영위원으로서 경험한 고등학교에서는 이 학운위가 유명무실했다. 심지어는 학교장에 의해 거수기로, 운영위원장의 ‘자발적 복종’에 따라 ‘관제 여론 조성용’ 기구로 전락된 면도 있었다.

사람의 문제도 있었으나(조선시대 같은 법제 하에 성군 세종대왕이 나오고, 폭군 연산군도 나오지 않았던가), 그보다는 제도적인 허점과 결함이 컸다. 적어도 제도를 만들 때, 충분히 예상되는 문제점을 방기했다는 의문을 버릴 수 없다.

“자발적 복종 그리고 거수기”

왜 이렇게 됐는가를 살펴보기 전에 학운위가 가지고 있는 구성 및 구조적 문제를 먼저 짚어보자.

학운위 구성은 단위학교의 학생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재학생 200명 이상 1000명 미만 학교의 경우 보편적으로 학부모 위원(5명), 교원 위원(4명), 지역 위원(2명), 간사(1명)로 구성된다.

학부모 위원은 단위학교 전체 학부모의 직접 투표로 선출하고, 교원을 대표하는 교원 위원은 교원들의 직접 투표로 선출한다(학교장은 당연직이다), 지역 위원은 해당학교 연고자나 전문성 등을 고려해 학부모와 교원 위원이 구성된 뒤, 이들에 의해 추천을 받아 내부 투표로 뽑는다.

그러나 이들 위원의 선출 과정이 그리 합리적으로 투명하게 이뤄지지 않는다. 지역 위원 경우만 봐도 사전 정보가 전무한 상태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깜깜이에다 파행적일 수밖에 없다. 운영위원 선출 및 구성 업무를 담당한 학교 측이 필요한 정보를 제때 제대로 제공하지 않는다.

익히 알려져 있듯이 학부모 위원 출마 및 투표에 있어 학부모들의 참여율과 투표율은 극히 저조하다. 따라서 학교가 알음알음 자신들에게 호의적인 후보를 알아서 내세우기도 하고, 전 위원이 재선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처음으로, 자발적으로 후보에 출마한 학부모는 학교 측으로부터 일단 의혹의 시선을 받아야 한다. 필자도 ‘깍두기’가 되어 이런 ‘진입장벽’을 겪었다.

교원 위원은 교원들이 편람에 근거해 무기명 비밀투표로 선출을 하기보다 교무 행정을 잘 알고 이를 다루는 사람이 해야 한다는 ‘이상한’ 논리에 의해, 관행적으로 교무부장 각 학년부장 중에 마치 당연직처럼 맡는 경우가 흔하다. 교원 위원을 선출하는 취지와 맞지 않는 것이다.

지역 위원 선출은 학부모와 교원 위원으로부터 후보를 추천받는데, 이거야말로 ‘깜깜이’에 ‘짬짜미’ 수준이다. 대상 후보에 대한 소개나 설명도 없이 즉석에서 아는 위원들끼리 눈짓을 주고받으며 추천되고 선출된다.

이렇듯 운영위원이 구성되는 방식에서 무엇이 보이는가. 학교장(집행기관)으로부터 독립된 기구로서의 기능과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 것 같은가? 우려되어지는 점이 많지 않은가?

운영위는 법정 심의기구이다. 학교는 집행기관이고 의결은 다수결 방식인데, 위와 같이 조직된 기구에서 공정한 안건이 상정되고 합리적인 의결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보는가.

“‘내 자식 챙기기’ 수단이 된 고교 학운위”

초·중학교의 운영위는 나름대로 운영위가 법정 심의기구로서의 기능과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학부모와 교사 들 간에 위계가 생길 요인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운위 도입 배경 및 취지가 어느 정도 살아 있다.

초·중학교 학운위는 학부모와 교사 간 이해(利害)관계가 없기에 학교 운영의 자율성 부족, 공급자 중심 교육, 학부모와 지역사회의 다양한 요구나 의견 반영 통로 부재 등을 개선하기 위해 만든 제도로서의 본래 기능이 나름 작동할 수 있는 구조인 것이다.

학운위 제도를 만든 정책담당자들은 이 초·중학교 경우를 들어 한 술 더 떠서는 “학운위 설치가 의무화됨으로써 명실공이 단위학교 차원의 자치기구로서 자리매김 됐다”고 자화자찬을 한다.

이 말은 학운위가 단위학교 차원의 교육자치기구로 기능한다는 것인데, 그래서 “안건 상정 등 운영은 법적 절차에 따라 구성원의 의견을 존중하여 민주적으로 운영한다”는 것인데, 적어도 필자가 경험한, 경험하고 있는 고교에 있어 실상은 전혀 그렇지가 못했다. 어디 이 고교뿐이겠는가.

그렇다면 왜 유독 고등학교 학운위는 그 배경, 목적, 취지와 달리 학교장과 학교 측의 독단에 따라 운영될 수 있는 것일까. 바로 학부모와 교사 간에 이해가 걸린 위계가 성립되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도가 가지고 있는 허점 때문이다.

‘대입’과, 이와 관련하여 ‘내 자식 챙기기’가 주된 이해의 원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학벌중심사회인 우리나라 학부모들에게 있어 자식의 가장 중요한 최종 관문은 대입이다. 이 대입의 직전 단계가 고교 과정인데, 적어도 내신으로 가는 수시 대입의 경우, 주어진 제도 아래 학교장과 교사가 전권을 쥐고 오로지 할 수 있는 것이다. 성적, 생기부 관리, 각종 포상과 대학 추천권까지 학교장과 교사가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른바 ‘절대 신’인 것이다.

고교 학부모 위원들은 드러내 놓고 말한다. 내 자식의 대입진학을 위해 위원을 하는 것이라고… 그러니까 학부모 위원이 전체 학부모와 학생들의 교육과 권익을 위해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식을 위해 노력과 봉사를 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 학부모 위원의 자녀들이 교사들의 관심과 사랑을 더 받고, 상대적으로 포상도 많고(부모의 ‘봉사’에 대한 대가를 자녀가 받는 것이다), 학교장 추천을 통한 대입 진학 사례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더러운 꼴’도 참아가며 운영위원을 한다는 것이다.

학교가 학부모 위원의 자녀를 ‘볼모’로 잡고 있는 셈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학부모 위원이 학운위의 운영 취지에 맞는 자발적·자율적 활동을 할 수 있겠는가.

실례로 회의석상에서 식당 음식의 질을 문제 삼았던 한 학운위 위원은 교원 위원으로부터 모욕과 훈계를 듣고 위원으로서의 일을 포기했다고도 한다. 초·중학교에서는 같은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학교장이 직접 울며불며 사과를 하고 즉각적인 개선책을 찾는다고 한다.

달라도 이렇게 다를 수 있는가.

아무튼 내 자식의 좋은 또는 원하는 대학 진학을 위해, 다른 학생들이 그들의 이용 대상이 된 것이다. 물론 본의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학부모 위원으로서의 사명과 역할을 스스로 포기하고 방기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그 일을 마땅히 하면 될 것이 아닌가라고 혹자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렇다면 과연 가능할까. 한번 살펴보자.

일단 학운위는 ‘초·중등교육법’ 및 ‘초·중등교육법시행령’ 등에 근거한 법정 기구다. 따라서 학운위와 소속 위원이 어떠한 역할과 기능을 담당해야 하며, 그에 따라 어떤 권한과 책무를 갖는지는 ‘편람’에 소상히 나와 있다. 어떤 사안은 친절하게 사례까지 적시돼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규정이 담긴 편람이 있다는 것을, 학운위가 법정 심의기구라는 것을, 심의가 사전적(事前的) 논의 절차를 행하는 것이라는 점을 아는 학부모 위원이 매우 드물다는 것이다. 아니 전혀 없다고도 볼 수 있다.

어처구니없는 말로 들리겠으나 교원 위원, 심지어는 학교장도 모르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자체 운영 규정을 만들어 놓고도, 그 운영 규정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다. 이를 믿을 수 있겠는가. 이 말은 이를 몰라도 학운위를 운영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 학교장의 뜻에 따라 운영위가 운영됐기 때문이다.

왜 이럴까? 학운위 위원들을 상대하는 학교 측도, 교육청 담당 부서에서도 위원의 역할에 대해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학교 측에 학칙과 자체 학운위 규정, 학운위 운영 관련 편람을 달라고 해도 간사가 그게 뭐냐고 되물을 지경이다.

교육청 담당부서는 억울하다 할 것이다. 운영위원장을 상대로 한 설명회도 열고 하는데 무슨 말이냐고 펄쩍 뛸 것이다. 그렇다면 묻겠다. 그 설명회에 참석한 운영위원장은 해당 위원회에 가서 어떤 식으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살펴본 적이 있느냐고.

애당초 자기 자녀의 이득을 위해 학운위 위원이 된 학부모가, 자기 자식의 이득을 위해 학교의 뜻에 따라 국으로 행동하면 되지, 무엇 때문에 규정을 알려고 한단 말인가. 이 규정을 알아서 득 될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결국 필자는 교육청 홈페이지를 뒤져 편람을 다운로드받아 가제본해 읽었다. 위원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데, 어찌 제대로 된 위원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겠는가.

고교 학운위 회의에서 문제를 제기하거나, 시시비비를 따지거나 상식과 이치와 규정 따위를 말할 경우, 그 학부모 위원은 그 즉시 학교 측의 눈총 대상이요, 요관찰대상이 되고, 동료 학부모 위원들의 왕따가 되는 것이다.

필자도 동료 위원으로부터 여식을 생각하셔야 된다는 ‘애정 어린’ 간곡한 충고를 들었다.

자료사진=게티이미지뱅크/굿모닝충청 김지현 기자
자료사진=게티이미지뱅크/굿모닝충청 김지현 기자

“학습권 농단하는 교권”

모 여고의 실례를 들겠다.

이미 시행한 지 50여 일이 지난 안건이 심의 안건이라 해, 첫 회의에 무더기로 상정이 됐다. 게다가 이 안건은 현 운영위원회가 아니라, 전 운영위원회가 심의 의결했어야 할 사안이었다. 필자는 교육청 학운위 담당부서에 이를 심의할 근거를 제시해 달라고 했다.

해당 학교는 코로나19 시국 때문에 대면 회의를 못했노라고 말이 안 되는 해명을 하고, 관행이 그렇다고 강변하다가, 관행은 규정에 선행할 수 없으니 따져보겠다고 하니, 나중에는 규정에 따라 사후 추인을 받을 수밖에 없는 사유서를 교육청에 제출했으니(아마도 교육청과 상의를 한 것 같았다)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다. 교육청 담당부서도 그렇다고 하며 학교장을 두둔했다.

어린 학생들의 교육이 이뤄지는 학교가 이전투구를 일삼는 정치판 뺨치게 운영되고 있었다. 물론 규정에 사후 추인 사항에 대한 언급이 있다. 당연히 불가피한 상황에 처했거나, 시급을 요하는 경우였다.

첫 회의에 올라온 안건은 한두 건이 아닌 수십 건이었고, 또 그 규정에 적시된 상황과 전혀 무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급성을 들어 불가피성과 정당성을 주장했다. 정말 정상인, 상식인이라면 주장할 수 없는 해괴한 변명이었다.

이를 문제 삼자, 학교장은 되레 학교가 대체 뭘 잘못했다고 이러는 거냐고 하면서 당신 마음대로 하라고 호통을 쳤다. 그래서 학교장이 법령을 어긴 것이 잘못이고, 법령을 어기고도 관행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이 더 큰 잘못이라고 했다.

이 문제는 전체 학운위 위원들의 문제였으나, 교원, 지역, 학부모 위원들 역시 수수방관하며 제기된 문제를 오불관언하며 등한시할 뿐이었다. 필자에 보기에 정말 오래된 관행 같았다.

고교 학운위 운영에 있어 모 여고 학교장의 독단과 횡포는 도를 지나쳤다. 위법을 하고도 반성과 사과는커녕 되레 문제를 제기한 위원을, 위원장은 철저히 무시로 일관했고, 학교장은 윽박지를 정도였다.

편람에 의하면, 법정 심의기구인 학운위와 집행기관인 학교 측이 서로 의견이 상반되어 충돌하거나 교착이 될 경우, 학교장의 결정권을 존중해주고 있다. 그 이유는 학운위와 학교 측의 갈등으로 학생들의 학습권에 피해가 가는 것을 막고자 함이다.

교사는 특수 근로자로서 노동3권 중 단체행동권은 보장받지 못한다. 왜냐하면 학생들의 학습권이 교사의 교권에 앞서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사들은 이를 모르고 있었다.

필자가 겪은 모 여고는 필자가 다녔던 1970년대 고교와 다를 바가 없었다. 즉 학교장이 무소불위의 왕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학교장은 이 규정을 학운위 심의의결보다 자신의 결정권이 우선이고, 또 이것이 당연한 권리인 듯 주장했다.

학부모 위원도 학교운영과 관련하여 안건을 제기할 수 있고 여론조사 등도 할 수 있으나, 이를 하는 위원은 없었다. 그러나 학교장의 뜻에 따라 학부모 위원인 운영위원장이 자발적인 양 여론을 조사·형성해 안건을 상정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학교장에게 있어 학운위 위원들은 거수기이고, 합리적·합법적인 절차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여론 조작 수단으로 이용당하기도 하는 것이다. 물론 위원들은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으며, 안다고 해도 시인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 위원장(반드시 학부모 위원 중 선출하도록 되어 있다)은 학교장의 ‘꼬붕’처럼 행동한다. 자신 앞으로 제출된 질의 문건에 대한 답도 학교 측이 대신 작성한다. 위원장 앞으로 제기된 문제를 살펴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 측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며 이런 문제를 제기한 학부모 위원과는 관계 또는 상대조차 하지 않으려 했고, 학교장의 뜻에 편승해 행동했다. 심지어는 잘못을 사과하는 과정에서 변호사로부터 법률자문을 받았다고 엉뚱한 공언을 하기도 했다.

상식으로도 판단이 가능하고, 규정에 적시돼 있는 내용을 법률자문까지 받았다니… 잘못을 시인하고 반성하고 개선하려는 의지보다, 문제를 제기한 위원을 겁박하려는 태도를 보여준 것이다. 학교장 편에 서서 그의 권한에 기대 버텨보겠다는 위원장의 태도가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이런 구조적 문제점을 안고 있는 고교 학운위가 정상적인 기능과 역할을 할 수 있겠는가.

“학교가 아닌 민원인을 지도하는 담당공무원들”

그렇다면 이렇듯 아사리판인 현장 상황을, 이를 관리·감독·지도해야 할 기관인 교육청 담당부서는 모르고 있었던 것일까. 그렇지 않다. 필자가 3개월에 거쳐 수십 차례 전화, 대면방문, 공식 민원제기 등을 통해 가르쳐줬으니 모를 리가 없을 것이다. 물론 그 전에 몰랐다고 하면 직무를 유기한 것이 아니겠는가.

담당 부서는 이런 문제를 제기할 때마다, 어김없이 ‘그럴 리가 없을 겁니다’, ‘무언가 오해가 있으실 겁니다’, ‘그건 학교 측이 알아서 할 문제인데요’, ‘자제분이 다니는 학교이니, 이해를 해주시고 애정 어린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등의 답을 내놓았다.

그러니까 문제를 제기하는 민원인이 이해심 떨어지는 성품이 까칠 내지는 강퍅한 사람이고, 무언가 몰라서 무식하고, 참을성까지 없고, 심지어 제 자식 생각도 안 하는 매정한 부모라는 식이었다.

담당부서 공무원이 민원을 올바로, 적확하게 파악해 처리하려고 하기보다, 얼버무리고 시간을 끌어가며 민원인을 훈계하고 회유하고 마침내 가르치려고까지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필자가 모르는 것이 있어서 이러는 것이라면 가르쳐달라고 했다. 그러자 모르는 것은 없다고 했다.

또 교육청 담당공무원은 모 기자의 질문에 이 일은 모두 끝난 문제라고 했다고 한다. 민원을 제기한 학부모이자 학교운영위원회 위원인 당사자도 모르게 민원 종결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말인가.

문제를 덮는 것만 생각할 뿐 근본적인 해결은 아예 생각조차 안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래서 참담하다는 것이다.

교육부와 교육청은 ‘훌륭한’ 제도를 잘 만들어주었으니 자신들의 역할과 책무는 끝이라는 입장인 것 같았다. 그러니까 문제는 이 제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제도를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거나 안 하는 관련 당사자들의 문제이지 결코 자신들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 현장에서의 문제를 가지고 아무리 골백번 민원을 제기한들 개선될 여지가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고교 학운위의 위상은 이런 것이다. 상부 정책 수립 및 집행 기관의 단위학교 운영 문제에 있어서 민주성·합리성·투명성 그리고 자율성·책무성 대한 면피용 교육자치기구요, 학교장에게는 독단과 전횡을 합리화·합법화 시켜주는 어용기구요, 학부모 위원들에게는 자기 자식의 대입진학과 부귀영달을 도모할 수 있는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니까 고교에 있어서 학운위는 학교장의 독단, 전횡, 불법, 위법, 탈법을 세탁하고 사(赦)해주는 ‘합법적 면책 기구’로 작동할 수도 있는 것이다.

고광률 소설가
고광률 소설가

상위(상부) 기관은 이 학운위가 있기 때문에 단위학교를 일일이 관리·감독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고, 학교는 이 학운위를 통해 절차적 정당성과 근거를 확보했기 때문에 잘잘못을 떠나 언제든 떳떳하고 당당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 모 여고 학교장은 위법을 하고도 “당신 마음대로 해보라”고, 학부모이자 학운위 위원에게 큰소리를 칠 수 있었던 것이다.

자, 다 알고도 강 건너 불 보듯 구경만 하고 있는 고교 학교운영위원회의 문제를 어쩔 것인가. 합법적인 불법이 필요한 자들에게 낙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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