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의 어원상고사] 흉노와 조선
[정진명의 어원상고사] 흉노와 조선
정진명 시인, 어원을 통한 한국의 고대사 고찰 연재 ‘03-우거’
  • 정진명 시인
  • 승인 2022.09.29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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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5년 간행된 『천자문』에 渠자가 ‘걸 거’라고 읽힌다. 자료=정진명 시인/굿모닝충청 

[굿모닝충청 정진명 시인] 나중에는 흉노족이 무제의 역공에 패하여 쫓기게 됩니다. 이들 중에 선우와 좌현왕은 서쪽으로 갔는데, 우현왕이 바로 동쪽으로 몰려갑니다. 그리고 거기서 왕조를 접수하죠. 국가도 아니고 부족도 아닌 어정쩡한 제도와 형태로 살아가던 고조선 지역에 유목지대를 호령하는 통치체제를 적용하면서 스스로 왕을 잇는 것입니다. 그가 바로 고조선의 마지막 왕 우거(右渠)입니다. 중국에게 시달리던 고조선 사람들은 다민족 연합국가에서 전투 경험이 많은 흉노족의 우현왕을 위만조선의 새 왕으로 추대했을 것입니다. 

고조선의 왕 우거(右渠)는 성이 ‘우’이고, 이름이 ‘거’인가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있죠. 우(右)가 성은 아닐 거라는 말입니다. 고대사 자료에서 오른쪽을 가리키는 언어 자료는 딱 하나입니다. 흉노족의 우현왕이죠. 그러면 그거라도 잡고 늘어져야죠. 그게 역사학 연구 정신 아닌가요? 역사학도들께서는 저를 탓할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 하하하.

‘거’는 뭘까요? 한자의 뜻은 ‘도랑’입니다. 부동산 행정용어에 ‘구거부지’라는 우스꽝스러운 말이 있는데, 거기의 ‘거’가 바로 그 ‘渠’입니다. 그러나 이게 역사책에 나온다면 뜻으로 읽으면 안 됩니다. 일단 소리로 읽어야죠. ‘거’에 해당하는 우리 말 중에서 우두머리와 연관이 있는 말이 있을까요? 역사학자들은 모르겠지만, 국어학 전공자인 저는 압니다. ‘걸’이 그것입니다. 실제로 1575년에 간행된 『천자문』에는 渠 밑에 ‘걸 거’라고 적혔습니다.

어디서 많이 본 말이죠? 윷놀이에 있습니다. ‘도, 개, 걸, 윷, 모’가 그것이죠. 한가운데에 걸이 있네요. 리을 탈락이 되면 ‘거’가 됩니다. 이 윷말의 이름들은 부여의 언어이고, 유목의 자취가 강합니다. 그래서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이것을 부여의 통치제도인 사출도에서 온 것이라고 했습니다. 즉 다섯 지역을 담당하는 벼슬 이름인 마가, 우가, 저가, 구가라고 말이죠. 그런데 중앙만 이름이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들 사출도에 명령을 내리는 사람은 다른 이름이 필요 없죠. 곧 왕이죠. 왕은 자기 이름이 없습니다. 하늘이자 땅의 주인이기 때문이죠. 이 왕이 각기 짐승으로 벼슬 이름을 삼은 셈이죠. 

그렇다면 중앙을 나타내는 ‘걸’은 짐승 이름일까요? 사람들은 이것을 ‘양’으로 비정합니다. 다른 말이 모두 짐승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우리말로 양은 ‘염’이라고 하여, 따로 분류합니다. 이 ‘염’을 닮은 소가 ‘염소’입니다. ‘염’은 양의 목소리를 글로 베낀 말이고, 그렇게 우는 소라는 뜻이죠. 실제 양과 염소는 ‘여어어어어엄!’하고 웁니다. 하하하.

만약에 사출도가 윷판이고, 걸이 짐승 이름이 아니라면, 당연히 왕을 뜻하는 말입니다. 이걸 강력하게 입증해주는 것이 고구려입니다. 주몽은 5부족 중에서 ‘계루부’ 출신입니다. ‘계루’와 ‘걸’ 어쩐지 같은 말이라는 느낌이 안 드나요? 저의 주장이 떫은 분은 왼고개를 칠 것입니다만, 그래도 ‘그거, 그럴듯한데?’라고 생각하는 분이 더 많을 겁니다. 우리가 배운 국사의 내용이 하도 부실하니, 그런 생각이 드시는 겁니다. 부실한 한국 상고사에다가 제가 한 숟갈 떠넣어 드리는 것이니 맛이 달콤할 밖에요. 하하하.

‘우거’의 ‘거’는 왕을 뜻하는 말입니다. 고구려 부족들은 사람이 많이 사는 곳을 ‘구루’라고 불렀습니다. 아마도 ‘계루’도 왕의 도시, 즉 중심과 수도를 뜻하는 말이었을 겁니다. 사람은 가장 중요한 뇌를 ‘골’이라고 부릅니다. ‘걸’이나 ‘골’이나 같습니다. 우거는 고대의 왕을 뜻하는 말이고, 무제의 흉노정벌이 일으킨 여파가 동쪽으로 밀려간 결과, 흉노족의 우현왕이 고조선 사회에 자리 잡으면서 신분세탁을 한 것이라고 봅니다. 

여기까지는 제 개똥철학에 가까운 얘기였습니다. 그러면 좀 더 깊이 들어가 보겠습니다. 한나라 고조 유방은 ‘풍(豊)’ 땅 출신입니다. 그곳 출신 장군 중에 노관(盧綰)이란 사람이 있는데, 중국 동북부 지역인 연(燕)나라의 왕으로 책봉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반란을 꾀하다가 발각되자 흉노에게 달아나 숨어버립니다. 바로 이때 그의 수하였던 위만(衛滿)이 노관을 따라가지 않고 스스로 유민을 모아서 중국에 저항하다가 기자조선에 붙습니다. 기자조선의 준왕에게 중국과 조선 사이 완충지대(DMZ)에 머물면서 중국의 공격에 방패막이가 되겠다고 자처한 것입니다. 그것을 준왕이 받아들였는데, 위만은 계속 유민을 끌어모아 세를 불리고 곧 왕검성으로 쳐들어가 준왕을 몰아냅니다. 이때가 기원전 194년입니다. 준왕은 남쪽으로 내려가 다시 나라를 세우니, 그게 바로 ‘삼한’입니다.

우리가 눈여겨보는 우거는 위만의 손자입니다. 조선의 마지막 왕이죠. 앞서 보았듯이 성도 없고 이름도 또렷하지 않죠. 아예 이름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위만조선은 우거를 마지막 임금으로 한 무제에게 공격당해 패망하는데, 이때가 108년입니다. 왜 이 골치 아픈 숫자를 나열하느냐면, 한 무제의 흉노정벌 때문입니다. 한 무제가 곽거병, 위청, 이광 같은 명장들을 동원하여 흉노의 본거지를 쳐서 소탕한 것이 기원전 129년의 일입니다. 

194년에 위만조선 시작
129년에 흉노 소탕
108년에 위만조선 망함

이 사건들은 마치 고리처럼 연결되었음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한 무제의 공격을 받고 흩어진 흉노족은 서쪽으로 가서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을 촉발했는데, 그 중에 일부는 동쪽으로 몰려든 것입니다. 흉노를 공격한 한 무제의 눈에는 흉노와 위만이 똑같은 놈으로 보인 것입니다. 둘 다 터키어를 쓰는 족속들이고, 북쪽의 오랑캐(北狄)가 궁지에 몰리자 동쪽의 피붙이(東夷)에게 들러붙은 꼴입니다. 저걸 그냥 두면 곧 초원으로 되돌아와서 중국 변방을 노략질하는 일을 되풀이할 것이 뻔합니다. 그래서 흉노정벌로 국고가 다하고 국력이 바닥났는데도 조선 정벌을 단행한 것입니다. 이런 무리수를 둔 결과 한나라는 무제 이후 혼란에 빠집니다. 결국, 왕조가 망하고 왕망의 ‘신(新)’나라로 이름까지 바꾸죠. 

위만조선으로서는 서북쪽 초원지대에서 몰려오는 피붙이 겨레들이 반가웠을 것입니다. 준왕을 몰아냈지만, 준왕을 따르던 세력이 주변에 가득한 상황에서 틈만 보이면 언제든지 뒤집힐 수 있는 정국이었기에 자신들의 세가 불어나는 것을 마다할 이유가 없죠. 게다가 밀려든 동족들은 한나라와 싸움에 이골이 난 능력자들입니다. ‘우거’는 특정한 사람의 이름이라기보다는 그들 세력을 대표하는 왕을 뜻하는 말이었을 것입니다. ‘위만’으로 대표되는 기존의 조선 세력과 새로 밀려든 한나라 유민과 흉노 잔당이 중국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 뽑은 지도자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게 있습니다. 위만에게 쫓겨가서 만든 나라 삼한 말입니다. 저라면 ‘기자조선’이라고 했을 텐데, 나라 이름을 ‘삼한’이라고 했습니다. 위의 내용을 읽어보면 한반도 남쪽의 ‘한’ 사회에 어찌하여 합쳐지지 않은 세 ‘한’이 존재하게 된 것인지, 어렴풋이 알 수 있지 않을까요? 흉노족의 통치방식이 고조선을 거쳐서 그대로 남쪽까지 밀려 내려온 것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만큼이나 거대한 물결이 이 시기의 동북아시아를 덮친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정진명 시인. 사진=굿모닝충청 DB
정진명 시인. 사진=굿모닝충청 DB

이 긴 글의 시작은, 3한이었습니다. 도대체 마한 진한 변한이 뭘 뜻하느냐 하는 것이었죠. 그걸 말하려고 흉노와 한나라, 그리고 고조선 얘기를 길게 꺼낸 것입니다. 이제 목적지에 이르렀습니다. 준왕은 기자조선의 후예이고, 기자조선의 지배층은 몽골어를 썼습니다. 그러다가 흉노와 같은 터키어를 쓰는 위만 족에게 밀린 것입니다. 

마한의 ‘마’는 몽골어로 서쪽이라는 뜻입니다. 실제로 진국의 서쪽에 있죠. 그런데 이때에는 이미 드라비다에서 온 가락국 세력이 한반도 남쪽에 영향을 미치던 때입니다. 그래서 진국과 대립각을 세우면서 왕조가 열립니다. ‘진국’의 ‘진’은 몽골어로 동쪽이지만, 드라비다말로 황금이라는 뜻입니다. 황금알에서 태어난 수로 왕의 가락국 신화에 걸맞은 말입니다. 변한은 ‘변진국’이라고도 했습니다. 이때쯤이면 진한의 영향이 변한에 크게 미쳐 변한인지 진한인지 구분이 잘 안 갔다는 뜻입니다. 

이 3한은, 백제가 평양에서 한강으로 내려올 때까지 이 지역을 통치합니다. 그러면 벌써 백제 시대보다 더 먼저 이런 체제가 자리 잡았다는 뜻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곽거병이 흉노를 정벌한 것은 기원전 129년이고, 백제가 건국한 것은 기원전 18년이니, 백제 건국 110년 전에 이미 흉노족의 대이동은 시작된 것입니다. 그 여파가 삼한에 들어와서 자리 잡은 뒤에 백제의 건국 세력이 이 지역에 도착합니다. 

그러면 삼한 중에서 누가 가장 우두머리인가 하는 것은, 위치로 가늠할 수 있습니다. 마한은 한강가의 경기도와 충청도 지역에 있고, 변한은 전라도 지역에 있었으며, 진한은 경상도 지역에 자리 잡았다고 배웠습니다. 누가 우두머리일까요? 당연히 마한입니다. 마한 쪽에서 남쪽으로 내려다보면 왼쪽에 진한이 있고, 오른쪽에 변한이 있죠. 유목 정치의 구도로 보면 마한은 선우, 진한은 좌현왕, 변한은 우현왕이 되겠죠. 못 믿겠다고요? 백제 개로왕의 아들 곤지가 457년 송나라에 파견됩니다. 그때 송에서 내려준 작위 이름이 ‘정로장군 좌현왕’이었습니다. 좌현왕은 흉노의 태자가 맡는 직책이니, 곤지는 백제 왕의 태자라는 뜻입니다. 이때까지도 흉노의 습속이나 문화가 백제에 통용될 수 있는 상태였음을 볼 수 있습니다. 동북아시아 유목의 자취가 삼국시대 후기까지도 남았다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초원에서 유목하던 시절과 비교하면 많이 달라진 게 있습니다. 유목 생활은 끝없는 이동으로 고단합니다. 그래서 이들 세력 간에 자연히 긴밀한 협조가 이루어집니다. 그렇지만 그런 사람들이 한반도로 들어와서 자리 잡고 나면, 유목은 꼬리뼈처럼 흔적만 남고 실제는 한 곳에 붙박이 생활을 하게 되며, 나아가 농경으로 삶의 방식이 바뀝니다. 그런데도 사회 체제는 유목 시대의 그 방법으로 남아있는 것이죠. 이것이 외부에서 새로운 세력이 들어왔을 때 쉽게 그 전의 체제가 무너져 각자도생하게 된 원인으로 작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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