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의 어원 상고사] 온조 백제 부여 
[정진명의 어원 상고사] 온조 백제 부여 
정진명 시인, 어원을 통한 한국의 고대사 고찰 연재 '04-백제'
  • 정진명 시인
  • 승인 2022.10.06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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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자료=정진명 시인/굿모닝충청
삼국사기. 자료=정진명 시인/굿모닝충청

[굿모닝충청 정진명 시인] 

3한이 이렇게 느슨한 형태로 원시생활을 할 때, 북쪽에서 한 세력이 남하합니다. 아들 둘을 데리고 고구려를 떠난 주몽의 아내 소서노(召西奴)가 한강 가에 와서 정착하자, 먼저 터 잡고 살던 마한 세력과 맞닥뜨리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 토착 세력의 협조를 얻어서 백제를 세우죠.

『삼국사기』에 특별한 기록이 하나 있습니다. 즉 백제의 건국 과정에서 이름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즉 온조가 왕위에 오른 뒤에 처음엔 십제(十濟)라고 했다가 나중에 백제(百濟)로 이름을 고쳤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할주(割註)로 처리되어서 역사학자들은 별로 눈여겨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언어학으로 보면 여기에 왕조교체의 비밀이 숨어있습니다. 

소서노의 아들은 둘이었습니다. 형인 비류와 아우인 온조죠. 그런데 처음 한강에 내려왔을 때는 뜻이 같았다가 정착하는 과정에서 비류가 뜻을 바꾸어 지금의 인천인 미추홀로 떠납니다. 그러다가 바닷가에 정착하지 못하고 온조에게 되돌아오죠. 동생인 온조가 왕이 됩니다. 

사람 이름 ‘온조’와 나라 이름 ‘백제’가 묘한 울림을 줍니다. 100을 우리말로는 ‘온’이라고 하기 때문이죠. ‘백제’의 ‘백’을 ‘온’으로 바꾸고 나면, ‘온제’가 됩니다. ‘온조’와 ‘온제’, 비슷하죠. 그렇다면 이것은 무슨 뜻일까요?

온조와 비류는 주몽의 아들이었고, 주몽은 나라를 세우면서 성을 ‘고(高)’ 씨로 삼았습니다. 그렇다면 고주몽의 아들 온조와 비류가 세운 나라는 ‘고(高)의 나라’가 될 것입니다. 북쪽에서 맹위를 떨치는 고구려의 후광을 이용하면 주변의 작은 나라들이 업신여기지 못할 테니, 이제 막 자리를 잡은 떠돌이의 신세로서는 자기방어 차원에서도 이 점을 부각시키는 것은 당연합니다. 고구려와 백제의 지배층은 몽골어를 썼습니다. 따라서 몽골어에서 ‘높다(高)’는 말을 찾아 견주어보면 실마리가 풀릴 듯합니다. 

몽골어로 ‘높다(高)’는 ‘öndür(undur)’입니다. ‘온조’와 거의 같죠. ‘öndür>önder> onjer>onje>onjo’의 음운변화 과정을 짚어볼 수 있습니다. 이 ‘온조’를 향찰표기로 바꾸면 ‘백제’가 됩니다. ‘ön=백(百)’, ‘dür=다라, 돌(濟)’. 이렇게 보면 일본에서 백제를 왜 ‘구다라’라고 발음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다라, 돌(濟)’에 고(高)가 붙은 것입니다. 부리야트의 세 종족 중에 구다라족이 있는데, 이들이 그 주인공입니다. 

재미 삼아 한 걸음 더 나가볼까요? ‘öndür(高)’을 발음 그대로 한글로 적으면 ‘온다라, 온두르’가 되지요. 이것을 한자음을 빌어서 적어보면 어떨까요? 아니, 우리가 적지 말고, 『삼국사기』에서 찾아보면 어떨까요? 생각나는 이름이 있을까요? 저는 있습니다. ‘온달(溫達)’입니다. ‘다라’는 ‘돌(濟)’로도 적힌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니 ‘온달’은 ‘온다라, 온두르’가 되죠. ‘온달’은 몽골어로 ‘높으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공주와 결혼했죠. 바보였다고요? ‘바보’가 아니라 ‘바보 같은’ 사람이었을 겁니다. 지배층인 공주는 몽골어를 썼지만, 온달은 피지배층(거지)이었으니 토박이 언어를 썼을 것이고, 지배층으로 합류했ᅌᅳᆯ 때 지배층의 언어인 몽골어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바보 취급을 당했을 것이고, 이것이 설화로 정착하면서 그 결과가 『삼국사기』에 실렸을 것입니다. 

온달이 고구려에서 ‘높으신 분’을 나타내는 말인 것처럼, 고구려와 같은 언어를 쓴 백제의 지배층 언어에서 ‘온조’도 똑같은 뜻으로 쓰였을 겁니다. 그러니 왕이 되었던 것이겠죠. 

‘온’은 우리말에서 100을 가리키는데, 원래 몽골어에서 온 말(jagun>yaun>yön>on)입니다. 똑같은 ‘온’이 터키어에서는 10을 뜻합니다. 터키어로 ‘온’이 10을 뜻한다는 것은 당나라 때의 서돌궐이 세운 나라 이름이 ‘온 오크(On Oq)’였다는 것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화살 10개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백제’의 원래 처음 이름이 ‘십제’였다는 말은, ‘온’이 10을 뜻하는 겨레에서 100을 뜻하는 겨레로 바뀌었음을 보여주는 일입니다. 즉 백제가 막 섰을 때의 상황을 주도한 겨레는 터키어를 쓰는 사람들이었다는 겁니다. 그러다가 몽골어를 쓰는 사람들이 권력을 잡았다는 뜻이죠.(『활쏘기의 나침반』) 

그렇게 보면 이렇게 정리됩니다. 처음 소서노가 아들 비류와 온조를 데리고 남쪽으로 내려올 때, 그들을 따랐던 사람들 또한 여러 부족의 연합체였다는 것입니다. 서로 다른 겨레붙이들이 소서노의 뒤를 따랐고, 이들이 출발할 때는 뜻이 같았지만, 한강에 이르러 머물러 살 곳을 두고는 서로 의견이 갈라진 것입니다. 그래서 비류를 지지하는 세력은 미추홀로 가고, 온조를 지지한 세력은 지금의 서울 바람들이(風納洞)에 남은 것입니다. 이곳이 위례(慰禮)죠. 처음에 형인 비류를 지지한 사람들(터키족)이 왕위 계승 서열 질서에 따라 왕권을 잡았고(이때가 십제), 뒤에 판단 착오를 한 뒤 다시 돌아와서 벌써 자리 잡은 온조 세력에게 붙은 것입니다.(이때가 백제) 

결국 비류를 지지한 터키족에서 온조를 지지한 몽골족으로 권력이 넘어오면서 백제는 안정을 되찾은 것이고, 나라의 면모를 갖추면서 정식으로 개국을 한 것입니다. 이것이 『삼국사기』 백제 조에 나오는 할주의 내용입니다. 언뜻 보기에는 터키족이 몽골족의 휘하로 들어간 것 같지만, 비류를 지지했던 세력의 일부는 끝없이 남으로 내려가다가 결국 바다 건너까지 가서 일본의 천황 가로 합류하여 지배 세력이 됩니다. 히로히토 천황이 외가의 뿌리가 백제라고 발언하여 일본이 들썩거린 적이 있습니다. 

그 뒤로 마한 진한 변한, 이 삼한의 세력은 어찌 되었을까요? 백제가 나라를 세운 뒤로 역사서에서 이 삼한의 존재가 점차 사라집니다. 결국은 충청과 전라 지역에 있던 마한과 변한은 백제의 세력 속으로 흡수되면서 명칭이 사라집니다. 

코로나19라는 전염병으로 온 세상이 얼어붙어 해외로 여행 가는 일도 어려워진 지 벌써 3년입니다. 불과 두 해 전만 해도 손쉽게 갈 수 있는 곳을, 이제는 옛날에 다녀온 사람들이 보여주는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서 재탕 삼탕 하며 즐기는 지경입니다.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로 떠돌던 여행객들이 보여주는 수많은 여행 영상을 보면서 같은 동양인이지만 민족 간에 어딘가 생긴 모양이 조금씩 달라서 구별된다는 것은 참 신기한 일입니다. 한반도의 북쪽으로 가보면 사람들 생김이 우리와 비슷한데 같은 황인종이면서도 묘하게 느낌이 다릅니다. 예컨대 몽골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두개골 모양이 갸름하고 광대뼈가 툭 튀어나와서 한눈에 봐도 몽골 사람이라는 판단이 딱 섭니다. 게다가 엉덩이와 허벅지가 두툼한 것을 보면, 추운 환경에 잘 적응한 몸이라는 생각이 들죠. 그 위로 에벤키족이나 솔롱고족 같이 러시아의 추운 지역에 사는 소수민족들을 보면 얼굴 생김이 조금씩 다른 특징이 있습니다.

그런데 화면을 보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러시아의 소수민족인 부리야트 공화국에 간 사람들이 보내온 화면을 보여줄 때입니다. 부리야트족은 우리나라 사람과 똑같습니다. 바로 옆 동네 아저씨 아주머니 같습니다. 100% 우리의 얼굴이고 몸매입니다. 더욱더 놀라운 건 설화입니다.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심청의 설화가 바이칼호에 사는 부리야트 사람들의 설화와 똑같습니다. 도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일까요? 

그곳의 자연환경도 놀랍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보다 위도가 한참을 더 올라가 빽빽한 밀림이 있는 곳인데도, 야트막한 언덕이나 부담 없이 동글동글한 산천 하며, 우리가 사는 충청도 지역의 지형과 정말 많이 닮았습니다. 우리와 똑같은 얼굴을 한 사람들이 우리와 비슷한 산천에서 웃고 떠드는 것을 보면, 저기가 부리야트 공화국인지 충청도의 한 고장인지 헷갈릴 정도입니다. 

정진명 시인. 사진=굿모닝충청 DB
정진명 시인. 사진=굿모닝충청 DB

아직 놀라기에는 이릅니다. 만약에 이들이 유목 시대에 초원으로 퍼진 청동기와 철기 기술을 들고 남하했다면 어찌 되었을까요? 아마도 대단한 대접을 받았을 것 같습니다. 백제는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언어가 달랐습니다. 백제가 압록강가에서 일부 세력의 남하로 한강에 정착한 사람들이라고 앞서 말했습니다. 그들은 터키어와 몽골어를 쓰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그곳에 처음부터 살던 토박이들과는 말이 달랐죠. 백제 왕실의 성은 ‘부여’ 씨였습니다. 그러면 이 부여가 무엇일까요? 도대체 무엇을 한자로 썼기에 ‘부여’라고 적었을까요? ‘부리야트’ 아닐까요? 제 눈에는 그렇게 보입니다. 초원을 떠돌던 몽골족의 일파가 말을 탄 채로 남하하여 한강 가에 정착한 것이 백제의 기원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이 점은 신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신라에도 수많은 세력이 밀려들어서 왕조를 세우고, 서로 공평하게 왕을 나눠서 합니다. 그래서 박 석 김, 세 성씨가 돌아가며 왕을 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상대 신라의 특징입니다. 신라는 혈통에 의한 계급사회로 유명한데, 그게 그럴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신라에서 여왕이 나온 것은, 신라가 인권 신장이 잘 돼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 혈통에서 왕을 할 남자가 더는 없어서 마지막으로 여자더러 왕을 하라고 시킨 것입니다. 그것이 선덕과 진덕 두 여왕이죠. 이들 뒤에 비로소 피가 섞인 제3의 인물이 왕이 됩니다. 성골의 시대가 끝나고 진골의 시대가 열리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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