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의 어원 상고사] 고조선 논쟁 
[정진명의 어원 상고사] 고조선 논쟁 
정진명 시인, 어원을 통한 한국의 고대사 고찰 연재 '05-고조선'
  • 정진명 시인
  • 승인 2022.10.13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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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지린의 고조선 연구와 윤내현의 고조선연구 책 표지.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굿모닝충청 정진명 시인] 이와 비슷한 시기에 진한에도 사건이 일어납니다. 북쪽에서 갑자기 철기로 무장한 세력들이 밀려든 것입니다. 이들도 한 부족이 아니라 최소한 3겨레가 연합한 형태입니다. 신라의 초기에는 박 석 김 세 성씨가 돌아가며 왕을 했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으로 알 수 있습니다. 북방에는 몽골족, 터키족, 퉁구스족이 초원에서 유목 생활을 했는데, 이들의 일파가 어떤 사정으로 말을 타고 단숨에 한반도를 가로질러 경주까지 내달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 원주민과 결합하면서 신라라는 왕조가 건국됩니다. 이들의 주 세력이 진한입니다. 진한의 ‘辰’은, ‘진’과 ‘신’ 두 가지로 발음되는데, 이들이 세운 나라가 ‘신라’인 것은 이런 영향도 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마한 밑에 있던 변한은, 경상남도와 전라남도 지역 일대를 차지했던 사람들인데, 이들도 뜻밖의 격동을 겪습니다. 갑자기 남쪽에서 인도말을 쓰는 사람들이 배를 타고 떼지어 몰려든 것입니다. 이들은 벼농사라는 당시의 최고급 기술과 제철 제련 기술을 갖고 옵니다. 그래서 그들을 지배층으로 맞아들여 한 왕조를 엽니다. 그것이 ‘가락국’임은 우리가 역사 시간에 배운 바죠.(「삼국유사」 가락국기)

구지봉(龜旨峯)에서 원주민들이 불렀다는 ‘영신군가(迎神君歌)’를 저는 고대 문학의 첫 장에서 배웠습니다.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어라. 내밀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라는 구절이 성 상징이라고 해석하는 문학비평 이론도 있어서 피식 웃은 적이 있습니다. 상상으로라면 무슨 짓인들 못 할까요만, 그런 무지막지한 상상력도 허용하는 것이 문학입니다. 사실만 다루는 역사학자들께서는 도저히 이해 못 할 일이지요. 저는 그런 환경에서 고대사를 혼자 바라보며 컸고, 늙었습니다. 이제 알량한 어원 지식으로 역사의 비밀을 파헤쳐 보겠다는, 망령된 소리를 지껄이니, 갈 때가 된 게지요. 하하하.

가야는 모두 여섯 부족입니다. 그래서 6가야라고 하죠. 금관가야, 아라가야, 소가야, 대가야, 고령가야, 성산가야. 가야는 우리 역사에서 가장 신비한 나라입니다. 신비한 나라라는 것은 아직 그 정체가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외국에서 들어온 부족이기 때문에 그들의 언어를 탐구하는 것이 이들의 정체를 밝히는 가장 중요한 방법입니다. 뒤에서 자세히 다루겠습니다만, 일단 여기서는 진도부터 나가겠습니다.

1993년에 처음 산 자가용이 현대자동차의 엘란트라였는데, 이 차를 타고 우리 집 온 가족이 전국을 들쑤시고 돌아다녔습니다. 이른바 ‘답사’죠.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들을 데리고 김해의 수로왕 발자취를 따라갔다가 기절할 뻔했습니다. 구지봉은 거북이를 닮았는데, 거북이 목에 구멍을 뚫어서 땅굴을 냈더군요. 아마도 이 도로를 계획한 시청 직원들의 눈에는 그게 그냥 언덕배기로 보인 모양입니다. 제 눈에는 목이 뚫린 거북이가 피눈물을 흘리며 바다로 돌아가려고 그 짧은 발을 버둥거리며 신음소리를 내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30년이 더 지났는데도 거북이 울음소리가 아직도 귀청에 쟁쟁합니다. 지금도 그 거북이는 차들이 매연을 뿜으며 달리는 아스팔트 멍에를 목에 지르고 바다로 가려고 버둥거릴 것입니다. 역사를 보는 우리네 안목이 이 지경입니다. 이 빌어먹을 후손들을 위해 김수로와 허황옥은 수만 리 위험한 뱃길을 헤쳐 여기까지 오신 걸까요? 2000년 전 그들이 막 도착한 김해 바닷가에 제가 있었다면, 저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폐하, 고향으로 돌아가십시오. 이곳은 당신들이 전하려는 그런 문화를 누릴 자격이 없는 땅입니다. 통촉하시옵소서.”

한반도 안의 왕조는 사정이 이러한데, 북방에서는 어땠을까요? 한 번 압록강과 두만강 이북으로 가보겠습니다.

1986년에 「한국고대사신론」이라는 책이 발간됩니다. 단국대학교 역사학과 교수인 윤내현의 책입니다. 이 책이 나오면서 해방 후 별다른 논쟁 없이 고요하던 한국 역사학계는 발칵 뒤집힙니다. 당시까지 고조선은 일제강점기의 논의대로 우리 민족의 시원을 보여주는 전설상의 나라로 존재했고,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고조선이 망하는 순간의 사건이 고조선 역사의 전부로 존재했습니다.

이렇게 된 데는 단군조선이 고려 때의 중 일연의 「삼국유사」에 신화로만 나온다는 사실이 깔려있습니다. 굳이 그 신화를 현실 속의 역사로 이끌어내기에는 자료가 너무나 부족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윤내현은 「삼국유사」의 고조선 조 설명이 매우 그럴듯하다고 주장하고, 그때까지 발굴된 중국 동북부 지역의 고고학 유물을 연구하여 그에 대한 증거로 제시한 것입니다. 물론 그전에는 재야의 사학자들이 이런 주장을 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윤내현은 재야 사학자가 아니라 대학 강단에 둥지를 튼 제도권 내의 학자였습니다. 논의의 수준이 단순한 주장의 차원을 넘어섰습니다.

이후 윤내현의 주장을 반박하는 역사학계의 주장이 연달아 나왔고, 그에 대한 반론과 재반론을 거치면서 10년이 지난 시점에서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 역사학의 논쟁은 쥐 죽은 듯이 잠잠해졌습니다. 논쟁이 없는 학문은 재미도 없고 발전도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역사학이 그러합니다.

사실 윤내현 교수의 주장은 아주 간단했습니다. 중원문화권의 성장에 따라 그 주변에 포진했던 다른 정치 세력들이 이합집산하면서 왕조 사회로 들어섰고, 그 과정에서 중국의 외연 확장에 따라 밀려난 동이족의 일부 세력이 점차 동쪽으로 오면서 고조선이 몇 차례 도읍을 옮긴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과정을 고고학 유물을 통해서 주장한 것이죠.

정진명 시인.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이런 주장은 윤내현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북한에서는 벌써 1960년대에 리지린이라는 학자가 중국 측의 기록을 박박 긁어모아서 그것으로 훌륭한 보석 목걸이를 만들어서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고조선 연구」가 바로 그것입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조리 정연한 논리와 그것을 분석하는 날카로운 추리력이 놀라웠습니다. 이 시대에 이토록 뛰어난 학자가 남한이 아닌 북한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경이롭게 느껴지기까지 했습니다.

이 책에서 리지린도 고조선이 도읍을 옮겼다는 사실을 주장했습니다. 이런 유사한 주장이 색깔을 좀 달리하여 남한에서 윤내현의 입을 통해 역사학계의 논쟁으로 떠오른 것입니다. 그리고 뒤늦게 한국에 소개되었지만, 소련의 역사학자 유 엠 부찐도 「고조선 연구」라는 책을 내어 비슷한 주장을 했습니다. 「고조선 연구」라는 똑같은 제목의 굵직한 책이 3권 우리 앞에 놓인 셈입니다.

저는 국어를 전공한 까닭에 이들의 논쟁보다 신화에 나오는 지명과 인명 같은 이름들을 더 재미있게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역사학자들이 놓치는 부분을 언어학 쪽에서 보면서 속으로 쾌재를 불렀습니다. 이렇게.

‘쌤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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