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의 어원 상고사] ‘조선’의 어원
[정진명의 어원 상고사] ‘조선’의 어원
정진명 시인, 어원을 통한 한국의 고대사 고찰 연재 '06-고조선’
  • 정진명 시인
  • 승인 2022.10.20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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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대제각출판사 영인본의 고조선. 사진=정진명 시인/굿모닝충청

[굿모닝충청 정진명 시인] 고조선은 기자조선 때문에 생긴 말입니다. 기자가 새로운 조선을 만들었기 때문에 그 앞의 조선은 고조선이 된 것입니다.(『삼국유사』) 단군과 기자에 이어 위만이 새로 왕이 됨으로써 위만조선으로 구분되죠. 흔히 이성계가 훗날 세운 조선 때문에 옛 조선을 고조선이라고 했다고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고조선이라는 말을 쓴 일연은 고려시대 사람입니다. 그 뒤에 만들어진 왕조의 이름을 알 수 없었죠.

어떤 조선이든 우선 조선(朝鮮)이라는 말이 문제입니다. 소리와 뜻 중에서 어느 것을 적은 것이냐 하는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습니다. 어느 쪽으로든 다 허용되기 때문입니다.

먼저 소리를 베낀 것으로 보자면 이와 유사한 말들이 많습니다. 조선, 주신(朱申), 숙신(肅愼), 식신(息愼), 직신(稷愼), 여진(女眞), 여직(女直) 같은 말이 모두 비슷한 소리를 냅니다. 이 말들이 모두 같은 말이라고 해도 그를 부정할 근거가 없습니다. 이 말의 뜻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옛말이기도 하고, 또 어느 겨레의 소리값인지도 정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 겨레의 말로 나뉘기 전에 나타난 말이어서 그렇습니다. 알타이 조어에서 갈라진 뒤의 여러 언어가 자기들 나름대로 적다 보니 이렇게 다양하고 비슷한 표기가 나타난 것입니다.

중국 북방에는 흉노족이 있습니다. 흉노를 구성하는 민족이 어떤 언어를 쓰고 어떤 민족이었든지 중국 쪽에서는 다 똑같은 놈들로 보입니다. 흉노는 중국의 북방에 사는 모든 겨레의 간판 왕국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고조선은 중국의 동쪽에 사는 모든 겨레의 간판 왕국이기에, 설령 소리를 그대로 베낀 말이라고 해도 동쪽이라는 뜻을 은연중 담았ᅌᅳᆯ 것입니다. 그에 적합한 소리값이 뜻까지 담으며 동쪽 겨레를 대표하는 말로 ‘조선’이 자리 잡은 것입니다. 아마도 한자 중에서 굳이 아침 조(朝)를 골라 쓴 것은 이런 방향성을 의식한 것이 아닌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다음, 뜻을 베낀 말이라면 ‘朝鮮’은 ‘아침(朝)이 또렷한(鮮) 나라’가 됩니다. 이럴 경우, 거기에 정확히 대응하는 말이 존재한다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아사달’입니다. 아사달은 ‘아사+달’의 짜임입니다. ‘달(*tal, dal)’은 ‘양달, 음달’에서 보듯이 마을을 뜻하는 북방 언어입니다. ‘아사’는 우리말에서도 처음을 뜻하는 말입니다. ‘아시빨래’는 ‘애벌빨래’라고도 하는데, 너무 더러워서 제대로 빨기 전에 대충 씻어내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청주에는 ‘아시고개’라는 지명도 있습니다. 아시고개 다음에 수름재인데, 아시고개는 첫 고개이고 수름재는 큰 재라는 뜻입니다. 증평에서 청주로 들어가기 전에 차례로 만나는 고개입니다. 그러니 아시고개는, 그다음에 마주칠 큰 고개인 수름재 때문에 생긴 말입니다. 이런 식이면 아사달은 맨 처음 도읍이라는 뜻이죠.

‘아사’는 처음이라는 뜻도 있지만, 그렇기에 작다는 뜻도 있습니다. 이런 뜻의 연장에서 ‘조선’의 선(鮮)이 작다는 뜻의 ‘앗’을 적은 기록이라는 주장도 최근에 나왔습니다. 『시경』 <대아>에 나오는 구절 ‘度其鮮原 居岐之陽(작은 산과 언덕을 헤아려, 기산의 남쪽에 터를 잡으셨네)’에 ‘鮮’이 나오는데, 이 말은 ‘작은 산’의 뜻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조선’이 ‘앗달’을 적은 말이라는 거죠. 이 주장은 아사달과 조선이 같은 말이라는 전제가 있습니다. 이 전제가 아주 강하게 작용하여 유추된 결론이죠.

다른 뜻도 있습니다. 만주어로 궁궐이나 누각을 ‘asari’라고 하는데, 이에 따르면 아사달(asari-dal)은 왕궁이 있는 도시라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또 만주어로 황금은 아신(asin)인데, 애신(愛新)이라고 적었습니다. 청나라 마지막 황제 푸이의 성이 ‘애신각라(愛新覺羅 아이신교로)’인데, 이 ‘애신’이 바로 황금을 뜻하는 만주어 표기입니다. 이에 따르면 아사달(asin-dal)은 황금(왕족) 부락을 뜻합니다. 왕의 혈통을 보통 황금으로 표시하죠.

몽골어로 ‘물’은 ‘usu’인데, 이것이 ‘달(dal)’과 결합하면 아사달(usudal)이 됩니다. 물가에 있는 도읍의 뜻이죠. 대개 옛날에는 큰 도읍이 들어설 때 강을 낍니다. 성을 강가에 세우는 것은, 강이 자연스럽게 성을 지켜주는 해자 노릇을 하기 때문입니다. 교통상의 편이함도 있죠. 이런저런 이유로 성은 강가에 짓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밖에도 ‘아사(어ᇫ)’는 우리말에서 어버이를 뜻하기도 합니다. 고려가요 ‘사모곡’에서 <아바님도 어이어신마라난 어마님가티 괴시리 업세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이곳의 ‘어이’가 바로 ‘엇(어ᇫ)+ㅣ’입니다. 이렇게 보면 아사달은 어버이(왕)의 도시를 뜻하기도 합니다. 다른 도읍에 비해 더 높은 지위를 나타낸 말입니다. 앞서 1만 년 전에 요동에서 살던 농경민들의 언어가 사방으로 퍼지면서 동북아시아의 알타이 제어를 형성했다고 했는데, 그중에서도 우리 말은 아주 일찍 갈라져 나왔다고 했습니다. 이런 말들을 보면 오히려 우리 말이 알타이 제어보다 1만 년 전의 그 언어에 더 가까운 형태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처럼 2,000년 전에 적힌 한 소리를 어느 겨레의 말로 푸느냐에 따라 뜻이 달라져서 이에 관한 학자들의 의견도 분분합니다. 어느 하나가 답이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없습니다. 대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각기 다른 언어를 썼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2,000년 뒤의 말로 2,000년 전의 말을 바라보자니 뜻이 이렇게 다양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모든 겨레의 말에서 아사달이 ‘수도(首都)’를 뜻한다는 점은 똑같습니다. ‘경주=계림=서라벌=서울=수도’인 것과 같습니다.

이상은 ‘조선’이 ‘아사달’과 같은 말이라는 전제로 풀어본 것입니다. 하지만 아사달은 수도 이름입니다. 이 두 낱말이 같을 수도 있지만, 다를 수도 있습니다. 지금 상태에서는 답을 확정할 수 없습니다. ‘조선’의 뜻은 소리나 뜻 어느 쪽으로 풀어도 명확한 결론을 내기 힘듭니다.

조선의 수도로는 아사달 이외에도 고조선 신화에 지명이 더 나옵니다. 즉 금미달로 갔다가 단군은 마지막에 장당경을 거쳐 아사달로 돌아가 신선이 되죠. 따라서 고조선의 도읍은 적어도 세 군데였다는 결론이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금미달’은 뭘까요? 여기서도 ‘달’은 도읍을 뜻하는 말입니다. ‘금미’는 ‘검’이죠. ‘임금, 상감, 대감’ 같은 곳에서 자취가 남아있듯이 신을 뜻하는 우리말입니다. 따라서 임금이 사는 곳을 뜻하는 말이죠.

비교언어학으로 보자면 만주어로 왕성을 ‘gemun’이라고 하는데, 이것을 ‘금미’로 적었을 것입니다. 옛날에는 왕이 곧 신의 대리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임금=무당. 이래저래 금미달은 신의 도읍이라는 뜻이니, 왕경을 가리키는 말에 적합합니다. 이것을 한자로 옮기면 뭐가 될까요? 신시(神市, ᄀᆞᆷᄋᆞᄃᆞᆯ)가 됩니다. 단군신화에 나오는 방홀(方忽), 궁홀(弓忽), 월당(月唐), 무엽산(無葉山), 삼위(三危), 구월(九月), 장당(藏唐)이 모두 같은 표기입니다.(이 지명들에 대해서는 나중에 시간이 나면 좀 더 자세히 다뤄보겠습니다.)

‘조선, 아사달, 금미달’과 뗄 수 없는 것이 ‘평양’입니다. ‘조선’은 나라 이름이고, ‘평양’은 도읍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조선=아사달’의 등식으로 풀이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아사달=평양’으로 풀이하는 것이 더 빠르고 옳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사달은 조선의 수도이기 때문입니다. 고조선의 수도이기는 ‘평양’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아사달과 평양이 같다고 보고 푸는 것도 좋은 방법이죠. 나중에 시간이 나면 이것도 따로 다뤄보겠습니다.

정진명 시인.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북한에서는 1960년대에, 남한에서는 1980년대에 고조선에 관한 논의가 일어나 일정한 성과를 거둡니다. 한국 전쟁이 끝나고 전후 복구가 추진되던 가운데 중국에 유학한 북한의 젊은 학자 리지린이 중국 역사학의 거두 고힐강을 지도교수로 하여 고조선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습니다. 고조선의 수도는 한반도가 아니라 요동의 대릉하 어디쯤 있었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의 식민사학이 고조선의 수도 평양을 지금의 평양으로 못 박아 놓은 상태에서 젊 은 조선 학생 하나가 혈혈단신 중국의 대학자를 설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입니다. 당연히 지도교수 고힐강은 리지린의 의견에 선뜻 동의할 수 없었죠. 그래서 그 자신이 중국 고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네 가지 사서(사기, 한서, 후한서, 삼국지)를 다시 공부하며 리지린의 학위논문을 검토합니다. 그 논문의 철저한 자료 인용과 명석한 분석을 반박하지 못하고 박사학위논문을 통과 시킵니다. 곧바로 북조선으로 돌아온 리지린은 자신의 논문 내용을 발표하는데 그 내용이 그대로 북조선의 역사 교과서에 실립니다.

리지린의 주장이 1970년대까지 북한 학계의 공식 견해였습니다. 이들 주장은 지금은 어떨까요? 달라졌습니다. 고조선은 처음부터 평양에 있었다는 논리입니다. 한술 더 떠, 평양 인근에서 단군의 뼈가 출토되었다며 단군릉을 조성했는데, 이집트 피라미드의 뺨을 칠 정도입니다. 조선의 수도 평양은 처음부터 망할 때까지 지금의 평양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평양에 수도를 둔 북한 정권의 정당성을 역사학이 뒷받침하려는 의도라고 해석합니다.

남한에서는 1980년대 윤내현의 새로운 주장이 나온 뒤로 한 10여 년 시끄럽게 논쟁하더니, 지금은 조용해졌습니다. 남한의 국사학계가 일제강점기 식민지 시절의 논리로부터 한 발짝도 벗어나지 않은 옛 주장으로 되돌아갔습니다. 한때 창궐했던 재야 사학을 모르쇠로 제압하고, 식민사학의 첫 발자국인 일본 스승들의 학설을 보충하느라 바쁩니다.

제 입맛에 맞춰 고조선을 바라보는 것은 남과 북이 똑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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