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재 콩트, 살다보면…] 사진토크
[정덕재 콩트, 살다보면…] 사진토크
  • 정덕재 시인·영상기획자
  • 승인 2022.10.28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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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굿모닝충청 정덕재 시인·영상기획자] 아들이 학교 앞 원룸에 들어간 지 어느새 반년이 훌쩍 지났다. 녀석은 군 제대 후 복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집을 나왔다. 몸은 독립했어도 월세나 용돈은 지원을 받고 있어 내정 간섭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근황을 물어보려 가끔 전화를 걸면 답은 거의 비슷하다.

“누워있어.”

“오래 누워있으면 허리 아프지.”

“앉아있을 데가 없어.”

원룸을 구하러 갔을 때 방문을 열자마자 숨이 막혀왔던 게 떠올랐다. 작은 침대를 기준으로 한 발자국 건너편에 옷장과 책상 그리고 냉장고와 작은 싱크대가 붙어 있어 최소한의 동작만 허용되는 구조였다. 학교 주변 원룸 대부분이 비슷한 형태였다. 건물주는 최대한 방을 많이 만들어 넉넉한 월세를 받을 수 있는 건축에 충실했고, 집 나온 아이들은 그곳에서 잠만 잘 뿐이었다.

“음식을 해 먹는 게 귀찮기도 하고 물건을 최소한으로 두어야 그나마 덜 답답해.”

생수 몇 병조차도 방안을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고 생각해 낱개로 사다 먹는다고 했다.

“투룸으로 옮길까?”

“오래 있을 것도 아닌데 뭘. 그냥 잠만 자는 데는 불편하지 않아. 답답한 거 빼 놓고는.”

아들은 잠시 머문다는 생각으로 지내고 있다고 했다. 추위가 남아있던 2월 말에 들어간 원룸생활이 낙엽 지는 시간을 맞고 있다.

이십 대 중반의 건강한 청년으로 자라고 있어도 물가에 있는 아이처럼 걱정이라 종종 문자를 보낸다. 긴 문자에 대개는 이응 하나만 보내는 답장이 대부분이다.

“라면보다는 밥을 먹어. 채소도 많이 먹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ㅇ”

“달랑 이응 하나보다는 좀 길게 답장을 해봐”

이응이나 히읗 하나 아니면 키읔 하나를 보내는 문자는 젊은세대 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종종 쓰는 습관이다. 흐름이 그렇다 보니 타박할 명분이 없기는 해도 문장 쓰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긴 답장을 요구하곤 했다. 그러면 한 두번 길게 문자를 보내온다.

“ㅇㅇㅇㅇㅇㅇㅇㅇ....”

아들은 이응 스무 개를 보내면서 긴 답장이라는 농담을 달았다. 나는 새로운 소통의 방식을 찾으려고 색다른 주문을 했다.

“생활하면서 느끼는 인상적인 사진을 한 장씩 보내봐.”

“어떤 사진?”

“밥 먹는 거, 친구들하고 노는 거, 학교 돌아다니는 거, 아니면 풍경 사진이라도...”

 

다음날, 학교 후문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학교에 간다는 뜻으로 읽혔다. 높지 않은 고갯길은 학교생활의 고달픔을 보여주는 의미로도 보였다.

“학교가 너무 재미없어.”

“왜 재미가 없는데?”

“글쎄, 마스크 쓴 학생들이 무더기로 강의실에서 나오는 모습을 보면 숨이 막히고.”

학교 다니는 것이 즐겁지 않다는 말을 수시로 했다. 그렇다고 학교를 그만두자니 미래는 깜깜한 터널로 다가와 청춘은 방황과 고뇌와 혼란의 시절을 보내는 중이다.

나는 소주병과 두부두루치기 사진을 보냈다.

“조금만 마셔. 뒤에서 밀어줄 사람도 없잖아”

오래전, 집 근처에서 술 취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면 아들은 툴툴거리며 나와 반 발자국 뒤에서 내 등을 밀어주었다. 집으로 가는 길이 한결 편안했다. 사진을 보고 그때의 모습이 떠오른 모양이었다.

“그렇지. 이젠 밀어줄 사람이 없지. 든든한 아들이 밀어줄 때가 좋았는데.”

잠시 추억에 잠긴 문자를 보내면 나이든 몸을 생각하라는 답장이 왔다. 씁쓸하지만 유행하는 말로 ‘현타(현실자각타임)가 왔다.

 

며칠 전에는 손에 든 우유 갑 사진 한 장이 도착했다.

“오늘 첫 끼니는 우유 한잔.”

“사람이 밥심으로 사는 건데.”

햄버거, 샌드위치, 치킨 아니면 삼각김밥을 일상적인 끼니로 받아들이는 청년에게 밥심이라는 말은 분명 꼰대의 화법으로 들렸을 것이다.

“밥을 먹긴 먹어야 하는데...”

결국 우유갑 사진 한 장과 말 줄임표는 용돈이 떨어졌다는 뜻이었다. 일상의 사진으로 소통하려는 노력이 교묘한 용돈 타내기로 전락했다는 생각이 들 때쯤 카톡이 날아왔다.

“쓸쓸한 가을에는 소주도 어울리지.”

평소에는 술을 줄이라고 말하던 녀석이 용돈 입금 확인과 함께 음주를 허락한다는 뉘앙스를 보였다. 문자를 보낼까 말까 생각하다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이 정도 눈치면 절에 가서도 새우젓은 얻어먹겠군.”

정덕재 시인·영상기획자
정덕재 시인·영상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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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재(시인·영상기획자)
199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으로 등단. 시집 ‘비데의 꿈은 분수다’, ‘새벽안개를 파는 편의점’, ‘간밤에 나는 악인이었는지 모른다’, ‘치약을 마중나온 칫솔’, 청소년시집 ‘나는 고딩아빠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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