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 196] 가을바람이 만든 풍경...당진시 순성면 소나무
[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 196] 가을바람이 만든 풍경...당진시 순성면 소나무
  • 채원상 기자
  • 승인 2022.10.31 16: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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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글 백인환 작가, 사진 채원상 기자] 바람이 만든 풍경은 같은 장소라도 매일이 다르다.

여름철 무서운 속도로 뭉게구름 등을 밀어내는 바람과 달리, 대류현상이 적은 가을 하늘은 선선한 바람에도 일렁이는 새털구름 때문에 청명한 하늘도 매일 변한다.

한여름의 땡볕을 받아 한없이 자랄 것 같은 억새는 9월부터 핀 꽃이삭들이 바람의 의도대로 춤을 추면서 시시각각 은빛 물결을 만들어낸다.

너른 황금 들판의 벼도 바람에 고개를 들어 올려 자신에게 매달린 수많은 알곡을 보여주며 탈곡을 기다리고 있다.

이렇듯 우리 눈에 보이지 않으나, 가을날 우리 곁에서 바람이 만든 풍경으로 우리는 매일 바람을 느끼며 살고 있다.

당진시 순성면 옥호리 소나무도 바람이 만든 풍경이다.

두 그루의 소나무는 한 방향으로 가지와 잎을 내고 있다.

비바람에 줄기가 부러지면서 바람이 부는 한쪽 방향으로 자란 것이다.

아무래도 주변에 숲이 형성되기 전, 옥호리 마을에 먼저 터를 잡았던 두 그루의 소나무는 자신을 돌봐주는 동료 없이 자라다가 비바람에 부러진 듯하다.

마치 절벽에서 자라는 소나무처럼 떨어지지 않으려고 굵은 뿌리로 바위를 움켜잡고 버텨내고, 잎을 내다가도 바람에 꺾이고 부러져 남은 잎으로 끈질기게 살아가는 소나무 모습처럼 말이다.

그래도 바람을 이기려 하기 보다는 순응하려면 자신만의 생각으로 살아가기에는 너무 버거운 것도 현실이다.

한쪽 몸을 상실한 채 살아가기 위해서는 물리적으로 균형감 있게 자라야 하는 지혜와 함께 자신의 의지를 독려하는 동료가 필요한 법.

세찬 비바람에 꺾이고도 살아남은 이유는 한 그루가 아니라, 서로 의지하면서 삶의 지혜를 나눌 수 있었던 또 하나의 동료가 있었기 때문은 아닐는지.

아마도 이런 점 때문에 마을 주민은 두 그루에게 마음이 쓰였고, 아름다운 모습을 갖춘 노거수를 아꼈던 역사 때문에 보호수로 인정받았던 것 같다.

소나무 아래에 가을바람이 분다.

바람이 만든 풍경 안에서 하늘을 쳐다봤다.

소나무 가지와 잎 사이로 비친 하늘에 뭔가가 이동한다.

흑두루미를 비롯해 많은 새들이 날아가고 있다.

너른 들판에 수확한 빈 논에 떨어진 낙곡을 찾아 북쪽에서 내려온 겨울 진객들이다.

이들도 바람을 타고 북쪽에서 날아왔다.

220년 간, 지금의 소나무를 만들었던 바람은 매년 동일한 시기의 바람을 따라 이동하는 새들에게도 너무나 중요한 존재이다.

시시때때로 변덕이 심한 바람임에도 불구하고 바람을 타야 멀리 갈 수 있는 새에게 북반구의 대륙에서 부는 가을바람은 그래도 믿을 수밖에 존재이다.

그리고 바람이 만든 풍경을 보고 느끼는 이 순간의 우리에게도 가을바람은 너무나 소중하다.

단순히 물리적으로 만들어진 공간과 사물을 보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삶의 지혜를 나누고 서로를 아끼는 마음을 이해하는 시간을 마련해 준 연유가 바람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가을은 저물어가고 있다.

그래도 바람이 만든 풍경을 느끼기에는 당진의 옥호리는 여전히 매력적인 시간이 남아있는 듯하다.

당진시 순성면 옥호리 350-1 소나무 2본 220년(2022년)

[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는 충청남도 지원을 받아 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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