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의 어원 상고사] 단군의 나이 
[정진명의 어원 상고사] 단군의 나이 
정진명 시인, 어원을 통한 한국의 고대사 고찰 연재 '09-단군’
  • 정진명 시인
  • 승인 2022.11.10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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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 자료=정진명/굿모닝충청
환단고기(단단학회, 1979). 자료=정진명/굿모닝충청

[굿모닝충청 정진명 시인] 『삼국유사』 고조선 조를 보면 단군은 기묘년에 기자를 피해 장당경으로 옮겼다가, 뒤에 아사달에 돌아와 숨어서 산신이 되었는데, 그때 나이가 1,908세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이런 것을 근거로 단군이 설화일 뿐이라고, 단칼에 잘라 말할 사람들은 뻔합니다. 일본 학자들과 그들에게 배운 실증주의 사학자들이죠. 이들에게 문학은 역사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선 역사와 신화를 분리하려고 들죠. “단군이 신화냐, 역사냐?”라고 물으며 따지는 겁니다. “단군은 신화이므로, 역사가 아니다!”라고 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이분법 함정이죠.

하지만 문학은 문학만의 표현법이 있어서 문학을 잘 아는 사람은 그런 소리를 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홍길동전』이나 『심청전』 같은 소설을 놓고 이게 역사나 문학이냐 따지면서 문학이라는 결론이 나면 그것은 역사가 아니니 역사자료로 쓸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린다면 어떨까요? 코흘리개도 웃을 겁니다. 『홍길동전』에는 조선 시대의 핵심 쟁점인 서얼 문제가 아주 잘 드러나고, 『심청전』에서는 춘향의 신분 이동을 둘러싼 당시 사람들의 감정이 아주 잘 담겼습니다. 역사보다 더 역사 같은 게 문학입니다. 『단군신화』라고 해서 다르지 않습니다. 고조선의 ‘정사(正史)’가 없다면 정사보다 더 값진 것이 ‘신화 문학’입니다. 신화는 역사의 압축파일이죠. 사마천의 『사기』에 위만이 찬탈한 조선이 나오는데, 위만 이전의 ‘조선’이 없을 수 없습니다.

단군이 신화냐 역사냐는 무식한 질문을 멈추시기 바랍니다. 그런 물음은 자신의 얕은 밑천만 드러낼 뿐입니다. 역사 연구가 있기 전에는 신화가 곧 역사였습니다. 전 세계에 전해오는 수많은 구비문학이 모두 신화이고 그 겨레의 역사입니다. 『오디세이』나 『일리아드』, 또는 『마하바라타』가 신화이니 역사 연구자들이 인용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면 어떤 반응이 올까요? 이런 교활한 질문에 숨겨진 의도는 이런 겁니다. ‘『삼국사기』의 초기 기록과 『삼국유사』는 설화일 뿐이니, 역사 연구에서는 모두 무시해야 한다!’ 어디서 많이 듣던 말 아닌가요? 일제강점기 실증사학자들의 주장입니다. 제국주의의 앞잡이인 일본 학자들은 실제로 그렇게 한국사를 요리했습니다. 거기다가 그들의 한국 제자들이 조미료까지 솔솔 뿌린 요리를 100년 가까이 교과서로 퍼먹다 보니, 이분법의 함정도 분간 못 할 만큼 다들 미친 겁니다. 끌끌끌! 혀를 차면서 본론으로 돌아갑니다.

한 사람이 1,908년을 산다는 것은 누가 봐도 말이 안 되는 소리입니다. 하지만 신선이라면 다르죠. 신선은 생명이 무한대입니다. 죽지 않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안 죽을까요? 역사학자들은 그럴 수 없다고 잘라 말합니다. 그러나 문학도인 저는 사람이 죽지 않는 법이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자식을 통해 자신을 복제합니다. 자신의 복제물이 자식이고, 자식은 나의 모든 것을 다음 대로 이어갑니다. 그게 바로 영생의 비밀이고 인간이 자식에게 집착하는 이유입니다. 신선에게는 이름이 없습니다. 그냥 신선이고 영생합니다. 그 이유가 바로 이런 복제 능력입니다.

그러니 문학도의 눈으로 보면 단군 나이 1,908살은 한 사람의 나이가 아니라 한 사람의 자식들이 왕위를 대대로 이어간 기간입니다. 간단명료하죠. 고구려 왕 ‘칸’의 나이는 705살, 백제 왕 ‘건길지’의 나이는 678살, 신라 왕 ‘마립간’의 나이는 992살. 조선 왕 ‘단군’의 나이는 1,908살! 이게 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죠? 그건 앞만 보고 달리느라 옆을 못 보는 역사학자들이나 그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문학은 옆을 보는 표현법입니다. 일본의 도공 심수관은 정유재란 때(1598) 끌려갔는데, 지금도 살아있습니다. 421살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있는 일본의 임금 ‘천황’은 몇 살일까요? 한 2,000살쯤 되나요? 만세일계가 되려면 그 정도 나이는 먹어줘야 하지 않을까요? 정작 자기네 나라에서는 버젓이 벌어지는 일을, 유독 한국의 역사에서만 안 된다고 강짜 부리는 게 일본 학자와 그의 한국 제자들입니다. 

‘단군’이 임금을 뜻하는 동이족의 보통명사라면 단군은 몇 대인지 모르지만 1,908년에 걸쳐 왕 노릇을 이어간 것입니다. ‘단군’이 보통명사임이 분명한 것은 『삼국유사』의 기록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맨 뒤에는 ‘왕력(王曆)’이 있는데, 한 마디로 이것은 왕의 연대 표입니다. 거기에 동명성왕 이름 밑에 ‘壇君之子’라고 적어놓았습니다. ‘단군의 아들’이라는 말입니다. 주몽이 단군의 아들인가요? 그럴 리가요!

주몽은 단군의 아들이 아닙니다. 나중에 왕이 된 사람이고, 그 아비는 누군지 모릅니다. 단군의 아들이란, 평지돌출로 왕이 된 사람에게 붙인 최고의 찬사죠. 이로 보면 분명해집니다. 당시에는 왕을 옛 조선의 단군을 이어받은 것으로 해야 권위가 섰다는 것이죠. 실제로 일연이 살던 고려 때까지도 동방의 우리 민족은 임금을 단군이라고 불렀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 착안하여 『환단고기』에서는 1,908년을 여러 임금의 대수로 환산하여 수많은 임금을 만들어냈습니다. 역사책을 아예 새로 썼죠. 위서다 진서다 말이 많아서, 그 자체로 저로서는 역사 얘기를 할 때 오히려 거론하기 거북한 책입니다. 그 책을 인용하는 순간, 진짜다 가짜다 하는 말싸움에 휘말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원학만으로도 역사 얘기를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저로서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싸움에 낑겨서 헛심 쓰느라 한세월 허비하느니, 차라리 아예 안 건드리는 게 낫죠. 하하하.

『환단고기』는 언제 발견되었는지 분명치 않은 책인데, 제가 고대사에 관심이 있던 1980년 무렵에 옛날식으로 제본이 된 한정판 원본이 서울 안국동의 고서점에 나와서 그걸 사둔 게 아직도 책꽂이에서 먼지 뒤집어쓴 채 꽂혀있습니다. 하도 안 봐서 미안한 마음에 이번에 먼지를 털어내고 뒤에 서지사항을 보니, 단단학회(檀檀學會)에서 신시개천 5876년에 낸 책인데, 괄호 안에 적어 넣은 서기를 보니 1979년이네요. 제가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강퍅한 서울 생활을 시작하던 시절입니다.

차례를 보니, ‘삼성기, 단군세기, 북부여기, 태백일사’로 짜였는데, 제가 알기로는 모두 민족종교 쪽에서 흘러나온 책입니다. 단단학회도 학술단체인 줄 알고 검색해보니, 웬걸, 민족종교 단체입니다. 몇 해 안 가 이 책을 몇 분이 번역하여 책으로 냈더군요. 저도 그 책을 사 보았는데, 그때까지 교과서에서 배운 역사 내용과 너무나 다른 용어와 이야기에 골머리가 딱딱 아파서 반도 못 읽고 덮어버린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후 국수주의 사학의 정통 역사서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 밖에도 『신단실기』, 『신단민사』, 『삼일신고』 같은 경우는 대종교 쪽에서 민족 신앙 앙양 차원에서 만든 책이어서, 역사론에 적용하기에는 너무 소박하고 위험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계연수가 묘향산 바위에 새겨진 것을 대종교에 전했다는 ‘천부경’도 해월 최시형 이전의 사유에서는 보기 힘든 구절이 나옵니다. ‘人中天地一’이 그런 경우죠.(『한국의 활쏘기』, 1999) 이걸 또 음양오행이니 『주역』이니 『노자』니 하는 것들과 한 두름으로 꿰어 민족 사상을 만들어내려는 여러 시도를 보면, ‘나가도 너무 많이 나갔구나!’ 하는 생각에 탄식이 절로 듭니다. 역사와 신앙은 섞이면 안 됩니다. 그런 자료들이 아니라도, 우리가 날마다 쓰는 말의 뿌리 속에는 얼마든지 우리 역사의 옆구리를 엿볼 수 있는 단면들이 많습니다.

2000년 무렵에 군인들의 역사 인식에 큰 문제가 있다는 신문 보도가 나간 적이 있습니다. 뭐냐면 군대에는 정훈장교가 있는데, 이분들이 1990년대에 유행한 민족주의 국수주의 역사학을 민족 자부심 앙양 차원에서 군인들에게 정신교육을 한 것입니다. 그 내용이 앞서 말한 고대사이고, 주로 당시 국수주의 재야 사학자들이 주장한 내용을 그대로 정훈 교육 시간에 전달한 것입니다. 우리나라 청년들이 대부분 군대를 다녀오는데, 그때 민족 자부심 앙양 차원에서 배운 역사 내용이, 중고등학교 국사 시간에 배운 내용과 너무 다르다 보니, 혼란을 겪는다는 그런 얘기였습니다.

식민사관에 뒤덮인 학교 교육의 답답한 역사 이야기만 듣다가 광개토왕이 말을 타고 시라무렌(Šira Mören)까지 내달리는 이야기를 들으면 가슴이 뻥 뚫리는 경험을 합니다. 열등감으로 가득 찬 우리 역사가 사람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갈래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죠. 도대체 역사학자들이 우리의 어린 청춘에 저질러 놓은 열패감은 무엇이고, 그 반대급부로 만주는 우리 땅이라고 소리쳐, 결국 동북공정이라는 부메랑을 맞은 현실은 또 뭐란 말입니까? 우리는 어느 장단에 춤을 추어야 할까요?

역사란 일종의 퍼즐 맞추기 게임입니다. 어딘가 안 맞는 구석이 생기면 그것을 제대로 맞추려고 이 자료 저 자료 찾아서 아귀가 완벽하게 틈 없이 맞을 때까지 재구성하고 재배열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맞춰온 모든 질서를 깡그리 무시하고 여기저기 바탕을 칼로 잘라서 꿰어맞추면 게임은커녕 모든 게 망가집니다. 속은 시원하겠지만, 실상은 더욱 헝클어집니다. 우리 조상들이 세계를 몽땅 지배했었으면 좋겠지만, 그럴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를 위해서도 남을 위해서도 ‘사실 그대로’ 아는 게 좋습니다.

정진명 시인.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정진명 시인.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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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ONG.A 2022-11-10 13:48:27
가끔은 그 사실 그대로라는 말은 참 무섭지 않을까 싶습니다. 타인이 권력으로 행사한 범죄를 당사자가 모르고 지나가야 한다는 것, 진실을 모르는게 무서운 일 아닐까요? 다행히도 무결해서 부모님이 물려주신 모습 그대로 살 수 있고, 순결도 지켰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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