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 눈] 어버이날과 용돈
[시민기자 눈] 어버이날과 용돈
  • 홍경석
  • 승인 2015.05.19 10: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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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경석수필가

[굿모닝충청 홍경석 수필가] “여기 육개장 하나 주세요. 소주도 한 병 주시구요.” 그리곤 대낮부터 술을 먹었다. 애초 집을 나올 적엔 큰 맘 먹고 보신탕을 한 그릇 먹을까도 했다. 하지만 같이 가서 개장국을 먹자는 나의 제안에 아내는 부처님 오신 날이 가까웠거늘 그 무슨 망발이냐며 노발대발했다.

또한 아침에 먹은 떡이 배탈을 일으켜 설사를 세 번이나 하는 바람에 아무 것도 먹기 싫다며 손사래를 쳤다. ‘낮술에 취하면 제 어미 아비도 몰라 본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자그마치 40년 주력(酒歷)을 자랑하는 나와 같은 주당에게 있어 그깟 소주 한 병은 기실 이빨에 끼고 목구멍에 묻어 넘어가는 것도 별로 없는, 따라서 매우 약소한 취기만을 제공할 따름이었다.
그렇게 육개장과 소주를 먹은 뒤 셈을 치르고 집으로 오다가 도서관에 들러 책을 세 권 빌렸다. 야근을 마치고 나온 어제 아침엔 평소처럼 두어 시간 눈부터 붙인 뒤 점심 겸 소주도 곧잘 마신다. 그래야 야근을 하면서 부족했던 잠을 실컷 잘 수 있는 때문이다.

물론 어제 빌린 책은 집에 와서 냉장고에 모셔져 있던 소주를 더 마시는 바람에 볼 수 없었다. 그 책들은 다시 또 야근을 들어가는 오늘 밤에 읽으면 된다. 오늘은 5월 8일 ‘어버이날’이다.

어버이의 은혜에 감사하고, 어른과 노인을 공경하는 경로효친의 전통적 미덕을 기리는 날인 것이다. 그러나 이 날이 처음 제정될 때는 어버이날이 아닌 '어머니날'이었다. 우리나라의 어버이날은 1956년 국무회의에서 매년 5월8일을 어머니날로 정해 기념하면서 시작됐다.

그러니까 처음에 아버지는 빠져있었다는 셈이다. 아무튼 그렇게 지정되어 17년 동안 이어지다가 어머니 뿐 아니라 아버지를 포함한 어른과 노인도 공경해야 한다는 여론이 커지면서 1973년부터는 지금과 같은 ‘어버이날’로 개칭되어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어쨌거나 어버이날이든 어머니날이든 간에 문제는 과거처럼 살가운 가족관계의 형성은 갈수록 퇴색되고 심지어는 이 날이 되어도 자식이 부모를 찾아뵙지 않는(혹은 못 하는) 상황이 더욱 악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어찌어찌 대학까지는 가르쳤으되(부모의 입장에서) 하지만 여태 정규직으로 취업을 못 한 안타까운 자녀의 심정은 그야말로 ‘먹고 살기도 힘든데’, 어찌 어버이날이 되었다고 해서 ‘구태여’ 부모님까지 일일이 챙기기를 바랄 수 있느냐는 것이다.

따라서 자녀가 경제적으로 참 어려운 사면초가의 어려운 형편이라고 하면 그들이 집에까지 오길 바란다는 건 분명 ‘바람(희망)’을 넘어선 ‘욕심’이란 공식이 도출되는 셈이다. 어버이날인 오늘도 근무인지라 지난주에 미리 숙부님을 찾아뵙고 선물과 점심대접까지 마쳤다.

그렇지만 내 아이들에겐 굳이 집에까지 와서 그리 하라고 강권하고픈 맘이 없다. 다만 용돈이나 조금 송금해주면 그나마 고맙겠다. 살기가 어려울수록 실리를 따지는 게 낫다. 집에 오고 가며 선물까지 준비하자면 자칫 용돈보다 더 많은 경비가 초래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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