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의 어원 상고사] 단군과 기자 1
[정진명의 어원 상고사] 단군과 기자 1
정진명 시인, 어원을 통한 한국의 고대사 고찰 연재 '10-단군과 기자1’
  • 정진명 시인
  • 승인 2022.11.17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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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문(단국대출판부 영인본). 사진=정진명 시인/굿모닝충청
천자문(단국대출판부 영인본). 사진=정진명 시인/굿모닝충청

[굿모닝충청 정진명 시인] 조선은 단군조선 기자조선 위만조선으로 나눕니다. 언뜻 보면 단군, 기자, 위만은 사람 이름 같습니다. 실제로 사마천의 『사기』를 보면, ‘위만’은 중국과 조선의 양쪽 틈바구니에 끼었다가 속임수로 조선을 차지한 인물입니다. 그 탓에 기자조선의 마지막 왕은 남쪽으로 내려가 삼한을 세우죠.

그렇다면 단군과 기자도 위만처럼 사람의 이름일까요? 단군이 1,908년을 살았다는 것으로 보면 이것은 사람의 이름일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도 ‘단군’은 왕을 뜻하는 고유언어였을 것으로 봅니다. 요건 잠시 후에 살펴보기로 하고, 그렇다면 ‘기자’는 어떨까요? 우리는 은나라의 현자였던 ‘기자(箕子)’가 은나라가 망하자 동쪽으로 와서 왕이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언뜻 보기에도 이것은 이상합니다. 그 넓은 동쪽 땅의 주인이 순순히 왕의 자리를 내주었다는 것이 말이죠. 우리는 ‘기자’라는 말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조선 앞에 꾸밈말로 붙은 말들은 모두 어떤 인격체에 대한 이름입니다. ‘단군, 기자, 위만’이 그렇습니다. 위만은 사람이 분명하지만, 앞의 단군과 기자는 사람이기보다는 어떤 인격을 대표하는 보통명사일 것 같습니다. 단군은 분명히 임금을 뜻하는 말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기자는 어떨까요? 기자도 앞선 ‘칸, 건길지’ 같은 말로 보면 안 될까요?

이런 의문을 풀 단서가 조선 시대 1575년에 간행된 『천자문』에 있습니다. ‘王’ 밑에 ‘긔ᄌᆞ 왕’이라고 언문 풀이가 달렸습니다. 옛날에는 왕을 ‘기자’라고 했다는 것이죠. 그러면 이런 의문은 싹 풀리죠. 아하, ‘기자’도 ‘단군’처럼 통치자를 나타내는 말이었구나! 중국사에 등장하는 은나라 사람의 이름이 아니었다는 것이죠. 왕을 가리키는 보통명사를, 중국 은나라의 현자를 가리키는 고유명사로 여겼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기자’의 뿌리를 조금 더 파헤쳐보겠습니다. 바이칼호가 지금은 러시아에 소속되었지만, 그것은 극히 최근의 일입니다. 몽골이 나라를 세우면서 양쪽의 거대국가인 중국과 러시아에 땅을 떼어주는 조건으로 독립 협상을 한 결과입니다. 중국에는 내몽골을, 러시아에는 바이칼 주변을 떼어주고 독립 국가로 인정을 받죠. 몽골에 가족 여행 갔을 때 현지 안내인에게 들은 설명입니다.

바이칼호 둘레에는 몽골족의 일파인 부리야트족이 삽니다. 일본학자(野村正良)의 연구에 의하면, 부리야트 어에도 방언이 몇 개 있는데, 동 부리야트 방언 중에도 크게 3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qori(xori), qudara(xudara), Barguʒin이 그것입니다. qori 방언 안에도 다시 작은 방언이 있는데, 그 중에 놀랍게도 ‘kiʒiŋa’가 있습니다. ‘ka’는 고대 터키어로 ‘동족(同族)’을 뜻하니, ‘kiʒi’는 정확히 ‘기자’와 일치합니다. ‘kiʒiŋa’는 ‘기지 사투리를 쓰는 겨레’의 뜻입니다.

주몽의 어머니 유화가 해모수와 사통하여 옆구리로 알을 낳았다가 곤경을 당하는 설화는 원래 고리국(槀離國)의 신화였습니다. 이 ‘고리’가 고구려 5부족 중의 하나인 ‘계루(桂婁)’라는 것이 우연이 아님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 말이 그 말입니다. 그리고 이 말은 위의 부리야트 방언 ‘qori’와 정확히 일치함을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백제를 일본에서는 ‘kudara’라고 불렀는데, 부리야트 ‘qudara’와 똑같은 것을 보면 정말 놀랍죠. 백제는 고구려의 일파가 한강에 내려와서 세운 나라입니다. 현재의 러시아 부리야트 공화국에 살던 몽골족 일파인 고리족이 남쪽으로 내려와 (고)구려를 세우고, 그들과 분리된 구다라족이 더 남쪽으로 내려와 백제를 세운 것임을 또렷이 볼 수 있습니다. 백제 왕족의 성이 ‘부여’씨이고, 이 말이 ‘부리야트’를 한자음으로 적은 것이라는 점은 이제 놀랍지도 않습니다.

물론 이 방향을 뒤집어볼 수도 있습니다. 즉 2,000년 전 고대 동북아 지역에 넓게 퍼져 활동하던 부리야트 족이 그 뒤 세력을 잃고 바이칼 호수 근처까지 밀려갔다고 봐도 된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확인할 길은 없습니다. 그래서 일단 지금 부리야트에 사는 그 사람들이 고대 동북아에서 활동하던 그 겨레라고 가정하고서 논의를 진행하는 겁니다. 말하자면 2,000년 전 바이칼호에 살던 사람들이 초원지대에서 활동하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는 전제죠. 저로서는 어느 방향이 옳은 것인지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광주 『천자문』에 따르면 ‘기자’는 조선 시대까지 쓰이던 왕을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백제의 왕명에서도 이런 이름을 볼 수 있습니다. 백제의 피지배층인 토착민들은 왕을 ‘건길지(鞬吉支)’라고 했고, 지배층은 ‘어라하(於羅瑕)’라고 했다고 『주서(周書)』에서는 말합니다.
 王姓夫餘氏, 號於羅瑕, 民呼爲鞬吉支, 夏言幷王也.
‘어라하’는 ‘남자’를 뜻하는 몽골어 ‘ere’와 ‘존자’를 뜻하는 접미사 ‘ge’가 만나서 이루어진 말입니다. 또 ‘하’는 왕을 뜻하는 ‘한, 칸, 간’로 봐도 되니, 우두머리를 뜻하는 말임을 선뜻 알아볼 수 있습니다. ‘건’은 몽골어로 ‘크다’는 뜻의 ‘kən’이고, ‘길지’는 ‘kiʒi’의 음차 기록입니다. ‘기자’는 은나라의 현인을 가리키는 사람 이름이 아니라, 왕을 뜻하는 우리말이었음이 또렷이 드러났습니다. 아마도 지배층은 자신들의 왕을 자신들의 언어로 말했을 것이고, 피지배층은 지배층의 출신 부족을 뜻하는 말로 썼을 것입니다.

아울러 같은 책(『주서(周書)』) 같은 곳(백제)에 “왕의 아내는 ‘어륙(於陸)’이라고 하는데 중국어로 비(妃)가 된다.”고도 나옵니다. 몽골어에서 결혼으로 맺은 친족을 가리키는 말이 ‘urug’이어서 똑같습니다. 백제의 지배층이 몽골어를 썼음을 또렷이 보여주는 말입니다. 이 말이 지명에도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얼마 전에 사진 찍는 아내를 따라서 아산 현충사에 갔습니다. 춘삼월이면 고택 앞에 홍매화가 피는데, 찍사들의 성지입니다. 거기에 500년 된 은행나무가 있고, 건너편 산비탈에 과녁이 있어서 해마다 이순신 장군 탄신 축제할 때 대통령기 활쏘기 대회를 합니다. 전통 활쏘기는 엄연히 대통령 의전에도 들어있습니다. 대통령이 직접 활을 쏘는 의전은 현충사 대회와 이순신을 기리는 한산섬의 행사 때 치르는 대회입니다. 역대 대통령 중에서 박정희는 꾸준히 활을 쏘았는데, 그 뒤로 전두환 노태우도 의전에서는 활을 쏘았습니다. 김영삼부터는 나이가 너무 많아서 활을 쏘지 못하더니, 그 이후의 대통령들은 아예 활을 잡지 않았습니다. 조선 왕실의 정체성 노릇을 하던 활쏘기가 시대의 흐름과 함께 점차 주변부로 밀려나는 모습을 이런 대접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일본은 제 나라를 방문한 조지 부시에게 일본의 전통문화라며 보여준 것이 말타고 활 쏘는 ‘야부사메’였습니다. 이런 걸 보면 탄식과 감탄이 절로 나죠.

활터 설자리의 은행나무 뒤에 안내판이 서있는데,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현충사는 그곳 백암리(염치)에 있고, 장군의 무덤은 아산시 음봉면 삼거리 어라산(於羅山)에 있다고 쓰였습니다. 이 ‘어라’도 백제의 지배층이 쓰던 말일 것이고, 산의 격을 높이려는 뜻에서 붙인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어라산’의 ‘어라’는 백제왕을 뜻하는 ‘어라하’의 ‘어라’와 같은 말입니다. 이 어라산은, 줄기가 바로 뒤의 ‘국사봉’에 닿습니다. 국사봉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실제 높이는 그리 높지 않은데, 근방에서는 가장 높아서 거기 올라보면 서쪽으로 바다까지 내다보입니다. 국사(國師)의 자격이 충분합니다. 그래서 어쩌면 이 국사봉을 ‘어라산’이라고 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만, 현재는 이순신 장군의 무덤이 있는 산을 가리킵니다.

음봉(陰峰)은 백제 지명 아술(牙述)을 바꾼 것인데, 이제 ‘陰:牙, 峰:述’의 대응이 한눈에 보이죠? 안 보이는 분은 반성해야 할 일입니다. ‘陰’은 ‘엄’을 소리 나는 대로 적은 것이고, ‘牙’는 ‘어금니’인데, 옛날에는 『훈몽자회』에 ‘牙엄 아’로 나옵니다. ‘엄’은 ‘엄지’에서 보듯이 크다는 뜻의 만주어입니다. ‘述’은 ‘술, 수리’를 적은 것인데, 만주어로 높다는 뜻입니다. 충북의 음성(陰城)도 원래 이름은 설성(雪城)이었습니다. ‘음’과 ‘설’의 대비를 볼 수 있죠. 당연히 ‘설’은 눈을 뜻하는 게 아니라 ‘수라, 솔’과 같이 높고 큰 것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봉은 큰 산봉우리를 뜻하는 말입니다. ‘국사봉’은 음봉면에서 가장 큰 산이어서, ‘엄수리’의 자격이 충분합니다. 엄수리(牙述, 陰峰)는 만주어이고, 어라산은 몽골어입니다. 따라서 음봉은 높은 산을 뜻하는 데서 온 말이거나, 아니면 왕에 못지않은 큰 인물이 살았던 곳을 뜻하는 말입니다. 사정은 이런데 온양에서 영인면으로 넘어가는 고갯길 옆의 큰 바위 하나가 어금니를 닮아서 붙은 이름이라며 길가에 안내판까지 세워 설명해놨습니다.

당신 정체가 대체 뭔데 음봉을 그렇게 잘 아느냐고요? 제가 이순신 장군의 무덤 옆 동네에서 태어났습니다. 하하하. 충청남도 아산군 음봉면 산정리 97번지. 어릴 적에 동네 형들을 따라 나무로 만든 구르마를 타고 이순신 장군의 금잔디 무덤 상석 앞에서부터 그 아래 바닥까지 씽씽 내달렸습니다. 야호! 특이하게 이순신 장군이 탔다는 애마의 무덤은 연못 한가운데에 있었는데, 적군과 싸우느라 목이 말라서 죽은 말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서 무덤을 그렇게 썼다는 얘기를 들으며 어린 마음에도 숙연했던 기억이 또렷합니다. 하지만 겨울에 물이 꽁꽁 얼었을 때는 그런 거 다 잊고 ‘말 모이 포강’에서 썰매를 탔죠. 이얏호! 

정진명 시인. 사진=굿모닝충청
정진명 시인. 사진=굿모닝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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