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충청 글 백인환 작가, 사진 채원상 기자] 아이와 함께 홍성군 결성초등학교의 은행나무를 찾아 나섰다.
110년이 넘는 결성초등학교.
11월의 학교 앞은 예술축제가 열린 듯 노란 카펫이 깔린 은행나무 길이 펼쳐졌다.
길을 걸으면서 아이에게 시를 소개했다.
마침 홍성군 출신으로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였던 만해의 시이다.
지난 17일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응시생 필적확인 문구로 채택된 ‘나의 꿈은 맑은 바람이 되어서’였다.
당신이 맑은 새벽에 나무그늘 사이에서 산보할 때에
나의 꿈은 작은 별이 되어서
당신의 머리 위를 지키고 있겠습니다.
당신이 여름날에 더위를 못 이기어 낮잠을 자거든
나의 꿈은 맑은 바람이 되어서
당신의 주위에 떠돌겠습니다.
당신이 고요한 가을밤에 그윽이 앉아서 글을 볼 때에
나의 꿈은 귀뚜라미가 되어서
당신의 책상 밑에서 귀똘귀똘 울겠습니다.
나의 꿈이 별과 바람이 되거나 귀뚜라미가 되어 당신을 지켜 주리라 하는 연애편지인 것도 같고, 조국에 대한 사랑을 만해 특유의 은유적 표현으로도 읽혔다.
아이는 시를 듣고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내용이라 이해했다.
끊임없이 지켜줄 수 있는 존재는 세상의 부모밖에 없다는 아이 말도 매우 일리 있는 해석이었다.
한편 각자 이해하는 점을 얘기하는 도중에 결성초등학교의 은행나무를 보면서 각자 시를 써보자고 내기를 했다.
부모는 강렬한 원색의 향연이 펼쳐진 뒤 쓸쓸한 겨울을 떠올리면서 인생의 덧없음을 생각했고, 빛바래져가는 단풍 낙엽을 보면서 11월의 가을을 아쉬워한다는 얘기만 늘어놨다.
반면에 아이는 은행나무를 다르게 생각했다.
- 노란 이불 -
사르륵 사르륵
낙엽이 내리는 소리
차가운 땅 친구
이불 덮어주려고
은행나무는 오늘도
노란 이불을 내려줍니다.
아이의 눈에 은행나무 잎은 이불이었다.
차가운 날씨로 땅속 생물들이 추울까 봐 낙엽은 이불이 되어 따듯하게 땅을 덮어준다고 생각했다.
가을 단풍의 과학 원리를 설명하려는 부모의 말보다는 스스로 은행잎을 만지고 뛰어노는데 집중하는 아이 머릿속에 가을 낙엽은 배려와 사랑이었다.
부모가 생각한 가을은 상투적이었으나, 아이는 가을 낙엽을 다른 생물을 보호하려는 원리로 생각해 낸 것이다.
이번 결성초등학교의 은행나무는 여러모로 즐거운 경험이다.
세상을 따듯하게 보려는 아이들의 마음을 가늠할 수 있는 기회였다.
만해 한용운의 ‘나의 꿈’처럼 늘 아이들 상상의 세계를 존중하고자 오랜 시간 함께 하기를 기원하기를 다짐하는 시간이었다.
결성초등학교의 은행나무처럼 오랫동안 아이들 옆에서 지켜보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홍성군 결성면 읍내리 459-1 결성초등학교 은행나무 1본 560년(2022년)
[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는 충청남도 지원을 받아 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