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젊은 詩각] 하지만, 소리는 홀로 죽지 않는다
    [젊은 詩각] 하지만, 소리는 홀로 죽지 않는다
    김태우 시인의 ‘젊은 시인의 詩각’ ② 소리의 무덤
    • 김태우
    • 승인 2015.05.20 16: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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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의 무덤

    터널이 생기면서 산은 소음이 묻히는

    무덤으로 변해 있었다

    기압이 다른 것으로 보아

    세상의 것이 잠드는 곳은 아닌데

    사람들은 저마다 바퀴가 달린 관을 끌고 와

    이곳에 소음을 유기해 놓고 갔다

    그래서 여기는 소리의 영혼이

    편히 잠들지도 못하고 헤매는 무덤,

    타일 조각으로 그려 놓은 벽화를 보며

    새벽녘 잠깐 단조로운 꿈을 꾸다 일어나면

    소리들은 이제 꿈도 포기한 채

    만신창이 몸을 눕히리라

    벽면의 불빛들이 어둠마저 도굴해 가 버린

    그 무덤 속에 들어서면서

    나는 잠시 귀를 닫고 눈을 감는다

    그러면 순간 소리 드나들던 고막이 닫히고

    달팽이관에 갇혀 버린 소리들만이 윙,

    방향을 잃고 귓속을 맴도는 것이다

    내 귓속에는 어떤 무늬의 벽화가 있는지

    내 속의 터널이 궁금해지고

    산을 멀리 뒤에 두고 나와서도

    마음의 터널을 벗어나지 못해

    닫힌 고막을 두드리는 나는 서 있다

    - 길상호 ‘오동나무 안에 잠들다’ 중.

     

    ▲ 김태우 시인

    [굿모닝충청 김태우 시인] 갓 태어난 아기가 있다. 무엇도 홀로 할 수 없는 존재는 자신의 감정을 울음으로 집약해 소리로서 세상과 마주한다. 그리고 기본적 욕구와 감정의 총칭을 하나 된 소리로 표현한다.

    이때 부모는 단순한 음파로 나타난 아기의 감정과 교감한다. 이렇게 우리는 외부 세계와의 소통이 단순히 소리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리란 가장 원초적이고 기본적인 소통의 수단으로 우리 곁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소리에도 무덤이 있다고 길상호 시인은 말하고 있다. 소통의 단절이 소리의 죽음을 의미한 것이다. 하지만 소리는 홀로 죽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소리의 무덤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시인은 소리의 개별적 모습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의 단절을 통해 소리의 소멸을 시각화하고 있다. 이때 화자 ‘소리’의 마지막 모습 뒤에서 귀를 닫고 눈을 감으며, 기억한다.

    산을 뚫어 터널을 만들고 있다. 터널은 자연의 소리가 죽는 동시에 인공의 소리가 탄생하는 장소다. 이곳은 세상과 “기압이 다른” 자리로 “세상의 것이 잠드는 곳”으로 시인은 명명(命名)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저마다 바퀴가 달린 관”을 들고, 죽음을 애도하기보다 새로운 소리의 탄생을 원하고 있다. 이렇게 터널에서 생긴 소음은 산의 소리를 덮고, “세상의 것이 잠드는 곳”에서 태어난다.

    “소리의 영혼이 편히 잠들지도 못하”는 무덤에서 ‘소리’는 꿈을 꾼다. 그리고 예전부터 있던 벽화를 본다. 죽은 목소리가 “꿈도 포기한 채” 현실과 마주하는 순간에 말이다. 이렇게 산의 소리는 자신의 몸을 인간에게 내주는 대신, 인간이 만들어준 소음을 품었다. 결국 “만신창이 몸”을 하고 다시 인간과 마주한다.

    “어둠마저 도굴” 하는 행위에서 시적 화자는 모든 것을 상실한다. 그리고 모든 감각을 포기한다. “고막이 닫히”자 터널에 남겨진 자연의 소리가, “방향을 잃고 귓속을 맴”돌고 있다. 소통의 연결고리가 끊어지자 자신의 내부에서 방황하는 모습을 본 것이다. 이런 행위는 무분별한 개발에서 상실된 소리의 죽음을 의미한다. 결국 화자는 자신의 감각을 모두 닫고 내면의 소리가 남아 있는 자연에 서서, 소리를 쫓고 있는 것이다. 이때 우리는 자연에서 잠든 소리의 주체가 궁금할 것이다. 인간이 행한 행위를 모른 채 말이다.

    귓속에 남은 소리의 문양은 무엇일까? “내 속의 터널이 궁금” 한 나머지, 쉽게 자연을 멀리하고 있다. 그리고 “마음의 터널”에서 쉽게 나오지 못하고, 계속 닫힌 고막의 문만 두드린다. 그러다 소리의 무덤에서 죽은 소리를 본다. 하지만 귓속을 맴돌던 자연의 소리는 터널이 만들어지는 순간 잊는다. 그 순간 소리의 무덤이 만들어진 것이다.

    소리의 근원에서 소리가 죽고 또 다른 소리가 탄생한다. 인위적인 탄생과 소멸이 “불빛들이 어둠마저 도굴”하는 행위마저 합리화 시키고 있는 것이다. 현대의 이기(利己)에서 자연은 물론 인간의 내면까지 자유롭지 못하다. 소리의 곡(哭)이 산을 덮는 날, 인간은 자연에게 애도의 눈물을 비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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