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의 어원 상고사] 단군과 기자 2
[정진명의 어원 상고사] 단군과 기자 2
정진명 시인, 어원을 통한 한국의 고대사 고찰 연재 ‘11-단군과 기자2’
  • 정진명 시인
  • 승인 2022.11.24 09: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단국대 동양학연구소의 '훈몽자회'.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단국대 동양학연구소의 '훈몽자회'.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굿모닝충청 정진명 시인] ‘기자’ 조선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보겠습니다. 기자동래설이 역사학계에서 일반화되었기 때문에 어차피 한 번은 다루어야 할 내용입니다. 이 말을 그대로 믿어도 기자는 은나라 사람이고, 은나라는 동이족이 세우고 다스린 나라입니다. 은나라가 주나라에게 망하자 주나라의 밑에 있기 싫다고 제 살던 곳을 떠난 사람이니, 출신으로 보아도 기자는 ‘한인(漢人)’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이것은 옛날 중국인들도 그렇게 보았습니다. 『삼국지』 위서와 『후한서』에서도 기자를 동이의 ‘예(濊)’전에 넣었습니다. 기자를 동이로 보았다는 증거입니다. 예(濊)는 부리야트의 여러 종족 중에서 ‘구다라’ 족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삼국지』에 ‘불내예(不耐濊)’라는 말도 나오는데, 이것은 ‘부리야트의 구다라’를 나타낸 말입니다. 뜳어도 의심 금지! 나중에 더 자세히 알아볼 것임. 하하하.

『삼국유사』 고조선 조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당서 배구 전에 이르기를, 고려는 본디 고죽국이다. 주나라에서 기자를 봉하여 조선이 되었다.(唐裵矩傳云, 高麗本孤竹國, 周以封箕子爲朝鮮.)”
중국 측의 기록『독사방여기요(讀史方輿紀要)』 직예(直隸) 영평부(永平府) 노룡현(盧龍縣) 조에도 의미심장한 문장이 나옵니다. 
“제나라 환공이 북쪽 오랑캐(산융)를 쳐서 고죽국에 다다랐는데, 고죽은 (영평) 성부 밖 서쪽 시오리에 있다.(齊桓公北伐山戎至於孤竹國…孤竹城府西十五里.)”
베이징 근처인 영평부 내에는 조선현(朝鮮縣)도 있었습니다. 현 이름이 ‘조선’인 것은 반드시 조선과 무슨 연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시기나 정황으로 볼 때, 기자와 연관이 있죠. 이런 여러 자료로 볼 때, 이 지역이 동이족으로 분류된 여러 민족의 근거지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기자를 연상시키는 이런 증거는 얼마든지 더 있습니다. 지금의 산동성 동남부인 기주(沂州)는 서한 시대의 낭야군(瑯琊郡)이었는데, 기후국(箕候國)이 있던 곳입니다. 두예(杜預)는 기자총(箕子冢)이 양국몽현(梁國蒙縣:지금의 산동성 남쪽)에 있다고 했습니다. 총(冢)은 누구의 무덤인지 확인되지 않은 왕릉에 붙이는 말인 것으로 보아, 그 주인공이 기자인지는 분명치 않다는 것입니다. 주인이 확인된 임금의 무덤은 릉(陵)이라고 합니다. 어쨌거나 산동 지역이 기자와 관련이 많은 것은 분명합니다. 놀라운 것은, 중국이 동북공정을 추진한 이후 최근에는 이 산동성 임기시에 “동이문화박물관”을 세웠다는 것입니다. 이제 중국은 ‘동이’조차도 자신의 역사라고 주장하는 셈입니다. 동북공정이 어디까지 갈지 궁금해지는 일입니다. 

동이족이 살던 산동성 중부에 익도(益都)가 있고, 그 동쪽에 기산(箕山)이 있는데, 이것을 향산(香山)이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게 있습니다. 기자조선의 준왕이 남쪽으로 내려와서 삼한을 세웠는데, 도읍이 익산(益山)이었습니다. 마한 진한 변한의 구도를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중국과 한반도에 있는 이 두 가지 지명을 보면 익(益)과 기(箕)가 일치합니다. 중국 산동의 도읍이 ‘익도’이고, 한반도의 도읍이 ‘익산’이니, 이 ‘익’은 ‘기산=향산=익산’이라는 말입니다.

몽골어로 ‘香’을 ‘küji’라고 합니다. 터키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küji’는 ‘긔ᄌᆞ’와 거의 같은 발음이죠. 부리야트 사투리 중에 기지(kiʒi) 사투리가 있습니다. küji=긔ᄌᆞ=kiʒi. 기(箕)는 만주어로 ‘*piyoo>fiyoo’라고 하는데, 이건 부여(扶餘)와 똑같은 발음입니다. ‘익도, 기산’의 ‘익, 기(küji)’는 이들이 남긴 언어의 유산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몽골어로는 ‘기지’라고 읽고, 퉁구스의 일파인 만주어에서는 이 기(箕)를 ‘부여’라고 읽은 것입니다. 기지(kiʒi)는 부여의 일파입니다. 따라서 같은 대상을 몽골족과 퉁구스족이 각기 다른 발음으로 읽은 것이죠. 그것이 ‘기(箕), 향(香), 부여(扶餘)’입니다.

부여(扶餘)를 만주어로는 ‘*piyoo’라고 발음하는데, 나중에 ‘fiyoo’로 변합니다. 비읍(p)의 음이 약화되면 히읗(f) 발음이 납니다. 중국 드라마 『용봉점 전기』를 보니 ‘봉아(鳳兒)’를 ‘휑아’라고 발음하더군요. ‘鳳’이 우리말로는 ‘[bong]’인데, 중국어 발음은 ‘[fèng]’입니다. 당나라 때 들어와 자리 잡은 우리가 쓰는 한자음의 비읍([b])이 현대 중국어에서는 히읗([f])으로 변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부여’를 읽을 때 만주어와 우리 말의 발음이 이런 변화를 입은 것입니다. 방금 제가 f를 히읗이라고 했는데, 사실 틀린 말이죠. 우리말에는 f가 없습니다. 비읍 피읖은 입술소리인데, f는 입술소리지만 비읍이나 피읖과는 또 다르죠. 입술이 붙느냐 떨어지냐 하는 차이입니다. 우리는 ‘fashion’을 ‘패션’이라고 적죠. f를 적을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p(ㅍ)로 옮겨적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을 가장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포르투갈 축구선수 ‘피구(Luis Figo)’입니다. ‘Figo’를 우리는 ‘피구’라고 적고 말하는데, 당사자인 피구는 황당해하죠. SBS-TV 오락물 『골 때리는 그녀들』(2022)에 잠시 나온 피구의 반응입니다.

‘익도, 익산’의 ‘益’이 ‘기(箕)’와 같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산동성의 익도(益都)는 ‘기자의 도읍’을 뜻하는 말입니다. 산동성이 동이족의 근거지였다는 사실이 새삼 확인됩니다. 기(箕)는 발음이 ‘[ki̯əɡ>kji>jī(tɕi)]’인데, 益과 沂는 현대에 와서 각기 [yì]와 [yí]로 발음되는 것으로 보아, 처음엔 같았던 음이 2.000년 동안 서로 다른 소리로 흘러간 모양입니다. ‘益’은 상고음과 중고음이 책마다 다릅니다. 대체로 ‘jiek’인데, 여기에 ‘j’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두 주장으로 갈라져, 저로서는 중국 음운학계의 혼란을 정리할 수 없습니다. 지역에 따라서 달리 발음된 모양 같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보아야지요. 어떻게 할까요? 소리를 적은 게 아니라 뜻을 적은 거라고 보는 것입니다. 『삼국사기』 지리지는 우리 고대 언어의 보물창고인데, 거기를 보면 옛 지명과 새 지명이 같이 있습니다. 기자가 조선의 왕이라면, 조선의 왕이 사는 곳을 뭐라고 불렀지요? 단군 때는 ‘아사달’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렇다면 기자 때에도 여전히 그렇게 부르지 않았ᅌᅳᆯ까요? 기자의 도시라고도 불렀겠지만, 옛날부터 내려온 이름 그대로 아사달이라고 불렀을 수 있습니다. 익산(益山)을 그런 뜻으로 쓴 게 아닐까 의심해보는 겁니다. 그리고 이 의심은 아주 정당하다는 결론을 『삼국사기』 지리지는 내려줍니다. 백제 지명을 살펴보면 ‘구지(仇知)’를 ‘금지(金池)’로 번역했습니다. 경주 계림(鷄林)은 ‘금촌(金村)’이라고도 했습니다. 그런 여러 대응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益山=金馬
母城=益城=金城
仇知=金池
鷄林=金村

‘金’은 만주어로 ‘asin’이고, 터키어로는 ‘altï’, 몽골어로는 ‘alti’입니다. 터키어로 ‘원수(仇)’는 ‘āsī’이고, 몽골어로는 ‘usiye’여서 비슷하죠. ‘益’은 만주어로 ‘aisi’이고, 터키어로 ‘aisiğ’이고, 몽골어로 ‘ašig’입니다. ‘益(아샤)=金=母(어ᅀᅵ)’의 등식이 성립합니다. 초저녁(初夕)이 우리말로는 ‘아시 나조’이고, 몽골어로 ‘어미’가 ‘eji’이고, 몽골어로 ‘말’은 ‘morin’이고, 아이누어로 ‘작은 산’은 ‘mori’입니다. 이렇게 늘어놓고 나니, ‘익산’은 ‘금마’이고, 이 말은 ‘아시마루, 아시달’을 적은 것입니다. 물론 고조선의 수도입니다. 산을 뜻하는 아이누어 ‘mori’는 ‘등성마루, 산마루’ 같은 말에 남아있죠. 이것이 ‘익산, 기산, 향산’이 같다는 말의 뜻입니다. 따라서 같은 발음을 겨레에 따라서 달리 한자로 적은 것에 불과합니다.

머리가 빙빙 돌지요? 여러분이 보기에 더 황당한 얘기를 하겠습니다. 우리 말의 어원을 잘 모르는 여러분이 웃거나 말거나 저는 제 생각을 말씀드릴 따름이니, 실컷 비웃다가 나중에 후회하시기 바랍니다.

북경 근처에 영평부(永平府)가 있습니다. 그 근처를 흐르는 내가 영정하(永定河)입니다. 신채호가 패수라고 지목했던 그 강입니다. 고을(府)과 냇물(河)에 같은 이름이 붙었으니, 원래 북경에 살던 겨레가 붙인 말입니다.

북경은 북평입니다. 명나라 때 남경과 짝을 맞추느라고 ‘평’을 떼고 서울을 뜻하는 ‘경(京)’으로 바꾸었죠. 행정지명이 된 것입니다. 남양주군이 인구증가로 남양주시로 바뀐 것과 같은 일입니다. 平은 우리말로 ‘들’입니다. 北은 뭘까요? 그냥 ‘밝’을 소리로 적은 겁니다. 북평(北平)은 우리말 ‘박달’을 적은 것입니다. 지금의 북경은 동이족의 근거지이고, 거기 살던 동이족은 주로 예맥족이었습니다. 이들이 연나라에 밀려서 만리장성 밖으로 쫓겨납니다. 그게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진번(예맥) 조선입니다. 그러니 그곳의 지명은 그곳에 살던 사람들의 자취로 보고 풀어야 합니다. 저는 지금 그렇게 하는 중입니다. 

‘기자’의 기(箕)는 우리말로 곡식을 까부를 때 쓰는 ‘키’입니다. 箕는 뜻으로 적으나 소리로 적으나 거의 비슷합니다. 어느 것으로 적든 우리말 ‘키, 기’를 나타내려고 한 것임은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기, 키’는 도대체 뭘 나타내려고 한 것일까요? ‘크다’는 뜻입니다. 존재나 위엄으로는 크다, 공간 개념으로는 길다, 뭐 그런 것 말입니다. ‘크다’나 ‘길다’나 어원을 더듬어가면 같은 뿌리라는 말입니다. ‘큳, 긷, 깆, 긧’. 여기에 접미사 ‘ᄋᆞ’가 붙은 말이 ‘기자’입니다. 1575년 천자문 표기로는 ‘긔ᄌᆞ’죠. 아래아(ㆍ)는 음가가 정확하지 않고 불안정해서 1933년 조선어맞춤법 제정할 때 모음에서 빼버렸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ㅏ/ㅓ/ㅗ’로 바뀌었죠. 그래서 ‘기ᄌᆞ’를 ‘기자’로 바꾼 것입니다.

기자의 뜻이 이렇기에, 그들의 행적은 지명에 반영됩니다. 옛날에 우두머리가 살던 곳이나 실제 지형이 길쭉한 곳은 모두 이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버들고지, 장산곶, 기장’ 같은 말들에서 공통으로 보이는 어근(깆, 곶)이 그것입니다. ‘곶’은 육지에서 바다로 길게 뻗어간 땅줄기를 말하죠. 긴 산등성이는 긴등(永同), 긴 물줄기는 진내(沃川)라고 붙여 한 짝을 이루었죠. ‘길다’를 충청도에서는 ‘질다’로 발음합니다. 충청도의 영동(永同:긴등)과 옥천(沃川:긴내)은 이렇게 붙은 한 쌍의 관련어입니다. 누가 그런 말을 했느냐고요? 제가 그랬습니다. 제가 바로 예맥족의 후손이거든요. 하하하.

영정하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정하는 영평부를 흐르니, 영평과 같은 뜻을 지닌 물줄기일 것입니다. 영평의 ‘평(平)’은 ‘평양’과 마찬가지로 땅을 뜻하는 부여어 달(達)입니다. ‘영(永)’은 ‘길 영’자입니다. 우리나라 지명에는 ‘영’자가 들어가는 이름이 많습니다. 영동, 영평, 영천. ‘영정’의 ‘영’은 ‘永 길 영’자입니다. 정(定)은 길이를 뜻하는 우리말 ‘기장(긷+앙)’에서 보이는 명사화 접미사입니다. ‘길이, 기장’의 어근 ‘긷’이 무엇일까요? 제 글을 성심껏 읽었다면 이제 ‘기자(깆+ᄋᆞ)’가 연상되어야 지극히 정상입니다. ‘ᄋᆞ’는 받침이 있는 단음절을 2음절로 안정화하려는 접미사죠.

‘길’은 길이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역 이름에 쓰이면 그 지역의 위치나 무게가 지닌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길’을 늘여서 적으면 ‘kira, kara’가 됩니다. 이제 낯익은 말로 다가오죠. ‘가라’는 북방어에서 크다는 뜻이고 주로 임금을 뜻합니다. 이 지역은 기자조선의 통치구역이었으니, ‘기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즉 왕의 뜻이죠. ‘영평’은 왕(긔ᄌᆞ)이 사는 도읍을 뜻하고, ‘영정하’는 그곳을 흐르는 물줄기를 뜻합니다. 영정하가 흐르는 영평부는, 조선 겨레의 본거지나 활동 중심지였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영평부 안에 ‘조선현’이 버젓이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永定=기장=기자=kiʒi=küji’의 등식이 성립합니다. ‘영정’이란 말뜻은 한자의 뜻으로 풀 때보다 우리말로 풀 때 훨씬 더 뜻이 또렷해집니다. 지명은 그곳에 살던 사람의 무의식을 반영하기 때문입니다. 임자가 떠나도 말은 그 자리에 그대로 남습니다.

영정하는 만리장성 안쪽에 있습니다. 만리장성 바깥쪽의 큰 강물은 ‘난하’죠. 영정하와 난하 사이로 뻗은 긴 줄기를 따라서 만리장성이 세워졌다는 뜻입니다. 이런 상황을 보면 몽골어를 쓰던 예맥족이 처음엔 만리장성 안쪽의 영평부에 웅거하다가 나중에 상황이 바뀌어 만리장성 바깥으로 나간 것이죠. 지명의 어원을 파고들다 보면 이렇게 볼 수밖에 없습니다. 역사학에서 중국 사서의 지리지를 들이대며 이게 아니라고 아무리 우겨도 어원은 분명히 이런 사실을 가리킵니다. 중국의 고대 역사서에 나타나는 여러 기록과 지명의 어원은 아주 정확하게 맞물립니다. 고상한 한자식 표현으로 하면 부합(符合)하죠. 마치 신표처럼 딱 들어맞는다는 말입니다.

영정하가 흐르는 영평부에 노룡현이 있습니다. 만리장성의 시작점이죠. 만리장성은 마치 용처럼 구불구불 기어가는데, 바다에 잇닿은 그 끝이 노룡두(老龍頭)인 것은 당연하죠. 늙은 용의 대가리라! 참 멋진 표현입니다. 역사학자들은 이 ‘멋’을 모릅니다. 감수성이 모자라죠. 저는 이런 지명을 보면 머릿속에서 용이 구름 타고 번쩍 치솟고 바닷속 거대한 고래가 하늘로 떠오릅니다. 생각이 샛길로 빠져서 딱딱한 역사를 잊어버립니다. 자꾸 시 한 편을 읊조리고 싶죠. 하하하. 제목은 이렇게 하죠. “용머리 마을에서”. 코로나19 끝나고 나중에 노룡두에 가거들랑 꼭 한 번 시를 써보렵니다. 이런 식으로요.

메마른 사막 건너느라 폭삭 늙은 용 한 마리
푸른 바닷물에 대가리 처박고 한숨 돌리네.
한 장 한 장 입 다문 벽돌 비늘마다
역사가 못다 적은 목청 물결로 철썩거리는데,
허물만 벗어놓고 용은 떠난 모래톱에서
글자 밖 고단한 발길 또 어디로 향할까나?
묵묵히 돌아보는 발해 바다 위엔 화룡점정,
2,000년 전 해가 솟아 아사달을 비추네.

옛 분위기를 살려 기승전결의 구도로 써봤습니다. 하하하. 시인들의 눈에는 ‘화룡점정’이 딱 거슬릴 것입니다. 불필요한 4자성어로 이미지만 무겁게 만들었죠. 하지만 이곳은 시를 모르거나 문학의 상상력을 싫어하는 역사학자에게 보란 듯이 쓰는 곳이니, 일부러 설명투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시인들께는 양해를 구합니다. 나중에 저의 시집에 실을 때는 ‘화룡점정’ 구절을 빼겠습니다. 하하하.

그나저나 만리장성 끝의 이름이 노룡두이니, 그 땅이 있는 행정구역 이름도 노룡현(老龍縣)이어야 하는데, 묘하게도 ‘노룡(盧龍)’입니다. 이거 이상하지 않나요? 저만 이상한가요? 이런 게 이상하지 않은 여러분이 오히려 이상한 겁니다. ‘盧: 밥그릇 로[lú]’는 다른 어떤 말을 표현한 한자인데, 몽골어로 용을 뜻하는 말이 ‘luo’여서 발음이 똑같습니다. 이곳에 본래 살던 몽골족들이 영정하를 용(luo)이라고 표현하고, 그곳에 있는 성을 용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에 따라 ‘luo현’이라고 해야 하는데, 이 말뜻을 중국인들이 못 알아들으니까 굳이 ‘용’이라고 덧붙여 ‘luo龍현’이 된 것입니다. ‘모찌 떡’이나 ‘역전 앞’처럼 된 것이죠.

그러면 만주 북부에 흐르는 강이 왜 ‘흑룡’인지 답이 나오네요. 영정하가 흐르는 땅은 세상의 중심이니 황룡(sira-luo)이고, 황룡의 북쪽에 있는 강은 저절로 흑룡(hara-luo)이 됩니다. 5행상 노랑은 중앙이고, 검정은 북방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요동 땅의 북쪽에 흐르는 큰 강을 뜻합니다. 지금 요하의 지류인 ‘시라무렌(Šira Mören)’도 황수(黃水)라고 쓰니, 흑룡의 짝말은 영정하가 아니라 시라무렌(요하 상류)으로 봐도 되겠습니다. 초원지대에 사는 그들에게는 그곳이 중앙일 수도 있으니 말이죠. ‘Šira’는 몽골어로 ‘노랑’입니다.

몽골인들이 ‘hara-luo’라고 한 것을 훗날 그곳에 터 잡은 퉁구스족은 뭐라고 불렀을까요?  ‘sahaliyan(검다)-muduri(용)’라고 불렀겠죠? ‘sahaliyan’과 ‘hara’는 발음을 해보면 어쩐지 비슷한 소리가 나지 않나요? ‘sahaliyan=hara’가 줄어들어 ‘아’가 되고, 흑룡강은‘아무르’가 됩니다. 몽골과 퉁구스 모두 강물을 무렌(mören)이라고 하는데, 강물과 용은 같은 말(muduri=mören)이고, 심지어 이 말은 우리말에도 있습니다. 우리말에서 용은 ‘미르’라고 하죠.(『훈몽자회』) 우리말에는‘미리내(은하수)’에만 그 자취가 남았지만, 북쪽 초원지대의 언어로 가보면 이렇게 관련 낱말이 많습니다. ‘무렌(mören 몽골어)=무두리(muduri 퉁구스어)=미르(mirï 한국어)’의 등식(mVrV)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런 말에 공통으로 들어있는 어근은 ‘물(水)’입니다. 우리말이 알타이어의 바탕 말임을 보여주는 낱말입니다. 아무르는 북녘에 흐르는 물줄기를 뜻합니다. 

정진명 시인.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정진명 시인.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굿모닝충청(일반주간신문)
  • 대전광역시 서구 신갈마로 75-6 3층
  • 대표전화 : 042-389-0080
  • 팩스 : 042-389-008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광석
  • 법인명 : 굿모닝충청
  • 제호 : 굿모닝충청
  • 등록번호 : 대전 다 01283
  • 등록일 : 2012-07-01
  • 발행일 : 2012-07-01
  • 발행인 : 송광석
  • 편집인 : 김갑수
  • 창간일 : 2012년 7월 1일
  • 굿모닝충청(인터넷신문)
  • 대전광역시 서구 신갈마로 75-6 3층
  • 대표전화 : 042-389-0087
  • 팩스 : 042-389-008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광석
  • 법인명 : 굿모닝충청
  • 제호 : 굿모닝충청
  • 등록번호 : 대전 아00326
  • 등록일 : 2019-02-26
  • 발행인 : 송광석
  • 편집인 : 김갑수
  • 굿모닝충청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굿모닝충청.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mcc@goodmorningcc.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