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의 어원 상고사] 단군과 기자 3
[정진명의 어원 상고사] 단군과 기자 3
정진명 시인, 어원을 통한 한국의 고대사 고찰 연재 ‘12-단군과 기자3’
  • 정진명 시인
  • 승인 2022.12.01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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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황학정 풍경. 사진=정진명 시인/굿모닝충청

[굿모닝충청 정진명 시인] 기자가 다스리던 영역이 부리야트인들이 살던 지역이고, 그 지역의 지명에서 몽골어의 자취가 두루 확인됨에 따라 기자조선의 지배층은 몽골어를 썼음이 또렷해졌습니다. 이제 이런 눈으로 앞서 열거된 지명들을 살펴보면 놀랍도록 일사불란한 배열이 나타날 것입니다.

기주(沂州) 
낭야군(瑯琊郡) 
기후국(箕候國) 
익도(益都) 
익산(益山)
기산(箕山) 
향산(香山) 
영정하(永定河) 
영평부(永平府).

이래도 안 보이세요? 모조리 ‘기, 키’를 드러내는 말들입니다. 영평은 ‘긴 들, 큰 박달’을 적은 말이고, 영정하는 ‘큰 박달’ 때문에 그 옆을 흐르는 냇물에 들러붙은 말이고, ‘익-기-향-영’은 모두 ‘기, 키’를 적은 말이니 여기에 산(達 dal)이 붙으면 ‘큰 박달(大邑, 王城, 長白)’입니다. 몽골어로 적느냐 퉁구스어로 적느냐에 따라서 발음도 다르고 표기도 다르지만, 뜻은 같습니다. 고대 조선의 어떤 우두머리나 임금(긔ᄌᆞ)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낭야(瑯琊)도 마찬가지입니다. 瑯은 긴 쇠사슬이나 그렇게 생긴 옥돌을 뜻하는 말입니다. 이런 옥돌을 끈으로 이어서 목걸이 같은 장식품을 만들죠. 줄은 삭아서 사라지고, 옥돌만 남은 유물이 임자가 누군지 모르는 고대의 큰 무덤에서 많이 발견됩니다. 이런 (쇠)사슬을 몽골어로는 ‘ginji’라고 합니다. 琊는 접미사인데, 우리의 현대어 발음으로는 ‘야’이지만, 邪가 ‘사’로 발음되는 것으로 보아, 향찰표기로 시옷(ㅅ)을 나타낼 것입니다. 그러면 ‘낭야’도 ‘깃’이나 ‘ginji’를 적은 말이 되죠. 게다가 옛날의 낭야군이 지금의 ‘기주’이니, ‘낭야=기’입니다.

‘沂’의 중국어 발음 표기는 상고음(先秦)>중고음(隋唐)>현대음 순으로 적으면 [ŋjər>ŋjəi> yí]입니다. 우리는 ‘기’라고 읽죠. ‘ŋ’은 받침으로 쓰일 때는 이응(ㅇ)을 나타내는데, 이렇게 앞으로 올 때는 기역(ㄱ)으로 읽힙니다. 당나라 때의 기역 발음이 현대로 오면서 떨어져 나갔음을 알 수 있죠. [y]를 현대 문법에서는 이중모음이라고 하는데, 어떤 자음에 그다음에 오는 모음에 영향을 주면서 사라진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말에서 ‘춥다’가 비읍 순경음화(ㅂ>ㅸ>ㅗ/ㅜ)를 거쳐서 ‘추워’가 되는데, 비읍이 사라지고 ‘ㅜ’가 남았죠. 뭐, 이런 식입니다. ‘기’의 기역은 비읍처럼 현대어로 오면서 [y]로 남고 사라진 것입니다.

沂는 ‘물이름 기’자입니다. 斤에 삼수변만 붙어서 물임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이 말에 왜 ‘기’라는 소리가 붙었겠어요? 앞서 살펴본 ‘기, 키’가 살았던 곳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斤[kjən>kjən>jīn(tɕin)]’의 우리말 발음은 ‘근’입니다. ‘큰’과 똑같습니다. 2천 년 전에는 기역과 키읔이 정확히 나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같은 조음위치(말랑입천장)에서 나는 소리죠.

그러니 누군가 아주 지체 높으신 분이 살았던 지역이기에 이런 이름이 붙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지체 높은 분이란, 조선 왕 ‘기자(kiʒi)’일 것입니다. 앞에서 본 ‘ginji’도 여기에 근접합니다. 斤의 몽골어 발음은 ‘jing’입니다. 기역(ㄱ:말랑입천장소리)이 지읒(ㅈ:단단입천장소리)으로 갔음을 볼 수 있습니다. 瑯=沂=斤=益=箕=ginji=kiʒi=jing. 어학을 전공한 저의 눈에는 이것들이 마치 인감증명처럼 또렷하지만, 여러분은 여전히 못 믿으시죠? 그러실 겁니다. 우리말의 뿌리에 관심 없이 살아온 여러분을 탓하고 싶지 않습니다. 계속 그렇게 사시기 바랍니다.

기왕 미친 소리를 하는 마당에, 머릿속에서 번쩍하는 생각을 한 마디 더 지껄여 보겠습니다. 우리말의 ‘형님’을 중국어로는 ‘따커(大哥)’라고 합니다. 중국 드라마를 보면 대체로 형을 ‘커, 크’쯤으로 발음합니다. 제 귀에는 이 말이 우리말의 ‘크다’와 매우 친연성이 있어 보입니다. 앞서 본 ‘기, 키’가 이런 식으로 중국과 동북아시아의 언어에 남아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뭐, 똥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고 비아냥거려도 상관없습니다. 부처의 눈에는 또 부처만 보이는 법이니 말입니다. 하하하. 부처의 눈에 보인 풍경을 더 얘기해보겠습니다.

동이족의 근거지 산동성을 차지한 전국칠웅의 이름이 제(齊) 나라입니다. 그런데 정말 재미있는 게 있습니다. 齊의 발음이 [dziei(상고음)>qí, jì, zhāi(현대)]입니다. 더 재미있는 것은, 제나라의 수도가 임치(臨淄)라는 겁니다. 이게 안 이상하다고요? 임치는 ‘淄에 다다른다’는 뜻이니, 꾸밈말 臨을 빼면 치(淄)만 남습니다. 임치는 ‘물(淄)에 가까이 있는(臨) 도시’의 뜻이고, ‘淄’의 발음은 [tʃǐə>tʃi>zī]입니다.

제(齊)의 중국어 발음이 ‘치, 지, 자이’인데, 그 수도의 중국어 발음이 ‘지’라면, 같은 소리 아닌가요? 제 눈에만 그렇게 보이나요? 나라 이름과 그 나라를 흐르는 강물, 그리고 도읍이 같은 소리로 발음된다는 게 이상하지 않다면, 제가 미친 게 아니라 여러분이 생각 없이 사시는 겁니다. 게다가 그곳은 동이족의 근거지이고, 기후국이 있던 곳입니다. 최근 중국이 린이시(臨沂市)에 동이문화박물관까지 세웠죠. 箕의 현대 중국어 발음이 [jī(tɕi)]이니, [jì](齊)와 똑같습니다. 린이(臨沂)와 임치(臨淄)도 뒷글자만 바뀌었지 둘이 똑같습니다. 沂와 淄는 호환성이 있는 말이라는 뜻입니다. 이래도 상관성을 모르겠다면 여러분이 미친 겁니다.

참고로, 입천장소리는 둘로 나뉩니다. 입천장 더 깊은 곳은 말랑말랑하고, 바깥쪽은 딱딱합니다. 이걸 제도권에서는 연구개(軟口蓋)와 경구개(硬口蓋)라고 하는데, 다른 건 다 우리말로 하면서 이걸 한자말로 쓰는 건 참 이해하기 힘든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혼날 각오를 하고 ‘단단입천장, 말랑입천장’이라고 합니다. 단단입천장소리는 ‘ㅈ, ㅉ, ㅊ’이고 말랑입천장소리는 ‘ㄱ, ㄲ, ㅋ’입니다. 이 둘이 거리가 가까워서 서로 넘나듭니다.

앞서 제가 긴등(永同)과 진내(沃川)을 설명할 때 ‘진’이 ‘긴’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충청도에서는 ‘길다’를 ‘질다’라고 합니다. 기역과 지읒이 넘나들죠. 그래서 긴 산등성이는 永同으로 옮기고 긴 내는 그곳 발음 따라서 옥천(沃川)으로 옮긴 것입니다. 沃은 기름질 옥 자인데, 충청도 말로는 ‘지름지다’고 하죠. 충청도에서는 ‘기름’을 ‘지름’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엿기름’을 ‘엿지름, 엿질금’이라고 하죠. 조음위치 입천장 안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겁니다.

이렇게 정리됩니다. 箕=益=香=沂=斤=齊=淄=키=기=치. 기자조선의 ‘기’와 제나라의 ‘제’는 같은 소리를 적은 것입니다. 그러니 ‘箕子=齊子’입니다. ‘기자’가 살던 곳에 ‘기장(永定)’ 하가 흘렀는데, 산동성의 기자(齊子)가 살던 도읍지에 흐르는 강이 ‘치’이고, 도읍 이름이 ‘지[zī]’인 것입니다. ‘기’와 ‘지’는 (말랑, 단단)입천장소리의 차이죠. 웃긴다고요? 더 웃겨드릴까요? 齊의 뜻이 ‘가지런’입니다. 왜 하필 ‘가지런’일까요? ‘가지런히’의 ‘가지’가 이제는 ‘긔ᄌᆞ’로 보이지 않나요? ᄀᆞᆽ=긪, ᄀᆞᄌᆞ=긔ᄌᆞ. ‘齊’는 뜻도 소리도 몽골어를 쓰는 동이족이 제 임금을 가리킬 때 쓰는 ‘기, 키, 치[qí, jì, zhāi]’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이제 둘 중의 하나입니다. 제가 미쳤거나, 여러분이 미쳤거나!

한 번 생각의 재갈이 풀리니 상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네요. 우리는 삼한의 진한을 ‘辰韓’이라고 적습니다. 그런데 가끔 ‘秦韓’이라고도 적습니다. ‘秦’의 발음표기는 [qín]입니다. 청(淸, [qīng])이나 금(金, čin) 또는 주리진(珠里眞=女眞)의 ‘친(chin)’과 같죠. 이게 무슨 뜻일까요? ‘čin’은 황금 혈통(왕족)을 뜻하는 북방어입니다. <‘숙신’고>라는 글에서 보았듯이 주르친은 여진이고, 진시황의 조상은 여진족 출신임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원래 진나라는 서쪽에 있던 오랑캐(西戎)였는데, 주나라가 호경(鎬京)에서 낙양(洛陽)으로 천도하는 과정에서 끝까지 평왕을 호위하는 충성심을 발휘하여 중원의 왕국으로 인정을 받으면서 전국 7웅으로 합류한 것입니다. 포사(褒姒)의 미모에 빠져 왕비(와 태자)를 갈아치우려는 유왕의 무모한 폭정 때문에 귀족들이 오랑캐인 산융과 결탁하여 반란을 일으킨 사건으로 엉망진창이 된 주나라 왕실을 구한 게 진나라였죠. 그렇게 합류한 뒤에도 진나라는 당연히 다른 나라로부터 문화 후진국이라는 괄시를 받았죠. 그렇게 괄시받던 진나라가 진시황에 이르러 중국을 통일합니다.

춘추전국시대의 서쪽 오랑캐(西戎)는 월지(月支, Yueh-chih)인데, ‘chih(칳)’가 낯익죠? 앞서 본 ‘čin’입니다. ‘月’의 현대 발음은 ‘Yueh’지만, 선진시대 상고음으로는 ŋ이 살아있다가 후대로 오면서 사라졌습니다. ‘월지’는 ‘주르친(珠里眞)’, 즉 여진족이라는 말입니다. 월지는 묵특선우 때 흉노에게 패하여 서쪽으로 도망치는데, 그렇게 하기 전에 일부 월지 세력이 중원으로 들어가 진(秦)나라의 지배층으로 자리 잡은 듯합니다. 지(支)와 진(眞)이 황금(金, čin)을 뜻하는 말이라면, 월(月)은 ‘주르’와 짝을 이룹니다. 지읒이 탈락하여 ‘우르’가 되고, 이것이 월(ŋǐwat>yueh)이 된 것인데, 차라리 우리말 ‘달, 다라’로 읽으면 구개음화 유무의 차이로 오히려 ‘주르’에 더 가깝죠.

이렇게 되면 춘추시대 전국 7웅 중에서 벌써 제와 진 두 나라가 오랑캐 출신입니다. 연나라는 어떨까요? 연나라의 수도는 계(薊)였는데, 발음은 [kiat>kiei>jī, jiē, jiè]이고, 오늘날의 북경에 해당합니다. 발음이 ‘기(箕, [kǐə>jī(tɕi)])’와 너무 비슷합니다. 연(燕)이라고 하기 전에는 당연히 ‘계’라고 했고, 또 여기서 일어선 나라를 언(匽, 郾)이라고 하다가 소리가 비슷한 한자인 연(燕, ian>ien>yàn)으로 바꾼 것입니다. ‘匽, 郾’은 [yǎn]인데, 어디서 많이 본 말이죠? 36개 나라로부터 조공을 받았다는 동이족의 위대한 통치자 ‘서언왕(徐偃王)’에서 보았습니다. ‘偃’도 [yǎn]입니다. 연나라의 뿌리는 서언왕의 그 언나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燕=偃=yǎn.

서언(徐偃)의 상고음은 ‘zǐaian’이고, 조선(朝鮮)의 상고음은 ‘tǐausǐan’입니다. 아주 비슷하죠. 제 눈에는 동의어로 보입니다. 연(燕, ian)은 선(鮮, sǐan)의 ‘s’가 떨어진 모양입니다. 이 ‘s’를 채우기 위하여 언(偃) 앞에다가 서(徐, ᄉᆡ, zǐa)를 집어넣은 것이 서언(徐偃, zǐaian)임을 알 수 있죠. ‘서언’은 ‘조선’의 ‘선’을 2음절로 적은 것인데, 이것이 단음절로 줄면서 ‘연’이라고 표기된 것입니다.

원래 중국의 왕조는 모든 나라 이름이 홑소리(단음절)입니다. 그래서 ‘조선’이라는 2음절 이름을 중국의 국명으로 편입시킬 수 없으니, ‘조’를 떼고 ‘선’이라고 부른 것인데, 이것을 동이족 당사자들은 ‘서언’이라고 적었고, 여기서 다시 단음절 화하려고 ‘서’를 떼어 ‘언’이라고 한 것이며, 이것을 중국인들이 같은 소리가 나는 다른 한자(燕, ian)로 바꾼 것입니다. 이것이 연나라라는 이름의 유래입니다. 燕=偃=ian>yǎn. 연나라라는 이름이 고대 조선의 위치를 말해줍니다. 지금까지 제가 거론한 지명들은 모두 똑같은 한 곳을 지목하는데,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진나라를 얘기할 때 잠시 살펴본 게 있습니다. 친(金, čin)이죠. 연나라의 기원이 된 ‘조선’은 ‘주신, 숙신’과 같은 말이고, 이 말들은 ‘주리진(珠里眞churchin)’을 적은 말이라고 했습니다. ‘선(鮮)=진(眞)=연(燕)’이면, ‘연’이 곧 ‘čin’이라는 뜻입니다. čin은 황금을 뜻하므로 황금 부족을 말하는 것이고, 결국 ‘燕(ian>yǎn)’은 황금 겨레가 세운 왕조를 뜻하는 말입니다. 흔히 말하듯이 제비(燕)가 길조라고 그것을 왕국의 이름으로 쓴 게 아니라는 뜻이죠. 연나라는 조선이 있던 자리에서 조선의 이름을 그대로 채용하여, 황금 왕족이 하늘의 뜻을 받아 세운 나라임을 강조하려고 골라 쓴 이름입니다. 한자는 뜻글자이기 때문에 이런 어원 연구에는 정말 장애물입니다. 소리를 써놓고 뜻으로 읽으려는 관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백과사전을 뒤져보니, 춘추전국시대 초기 연나라의 기원에 대해서는 아는 게 별로 없다고 나오네요. 미궁에 빠진 연나라의 정보를 이렇게 어원에서 찾아내서 보여드렸습니다. 얼마 안 지나 이런 힘든 과정은 모두 생략되고, 개나 소나 다 아는 체 나서며 마치 자신이 연구한 양 인터넷에다가 도배하겠지요. 그럴 놈들에게 미리 부탁드립니다. 이렇게 정중하게 부탁해도 그리 안 하시겠지만, 제발 글을 쓸 때 출처를 밝혀주십시오. 제 것인 양 사기 치지 말고! 쎄빠지게 연구하는 사람들 김샙니다. ‘쎄’는 ‘혀’의 뜻으로, 시옷과 히읗이 서로 넘나드는 음운현상(형님>성님>썽님)의 결과입니다. 혀가 빠질 만큼 힘들다는 뜻이죠. 이 말이 고상한 분들에게 천박하게 느껴지는 것은, 개가 긴 혀를 내밀고 헐떡이는 모습이 연상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정말 헐떡이는 개처럼 힘듭니다. 흐릿한 눈으로 이런 글 며칠 집중하여 쓰고 나면 늙은이의 혓바닥이 절로 삐져나옵니다. 헉!헉!헉!

나라 이름이 ‘언’이고 수도 이름이 ‘계’입니다. 그런데 ‘계(薊, [jī, jiē, jiè])’의 발음을 보십시오. 제(齊, [qí, jì, zhāi])와 겹치지요? ‘계’와 ‘제’가 겹치면 당연히 몽골어로 우두머리를 뜻하는 ‘기자’가 연상되어야 합니다. 연나라의 본래 이름은 ‘조선’이고, 수도 ‘계(薊)’는 ‘기자의 도읍’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 근처에 ‘조선현’이 후대까지 있었던 것입니다. ‘제(齊)’는 기자의 나라, ‘치(淄)’는 기자의 도읍을 뜻합니다. 전국 7웅 중에서 이제 3개국이 오랑캐의 나라임이 입증되었습니다.

한(韓)은 말할 것도 없죠. 춘추시대 이후 연나라의 사대부 중에는 성을 한 씨와 기 씨로 삼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한’은 나라 이름이고, ‘기’는 임금이나 종족 이름이죠. 그래서 심지어 이병도는 이것을 ‘한씨 조선’이라고 부르기까지 했습니다. ‘이씨 조선’ 같은 발상이죠. 단씨조선, 기씨조선, 위씨조선……. 왕국에다가 백성들 무시하고 왕족의 ‘씨’를 붙여 이름 짓는 것이며, 한 왕국을 제멋대로 짓고 허무는 것을 보니, 이병도도 저만큼이나 상상력이 좋았던 모양입니다. 성씨만 가지고 전국 7웅의 한 나라를 ‘조선’으로 만들었ᅌᅳ니 말입니다.

그에 비하면 저는 한결 더 나은 셈이죠. 수많은 말들의 뿌리를 찾아서 왕국을 복원하는 중이니 말입니다. 한문과 일본어 지식만으로 혀짧은 소리를 무수히 해댄 이병도보다, 그래도 몽골어, 만주어, 터키어, 중국어, 드라비다어, 아이누어, 길략어까지 찾아가며 아는 체하는 저의 정성이 조금은 더 갸륵하지 않나요? 한씨 조선 어쩌고는 제가 이병도의 뒤를 캔 게 아니고, 위키백과에서 ‘연’을 치니 나오는 내용입니다. 저는 냄새나는 남의 뒤는 안 캡니다. 하하하. 전국 7웅 중에서 4개 나라가 오랑캐 족속입니다.

이제 중화민국은 큰일 났습니다. 믿고 보던 네 나라의 뿌리가 오랑캐임이 드러났으니. 일곱 중에서 넷이 오랑캐라면 그게 오랑캐 나라가 아닌가요? 중원과 오랑캐의 구별이 무색합니다. 사실 무색할 일도 없는 게, 중국의 순수 혈통이 나라를 세워 지배한 것은, 송나라와 명나라 때뿐입니다. 나머지 왕조는 모두 오랑캐 천국이었습니다. 당연히 드는 의문은 이것이죠.‘그런데도 왜 나는 자꾸 중국을 동양의 중심 국가로 바라보려는 버릇이 생겼ᅌᅳᆯ까?’

이번에 어원으로 역사를 더듬으며 살펴보니, 다름 아닌 철학사상 때문이었습니다. 즉, 우리가 학창 시절 내내 배운 유학과 성리학의 지식이 중국을 사상의 중심국으로 설정하여 논리를 펼치는 바람에, 중심 문제를 착각해온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역사 밖에서 공부할 때 우리는 동양철학사라면 춘추전국시대의 제자백가부터 배우고, 한나라의 원시 유학+오행 사상, 송나라의 성리학과 주자학, 그로 인한 피 튀기는 예송 논쟁을 배웠습니다. 우리가 도덕 윤리를 말할 때는 거의가 중국의 사상가들 말에만 귀를 기울여왔습니다. 철학이라는 관념으로 역사라는 생물을 바라본 것입니다. 이젠 그 방향을 바꿀 때가 되었죠.

감사 인사를 해야겠습니다. 저는 가방끈이 짧아서 중국어 상고음까지 공부하지 못했고, 그걸 어떻게 해결할까 고민하다가, 중어중문학에 조예가 깊은 장동열 접장님에게 물으니, 선뜻 대만의 ‘소학당(小學堂)’이라는 사이트를 알려주네요. 들어가 보니 정말 좋습니다. 시대별 한자음을 모두 볼 수 있으니, 여러분도 한번 이용해보십시오.

‘접장(接長)’은 활터에서 남을 대접해줄 때 쓰는 호칭입니다. 자신에 대한 낮춤말은 ‘사말, 하말’이죠. 장 접장님은 서울의 유서 깊은 활터 황학정의 사원(射員)으로, 전통 활과 무예에 관한 관심이 사말과 서로 일치하는 게 많아서 알고 지낸 지 꽤 됩니다. 사말(射末) 또한 청주 장수바위터의 활량(射員)이어서 맺어진 인연인데, 이번에는 뜻밖의 곳에서 도움을 받았네요. 황학정이 얼마나 아름다운 활터인지는 1997년 사진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몇 차례 관급 공사로 지금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이런 변화를 아쉬워하는 것도 제가 ‘꼰대’라는 증거겠지요?

정진명 시인. 사진=정진명 시인/굿모닝충청 김종혁 기자
정진명 시인. 사진=정진명 시인/굿모닝충청 김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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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수 2023-02-07 17:07:20
갑골음 연구자 최춘태님과 같은 맥락으로 생각됩니다. 서로 도움일 되실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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