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 210] 흔했으나 귀하게 쓰인 느릅나무...보령시 청라면 느릅나무
[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 210] 흔했으나 귀하게 쓰인 느릅나무...보령시 청라면 느릅나무
  • 채원상 기자
  • 승인 2022.12.03 11: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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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글 백인환 작가, 사진 채원상 기자] 머언 산(山) 청운사(靑雲寺)

낡은 기와집

산은 자하산(紫霞山)

봄눈 녹으면

느릅나무

속잎 피어나는 열두 굽이를

청(靑)노루

맑은 눈에

도는

구름

박목월, 청노루

자연을 노래한 청록파 시인 ‘박목월’ 시에는 봄에 새잎이 피어나는 느릅나무가 등장한다.

노루가 등장하는 물가에 자라는 느릅나무를 묘사했다.

느릅나무는 한반도를 비롯해 동아시아에 넓게 분포하는 나무다.

물기가 있고 토심이 깊은 땅이라면 잘 자라며, 그늘진 곳이나 추운 곳도 강해서 웬만한 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다.

흔했으나 유독 느릅나무가 박 시인의 시구에 등장한 것은 느릅나무가 흔했으나 귀한 나무였기 때문이다.

줄기나 가지가 부러져도 바로 주변에 맹아를 틔울 정도로 잘 자라는 특성 때문에 느릅나무는 생울타리나 생활에 필요한 여러 물건을 만들 수 있었던 나무였다.

느릅나무는 휨강도가 뛰어나 건축재부터 악기 재료에 이르기까지 두루 사용하기 좋은 나무였다.

‘삼국사기’에서는 벼슬이 5두품 이상의 아니라면 느릅나무로 집을 지을 수 없었다. 물속에서 썩지 않고 든든하게 버티는 힘이 남달랐던 느릅나무는 흔치 않았기 때문이다.

원효대사가 요석공주를 의도적으로 만나려고 요석궁 앞 다리에서 물에 빠졌던 다리는 느릅나무로 만들어진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북방 오랑캐를 막기 위해 성을 쌓을 뿐만 아니라, 느릅나무를 심었다고 했다.

수해를 예방하기 위해 둑에 버드나무와 함께 느릅나무를 심었다.

느릅나무의 유용성은 이뿐만이 아니다.

혼기에 찬 평강공주가 바보 온달에게 시집가기 위해 온달의 눈먼 노모를 찾았을 때, 노모는 “...(생략)...내 자식은 굶주림을 참다못하여 느릅나무 껍질을 벗기려고 산 속으로 간지 오래인데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라는 대답을 듣고 집을 나오다가 느릅나무 껍질을 지고 오는 온달을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즉, 흉년이 들어 기아에 허덕이고 몸이 허약해진 사람을 구하는 구황(救荒) 식물로 쓰임새가 많았던 것도 느릅나무였다.

구황식물은 고대사회부터 자연재해나 전쟁과 같은 사회적 혼란으로 백성들이 굶주려 죽어가고 있을 때 한 가닥 희망이었다.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고, 농업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 곡류를 대신할 식량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에, 구황식물은 고대사회부터 조선시대, 심지어 일제강점기에도 농사 서적부터 의학책에도 중요하게 취급됐던 자원이다.

특히 흉년으로 작황이 부진할 때 먹을 수 있는 식품에서 사람의 생명을 치료하고 구하는 약제로서 느릅나무의 사용법은 백성부터 지식인까지 관심의 대상이었다.

느티나무와 이웃사촌인 느릅나무는 이렇듯 흔하면서도 귀한 쓰임새로 백성들이 소중히 다뤘던 나무이다.

보령시 청라면의 느릅나무는 280살 정도의 노거수이다.

약 3백년의 세월에 있었던 수많은 흉년과 기근을 생각한다면, 얼마나 많은 생명을 구했을까?.

마을 어귀의 보호수는 대개가 마을과 주민의 풍요와 건강을 위해 비는 당산목이다.

그렇다면 보령시 청라면의 느릅나무는 뭐라고 해야 할까?

아마도 사람을 구해 준 ‘의사나무’라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보령시 청라면 향천리 469-9 느릅나무 1본 280년(2022년)

[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는 충청남도 지원을 받아 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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