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광장] 피해 축소에만 급급했던 정부
[청년광장] 피해 축소에만 급급했던 정부
10.29 참사 이튿날 회의에서 '압사' 단어 빼라 지시한 정부
  • 조하준 시민기자
  • 승인 2022.12.09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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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조하준 기자] 10.29 참사가 발생하고 한 달이 지나도록 진상 규명을 위한 움직임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이럴 때에 카타르월드컵이 열렸고 우리 한국 대표팀이 16강 진출에 성공하는 좋은 모습을 보였기에 국민적 시선이 월드컵으로 쏠리게 되었고 추모 열기는 갈수록 식어가는 듯하다.

유가족들에 대한 관심도 좀 많이 떨어진 것 같은 느낌까지 든다. 현재 유가족들은 뜨거운 월드컵 열기를 즐기고 싶어도 즐길 수가 없는 상황이다. 아마 눈에 월드컵이 들어오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한 때에 지난 7일에 KBS가 아주 충격적인 단독 보도 기사 하나를 냈다. 10.29 참사가 발생하고 그 이튿날인 10월 30일 오전에 윤석열 대통령이 정부서울청사에서 관계기관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를 열고 사고 발생상황과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당시 회의에선 국가 애도 기간 지정과 서울 용산구의 특별재난지역 선포 등이 결정됐다. 특히 보건복지부는 부상자·사망자에 대한 의료·장례·심리지원을 추진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 회의에서 사고 지원과는 관계없는 ‘명칭’ 문제도 논의됐다는 것이다. 회의 뒤, 이번 참사를 명명하는 말에서 ‘압사’라는 단어를 빼라는 지시가 내려온 사실이 뒤늦게 드러난 것이다. 분명히 이 10.29 참사는 압사로 인해 발생한 참사인데 ‘압사’란 명칭을 빼라니. 이게 앙꼬 없는 찐빵이 아니면 무엇일까?

단군 이래 최악의 참사로 불렸던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도 사고 명칭에 분명히 ‘붕괴’가 들어가 있다. 삼풍백화점이란 건물이 붕괴하면서 발생한 사고였기 때문이다. 명칭이 분명히 들어가 있어야 사고가 발생한 원인이 무엇인지 바로 알 수 있다. 그런데 도대체 윤석열 정부는 왜 이번 참사 명칭에서 ‘압사’란 단어를 빼라고 한 것인가?

국회 ‘용산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이 7일에 공개한 자료를 보면 이 같은 내용은 이른바 ‘모바일 상황실’로 불리는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서 논의됐다.

이 방에는 보건복지부, 소방청, 소방본부, 중앙응급의료지원센터, 재난거점병원별 재난책임자, 시·도, 응급의료기관 등 여러 관계자가 참여하고 있었다. 참사 다음 날 오후, 긴박한 사고 수습 상황이 전파되어야 할 이 대화방에 ‘명칭’ 관련 지시가 내려진다.

오후 5시 기준 사상자 현황 자료가 공유되자 박향 보건복지부 공공보건정책관은 “오늘 대통령주재 회의 결과 이태원 압사 사건을 ‘압사’ 제외하고 이태원 사고로 요청한다.”고 말한다. 이에 서울 재난인력 관계자는 “이태원 사고로 변경하겠다.”고 답했고, 박향은 “감사하다”고 전했다.

참사 당일 112신고 내용에도 시민들의 입을 통해 수차례 등장했던 ‘압사’라는 단어는 당시 사고 정황을 가장 정확하게 나타낸 말이다. 그러나 대통령 주재 중대본 회의에선 이를 쓰지 말라고 결정했고 사고 수습을 담당하는 정부 각 기관에 신속하게 전파된 것이다.

이에 대해 박향은 KBS와의 통화에서 “회의 전달 상황이었고, 보고서 제목을 통일하자는 취지였다.”며 “왜 그랬는지 기억은 나지 않고, 그렇게 용어를 쓰자고 (지시가) 나왔기 때문에 크게 괘념치 않고 전달만 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 ‘급박한 상황에서 정부가 사고 명칭 문제에 너무 신경을 쓴 것 아니냐’는 질문엔 “우리는 그날 환자 이송 문제와 장례식장 전원 문제, 사망자 신원 확인 등에 신경을 썼다.”며 “대개 서류 작업과 보고 작업을 할 때 용어를 어떻게 정할지 맞추지 않느냐. 그런 것 중 하나인가 보다 생각했다.”고 말했다.

참 가지가지 하는 정부가 아닐 수 없다. 사실 이 정부가 이번 10.29 참사를 둘러싸고 명칭 논란을 일으켰던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참사 다음 날인 지난 10월 30일 행정안전부의 ‘이태원 사고 관련 시·도 부단체장 영상회의’ 자료에도 이 같은 내용이 고스란히 담겼다.

‘참사’ 대신 ‘사고’, ‘피해자·희생자’ 대신 ‘사망자·사상자’ 등 객관적 용어를 사용하라는 지침이 내려졌고, 이에 따라 분향소의 공식 명칭도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 분향소’로 정해져 논란이 일었다.

이와 관련해 행정안전부는 지난달 1일 중대본 브리핑에서 ‘희생자·피해자’ 대신 ‘사망자·부상자’ 용어를 쓰는 이유에 대해 “그런 상황이 객관적으로 확인되고 명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는 중립적인 용어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래서 ‘사망자, 사상자’ 이렇게 사용하고 있다.”고 답변한 바 있었다. 물론 필자의 눈으로 보기엔 이 같은 행정안전부의 말은 그저 변명에 불과할 뿐이다.

KBS 기사에 적힌 말마따나 문제는 참사를 바라보는 정부의 시각일 것이다. 사고 수습과 희생자 지원에 매진해야 하는 그 시점에 참사의 명칭을 가지고 가타부타 논의를 했다는 것은 참사 규모와 파장 축소에만 혈안이 되었다 볼 수밖에 없다.

사고와 참사는 한 끗 차이지만 사실 엄연히 다른 말이다. 사고는 우연히 발생할 수도 있고 또는 불가항력적인 요소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다.

예를 들어서 하늘에서 갑자기 커다란 운석이 떨어졌는데 그게 하필 서울 도심 한복판에 떨어졌고 그로 인해 수백 명의 사망자가 났다고 치자. 그건 사고로 볼 수밖에 없다. 어느 누가 운석이 언제 어떻게 떨어질지 또 그 크기와 무게가 어느 정도인지 예측할 수 있겠는가? 세상에 어느 천재 천문학자라도 그건 불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운석이 떨어질 것이라 예측했다 쳐도 그게 서울 도심 어딘가로 떨어질지 아님 다른 곳에 떨어질지 정확하게 어떻게 예측하겠는가?

그러므로 이건 사고다. 운석이 어떻게 떨어질지 예측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현재 기술로는 떨어지는 운석을 낙하 직전에 부술 수 있는 방법도 없기 때문이다. 우연히 발생한 일이고 또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항력인 요소이기에 이런 일은 참사가 아니라 사고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참사는 이야기가 다르다. 분명히 인력으로 충분히 막을 수 있고 그에 대한 매뉴얼도 다 준비된 상태였는데 무사안일에 젖어 이미 준비된 매뉴얼을 무시하여 발생한 사고가 바로 참사다. 흔히 말하는 인재(人災)가 바로 참사다.

이번 10.29 참사는 어떤가? 엉뚱하게 마약 단속, 시위 경비, 대통령 관저 경비 등으로 경찰 인력들이 무더기로 차출되어 유동인구가 수십만이 될 것으로 예상되었던 이태원에 투입할 병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 부족한 병력을 메우기 위해 가까운 경기도나 인천에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았다.

이태원 할로윈 축제는 올해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또 10년 전에도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대규모 참사가 발생한 것은 올해가 사상 초유의 일이다. 10년 넘게 갖춰진 매뉴얼이 있었지만 그 매뉴얼을 무시하고 정부가 마음대로 했기에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이다. 그래서 이번 일이 사고가 아니라 참사인 것이다. 불가항력의 초자연적인 현상이나 예측불허의 변수로 인해 발생한 일이 아니다.

그리고 예부터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양권에서는 ‘죽음’이란 단어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걸 크게 꺼려왔다. 왜 현대에도 숫자 ‘4’를 불길하게 여기고 있는가? 현재도 일부 건물에는 4층이란 층이 없거나 4층 자리에 ‘F’를 표기하고 있는 경우를 어렵잖게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4’의 발음이 ‘死’와 같기 때문이다. 이건 중국, 일본도 마찬가지다. 한국어 뿐 아니라 중국어와 일본어도 숫자 ‘4’는 ‘死’와 발음이 같아서 전통적으로 ‘4’를 불길한 숫자로 여겼다.

그래서 웃어른이 죽었을 때도 ‘죽었다’는 표현이 아니라 ‘돌아가셨다’ 혹은 ‘하늘나라에 가셨다’는 표현을 쓰고 임금이 죽었을 때에도 ‘붕어(崩御) 하셨다’는 말을 쓴다. 붕어의 ‘崩’은 ‘무너지다’는 뜻인데 임금의 죽음은 산이 무너지는 것과 같이 너무도 슬프다고 하여 ‘붕어’라는 말을 쓰는 것이다. 이렇듯 전통적으로 한국을 포함한 동양권에서는 ‘죽음’에 관한 단어를 직접적으로 거론하는 걸 매우 꺼렸다.

그렇기에 참사가 발생했을 때도 사망자가 아니라 가급적 ‘피해자’, ‘희생자’란 단어를 쓰는 것이다. 그런데 ‘사망자’, ‘사상자’ 단어를 쓰는 게 무엇이 중립적이란 말인가? 이번 참사 희생자들이 뭐 교통사고라도 당했나? 사고로 죽은 사람이라면 ‘사망자’, ‘사상자’란 단어를 써도 무방하겠지만 이번 일은 명백히 인재로 빚어진 참사가 아닌가?

결국 정부가 저런 단어 용례에 매달린 것은 어떻게든 피해 규모를 축소함과 동시에 자신들의 책임을 경감시키려고 한 것이라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저들은 책임 회피가 아니라 처음부터 자신들에게 책임이 있다는 걸 아예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책임 회피라는 말이 성립되려면 최소한 자신들에게 책임이 있다는 걸 인지는 하고 있어야 가능하다. 알고는 있는데 책임을 지기 싫어서 피하는 것이 책임 회피이기 때문이다.

행정안전부 장관 이상민에 대한 경질 및 처벌 여론이 압도적으로 우세해도 윤석열 대통령이  미동도 않는 것은 바로 이 이유 때문이다. 본인 입장에선 이번 10.29 참사란 그저 재수 없게 일어난 사고일 뿐인데 왜 책임을 지려 하겠는가? 그러니 입만 열면 법적 책임은 없다는 식으로 뭉개고 버티고 있는 것이다.

요즘 보수 과표집으로 표본을 조작질한 친정부 여론조사 기관들을 동원해 또 대선 때처럼 여론조사 가스라이팅을 국민들에게 시도하고 있는데 그것도 한계가 있다. 특히 조선일보는 ㈜여론조사공정에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해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간만에 40%를 넘었다고 대서특필까지 했다.

아직 출범하고 7개월이 채 되지 않은 대통령의 지지율이 40%를 넘었다고 감읍해마지 않는 조중동의 태도를 뭐라 해야할지 모르겠다. 취임하고 7개월도 안 지난 시점에서 지지율 40%는 대단히 낮은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퇴임할 때 45% 지지율로 퇴임한 걸 벌써 잊었나? 그리고 저런 여론조사들 대부분이 보수층이 과표집된 여론조사다. 표본 표집으로 장난질 치는 여론조사를 필자는 여러 차례 목격했다.

고로 이런 여론조사 결과에 도취되어 또 계속 지금처럼 행보를 보인다면 그 결말은 비참할 것이다. 진짜 본인 실력으로 지지율을 올리고 싶으면 이번 참사에 대해 적극적으로 수습하는 모습과 진상 규명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이면 된다.

왜 이 간단한 걸 윤석열 대통령은 안 하고 있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의 황소고집 행보에 점점 신물만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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