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의 어원 상고사] 단군과 기자 5
[정진명의 어원 상고사] 단군과 기자 5
정진명 시인, 어원을 통한 한국의 고대사 고찰 연재 ‘14-단군과 기자5’
  • 정진명 시인
  • 승인 2022.12.15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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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의 <사기> '조세가'부분, '신흥서국' 출판사 영인본.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굿모닝충청 정진명 시인] 상인(商人)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저기 떠돌며 물건을 사고파는 장사꾼을 가리키는 말이죠. 왜 ‘상’일까요? 상나라가 주나라에게 망하자 그 유민들이 여기저기 떠돌며 장사를 시작했고, 그렇게 떠돌이 장사꾼을 가리키는 말로 자리 잡았다고 합니다. 제 얘기가 아니고 백과사전에 나오는 설명입니다.

앞서 우리는 기자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그런데 주 무왕이 기자를 조선의 옛 땅에 봉했다는 사실과는 다르게, 춘추전국시대 제나라와 연나라의 땅에 기자의 자취가 두루 퍼져있음을 확인했습니다. 산동성의 익도(益都)는 ‘아사달’의 향찰 표기이고, 연나라의 북경이 기자의 도읍(계)이고, 제나라의 임치도 기자의 도읍을 뜻하고, 산동성에서 기후명 청동기가 발견되는가 하면, 요동에서도 기후명 청동기가 발견되었습니다.

만약에 기자피봉설이 사실이라면, 기자를 이 많은 지역에다가 각기 나누어 두루 봉지를 주었다는 얘기인데, 말이 안 됩니다. 기자가 봉지로 받은 곳은, 분명히, 조선의 옛 땅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역사학자들도 이구동성으로 만리장성 밖의 어떤 한 지역을 얘기하죠. 그곳이 난하든 대동강이든 상관없이 기자의 봉지를 한 곳에 정하려고 애씁니다.

그러나 어원으로 알아본 기자의 봉지는 한두 군데가 아닙니다. 이 말은 ‘기자’가 그 기자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기자는 은나라의 현인 그 기자를 가리키는 게 아니라, ‘기자’ 소리가 나는 그 어떤 다른 존재를 가리키는 것이라는 결론입니다. 그 기자와 이 기자가 우연히 소리가 같았을 뿐이죠. 서로 다른 둘이 한 낱말에 겹친 겁니다. 그 ‘기자’는 바로 동이족의 한 일파를 말하는 것이고, 몽골어의 부리야트 언어 중에서 코리족의 일파인 기징가(kiʒiŋa)라고 제가 족집게로 꼭 찝어 드렸습니다.

이렇게 두루 발견되는 어원과 유적들이 옛날 동이족이 퍼져 살던 영역과 거의 비슷하게 맞아떨어진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사실 하나를 암시합니다. 즉, 그 영역은 원래 은나라의 영역이었고, 은나라는 동이족이 세운 나라였으니, 거기 어딘가에 은나라의 자취가 남았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기자가 주나라를 받아들이지 않고 동쪽으로 떠났다는 사실만 기억하지, 주나라에게 망한 은나라의 유민들이 어떤 변화를 겪었고 지금에 이르렀는지는 들어본 바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어원을 추적하여 보니 주나라의 핵심 통치 영역 밖 동이족의 근거지 곳곳에서는 여전히 은나라 유민 ‘기자’의 자취가 발견됩니다. 이런 정황들은 주나라가 은나라를 넘어뜨리자, 은나라의 유민 중 주나라의 통치를 거부하고 근거지를 이동한 세력이, 기자 하나만이 아니었음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사실들입니다. 게다가 ‘상인’이라는 말에서 그런 정권교체의 자취를 우리는 또한 엿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정황을 좀 더 자세히 보여줄 증거가 또 없을까요? 바로 이 때문에 이 글을 쓰는 겁니다. 어원을 살펴보면 이런 정황을 더 또렷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앞서 우리는 연나라가 기자의 나라라는 사실을, 어원을 통해 입증했습니다. ‘연’은 ‘언’과 같고, ‘언’은 36개국으로부터 조공을 받은 동이족의 위대한 통치자 서언왕의 그‘언’이라고 했습니다. ‘燕, 偃, 匽’은 현대 중국어 발음이 [yǎn]이고, 이것의 선진시대 상고음은 [iən]이라고 했습니다. iən이 yǎn으로 변한 것으로 모두 똑같은 대상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발음과 똑같은 소리가 나는 나라가 또 있습니다. 바로 은(殷)입니다. ‘殷’의 선진시대 상고음이 [iən,jen]이고, 이것이 현대에는 [yīn,yān,yǐn]으로 바뀌었습니다. 발음이 하나가 아니고 여럿인 것은, 지역에 따라 달리 발음되었기 때문입니다. 은나라의 통치 영역이 그만큼 넓었음을 뜻하는 것이죠. 그렇다면 앞서 살펴본 연나라와 서언왕의 ‘언’은 결국 은나라를 표현한 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은나라의 일부 세력이 북경 지역에 웅거하면서 독립했고, 그 독립된 세력이 춘추시대에 연나라로 자리 잡은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서언왕은 은나라의 후예이기 때문에 은나라라는 이름 앞에다가 옛 은나라보다 더 동쪽으로 옮겨왔다는 뜻으로 서(徐, [zǐa], ᄉᆡ)를 덧붙인 것입니다. 그것이 숙신의 신(愼)이고, 조선의 선(鮮)입니다. 여기서 시옷이 떨어지면서 연나라로 자리 잡은 것임은 앞서 말씀드렸습니다.

은나라는 주나라에게 망한 게 아닙니다. 은나라 왕실이 주나라에게 망하자 그 일부가 동쪽으로 옮겨와서 서언이라는 나라를 세웠고, 이 나라의 왕은 한 때 주나라를 압도하여 36개국으로부터 조공을 받기까지 했습니다. 그렇지만 주나라의 사주를 받은 제후국의 공격으로 서언왕은 실패했고, 그 자리에서 중국화된 연나라가 기자의 도시 ‘계’에서 나라를 세운 것입니다. 아마도 주민들 대다수는 동이족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연나라는 명실상부 은나라를 이은 나라죠. 이름마저 같습니다.

우리는 중국 측의 기록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동쪽 오랑캐의 이름이 ‘숙신’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 뒤에 ‘조선’이 나오면서 조선이 동쪽 왕국의 간판 이름으로 자리 잡죠. 그런데 조선도 숙신도 모두 ‘주르친’을 적은 것임을 앞서 알아보았습니다. 은나라가 연나라의 전신이라면 이 ‘친’도 은나라의 어디에 그 자취를 남기지 않았을까요? 그에 대한 답이 바로 상(商)입니다.

우리는 보통 은나라라고 하지만, ‘은’은 나라 이름이 아니라 도읍의 이름입니다. 즉 하남성에서 은나라의 수도 은허가 발굴됩니다. 은허(殷墟)라는 말 그대로 ‘은나라의 터’라는 뜻입니다. 거기서 은나라 시대의 청동기와 갑골문이 발굴되어 전설로만 존재하던 중국의 역사는 3,000년 전까지 단숨에 올라갔습니다. 그 도읍의 이름이 ‘은’이기에 우리는 통상 그 나라를 은나라라고 부르는 것입니다.(상나라 이전인 하나라의 유적은 아직 나타나지 않는데, 엉뚱하게도 만리장성 밖에서 그보다 훨씬 더 오래된 유적이 마구 쏟아져나옵니다. ‘홍산문화’죠.)

하지만 은을 도읍으로 삼은 그 나라의 이름은 ‘상(商)’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상’은 무슨 뜻일까요? 商 그 자체로는 뜻이 없습니다. 장사나 몫을 뜻하는 훈은 나중에 붙은 것이어서 이 한자말이 원래 무엇을 뜻하려는 것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저만이 알죠. 하하하. 저만 아는 그것을 지금 알려드리는 겁니다. 이거 혹시 세계 최초 아닐까요? 제가 들어본 바가 없으니 그럴 것 같습니다. 중국은 이제 큰일 났습니다. 제나라와 연나라만이 아니라, 안방마저 빼앗길 상황이 되었으니 말입니다. 하하하.

지난번 글이 나간 뒤에 보니 심지어 조나라도 오랑캐였습니다. ‘조씨(趙氏)의 선조는 진(秦)나라의 선조와 같다.’고, 사마천의 『사기』 「조세가(趙世家)」에 나옵니다. 진나라의 조상이 주르친(珠里眞)이니, 조나라의 조상도 ‘주르친’이라는 얘기죠. 헉! 전국 7웅 중, 중국의 순수혈통은 초나라와 위나라뿐입니다. 이 둘도 의심스럽습니다. 공을 세울 기회를 드리니, 여러분이 한 번 찾아보십시오. 특히 자신이 역사의 신이라도 된다는 듯이 되도 않는 헛소리를 지껄여 인터넷 바다를 온통 쓰레기로 뒤덮어놓으시는 분들은, 이번 기회를 한 번 잡아 보시기 바랍니다.

商의 선진시대 상고음은 [ɕǐaŋ]입니다. 이것이 [sthjang](수당시대 중고음)을 거쳐 [shāng](현대음)으로 자리 잡습니다. 현대음은 ‘샹’쯤으로 발음되지만, 상고음에서는 ‘치앙’쯤으로 발음되었습니다. 그러면 대번에 답이 나오지 않나요? 어디서 많이 본 말 아닌가요? 앞선 저의 글에서 수도 없이 봐왔습니다. ‘čin’이 그것입니다. 황금을 뜻하는 말이죠. 그러니까 ‘상’이란, 하늘의 뜻을 받아 지상에 나라를 세운 황금 왕족을 뜻하는 말입니다. 후대로 오면서 이와 똑같은 발음으로 나라를 세운 민족이 많죠. 진(秦[qín]), 금(金[jīn(    tɕin)]), 청(淸[qīng])이 모두 그렇습니다.

이런 이름으로 나라를 세운 사람들은 퉁구스족이라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상나라는 퉁구스족이 세운 나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퉁구스족이라면 또 머릿속에서 번개가 번쩍 불꽃을 튀겨야죠. 그렇다면 상나라의 원래 뿌리는 어디일까요? 단군조선이라는 말입니다. 홍산문화의 주인공인 단군조선의 지배층이 퉁구스어를 썼습니다. ‘박달’이라는 말은 그들의 말입니다. 그래서 북경이 바로 박달이었던 것입니다.

이 구도를 두고 우리의 머릿속에서 백과사전식 지식을 총동원하면 정말 중요한 사실을 하나 건져낼 수 있습니다. 마치 종적을 알 수 없는 범인이 흘리고 간 한 가닥 디엔에이에서 그의 신원을 모조리 확인할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성별과 나이, 그리고 심지어 성씨까지도 알아낼 수 있습니다. 범인도 꼼짝달싹 못할 증거가 바로 디엔에이죠. 그런 증거가 고대 역사학에서는 바로 언어이고, 저는 그 언어의 디엔에이를 추적하는 중입니다.

우리는 고대 알타이어의 기원이 중국 동북부 적봉과 홍산 지역에서 살던 농사꾼의 언어라는 사실을 2022년에 알았습니다. 그 지역에서는 15,000년 전의 놀라운 유적이 발굴되는데 신석기 옥돌 문화입니다. 산처럼 거대한 피라미드에서 나오는 놀랍도록 정교한 옥돌을 두고 그 주인공들이 갑자기 사라진 이유가 궁금해집니다. 하지만 앞서 본 언어의 연결고리를 추적하면 그들의 행적을 아주 쉽게 찾아낼 수 있습니다.

15,000~5,000년 전까지 적봉 홍산 지역에서 농사를 토대로 신석기 문명을 일으켰던 단군의 부족들은 갑자기 찾아온 소빙하기의 추위 때문에 거기서 더 이상 왕조를 유지할 수 없게 됩니다. 지금 보듯이 그곳은 거의 황무지나 다름없습니다. 따라서 농사짓기에 적합한 곳으로 근거지를 옮길 수밖에 없습니다. 갈 곳은 한 군데입니다. 발해만 근처의 황하 유역이죠. 결국 이들은 황하가 굽이치며 흐르는 남동쪽으로 이동하여 왕조를 세웁니다. 그것이 바로 ‘치앙’입니다. 박달에 살던 황금 왕족 ‘친(鮮)’이 황하 유역으로 이사하여 ‘치앙(商)’ 나라를 세운 것입니다.

이사 후 1,000여 년을 그렇게 잘 지낸 황금 부족은 기원전 1,123년에 주나라에게 망합니다. 은나라의 유민들은 각지로 흩어집니다. 이렇게 흩어진 유민들을 끌어모아서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사람들은 당연히 은 왕실의 권위를 이어받은 곁가지 세력들이지요. 그들이 바로 ‘기자’입니다. 이들이 왕조를 접수하는데, 이들은 몽골어를 썼습니다. 퉁구스어를 쓴 단군족과는 조금 다르다는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곁가지 세력’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은나라의 통치 밑에서 그들의 일부로 살아온 세력들이 다시 일어나 왕조를 만들고, 중국의 주나라와는 또 다른 정치체를 이룩하는 것이죠. 그것이 ‘숙신’과 ‘조선’입니다. 반면에 퉁구스어를 쓴 단군조선의 지배층은 중국화 되어 춘추시대의 제후국으로 편입됩니다. 앞서 본 전국 칠웅 중에서 진(秦) 제(濟) 연(燕) 한(韓) 조(趙) 5나라가 모두 ‘주르친’이나 ‘기자’와 관련이 있어서, 이들의 후예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건국 신화에서 왜 그토록 자꾸 서자 이야기가 되풀이되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정통 적자는 후대의 왕조에서 철저하게 관리하여 옴짝달싹 못하지만(앞의 5개 제후국처럼), 방계의 서자들은 관심 밖으로 밀려나서 그들이 결국은 다른 곳으로 가서 새로운 나라를 세우기 때문에 서자 이야기가 꾸준히 재생산되는 것입니다. 환웅도 서자고, 해모수도 뿌리를 알 수 없는 떠돌이입니다. 주몽도 마찬가지죠. 이런 식으로 정통 적자가 아니라 방계 서자가 새로운 왕조를 엽니다. 심지어 아주 가까운 발해나 고려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중에 한 번 자세히 다루겠지만, 대조영도 왕건도 조상 내력이 또렷하지 않습니다. 이런 점이 중국사와는 다른 한국 상고사의 큰 특징입니다.

‘숙신’과 ‘조선’, 두 낱말은 뜻이 같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은나라와 비교해보면 은나라의 새로운 후기국가이므로 앞에 꾸밈말을 넣은 것이 ‘숙(肅), 조(朝)’입니다. 이 말은 동쪽(ᄉᆡ)과 높음(高)을 뜻한다고 했습니다. 터키어 몽골어 퉁구스어를 쓰는 모든 민족이 동쪽을 높다고 인식하는 것은 이런 습관과 관련이 있습니다. 결국, 숙신과 조선이란 ‘해뜨는 높은 쪽으로 옮겨간 황금(商) 나라’를 뜻하는 말입니다. 이렇게 정리됩니다.

殷=偃=匽=燕=iən>yǎn
商[ɕǐaŋ]=徐偃[zǐaiən>ɕyian]=秦[qín]=金[jīn(tɕin)]=淸[qīng]=愼=鮮=čin

‘商’의 상고음이 ‘치앙’에 가깝게 발음된다는 사실을 알고, 저는 오래전에 읽은 책이 하나 생각났습니다. 김병호의 『치앙마이』(Chiang Mai)라는 책입니다. 여행기 같기도 하고 소설 같기도 한 글인데, 저자가 태국의 치앙마이에 갔다가 그곳 사람들 사는 모습이나 풍속이 우리와 아주 비슷하여(색동옷, 맷돌, 대명사), 상상력을 조금 더 보태서 소설로 쓴 글입니다. 말하자면 고구려가 망하고 당나라로 끌려간 유민들이 나중에 태국까지 흘러가서 그곳에 정착했다는 것입니다. 문화의 공통성을 보고 상상력으로 채운 글인데, 이번에 이 글을 쓰면서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치앙마이의 ‘치앙’과 상나라의 ‘치앙’이 똑같습니다. 고구려의 유민일 가능성도 있지만, 은나라의 유민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마치 동쪽으로 간 기자처럼 상나라 유민의 일부가 남쪽으로 갔을 수 있습니다.

어쨌거나 역사에서는 은나라의 기자가 동쪽으로 옮겨가서 기자조선을 세웠다는 아주 간단한 한 문장으로 요약되었지만, 어원을 살펴보면 그 뒤에는 이런 어마어마한 변화가 몰아쳤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한 나라가 망했는데, 그 나라가 그 뒤를 이은 나라로 조용히 이어질 리가 없지요. 그 뿌리들이 이렇게 어원을 통해 낱낱이 드러납니다.

단군조선은 퉁구스어를 썼는데, 이들이 자연 변화로 적봉과 홍산을 떠나 황하 유역으로 옮기면서 상나라로 바꾸었고, 이들이 망하면서 기자가 역사의 전면으로 떠오릅니다. 기자는 몽골어를 썼습니다. 이 말은 조선 왕조의 주체 세력이 바뀌었다는 뜻입니다. 기존의 은나라 왕족들은 중국의 땅에 남아서 그대로 새로운 왕조인 ‘진, 연, 제, 조’ 나라를 열어 중국으로 합류하였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그 땅을 떠난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바로 몽골어를 쓰는 기자의 세력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원전 1,122년에 ‘단군조선’에서 ‘기자조선’으로 이름이 바뀌는 것입니다. 이들은 고죽국 시절부터 시작하여 고구려를 세울 때까지 끝없이 동쪽으로 이동하며 중국과는 다른 세계를 만들어갑니다.

결국 적봉과 홍산의 단군조선 세력이 중국에 은나라로 남음으로써 중국으로 흡수된 것과 달리, 고죽국을 비롯하여 몽골어를 쓰는 세력들은 중국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왕조를 열어갔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이렇게 단순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실제로 퉁구스어를 쓰는 세력들은 훗날 동쪽으로 더 이동하여 진국(辰國)을 세웁니다. 여전히 중국으로 흡수되지 않은 단군이 기자조선의 보호를 받으며 만리장성의 동쪽에서 계속 자기 자리를 유지하다가 나중에 경주까지 가서 신라를 세우죠. 만리장성 안에서 주류를 이룬 퉁구스어족(단군조선)이 만리장성 밖으로 나가면서 몽골어족(기자조선)에게 주도권을 내주며, 거침없이 팽창하는 중국과 맞서 싸우는 과정이 2,000년 전의 한국 고대사입니다. 그들이 쓴 언어로 지나치게 단순화할 수는 없지만, 지배층의 언어를 보면 대체로 이런 큰 흐름을 그려볼 수 있습니다.

이상이 어원을 통해 엿볼 수 있는 중국과 한국의 상고사인 설화 시대의 실상입니다. 오직 언어만이 알려준 길을 따라온 결과입니다. 역사학에서 뭐라 하든 언어학에서는 그렇게 보입니다. 이제 역사학에서 답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답하기 싫다고요? 하하하. 그러세요. 그렇게 사세요. 저도 이렇게 살 테니……. 제 밥그릇 지키려는 싸움에서 타협은 어차피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나저나 저는 지켜야 할 밥그릇도 없는 알량한 신세네요. 이런 제길!

정진명 시인.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정진명 시인.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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