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의 어원 상고사] 단군과 기자 7
[정진명의 어원 상고사] 단군과 기자 7
정진명 시인, 어원을 통한 한국의 고대사 고찰 연재 ‘16-단군과 기자7’
  • 정진명 시인
  • 승인 2022.12.29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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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구글지도 캡처.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유라시아 구글지도 캡처.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굿모닝충청 정진명 시인] 세계지도에서 중국 북부로 눈을 돌리면 유라시아에 띠처럼 펼쳐지는 거대한 초원지대가 나타납니다. 이곳은 유목민족의 천국입니다. 세계사를 여러 차례 바꾸고 중세 이전 세계의 질서를 재편하는 동력이 된 곳입니다. 이 초원지대에는 어떤 겨레가 살았을까요? 크게 셋입니다. 동쪽의 만주 지역에는 퉁구스족이 살았고, 서쪽에는 터키족이 가장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살았습니다. 그 사이 어디에 몽골족이 끼어 살았죠. 세월에 따라 이들은 각기 각축을 벌이다가 힘센 부족이 일어나 초원을 지배하는 왕이 되곤 했습니다.

역사에서 가장 먼저 일어난 것이 터키어를 쓴 흉노족입니다. 이들 세력이 얼마나 강력했는지 한 고조 유방 때부터 골머리를 앓다가 노략질을 당하느니 차라리 조공을 바치는 것으로 화해를 하여 해마다 엄청난 재물과 여자를 바칩니다. 중국인들의 가슴을 울린 ‘왕소군(王昭君)’의 이야기도 이 때문에 나온 것입니다. 흉노족들은 초원지대의 황량한 삶을 이런 조공으로 메우며 근근이 살아가죠. 그런 이들을 무제는 공격하여 무너뜨립니다. 이들은 한나라 무제의 공격을 받고 쇠퇴하다가 서쪽으로 몰려가서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을 촉발하여 로마제국의 멸망까지 불러오죠.

흉노가 어떤 언어를 썼느냐를 두고 말들이 많습니다. 세 언어 중 하나겠지요. 퉁구스어, 몽골어, 터키어. 이 중에서 몽골어와 터키어로 압축됩니다. 『한서』에 이렇게 나옵니다.
“흉노는 하늘을 일러 탱리라 하고, 자식을 일러 고도라고 한다. 선우란 넓고 큰 모습이다. 하늘이 홀로 우뚝함을 본떴음을 말한다.(匈奴謂天爲撑犂, 謂子爲孤塗, 單于者,廣大之貌也,言其象天單于然也)”

탱리고도는 천자(天子:하늘의 아들)를 뜻하는 말입니다. 하늘은 몽골어로 ‘Tengri’이고, 고대 터키어로 ‘tänri’인데, 몽골어의 ‘g’ 발음이 군더더기처럼 거슬리죠. 몽골어(Tengri)보다 터키어(tänri)가 ‘撑犂’에 더 가깝다는 뜻입니다. 현대 터키어에서 ‘하느님’은 ‘Tanrı’이고, ‘천지신명’은 ‘Tanrılık.’입니다. 하늘과 하느님을 가리키는 말은 서로 다릅니다. 탱리는 단순한 하늘이 아니라 신격화된 하늘입니다. 여기서 ‘tånri>tanrı’의 변화를 볼 수 있죠. 터키어로 ‘양자’는 ‘küdëgu’이고, 몽골어의 발구진 사투리로 ‘아들’은 ‘guto’입니다. 이 ‘guto’ 때문에 흉노족이 몽골어를 썼다고 주장하는데, 좀 더 살펴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선우의 부인을 알씨(閼氏, atjjeɡ)라고 하는데, 터키어로 ‘alga-n’이어서 閼과 정확히 대응합니다. 중국 상고음보다는 오히려 우리말이 원어에 더 가깝죠. 흉노족들이 쓰는 칼을 경로(徑路, [kieŋlɑɡ])라고 하는데, ‘검[kïlïc>Kılıç]’과 대응합니다. 흉노족이 웅거한 산 이름이 기련(祁連, [gǐeilǐan])산인데, 뜻이 하늘뫼(天山)라고 합니다. 터키어로 하늘은 ‘Gök yüzü, Göğün görünen yüzeyi, sema’입니다. 기련은 중간 소리를 그대로 적은 것이죠. 祁連=gǐeilǐan=görünen.

언지산(焉支山)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지산은 기련산과 함께 흉노의 본거지입니다. 한나라 명장 곽거병에게 이곳을 빼앗긴 흉노족이 이런 노래를 부르며 슬퍼했다고 합니다. 『세계테마기행』의 화면을 보니 그 시 구절이 기련산 바위벽에 새겨졌습니다. “우리는 기련산을 잃었네. 이제 가축을 먹일 수 없네. 우리는 언지산을 잃었네. 여인들이 고운 낯빛을 잃었네.(失我祁連山 使我六畜不蕃息 失我焉支山 使我嫁婦無顔色)” 연지(臙脂)는 여인들이 얼굴에 바르는 빨간 물감을 가리킨다고 하여 요즘까지도 그렇게 불리는데, 이건 ‘언지’와 소리가 비슷하여 붙은 통속어원설일 듯싶습니다. 심지어 언지산을 자꾸 연지산이라고 적으면서 그럴 듯하게 설명하려 드는데, 이런 작태는 어원 연구에서 심각한 방해물입니다.

‘기련’이 ‘görünen’의 소리를 적은 것이듯이, 언지(焉支, [ʔjănȶǐe])는 ‘yüzeyi’의 소리를 적은 것입니다. 기련과 언지는 짝을 맞추어 초원의 왕 선우가 다스리는 ‘하늘나라(天子國, Göğün görünen yüzeyi)’의 영역을 가리키기 위해 쓴 말입니다. 즉 흉노의 근거지 중 핵심 영역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곳이 기련산과 언지산 사이의 드넓은 풀밭입니다. 풀밭이 마치 고운 천처럼 펼쳐졌기에 ‘yüzeyi’라고 한 것입니다. 흉노를 물리친 한나라도 이곳을 방목장으로 활용했습니다. 말 키우기에는 가장 좋은 곳이라는 뜻이죠. 흉노가 그렇게 슬피 노래할 만한 풀밭입니다.

나중에 더 얘기하겠지만, 이런저런 언어 자료를 더듬어보면 흉노족의 지배층은 터키어를 썼습니다. 문무왕이 비석에다 자신이 투후 김일제의 후손이라는 기록을 남겼는데, 김일제는 흉노 우현왕의 장남입니다. 신라 지배층이 남긴 말에도 터키어의 자취가 가장 많습니다. 『삼국사기』 지리지에 나오는 신라 지명은 터키어와 정확히 대응합니다. 신라 지명과 터키어의 정합성은 나중에 자세히 알아볼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본보기 삼아서 하나만 검토해보겠습니다.

파주 적성면에 ‘칠중성(七重城)’이 있습니다. 사적 제437호이고, 토탄성(吐呑城)이라고도 하죠. 근처 감악산에서 진흥왕순수비로 추정되는 빗돌도 발견되어, 삼국의 분쟁 지역이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지역입니다. 역사학계에서는 일곱겹(七重)이라는 말에 이 성이 겹성이라고 추정하고 발굴했지만, 보통 성이었음이 드러났습니다. 그러니 ‘七重’이란 성의 특성에서 붙은 말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지역의 마지막 지배자 신라의 지배층은 터키어를 썼습니다. 터키어와 대조해보면 아주 간단하게 답이 나옵니다.

터키어로 ‘일곱’은 ‘Altıdan’ 또는 ‘Yedi’입니다. 답이 보이지 않나요? ‘Altıdan’의 ‘Al’을 빼면 ‘tıdan’입니다. ‘칠중’을 ‘토탄(tıdan, 뜨단)’이라고도 한 까닭이 이것입니다. 重은 뭐냐고요? ‘무게’는 ‘Aǧırlık, dara’입니다. 따라서 ‘七重’은 ‘tıdandara’를 적은 것이죠. 재미있는 것은, 임진강의 옛말이 칠중하(七重河)였다는 겁니다. 그런데 ‘임진’이 ‘Yedi(7)’이나 ‘Aǧırlık(무게)’의 음차 표기로 보이지 않나요? 臨津(Aǧırlık)=七重=(tıdandara).

그런데 이게 무슨 뜻일까요? 거기에 먼저 살던 고구려와 백제의 지배층이 쓰던 말을 살피면 답이 보이겠지요. 고구려 백제의 지배층은 몽골어를 썼습니다. 신라의 지배층은 점령지에서 될수록 원래 이름의 소리와 최대한 비슷하게 지명을 지어 썼습니다. 그곳에 사는 토박이들의 불편을 덜어주려고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니 정답은 여러분이 맞혀보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몽골어로 ‘일곱’은 ‘dologan, tawar’입니다. 따라서 칠중성의 몽골어 표기는 ‘dologandara’, 또는 ‘tawardara’겠죠. ‘dara’가 터키어로는 저울접시의 무게를 뜻하지만, 몽골어로는 ‘땅, 산’을 뜻한다는 것을 알면 이제 답이 보일 겁니다. 제가 떡을 여러분의 입안에다가 밀어 넣어드렸습니다. 여러분은 그냥 삼키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도 뱉는 분들이 있습니다. 못 먹어서 뱉는 건 괜찮은데, 뜳어서 뱉는 건 고약한 일입니다. 하하하.

그런데 『한서』의 흉노 내용 말입니다. 좀 이상하지 않나요? ‘탱리’와 ‘고도’는 하늘(天)과 아들(子)에 정확히 대응하여 설명이 깔끔한데, 선우에 대한 설명은 좀 이상합니다. 선우에 대응하는 낱말을 정확히 알려주면 되는데, 뜬금없이 땅이 어떻고 하늘이 어떻고 하는 묘사가 두루뭉술하고 애매모호합니다. 이거 이상하지 않나요? 저만 이상한가요? 여러분은 어쩜 그리 이상한 게 없을까요?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살아도 되는 겁니까? 언어는 뇌의 역사박물관입니다. “선우란 넓고 큰 모습이다. 하늘에 홀로 우뚝한 것을 본떴음을 말한다.” 하늘의 뜻을 받는 제왕의 고독한 처지를 나타낸 것인데, 앞의 탱리 고도 설명에 견주면 이 장황함은 우스꽝스러운 일입니다. 받아적은 사람(반고겠죠?) 자신이 선우의 뜻을 잘 몰랐다는 증거입니다. 그러기에 이런 엉망진창 개똥철학으로 덧칠한 것이죠.

상상력으로 먹고사는 문학도인 제가 나서보겠습니다. 역사학자들께서는 정 뜳으시면 저의 개똥철학이라고 여기고 그냥 지나가 주세요. 굳이 믿어달라고 애원하지 않습니다. 하하하. 『한서』의 설명을 들어보면 ‘선우’라는 말에는 ‘광대하다’와 ‘하늘에 홀로 우뚝하다’는 두 가지 뜻이 들었습니다. 이 두 가지 조건에 걸맞은 대상은 무엇일까요? 여러분이 상상해보시기 바랍니다. 이건 뭐 대단한 상상력을 요구하는 문제도 아닙니다. 수수께끼 수준이죠. 어린아이들도 답을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문제인데, 뭘까요? 답은……

‘해(güneş)’입니다. 하늘에 태양은 하나이듯이, 세상에 왕은 하나뿐입니다. 따라서 왕과 태양은 동의어죠. 선우는 여러 가지 표기가 있습니다. 선우(鮮虞[sǐanŋǐwa(상고음)>yɕian(현대음)])라고도 적고 순유(淳維[ʑǐwənʎǐwəi>tʂʰuənuei])라고도 적습니다. 터키어 ‘폐하(jenap> jenu)’와 비교해보면 서로 비슷합니다. 터키어 ‘güneş’가 바로 ‘해’를 뜻하는 말입니다. 고대 터키어 폐하(jenap)와 현대 터키어 해(güneş)는 음운변동을 고려하면 거의 비슷한 소리입니다. j와 g는 똑같은 입천장소리입니다. 얼마든지 넘나듭니다. 나중에 묵음으로 바뀌는 끝소리 받침 p와 ş의 모습도 닮았습니다. 터키어를 모르는 중국 측 사신이 들으면 거의 같은 소리로 들릴 것입니다. 하늘에 뜬 해야말로 ‘넓고 큰 모양(廣大之貌也)’과 하늘에 홀로 우뚝한 모습 본뜬(象天單于然也) 것에 걸맞은 존재죠. 고대 터키인들에게 해와 폐하는 같은 존재이고, 그래서 같은 소리로 부른 것입니다.

선우(單于)의 單은 발음이 둘입니다. 오랑캐 임금을 뜻할 때는 ‘선’, 홑(一)을 뜻할 때는 ‘단’이라고 읽습니다. ‘jenap>jenu’의 소리를 ‘單于’로 옮겨적고, ‘單’을 ‘홀로’를 뜻하는 말로 설명한 것이 『한서』의 내용입니다. ‘單于者,廣大之貌也,言其象天單于然也’의 앞에 나오는 ‘單’은 ‘선’입니다. 하지만 뒤에 나오는 ‘單’은 선우에 대한 뜻풀이로 ‘홀로’를 뜻하므로 ‘단’이라고 읽어야 합니다. 아마 반고는 선우를 ‘단우’라고 읽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엉터리 풀이를 했겠죠.

그런데 재미있는 게 있습니다. 터키어로 해(Güneş)와 거의 똑같은 발음이 나는 말이 있습니다. ‘Geniş(넓다)’가 그것입니다. 그래서 굳이 드넓은 모양(廣大之貌也)이라는 풀이를 덧붙인 모양입니다. 반면, 남은 구절 ‘象天單于然’은 ‘Güneş(해)’를 설명한 것이죠. ‘jenap =Geniş+Güneş’로 설명한 게 『한서』입니다. 따라서 탱리고도를 천자라고 간단명료하게 설명한 것처럼 ‘선우란 해이다.(單于者太陽也)’라고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한자표기 ‘單于’의 뜻에 헷갈려서, 태양이란 말을 버리고 해의 모습을 장황하게 설명한 것이죠.

흉노가 한나라에 보내는 국서의 서문은 반드시 이렇게 시작합니다.
“천지가 낳으시고 일월이 세우신 흉노의 대선우는 삼가 한나라 황제에게 문안하노니 무양하신지?”-『사기』 흉노 열전 
천지가 낳았다는 것은 해를 뜻합니다. 해와 달을 밤낮 번갈아서 낳죠. 일월이 세웠다는 것은 해와 달과 선우는 한 몸이라는 뜻입니다. 흉노의 중심지를 하늘뫼(天山=祁連)라고 합니다. 해인 선우는 하늘에 살아야 마땅하죠. 그 영역이 기련(görünen)과 언지(yüzeyi)입니다. 선우는 해가 뜨면 나아가 절을 하고, 달이 뜨면 또 절을 합니다. 날마다 그렇게 합니다. 마치 해와 달의 분신입니다. 그렇기에 전쟁도 달이 차오르면 공격하고, 그믐이면 철수합니다. 흉노는 제정일치의 사회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아직도 신화 세계에 사는 겨레와 제정이 분리된 세계에 사는 겨레가 싸우는 것이 바로 흉노와 한의 대결입니다. 신화와 논리의 대결인데, 역사는 논리가 신화를 이기는 것으로 끝나죠.

흉노의 멸망 뒤에도 이들의 후예는 돌궐이라는 이름으로 끊임없이 초원을 지배하고 중국으로 들어가 왕조를 세웁니다. 당나라를 세운 이연 이세민 부자가 바로 그런 이들입니다. 이세민은 자기 형제들을 죽이고서 당 제국을 실제로 세운 황제인데, 문물과 제도를 아주 잘 정비하여 ‘정관의 치’라는 칭송을 받습니다. 그가 쓴 『정관정요』는 역대 황제들이 읽는 필독서가 되었죠. 그런데 이 당 태종 이세민이 돌궐의 17대 가한입니다. 수나라 통치하에서 귀족 가문으로 있다가 수나라가 힘을 잃자 정권을 잡고 나라를 세우죠.

초원에서 그다음으로 일어난 종족이 몽골어를 쓰는 부족입니다. 선비 오환 시절에 이들은 북연(北燕)을 세웠다가 요(遼)나라까지 세워서 서양에는 ‘키타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죠. 이들의 후예는 좀 더 나중에 칭기즈칸의 등장과 함께 전 세계를 지배합니다. 그리고 그사이 사이에 퉁구스어를 쓰는 종족이 일어납니다. 주로 금나라(1115~1234)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다가 동양사의 맨 마지막을 장식하는 ‘청’을 일으키죠. 이들도 자신의 뿌리를 알았기에 ‘청’으로 바꾸기 전의 이름이 ‘후금’이었습니다.

금나라는 시조가 아골타(阿骨打)이고 성이 완안(完顔)인데, 스스로 고려인의 후손이라고 밝혔고, 『고려사』에는 금행(金幸, 今幸)이라는 조상의 이름까지 나옵니다. 『금사』에는 함보(函普)로 나오죠. 발해가 요나라에게 망하자 그 혼란을 틈타 나라를 세우는데, 요나라를 원수로 여겼습니다. 요나라의 상징인 빈철(賓鐵)과 달리 금만이 녹슬지 않고 영원하다며, 이름을 금(金)으로 선언합니다. 물론 나라 이름을 이렇게 한 것에는 그들이 고려의 김 씨 출신임을 드러내려고 한 것도 있습니다. 이들은 북송을 멸망시키고 중국의 절반을 차지했지만, 초원에서 새로 일어서는 몽골에게 밀려 결국은 망합니다. 이 시대를 의학사에서는 금원사대가라고 하여 한의학 발전의 한 전기를 이룩한 시대로 정의합니다.

일부 국수주의자들은 금나라 조상이 신라에서 왔다는 말에 혹하여, 마치 이들이 우리의 왕조인 양 겨레의 자부심을 북돋우려는 소재로 다루기도 합니다만, 어림없는 일입니다. 금나라는 엄연히 중국의 정사인 『25사』에 포함된 나라입니다. 이런 식이면 원나라도 청나라도 한국사여야 하는데, 역사를 혈통사로 엮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게다가 금나라에서 저지른 만행을 보면 한심합니다. 북송을 멸망시키고 사로잡은 왕족의 여자들을 따로 모아 기생으로 만들어 모조리 저잣거리의 성 노리개로 만들었습니다(이른바 정강의 변). 무자비함을 넘어서 야비하기 짝이 없는 짓이죠. 아무리 적이라고 해도 포로로 잡힌 왕족의 여인들을 이런 식으로 다룬 왕조는 없었습니다. 이런 짓은 백성들에게 두려움보다는 반감으로 작용합니다. 그 뒤를 이은 초원의 신흥강자 몽골에게 밀리다 망한 것은, 이런 무모하고 야비한 금나라의 정책으로 민심이 등을 돌린 것이 더 큰 원인이라고 봅니다.

그나저나 참 중국놈들 맘뽀가 고약한 게, 같은 소리라도 남의 부족 이름을 적는데 구걸한다는 뜻의 걸(乞)로 적는 것은 정말 얄밉습니다. 지들이 제일 잘 났고 남들은 모두 짐승 같은 놈들이거나 거지 같은 놈들입니다. 흉노(匈奴)를 보십시오. 흉악한 노비가 연상되는 말 아닙니까? 남만(南蠻)은 버러지(虫) 같은 놈들, 서융(西戎)은 개(戎) 같은 놈들이 떠오르는 말입니다. 오직 동이(東夷)만이 짐승에 비유되지 않았습니다. 夷는 ‘大+弓’으로 큰 활의 뜻이니, 그나마 활을 잘 쏘는 놈들을 뜻합니다. 이럴 때는 우리도 마주 욕해주어야죠. 에이, 개○○들! 이런 욕으로는 직성이 안 풀리는데, 좀 더 세게 나갈까요? 그랬다간 제 밑천이 다 드러날 테니 이쯤에서 세 치 혀를 멈추겠습니다. 하하하.

몽골 터키 퉁구스, 이들 세 부족이 순서를 바꿔가며 흥성할 때마다 나머지 부족은 그 밑으로 들어가 그들의 일원이 되어 ‘국가’를 이룹니다. 이런 현상이 끝없이 되풀이되는 곳이 바로 우리의 고대사 강역인 만리장성 동북쪽 지역입니다. 그래서 그들 중에서 누가 일어서든 결국은 세 갈래 혈통이 우위 다툼을 하는 결과를 가져왔기에, 그쪽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세한’이라고 한다고 했습니다. ‘세한’은 ‘삼한’이고 곧 ‘조선’이죠. 우리는 지금 그곳에서 청동기와 철기를 바탕으로 막 일어나는 여러 부족의 이합집산과 흥망성쇠를 들여다보는 중입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고조선의 ‘기자’와 삼국시대의 서막을 여는 데 큰 몫을 맡았던 ‘부여’의 정체를 제대로 알았습니다. 다시 정리해보면 이렇습니다. 즉, 한나라 북쪽의 오랑캐 흉노는 터키족이고, 몽골족의 일파인 부리야트 족은 바이칼호 언저리 초원지대에 살았는데, 이들이 어떤 연유로 본거지를 벗어나 딴 곳으로 움직이면서 동북아시아의 세력에 큰 변화가 일어납니다.(반대로 처음엔 만리장성 접경에 있다가 중국에게 밀려서 나중에 바이칼호 근처로 왔을 수도 있습니다. 순서야 어떻든!) 이 변화의 한 끝이 『위략』이라는 글에 신화의 형태로 전해옵니다.

“옛날 북쪽에 ‘고리지국(槀離之國)’이 있었다. 왕을 모시던 여자가 아이를 배어서 죽이려 하였는데, 여자가 말하기를, 달걀(鷄子) 같은 기운이 내려온 뒤에 태기가 있었다고 하였다. 그뒤 아들을 낳았는데, 아이를 뒷간에 버리니 돼지들이 입김을 불어주고, 마구간에 버리니 말이 입김을 불어주어 죽지 않았다. 왕이 하늘이 아들을 낸 것이 아닌가 하여 그 어미에게 돌려주었는데, 이름을 ‘동명’이라 하고 말을 기르는 일을 맡겼다. 동명이 활을 잘 쏘므로 왕이 나라를 빼앗길까 우려하여 죽이려 했다. 동명이 달아나다가 남쪽 ‘시엄수’에 이르러 활로 물을 치니 물고기 자라 등이 떠 올라 다리를 만들어 동명을 건너게 하고 흩어지니 뒤따르던 병사들은 건너지 못했다. 동명이 부여 땅에 도읍을 정하고 왕이 되었다.”

고리국의 신화라고 했는데, 이것은 고구려 주몽 신화와 똑같습니다. 결국 ‘고리’는 ‘구리(句麗)’와 같은 표기임을 알 수 있고, 앞서 알아본 부리야트 부족 내의 방언 갈래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麗는 ‘종족이름 리, 아름다울 려’라서 고구려 같은 종족 이름을 가리킬 때는 ‘려’가 아니라 ‘리’로 읽어야 한다고 앞서 말한 적이 있습니다. ‘句麗’는 ‘구려’‘구리’로 읽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야 고주몽의 출신인 ‘계루’와 음이 비슷해집니다.

이 신화에는 ‘시엄수’라고 나오는데, 다른 기록에서는 ‘엄체수’라고 나옵니다. 그런데 앞서 금나라를 세운 완안부 아골타 때문에 백과사전을 찾아보니, 그에 대한 힌트가 나옵니다. ‘완안’은 ‘왕얀하라(王家, Wo-on (g)ia-an)’의 한자표기인데, 그들이 살던 완연하(蜿蜒河)에서 음을 따서 왕족임을 표현한 것이라고 합니다.(위키백과) 산 곳은 강 이름인데, 그게 또 왕가를 뜻한다니, 어딘가 어설픈 설명이지만, 일단 믿어봅니다.(이에 대해서도 나중에 어원 풀이를 한 번 해보겠습니다.)

아골타는 자신이 살던 이곳에서 나라 이름을 따서 금나라라고 했는데, 우리에게 중요한 말이 하나 나옵니다. 완안부의 본거지가 안출호수(按出虎水, Anʧu-bira)인데, 이것이 주몽 신화에서 엄체수(淹滯水)로 표기된 것입니다. 금을 여진어로는 안춘(Antʃun), 만주어로는 아이신(Aisin)이라고 하는데, 이것을 한자로 적은 것이 ‘안출호’입니다. 주몽이 건넌 강물은 바로 안출호([ànchuhū], 엄체[yānzhì]), 즉 황금의 강(Anʧu-bira)이었던 것입니다.(‘시엄수’의 ‘施’는 반모음 ‘y’를 적은 것.) 강이 구불구불 기어가기 때문에 이름을 지렁이가 구불거리는 모양(蜿蜒)라고 붙였지만, 실제로는 용의 이미지이죠. 용은 왕을 뜻합니다. 왕을 배출한 강이기에 이런 이름이 붙은 것입니다. 아골타도 주몽도 용이었습니다. 이 용들이 살거나 건넌 강이 황금 강이죠.

부여(부리야트)는 원래 5부족으로 이루어진 다민족 연맹체 국가이고 5부족은 가뭄 같은 큰 재앙이 들면 왕을 갈아 치울 수 있는 느슨한 형태의 정치 구조였습니다.(『삼국지』 위서 동이전) 부여의 동쪽에 사는 한 갈래(고리족)가 남쪽으로 내려와서 고구려를 세우고, 부여와 똑같은 정치 체제로 나라를 운영합니다. 나중에 제3대 대무신왕에 이르러 부여를 정벌함으로써 부여왕 대소가 죽고 부여는 망하는데, 이렇게 해서 흩어진 부여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뻔하지요. 고구려의 품속으로 기어든 겁니다. 부리야트 안의 여러 부족 사이에서 벌어진 갈등에서 고리(계루)부가 왕을 차지하는 과정이었던 거죠.

고구려는 5부족(계루부, 소노부, 절노부, 관노부, 순노부)이었습니다. 이 중에서 절노부에서는 왕비가 나오고, 왕은 소노부에서 나왔는데, 주몽부터 계루부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런 변화가 바로 고구려 건국 과정의 세력 재편에서 그대로 드러난 것이고, 그것이 신화로 정리되어 전해 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리야트 방언에서 나타난 ‘기자’는 어찌 된 걸까요? 이들이 어찌하여 고조선의 왕이 된 걸까요?

정진명 시인.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정진명 시인.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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